교육과정·교과서

고교학점제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에 대한 교사와 학생의 경험 탐색1)

허예지1,*, 김영은2,**
Yae-ji Hu1,*, Young-Eun Kim2,**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한국교육과정평가원 부연구위원
2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위원
1Associate Research Fellow, Korea Institute for Curriculum and Evaluation
2Research Fellow, Korea Institute for Curriculum and Evaluation
*제1저자, yjhu21@kice.re.kr
**교신저자, ey2015@kice.re.kr

© Copyright 2023, Korea Institute for Curriculum and Evaluation.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ShareAlike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Jul 05, 2023; Revised: Jul 28, 2023; Accepted: Aug 09, 2023

Published Online: Aug 31, 2023

요약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 시 학교 현장에서 교육적으로 의미 있고 원활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교육 주체들의 관점에서 적용 실태를 면밀히 이해하고, 개선 사항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은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에 관한 교사와 학생의 경험을 살펴보고, 고교학점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탐색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연구·준비학교 14개교의 교사 및 학생 총 28명을 대상으로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의 운영과 이수 경험에 관한 면담을 실시하였다. 연구 결과, 교사들은 교육과정 편성·운영 과정에서 다양한 과목개설 및 수업 변화를 위해 노력하였으며, 결과적으로 학생의 과목 선택권이 확대되고, 수업 참여도 역시 향상되었다. 그러나 부족한 공감대와 교과 간 이해관계, 학생들의 불확실한 진로로 지속적인 갈등과 조율이 불가피하였으며, 교사의 업무 또한 과다해졌다. 학생들은 과목 선택의 과정에서 자기 성찰과 탐색, 진로에 따른 주도적인 결정을 통해 성장하였으나, 등급과 진로 미결정으로 선택의 장애를 겪기도 하였고, 학업 부담이 증가하기도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교사 정원 및 주당 수업 시수 기준 개선, 교사의 전공 교과 개념 확장 및 다과목 지도 역량 개발, 진로와 과목 선택에 대한 경직된 관점의 전환, 단위학교 중심의 교육과정 내실화를 위한 학교의 교육과정 설계·운영 역량 강화와 공동교육과정 등의 교육과정 질 관리 방안 모색 등을 제안하였다.

ABSTRACT

In order to operate properly in the school field when the high school credit system is fully introduced in the future, it is necessary to closely understand the application situation from the perspective of educational subjects and identify areas for improvement. This study examines the teachers’ and students’ experiences regarding the operation of student-selective curriculum and explores the direction of the high school credit system should go. To this end, 14 teachers and 14 students from the research and pilot schools were interviewed about their understandings and experiences of the student-selective curriculum.

As a result of the study, teachers made efforts to provide various subjects and improve teaching during the process; students' right to choose subjects was expanded and student participation was also increased. However, continuous conflicts and compromises were inevitable due to lack of consensus among teachers, between subject interests, and uncertain careers of students, and teachers' workload became excessive. Students grew up through self-reflection and exploration in the course of subject selection, and through proactive decisions according to their career paths, but they also experienced obstacles in their choice due to grades and undecided career paths, and new academic burdens increased. Based on this, this study proposes to reflect the new criterion for the teacher quota and the number of class hours per week, expand the concept of teachers' major subjects and support the development of multi-subject teaching capabilities, change the rigid perspective on career-subject selection, and strengthen teachers’ curriculum literacy, as well as monitoring the quality of classes off campus.

Keywords: 고교학점제;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 맞춤형 교육과정; 교육과정 이수 경험
Keywords: High School Credit System; Student Selective Curriculum; Customized Curriculum; Class Completion Experience

I. 서 론

고교학점제는 정책 추진 초기에 학생의 과목 선택권 확대에 중점을 두며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 편성·운영을 강조하였다. 이에 따라 학생이 주도성을 갖고 과목을 선택하여 이수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 이수지도팀’을 중심으로 한 진로·학업 설계 지도를 실시하고, 학교 전반의 수업 및 평가의 변화를 유도하고자 하였다. 이에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따른 선택형 및 맞춤형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하기 위하여 학교 내 다양한 과목 개설, 소인수 과목과 학교 간 공동교육과정 운영, 학교자율교육과정 운영, 학교 밖 교육 등을 시도하며 학교 교육과정을 다양화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학교 업무 조직은 교육과정이나 고교학점제 중심으로 전환되고, 고교학점제 및 학생의 과목 선택권의 중요성에 대하여 공감하고 협력하는 학교 문화가 서서히 형성되면서 학교 현장에 유의미한 성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김현미 외, 2020; 이미숙 외, 2019). 반면에 일부 학교에서는 소수 교사의 희생과 노력만으로 고교학점제가 운영되거나 교사가 겪는 다양한 어려움이나 경험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앞으로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 시 선택형 교육과정이 원활하게 편성·운영되어 고교학점제가 의도한 교육적인 효과를 거두려면, 현재 고교학점제의 적용 실태와 문제를 면밀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어떤 교육 제도의 실태를 이해하기 위한 한 가지 유의미하고 실효성 있는 방법은 해당 제도를 직접 실천하는 주체들의 경험을 탐색해보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정책이라도 정작 이를 경험하는 교육 주체들에게 의미가 없다면, 본래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고교학점제하에서 선택형 교육과정에 대한 교사들과 학생들의 경험을 살펴 이에 따른 지원과 개선 방안을 미리 강구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고교학점제 운영과 관련하여 교사 및 학생의 인식과 경험을 탐구한 연구들이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적지 않은 연구들은 고교학점제 운영 실태의 일환으로 선택형 교육과정에 대한 교사와 학생의 인식을 조사하거나, 고교학점제 정책 방향에 대한 현장의 요구를 분석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김인엽 외 2019; 김진숙 외, 2019; 이광우, 2018). 이들 연구는 총 이수 단위 수 조정, 학생 과목 선택권 확대 방안, 무학년제 도입 등에 대한 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른 교육과정 개선 방안을 모색하였다. 나아가 최근 연구들은 심층 면담이나 설문을 통해 소규모 학교에서의 학점제 운영이나 공동교육과정 등 세부적인 쟁점에 대한 교사의 인식과 어려움을 파악하고자 하였다(이영희, 윤지현, 윤정현, 2022; 조용, 2023; 한정희 외, 2023).

고교학점제에서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 편성·운영 사례와 학생의 과목 선택 경험 또는 경향성에 관심을 둔 연구들도 수행되었다. 대표적으로 김동욱(2019)은 연구학교 1개를 사례로 선택형 교육과정 편성의 특징을 도출하고, 수강 신청 및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학생들의 과목 선택 경향성을 분석하였다. 그 밖에도 설문조사를 활용하여 학생의 과목 선택 기준으로 진로와 흥미, 수능 관련성, 학습량과 난이도 등을 분석해낸 연구들도 있으며(김신은, 윤지아, 이창훈, 2021; 유득순, 2022), 사례연구 또는 내러티브 탐구 등을 통해 학생의 과목 선택과 이수 경험을 질적으로 탐색한 연구들도 있다(박주현, 서경혜, 2021, 2022; 박진희 외, 2022).

이처럼 선행연구를 통해 학교 교육과정 편성 사례가 공유되고, 학생들의 과목 선택 방식이나 기준, 교사들의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어려움 등이 규명되었다. 그러나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 편성·운영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의 경험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려는 연구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선행연구들은 통계 분석을 통해 전체적인 경향성을 파악하고, 일부 질적 연구의 경우에도 사례 수가 지나치게 적거나 특정 지역 또는 학교에 국한되어 있다. 연구 주제 역시 고교학점제 운영 전반을 다루거나, 역으로 지나치게 좁게 설정된 경우가 있었다.

이에 본 연구의 목적은 고교학점제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은 물론 이와 관련된 학교 문화, 진로‧학업 설계 지도, 수업 및 평가 등에 대한 학교 구성원의 경험 양상과 특징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교학점제 적용의 명암(明暗)을 드러냄으로써 앞으로 고교학점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하여 다양한 지역의 연구·준비학교 14개교의 교사와 학생 28명(각 14명)을 대상으로 면담을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교사들은 교육과정을 어떻게 편성·운영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이러한 교육과정을 어떻게 선택하고 이수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떠한 변화 혹은 어려움이 나타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II. 선행연구

2018년 이후 고교학점제 연구·준비학교의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학계에서도 고교학점제의 운영 실태와, 그와 관련한 교사와 학생의 인식과 경험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왔다. 이에 따라 고교학점제 운영 전반,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 공동교육과정, 수업, 평가 및 대입제도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교사와 학생의 인식과 경험을 다룬 연구들이 이루어졌다. 이 장에서는 본 연구의 초점에 맞추어 고교학점제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에 대한 인식과 경험 연구를 중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또한 교육과정과 수업의 긴밀한 관련성과 수업이 학생들에게 갖는 중요성을 고려하여 선택 과목 수업 경험에 대한 연구들도 함께 살펴본다.

1. 고교학점제 교육과정 관련 교사의 인식과 경험 연구

고교학점제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과 관련된 교사 인식 또는 경험 연구는 교육과정 정책에 대한 교사의 의견이나 요구, 선택 과목 확대 가능성에 대한 인식, 교육과정 편성 참여 및 운영 경험과 어려움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주제들은 고교학점제가 제도적으로 구체화 되어감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고교학점제가 시범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초기의 선행연구들은 연구·선도학교 교원을 대상으로 교육과정을 포함한 고교학점제 운영 전반에 대한 인식과 요구를 조사하였다. 이를 통해 제도적 차원에서 교육과정 편성·운영을 개선하기 위한 방향을 탐색하였다. 대표적으로 이광우(2018)는 고등학교 교사 1,608명을 대상으로 교육과정, 교육평가, 수능과 대입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결과 총 이수 단위 수 조정, 과목 선택권 확대 등에 대한 요구가 높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학생 개인별 시간표의 유연한 구성, 선택 과목 수강 방식의 다양화에 따른 학교 밖 교육과 정규교육과정의 연계, 학생의 과목 선택 역량 강화 등을 제안하였다.

이와 비슷하게 김진숙 외(2019)는 고교학점제 교육과정 도입에 따른 쟁점에 대하여 연구·선도 학교 교원과 전문가 총 10,55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함으로써 최소 이수 학점의 축소, 진로집중과정 운영을 통한 과정 선택, 학생 과목 선택의 질 보장 등에 관한 요구를 파악하였다. 이를 토대로 최소 이수 학점 축소를 통한 탄력적인 학교 교육과정 운영, 진로집중과정 개설, 과목 선택권 확대를 위한 대안적 과목의 이수 등을 제안하였다.

김인엽 외(2019) 역시 유사한 맥락에서 고교학점제 연구·선도학교를 운영했거나 정책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일반고와 직업계고 교사 256명을 대상으로 교육과정 총 이수 단위의 적정 규모, 무학년제 도입, 재이수제 도입, 국가교육과정의 개정 필요성 등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연구 결과, 교사들은 총 이수 단위는 152~180단위 미만이 적정하다고 보았으며, 남교사가 국가교육과정이 개정되어야 할 필요성을 더 크게 인식하였다. 또 직업계고보다 일반고 교사가 무학년제와 재이수제 도입이 더 필요하다고 응답하였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총 이수 단위의 감축, 창의적 체험활동 편성의 자율성 확대, 학교 유형별 고교학점제 정책 추진 등의 필요성을 제안하였다.

이상은, 백선희(2019a)의 경우, 선택형 교육과정 운영 쟁점 가운데 교원 수급 및 다과목 지도와 관련하여 교사들의 인식을 분석함으로써 단위학교의 교원을 활용한 선택 과목 다양화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이를 위해 82개 연구·선도학교 교사 1,333명을 대상으로 전공별 담당 교과의 현황과 전공 외 과목을 지도하려는 의향 등에 관해 설문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대부분의 교사가 자신이 보유한 임용 시 전공 표시과목 1개와 관련된 과목을 가르치고 있었으며, 그 외의 과목을 지도하려는 의지는 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충분한 수업 준비 시간과 별도의 연수가 제공될 경우, 비전공 과목을 담당하겠다는 교사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고교학점제 종합 추진 계획안」(교육부, 2021a)을 통해 고교학점제의 총 이수학점, 1학점의 수업량, 공동교육과정 운영 방안 등이 구체화되면서 선행연구들은 고교학점제 교육과정의 정책적 이슈에 대한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는 데에서 나아가 교사들이 실제 겪고 있는 어려움을 깊이 이해하고, 교육과정의 세부적인 쟁점에 대해 초점화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한 예로 이영희, 윤지현, 윤정현(2022)은 고교학점제의 정착을 위해서는 교사의 역할이 확대되고 전문성 함양이 중요하다는 전제하에 고교학점제 운영 과정에서 교사가 겪는 어려움을 분석함으로써 교사의 새로운 역할을 도출하고자 하였다. 교사 대상 심층 면담을 통해 학교 문화, 교육과정 편성·운영, 진로·학업 설계 지도, 학교 공간 조성 등의 영역에서 나타난 어려움을 규명하였다. 그 결과 학생 수요를 반영한 교육체제를 마련하고 학생들의 주도적인 학업 설계를 지원할 수 있는 교사의 전문성이 필수적임을 확인하였다.

조용(2023)의 경우, 고교학점제 운영상 어려움이 상대적으로 더 큰 소규모 학교에 초점을 두고, 이들 학교가 겪는 어려움을 파악하기 위하여 소규모 학교의 고교학점제 및 공동교육과정 담당자와 교육청 업무 담당자를 대상으로 면담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과목 개설 다양화의 한계, 교원 수급 불안정성과 업무 증가, 공동교육과정 운영 시 학사 일정 조정의 어려움, 공감대 형성 부족 등의 문제를 드러내고 그에 따른 개선방안을 제시하였다.

한정희 외(2023) 역시 대학과 연계한 공동교육과정 운영이라는 구체적인 사안에 대하여 대학, 교육청, 고등학교의 고교학점제 공동교육과정 운영 담당자 156명을 대상으로 요구도를 조사하였다. 연구 결과, 대입 및 학생 평가 제도의 개선, 대학과의 고교학점제 교육과정 및 교과목 공동 개발·운영에 대한 요구가 높게 나타났다. 이를 바탕으로 기관 간 상호 협력의 중요성과 교육과정 공동 개발 및 운영에 대한 대학의 적극적인 지원 필요성을 제안하였다.

2. 고교학점제 교육과정 및 수업 관련 학생의 인식과 경험 연구

고교학점제 교육과정에 대한 학생의 인식과 경험을 탐색한 연구들은 주로 과목 선택에 대한 인식과 경험, 과목 선택의 기준 등을 주제로 하였다. 이와 더불어 고교학점제 수업과 관련된 일부 연구들은 선택 과목 수업 또는 공동교육과정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경험을 살펴보았다.

우선, 과목 선택에 대한 인식을 살펴본 연구로는 이상은, 백선희(2019b)를 들 수 있다. 이 연구는 설문조사를 통해 과목 선택의 현황과 이유, 과목 선택을 통한 기대효과, 지원사항 등 과목 선택에 대한 학생들의 전반적인 인식을 살펴보고, 학생 특성 변인별 경향성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원하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고, 선택 과목이 적성에 맞는다고 인식한 정도가 비교적 높게 나타났는데, 이러한 응답은 고교학점제가 시범 적용된 1학년에서 더 높았으며, 학생이 인식한 학업 성적, 교육 기대 수준, 부모 교육 수준, 가정 형편 등이 높을수록 더 높은 경향이 있었다. 과목 선택의 기준은 관심 계열과 적성, 내신 성적 산출에 유리한 정도, 적은 학업 부담 등의 순서로 중요하다고 응답하였다. 또 학교 지정 과목보다 선택 과목에서 수업 만족도가 높았고, 과목 선택을 위한 지원 사항으로 진로 및 직업 체험, 학교 밖 연계 진로지도 등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한편 고교학점제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 이수 경험을 다소 비판적인 관점에서 분석한 연구들도 있다. 박주현, 서경혜(2021)는 고교학점제의 취지가 과목 선택권 확대와 학생의 주도적인 과목 선택에 있다고 보고, 내러티브 탐구 방법을 활용하여 고교학점제 선도학교 2학년 학생 3명의 과목 선택 경험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학생들은 입시에서 차별화된 교육과정 이수 이력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과목 선택권을 활용하고, 성적이라는 현실과 적성 사이에서 갈등과 타협을 하면서 과목을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일관된 과목 선택과 체계적인 생활기록부 작성을 위해 형식적으로 진로를 결정하는 경향 역시 발견되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통해 단순히 선택 과목을 늘리는 데 초점을 둔 고교학점제 정책 추진 방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함을 주장하였다. 또 박주현, 서경혜(2022)는 교육불평등 및 학습격차의 관점에서 두 학생의 과목 선택 사례를 분석함으로써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과목 선택 경향의 차이가 있음을 드러내었다. 이를 토대로 고교학점제가 과목 선택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에서 나아가 학생들이 적합한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피력하였다.

다음으로는 연구의 초점을 과목 선택 기준으로 좁혀 학생들의 인식을 탐구한 연구들도 있다. 이들 연구는 선택 과목을 편성·지도하는 교사의 입장에서, 과목 선택의 주체인 학생들이 어떤 이유에서 과목을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는지를 파악하였다. 한 예로 유득순(2022)은 학생들이 역사 과목을 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고교학점제 선도학교인 D고 학생 34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다. 학생들은 학습 내용의 과다 및 높은 수준, 교사 수업 역량 등을 이유로 역사 과목을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대안으로 교사가 성취기준을 선택적으로 구성하고, 학생들에게 친근하고 흥미로운 과목을 개발할 것 등을 제안하였다. 비슷한 맥락에서 김신은, 윤지아, 이창훈(2021)은 교사들이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른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을 편성할 때 필요한 기초 자료를 마련하기 위하여 직업계고등학교 학생들의 과목 선택 기준과 경험에 대해 설문조사하였다.

마지막으로 고교학점제의 선택 과목이나 공동교육과정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의 인식 또는 경험을 살펴본 연구가 일부 있었다. 예를 들어 박진희 외(2020)는 질적 연구 방법을 통해 S고 학생들이 공동교육과정을 선택하고 수업에 참여한 경험을 분석함으로써 학습자 주도성이 발휘되는 조건을 탐색하였다. 연구 결과 학생들은 체계적이고 구조화된 선택을 하기보다는 기대와 다른 수업을 경험하면서 혼란과 시행착오를 겪고, 이를 통해 진로를 탐색해 나아갔다. 또 비구조화된 수업으로 학생들의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활동이 촉진되었으며, 성취평가제가 적용됨에 따라 학생들의 과제 몰입도가 향상되기도 하였다. 이를 토대로 과목 선택권의 좁은 의미, 학습 과정에 대한 평가 방법, 교과 학습을 통한 진로 탐색 등을 개선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고영빈, 지은림(2022) 역시 고교학점제하에서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을 분석하였다. 이를 위해 366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성취평가제가 적용되는 진로 선택 과목의 운영 현황, 선택 이유, 만족도 등에 대하여 설문하였다. 조사 결과, 학생들은 석차등급제가 적용될 때보다 진로와 적성에 맞춰 과목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고, 진로 선택 과목 만족도에는 수업 만족도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과목 관련 정보가 부족하고, 공동교육과정 참여율도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전반적으로 고교학점제의 취지에 맞게 진로 선택 과목을 이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고교학점제 개선 방향을 논의하였다.

이상 선행연구들을 정리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표 1. 고교학점제 교육과정 및 수업에 대한 인식 및 경험 연구
대상 세부 주제 선행연구
교사 정책 관련 의견 및 요구조사 ­ 이광우(2018). 고교학점제 실행에 관한 고등학교 교사의 인식과 요구.
­ 김진숙 외(2019). 학점제의 고등학교 교육과정 도입에 대한 요구 조사.
­ 김인엽 외(2019). 고교학점제 교육과정 운영에 관한 교사의 인식 차이 분석 연구.
­ 이상은, 백선희(2019a). 고교학점제 선택 과목 확대 가능성 탐색: 교사 전공별 담당교과 현황 및 인식 분석을 중심으로.
구체적 운영 실태·어려움 ­ 이영희, 윤지현, 윤정현(2022). 고교학점제 운영 과정에서 고교 교사들이 겪은 어려움에 대한 인식과 역할 내용 탐색
­ 조용(2023). 소규모학교의 고교학점제에 대한 교원 및 전문가 인식 분석.
­ 한정희 외(2023). 고교학점제의 대학연계형 공동교육과정 운영 방안 모색을 위한 요구도 분석.
학생 과목 선택 경험 ­ 이상은, 백선희(2019b). 고교학점제 연구학교의 교육과정 편성 시 과목 선택에 관한 학생들의 인식과 요구
­ 박주현, 서경혜(2021). 학생들의 고교학점제 과목선택 경험에 대한 내러티브 탐구
­ 박주현, 서경혜(2022). 학생의 과목선택권과 교육과정 서열화: 고교학점제하 두 학생 이야기
과목 선택 기준 ­ 유득순(2022). 학생의 과목선택권 확대 속 역사 선택 과목에 대한 학생 인식조사 및 교육과정 개발 방향: 고교학점제 선도학교 D고등학교의 사례를 중심으로
­ 김신은, 윤지아, 이창훈(2021). 직업계고 학점제 연구·선도학교 학생의 과목 선택기준 인식 분석
선택 과목 수업 ­ 박진희 외(2020). 과목선택권 확대를 통해 본 학습자 주도성의 의미 재고: S고 학생들의 공동교육과정 경험을 중심으로
­ 고영빈, 지은림(2022). 고교학점제와 성취평가 도입에 따른 진로선택 과목 운영 및 이수에 대한 고교생의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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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선행연구들은 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함으로써 고교학점제의 정책적 방향을 구체화하는 데 기반이 되었으며, 고교학점제 교육과정과 관련한 현장의 실제적인 어려움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또 학생들의 과목 선택 기준에 대한 전반적인 경향성을 분석하고, 과목 선택과 이수 경험에 대한 학생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내었다.

그러나 연구 방법의 측면에서 다수의 선행연구는 설문조사를 활용한 양적 분석에 치중되어 있고, 연구 대상 역시 특정한 학교나 지역, 일부 교과에 제한된 경우가 많다. 연구주제의 측면에서도 고교학점제 교육과정과 관련된 여러 쟁점을 광범위하게 다루거나, 역으로 대학 연계형 공동교육과정 등 협소한 주제에 국한되어 있다. 이에 따라 고교학점제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이 어떻게 운영되고, 경험되는지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 동시에 깊은 이해를 추구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교사 또는 학생 중 한 주체에 중점을 두어 이들 간의 유기적인 관련성이나 교육 주체들의 전반적인 인식을 살펴보기에는 제한적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다수의 양적 연구가 수행된 점을 고려하여 질적 연구 방법을 활용하되, 다양한 지역, 지역 규모, 학급 수, 연구·선도학교(이하 ‘준비학교’2)) 경험 연차를 반영한 사례 선정이 필요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하나의 연구 안에 교사와 학생의 인식과 경험을 담아내 학교 구성원들의 인식을 전반적으로 파악하는 것 또한 요청된다.

한편, 고교학점제의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은 7차 교육과정 이후 도입 및 확대되어 온 기존의 선택 중심 교육과정과 학생의 과목 선택이라는 기본적인 틀은 공유한다. 그러나 고교학점제하에서 선택형 교육과정은 다양한 과목 선택이 실질적으로 가능하도록 소인수 과목, 공동교육과정, 학교 밖 교육 등을 제도화함으로써 학교 교육의 경계를 확장하고자 한다(교육부, 2021a). 즉, 단위학교의 가용 자원 범위를 넓혀 선택 과목의 양적인 확대를 실현하려는 것이다. 또한 단순한 과목 선택권 부여에서 벗어나 학생의 과목 선택 과정에 교육적인 개입을 함으로써 학생이 진로와 진학, 적성에 맞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지원한다(이주연 외, 2020). 나아가 이러한 선택이 누적되어 학생의 진로 탐색과 설계, 진학으로 이어지도록 한다는 점에서도 차별화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교학점제의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을 깊이 이해하려면, 그 특성을 고려하여 학교 교육과정 편제는 물론 학교 교육 전반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선택형 교육과정의 운영과 이수에 더하여 다양한 과목 개설 및 운영을 뒷받침하는 학교 문화와 체제, 진로·학업 설계 지도, 수업 및 평가 방식에 대한 교육 주체들의 경험을 살펴볼 것이다.

III. 연구방법

1. 면담 참여자

이 연구에서는 고교학점제 교육과정과 관련한 경험에 대하여 교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면담을 실시하였다. 면담 참여자들은 참여 의사를 밝힌 연구 참여 학교들3) 중 시·도 권역을 기본적으로 안배하고, 연구·준비학교 경험 연차, 지역 규모, 학급 수를 고려하여, 14개교에서 교사와 학생 각 1명씩 섭외하였다. 단, 교사는 고교학점제 업무 담당 교사로 하였으며, 학생은 과목 선택 경험이 있는 2학년 또는 3학년 학생으로 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이 총 28명의 면담 참여자를 선정하였다.

표 2. 교사 및 학생 면담 참여자
순번 소재 시도 학교명 연구ㆍ준비학교 연차 지역 규모 학급 수 면담 참여자
교사 학생
1 강원 A 연구학교 1년차 읍면지역 20 미만 A고 교사 A고 3학년 학생
2 경기 B 준비학교 1년차 중소도시 20 이상 B고 교사 B고 2학년 학생
3 서울 C 연구학교 3년차 이상 대도시 20 미만 C고 교사 C고 2학년 학생
4 인천 D 연구학교 3년차 이상 대도시 20 이상 D고 교사 D고 3학년 학생
5 대전 E 연구학교 2년차 대도시 20 이상 E고 교사 E고 2학년 학생
6 세종 F 준비학교 2년차 읍면지역 20 이상 F고 교사 F고 3학년 학생
7 충남 G 준비학교 3년차 이상 중소도시 20 이상 G고 교사 G고 3학년 학생
8 충북 H 연구학교 1년차 읍면지역 20 이상 H고 교사 H고 3학년 학생
9 경남 I 연구학교 2년차 중소도시 20 이상 I고 교사 I고 2학년 학생
10 경북 J 준비학교 2년차 읍면지역 20 미만 J고 교사 J고 2학년 학생
11 대구 K 연구학교 1년차 읍면지역 20 미만 K고 교사 K고 3학년 학생
12 광주 L 준비학교 1년차 대도시 20 이상 L고 교사 L고 2학년 학생
13 전남 M 준비학교 1년차 중소도시 20 이상 M고 교사 M고 2학년 학생
14 제주 N 연구학교 2년차 중소도시 20 이상 N고 교사 N고 3학년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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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료 수집 및 분석

면담은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2022년 8월과 9월 초에 걸쳐 모두 온라인 화상회의를 통해 진행되었고, 참여자별로 1회, 회당 30분에서 1시간 실시하였다. 또 반구조화된 면담 방법을 활용하여 면담 참여자들이 연구 문제를 중심으로 사전에 준비된 질문들에 대해 자유롭게 답할 수 있도록 하였다(임은미 외 역, 2002). 이는 참여자들의 다양한 관점을 존중하면서도 여러 참여자로부터 나온 자료를 구조화하거나 종합 및 비교하는 데 용이하다(임은미 외 역, 2002). 이에 따라 교사에게는 미리 질문지를 주어 작성하게 하고, 준비된 질문을 기초로 하되 필요한 경우 질문 순서나 범위를 변경하거나, 새로운 질문을 추가하기도 하였다(김영천, 2016).

면담 질문은 고교학점제의 핵심이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 편성·운영과 진로·학업 설계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이와 관련한 제반의 사항들도 함께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이를 위하여 ‘고교학점제 단계적 이행 로드맵’과 ‘2022학년도 고교학점제 연구·선도학교 과제(안)’(교육부, 2021b, p. 6, 22) 등을 참고하여 고교학점제 정책의 주요 방향과 내용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고교학점제 운영의 핵심은 학교 문화와 운영 체제, 교육과정 편성·운영, 진로·학업 설계 지도, 교수·학습 및 평가라는 점을 파악하였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교사와 학생의 경험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들을 개발하였다. 아울러 교사와 학생의 경험을 유기적으로 분석할 수 있도록 교사와 학생 대상 질문 간의 연계성도 고려하였다. 이후 연구진은 몇 차례 회의를 통해 질문 내용과 범주의 적절성, 구체성의 정도 등을 공동으로 검토하면서 면담 질문을 다듬었다.

그 결과, ‘학교 문화와 체제’에서는 고교학점제 도입으로 인한 변화, 고교학점제에 대한 이해 등을 묻고, ‘교육과정 편성·운영’에서는 학교 교육과정 편제 경험, 개설 과목에 대한 학생의 만족도, 소인수 과목 및 공동교육과정의 운영과 이수 경험 등을 물었다. ‘진로·학업 설계’와 관련해서는 진로·학업 설계 프로그램 운영과 학생의 만족도를, ‘교수·학습 및 평가’에서는 고교학점제 수업의 특징, 장단점, 만족도 등을 질문하였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3. 면담 질문
교사 학생
1. 고교학점제 도입으로 인한 변화, 좋은 점
2. 학교 교육과정 편제 경험
3. 소인수 과목 및 공동교육과정 운영 상황 및 개선점
4. 진로ㆍ학업 설계 프로그램 운영의 장점, 어려움, 지원 요구
5. 고교학점제 수업 운영의 특징, 좋은 점, 어려움, 지원 요구
1. 고교학점제에 대한 이해 및 고교학점제로 인한 변화
2. 학교 개설 과목에 대한 만족 정도와 이유
3. 소인수 과목 및 공동교육과정의 좋은 점과 개선점
4. 진로ㆍ학업 설계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 정도와 이유
5. 고교학점제 수업 및 평가에 대한 만족 정도와 개선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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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 내용은 모두 녹취 및 전사하였으며, 연구진은 전사본을 반복적으로 읽으며 고교학점제 교육과정 운영과 이수의 주요 쟁점, 또는 자주 등장하는 주제를 선별하였다. 이후 선별된 주제들을 다시 검토하면서 유사한 것끼리 범주화하고, 상위 주제를 도출하였다. 연구자 간 교차 검토를 통해 어색하거나 정합성이 부족한 범주는 통합 또는 삭제함으로써 상위 주제와 하위 주제를 정련하는 작업을 여러 차례 반복하였다. 이에 따라 도출된 면담 주제는 다음과 같다.

표 4. 면담 내용 분석 결과
면담 대상 상위 주제 하위 주제
교사 학교 교육과정 편성·운영은 갈등과 조율의 연속 다양한 과목 개설과 수업 방법 다변화를 위한 노력
자발적이고 협력적인 태도, 그러나 아직도 부족한 공감대
쉽지 않은 조정의 과정
다양한 과목 개설의 명암(明暗) 학생의 선택권 확대와 수업 참여도 향상
업무 또 업무: 시간표 작업과 다과목 지도
학생 탐색과 결정을 통한 성장, 그 이면의 두려움 선택을 위한 주도적 탐색과 성찰
진로에 따른 다양한 과목 선택
과목 선택의 장애: 등급에 대한 부담과 불확실한 진로
과목 선택이 가져온 변화와 어려움 흥미롭고 활기찬 수업
새로운 학업 부담과 비대면 수업의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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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 운영 및 이수 경험

1. 교사의 교육과정 운영 경험

고교학점제에 맞는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 운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학교 현장 교사들의 자발적인 협력과 참여, 적지 않은 노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며,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또 그러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성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 절에서는 교사들이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 그 과정에서 겪은 갈등, 그에 따른 결과 등에 대해 드러내었다.

가. 학교 교육과정 편성·운영은 갈등과 조율의 연속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하는 과정에는 다양한 장애물이 있으며, 예기치 못한 변수들이 작용하기도 한다. 때문에 교사들은 이러한 갈등과 어려움을 지속적으로 해소해 나아가야 한다. 다음에서는 이와 관련한 교사들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1) 다양한 과목 개설과 수업 다변화를 위한 노력

교사들은 고교학점제 운영의 가장 큰 특징으로 다양한 과목의 개설 및 학생의 과목 선택권 확대를 언급하였다. 교사들은 학생의 과목 선택권 확대를 위해 완전 개방형 또는 부분 개방형 등을 고민하면서 동시에, 교사 및 교과 간 조율을 위한 실질적인 협의회, 교육과정 이해를 위한 연수, 전문학습공동체 등을 활성화하고, 협력적인 학교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다양한 과목이 개설된다는 점이에요. 소수 과목들이 운영이 잘 되고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맨 처음에 학생들한테 수요 조사를 받을 때부터 굉장히 다양한 과목을 아이들한테 제시하고 그 수요 조사 인원이 10명 미만이 나온 과목에 대해서도 교과 회의를 통해서 이 과목을 개설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회의를 하기도 했는데, 거의 대부분 개설을 하는 것으로 결정이 돼서 회의 결과가 나와요. 상당히 많은 과목들이 개설이 되어 있다는 점이 우리 학교에 가장 큰 장점이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선생님들께서 새로운 교과목을 개설하시는 것에 대해서 사실 조금 두려움은 있지만 다들 허용적으로 해 주시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L고 교사]

다른 한편 교사들은 선택 과목의 취지에 맞는 다양한 수업 방법을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학생들 간의 상대적인 수준이 아닌, 성취기준에 따른 도달 정도를 평가 하는 성취평가제는 학생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다양한 수업 방법을 더욱 활성화한 것으로 보인다.

소인수 과목이나 공동교육과정 같은 경우는 평가가 절대 평가 방식으로 이뤄지다 보니까 학생들이 수업에 임하는 자세나, 선생님들도 수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지식 위주 수업이 아니라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학생들하고 같이 모둠별로 협력 활동이나 이런 것들을 다양한 형태로 진행해요. 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었고요.

[M고 교사]

이처럼 교사들은 성취평가제를 통해서는 물론, 고교학점제 연구학교를 운영하면서 ‘PBL (Problem-Based Learning) 수업’, ‘온·오프라인 블렌디드 러닝’, ‘프로젝트 수업’ 등 학생 중심 또는 학생 개별화 수업을 실천하고, 수업 방식을 다양화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2) 자발적이고 협력적인 태도, 그러나 아직도 부족한 공감대

고교학점제의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하기 위해서는 학교의 문화와 분위기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교사 면담 결과, 다수의 연구 참여 학교에는 고교학점제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한 문화가 전반적으로 잘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들은 자발적으로 역량을 개발하고 서로 협력하고자 하였다. 특히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 운영이 활성화됨에 따라 다과목 지도가 불가피해진 상황은 교사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담당 과목 이외에도 다양한 과목 지도 역량을 개발하고자 하였다. 일부 교사들에 의하면 “이전부터 조금씩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거부감”이 크지 않다고 하였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다른 과목에 대한 이해도”가 향상되는 등 교사의 전문성 확장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반면, 인식 제고를 위한 연수와 고교학점제 운영 경험의 축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사들 사이에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교사에 의하면 적지 않은 교사들이 고교학점제의 취지와 목적에 공감하지 못하거나, 정책의 지속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으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였다.

모든 선생님들이 다 취지 자체에 공감을 하시지는 못한다는 느낌을 굉장히 받았습니다. 함께 해 주시는 분들 같은 경우에도 학점제라든지 아니면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얘기하고 있는 거, 그런 부분들까지도 100% 공감해서 해 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엄청 소수이긴 합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합의해서 결정한 부분이니까 그냥 따라야지 하는 분들도 계시고, 그리고 1/3, 수치화 시킬 수는 없겠지만 그 정도 선생님들의 경우에는 학점제라고 하는 것이 지속되지도 않을 것이고, 그리고 여러 가지 어떤 목적성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시면서 질문을 굉장히 많이 하시고요. 실제 업무에 많이 참여하지 않으시는 모습들을 보이는 분들도 있긴 합니다.

[E고 교사]

이처럼 고교학점제와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하는 교사들은 극히 소수이며, 고교학점제 운영에 참여하는 일부 교사들의 경우에도 깊은 공감대에 터하고 있기보다는 “학교에서 합의”한 결과이니 “그냥 따라”가는 것으로 보인다.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른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참여하려는 교사들도 있지만, 여전히 고교학점제의 근본적인 목적이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공감과 신뢰는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고교학점제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 변화와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더욱 요청될 것이다.

3) 쉽지 않은 조정의 과정

교사들은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여 과목 선택권을 확대하고, 이를 의미 있게 운영하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히기도 하였다. 먼저 교사들은 학교 교육과정 편성 과정에서 학생의 선택을 많이 받음으로써 자기 교과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등 교과 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기도 한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어떤 과목에서 많이 선택이 되도록 배치를 해야 될까’를 고민하시는 거 같더라고요. 교과목 간 이해관계 이런 것들이 조금... 회의를 할 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교육과정부 차원에서 이야기하기가 좀 어려운 부분들이... 예를 들어서 2학년 선택 과목에 배치를 할 때 기초 교과목에서 진로 선택 과목을 다 배치를 했는데 어떤 일반 선택 하나가 배치가 되면 학생들의 선택권이 조금 위축되는 거거든요.

[L고 교사]

고교학점제에서는 학생의 선택에 따라서 과목 편성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고, 동일한 과목이라도 과목 선택의 범위나, 같은 선택지 내 배치된 과목의 특성에 따라서 수강 인원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사들은 자신의 교과가 위축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위기의식을 가진 것으로 보이며, 교과 간 갈등은 이러한 인식이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교과협의회나 교육과정위원회 등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교과 간 입장 차이를 적정선에서 조율하고 협의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될 것이다.

한편, 교사들은 다양한 과목 개설에 더하여,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맞는 과목을 선택해 나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하였다. 그렇게 될 때 맞춤형 교육과정이라는 고교학점제의 본래 취지가 제대로 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1학년 때는 주로 ‘진로와 직업’ 과목 수업을 편제하고, 진로 교사가 진로 검사와 상담을 실시하며, 학년에 따라 학생의 진로와 진학 방향과 관련된 과목들을 이수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지도하였다. 그러나 교사들은 유동적인 학생의 진로로 인해 진로‧학업 설계 지도와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 운영이 어렵다는 점을 토로하였다.

1학년 때부터 진로가 정해진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80-90% 아이들은 진로가 항상 바뀌고 결론은 고3 때 가서는 성적에 맞춘 어쩔 수 없는 진로 변경도 있어 보입니다. 해서 지금 현재 이 프로그램(진로‧학업 설계 지도 프로그램)으로 인해서 학생들의 진로가 확립이 된다든지, 아니면 정말 본인의 커리큘럼을 잘 짤 수 있다든지 그런 것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J고 교사]

진로·학업 설계 지도를 통해 개별 학생의 진로 방향이 정해지면, 이에 따라 학생별 교육과정 설계와 수강신청도 진행되고, 이를 토대로 학교 교육과정도 편성·운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면담 결과,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학생들이 많거나, 3학년 때 성적에 맞춰 진로를 변경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상적으로는 진로의 가변성을 고려하여 교육과정 편성·운영 역시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어야 할 것이나, 교사 수급, 교과서 주문, 시간표 편성 등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예상된다. 이에 학생의 유동적인 진로와 학교 교육과정 편성‧운영 사이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교무 중심의 운영 체제, 전통적인 행정 학급 체제와 고교학점제의 부조화, 교육청과 교육지원청 간의 비일관된 업무처리 등이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을 끊임없는 갈등과 조율의 과정으로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되었다.

나. 다양한 과목 개설의 명암(明暗)

교사들은 갈등과 어려움에도 많은 노력과 협의의 과정을 거쳐 가급적 학생들의 필요와 요구에 맞는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실질적으로 학생의 과목 선택권이 확대되기도 하였으나 여러 과목 개설에 수반되는 업무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다음으로는 교사의 관점에서 다양한 과목 개설로 인한 긍정적 또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학생의 선택권 확대와 수업 참여도 향상

다수의 면담 참여 교사들은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긍정적인 결과로 학생 선택권의 실제적인 확대를 꼽았다. 특히 소속 학교 내 교육과정만이 아니라 인근 학교나 지역 교육청, 지역 기관 등을 통해 개설되는 공동교육과정의 편성‧운영은 학생들의 선택권을 더욱 확장하여 이러한 성과를 극대화한 것으로 보인다.

저희 지금 ○○ 지역은 특이하게 ○○ 지구라고 해서 저희 학교를 포함한 세 학교가 있습니다. ○○고, ○○고, ○○고 등 세 개 학교가 연합으로 공동교육과정을 주로 운영을 하고 있고 해서, 뭐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은 정말 충분히 열리고 있어서 그 점에 있어서는 잘 운영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J고 교사]

이처럼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개별 학교에서 감당할 수 없는 경우, 학교 간 공동교육과정으로 운영하고, 이마저도 어려운 경우에는 시ㆍ도교육청에서 온라인 공동교육과정을 통해 과목 선택권을 확대하였다. 그리고 지역 사회와 대학 연계를 통해서도 공동교육과정의 양적, 질적 확대를 이루기도 하였다.

다양한 과목 개설의 또 다른 성과는 학생들의 수업 만족도와 참여도가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직접 과목을 선택한 것은 물론, 자신들의 관심과 진로에 부합하는 내용을 배우기 때문에 학생들이 배움에 대해 더욱 열의를 갖고 수업과 평가에 참여한다고 하였다.

고교학점제에 부합하는 수업과 평가라는 것은 결국 학생의 수요에 맞는 과목을 선택하고, 진로와 관련된 교과목을 수강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학생 자신의 진로 방향에 맞는 과목이기에 수업과 평가에 참여하는 적극성이 높습니다.

[G고 교사]

이러한 변화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과목 개설을 확대함으로써 학생의 과목 선택에 대한 요구가 충족되고 자신의 진로와 밀접한 과목을 수강하는 것이 가장 큰 동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진로 선택 과목 수업의 경우, 앞서 언급한 것과 유사하게 성취평가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진도나 평가에 부담 없이 학생들의 수요와 교사의 자율성에 의해 수업을 진행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수업에 대한 교사와 학생의 만족도가 모두 높아졌다는 의견도 있었다.

2) 업무 또 업무: 시간표 작업과 다과목 지도

교사들은 고교학점제하에서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의 긍정적 측면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과중한 업무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선택 과목 수가 증가함에 따라 교사들은 기존 업무에 더하여 시간표 작업, 다과목 지도, 교‧강사 확보 등 많은 것들을 처리해야 했다.

우선, 학생들이 선택한 다양한 과목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해서 운영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과 기술적인 노력을 요하는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교사들은 각기 다른 선택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이 공강 시간 없이 수업을 듣게 하기 위해서 시간표를 작성하는 것이 매우 복잡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언급하였다. 또 과목 간의 칸막이를 없애 학생들이 더욱 자유롭게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편성하려고 하면 할수록 시간표 구성은 더욱 어려워졌다.

지금 현재 고3 학생들은 이제 선택을 하더라도 국, 영, 수 중에서 몇 과목, 탐구 과목 중에서 몇 과목 이렇게 선택 과목 간의 블록(칸막이)이 조금 있는데 2학년부터는 전면 개방이거든요. 학교 지정 과목을 제외하고 이제 전면 개방을 하면서 좀 더 선택권을 학생들한테 많이 보장해줄 수 있는데, 문제는 제가 시간표를 짜는 입장이 되니까 그래도 국영수 그리고 탐구 과목 간의 벽이 있으면 수업이 돌아갔거든요. 전면 선택을 하다 보니까 그게 조금 많이 힘들고. 지금은 그냥 일단은 시간표를 꾸역꾸역 어떻게든 짜서 하고 있는데 이제 한 수업에서 교체가 거의 불가능하고 무조건 결강밖에 되지 않으니까 (…중략…) 내년 같으면 2, 3학년이 이제 전면 개방 즉 칸막이가 전혀 없기 때문에 사실은 다음 학기부터 시간표 운영이 될지...

[K고 교사]

더욱이 시간표 작업 및 학생들의 과목 이수 이력이 현재 사용하는 NEIS에 연동되지 않아 교사 개인이 엑셀 수식을 이용해 수작업으로 해결하기도 하였다. 고교학점제 연구·준비학교 운영 초반에는 주로 고교학점제나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학교 교육과정 편성이 힘들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고교학점제 운영 경험이 축적될수록 고교학점제 업무 지원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구축될 필요성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목 개설로 인해 교사의 다과목 지도(교과 내의 새로운 과목을 지도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들은 여러 과목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교재 연구 등 수업 준비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였다. 그 결과 오히려 담당 과목 수업 준비를 소홀히 하거나 학생 지도 등 다른 업무를 수행하는 데에 어려움이 발생한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이는 전공 외의 다른 교과를 지도해야 하는 다교과 지도의 경우 더욱 심화되었다.

제가 세 과목을 (수업)할 때, 특히 국영수 교과 선생님들이 힘들어하시는 게, 대부분 국영수가 시수가 남아요. 그러니까 교양을 다 국영수가 안아요. 그러다보니 제가 지금 ‘수학Ⅱ’와 ‘수학과제탐구’와 ‘심리학’ 중에서 저의 일주일 내내 수업 요구의 모든 것을 올인하는 과목은 ‘심리학’이 첫 번째예요. (…중략…) 오히려 내 전공에 대한 올인을 못하는 그런 상황인 거죠.

[D고 교사]

교사들은 결과적으로 여러 과목을 가르치게 되면, 수업의 질이 상대적으로 저하되고, 기존보다 평가의 횟수도 많아지기 때문에 시험문제 출제시 실수를 하지 않을까 우려하였다. 즉, 과목 개설 확대를 통한 학생의 선택권 보장이라는 목표는 달성할 수 있지만, 정작 수업의 질은 담보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교사들의 업무 피로도나 수업의 질 저하 문제를 고려할 때, 교사의 업무 부담 해소와 다과목 지도 지원을 위한 방안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 학생의 교육과정 이수 경험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라 학생들은 미리 주어진 교육과정을 수동적으로 이수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맞는 교육과정을 직접 만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절에서는 학생들이 진로 탐색과 과목 선택의 과정에서 겪은 긍정적인 경험과 갈등은 물론, 과목 선택으로부터 파생된 결과와 문제점에 대해서도 탐색해보고자 한다.

가. 탐색과 결정을 통한 성장, 그 이면의 두려움

학생들은 학교와 교사들의 지원과 진로·학업 설계 지도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으며 자신의 “진로를 개척”하고 이에 필요한 과목을 선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고민과 갈등을 경험하기도 하였는데 과목 선택을 통한 학생들의 성장 과정과 어려움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선택을 통한 주도적 탐색과 성찰

고교학점제 교육과정 이수 경험과 관련하여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는 과정과 그 과목을 공부하며 느낀 변화를 이야기하였다. 다수의 학생들은 관심 분야와 관련된 과목을 스스로 택하고, 이를 집중적으로 학습함으로써 학업 방향과 진로를 명료화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일단 좀 진로를 명확하게 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왜냐면 제가 사회 쪽에 관심이 많아서 지금도 선택 과목을 사회계열로 듣고 있는데 1학년 때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공통수업을 듣고 사회도 들어보고 과학도 들어봤는데 저는 사회에 조금 더 흥미를 느꼈고 그러면서 3학년이 되기까지 총 6개 정도의 사회 탐구 과목 수업을 들었는데, 이제 좀 여러 가지 사회현상을 보는 눈도 얻게 된 것 같고, 제가 희망하는 진로에도 좀 밀접한 연관이 있는 학문들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K고 3학년 학생]

그러나 설령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더라도 고교학점제에서의 과목 선택 과정은 그 자체로 교육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은 과목 선택을 통해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하게 되었다. 아울러 자기 진로에 맞는 과목이 무엇인지 직접 찾아보거나 여러 경로를 통해 물어보기도 하는 등 좀 더 능동적인 태도도 갖게 되었다. 반면, 이러한 주체적인 결정 과정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한편, 과목을 선택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다양한 진로·학업 설계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았다. 한 학생은 1학년 때는 진로에 대한 관심이나 뚜렷한 흥미가 없었지만 적성 검사 등을 통해 본인의 적성이나 성향 파악을 한 후, 과목 선택 및 진로 설정을 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또 학생들은 선배들과의 멘토링, 대학에 진학한 졸업생들의 학교 방문을 통해 선택 과목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도 하였다. 이와 더불어 자신이 선배로서 과목박람회에 참여하여 후배들에게 선택 과목을 소개한 경험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저희 학교 같은 경우에는 몇 달 전 과목 박람회라는 것을 진행했어요. 학생들이 부스를 운영하면서 직접 자신이 관심 있는 계열에 대해서 후배들한테 설명해 주는 그런 활동을 진행했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미디어 계열에 관심이 있다 보니까 미디어학과에 관심 있는 친구들한테 미디어 계열에 대한 과목이랑 미디어 관련 학과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그런 활동을 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3년 동안 했던 활동들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생겼고 또 제가 가고 싶은 학과가 무엇을 하는 학과인지에 대해서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아요.

[A고 3학년 학생]

그 밖에도 학교에서는 ‘독서 캠프’, ‘진로 신문 제작’ 등 다양한 명칭의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학생들은 이에 참여함으로써 관심 분야에 대한 저서를 쓴 저자와 만나기도 하고, 진학을 희망하는 학과 교수님들의 특강을 들을 수도 있었다. 학생들은 이러한 일련의 활동을 통해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파악하고, 관심 있는 진로와 선택 과목들에 대해서 탐색해 나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2) 진로에 따른 다양한 과목 선택

다수의 면담 참여 학생들은 고교학점제를, 자신의 진로에 맞는 과목을 스스로 선택하고 이러한 학생의 권리를 존중하는 제도로 이해하였다. 즉, 고교학점제를 “학생에게 선택권을 줄 수 있는 제도”,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여 자기가 원하는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제도”로 보았다. 이러한 인식에는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이수했던 경험과 과목 선택권을 존중해주는 학교의 분위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면담 참여 학생들은 과목 선택권의 확대와 진로 및 적성에 적합한 과목 개설에 대해 전반적으로 만족하였다. 물론 학교 지정 과목이 꽤 있거나 중점 학교라서 다른 진로가 소외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과목 선택에 대해서는 만족하는 경향을 보였다.

첫 번째로 수강 신청을 하고 두 번째로 수강 신청을 해서 2차 수강 신청으로 확정이 되는 시스템인데 학생들의 수요 조사와 의견 수합을 통해서 학생들이 정말로 원하는 과목을 들을 수 있게 해주고 한 번에 결정하는 수강 신청이 아니라 여러 선생님들께도 교육과정 박람회를 통해서 여쭤보기도 하고 아니면 학교 선배님들이나 다른 학교 친구들, 그리고 여러 기관에 문의할 수 있게 2차 기회를 주는 게 저희 학교의 굉장히 좋은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마음에 드는 과목을 수강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L고 2학년 학생]

때로는 듣고 싶은 과목이 폐강될 때가 있어 아쉬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학교 간 공동교육과정을 통해 수강할 기회를 부여받기도 하였다. 공동교육과정을 통해 개별 단위 학교에서 개설할 수 없는 과목이 개설됨으로써 학생들은 자신의 과목 선택권이 충분히 존중받고, 관심 진로와 연관된 과목을 보다 다양하게 수강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았다.

인문계에는 식품 관련 진로를 가진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저희 학교에는 식품 관련된 과목이 개설되는 경우가 없었는데 식품 이걸(공동교육과정 수업을) 듣고 나서 (…중략…) ‘난 진짜 진로를 이쪽으로 정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저는 좀 그런 점에서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H고 3학년 학생]

이처럼 고교학점제의 도입으로 인해 학생들이 자신의 관심사와 일치하는 과목을 학교 울타리 안팎에서 이수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고 있었다. 그 결과 학생들은 확대된 과목 선택권에 대해 만족감을 표했으며, 결과적으로도 이는 학생들의 진로 탐색을 돕는 것으로 보인다.

3) 과목 선택의 장애: 등급에 대한 부담과 불확실한 진로

면담 참여 학생들은 과목을 선택할 때 진로와 적성뿐만 아니라 평가 방식이나 수강 인원을 주요하게 고려하였다. 특정 과목이 진로나 적성에 부합하는데도 불구하고 적은 인원으로 인해 등급 및 내신 성적을 받기에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선택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원하는 과목은 거의 다 제가 수강하기 때문에 아쉬웠던 점은 없었지만 저희 학교가 명수(학생 수)가 적은데도 그 적은 명수에서 선택지도 넓어지다 보니까 학생들이 여러 곳으로 분포해서 등급도 따기 좀 힘들어지고 공부도 좀 그렇죠. 아예 등급이 나오는 과목만 선택해서 어떻게든 1등급을 만들어야 할지 아니면 좀 더 편하게 명수가 없는 과목을 듣고 아예 다른 과목에 집중할지...

[E고 2학년 학생]

이처럼 과목에 대한 흥미 및 적성과 등급 사이의 고민은 지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과목 수강 인원만으로 과목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즉, 수강생이 많은 과목의 경우 높은 등급을 얻는 게 쉽긴 하지만, 그렇더라도 자신의 진로에 맞지 않는다면 선택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수강 인원이 적은 과목들은 차라리 등급이 주어지지 않는 소인수 과목으로 운영되기를 희망하였다. 이는 고교학점제로 인해 과목 선택권은 확대되었으나 과목군에 따라 평가 방식이 다른 현실에서 학생들이 경험하게 되는 실제적인 갈등으로 보인다.

학생들이 과목 선택과 관련하여 겪는 또 다른 어려움은 아직 진로가 결정되지 않았거나, 변경되는 경우에 나타났다. 이는 교사 면담에도 나타났던 문제로 안정적인 교육과정 편성·운영에 어려움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과목 선택 과정에도 장애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1학년 때부터 진로가 정해져 있지 않은 애들이 많았어요. 사실 되게 많은 얘들이 진로가 정해져 있는 편이지만 그런 애들이 2학년에서 선택 과목을 조금 바꾸고 싶었다고 이렇게 얘기하는 친구들도 되게 많았었고. 선택이 확실한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 이에 대해서도 살짝 생각을 조금 더 해줬으면 좋겠어요.

[H고 3학년 학생]

다수의 학생들은 과목 선택을 통해 자신의 진로를 분명하게 설정하고, 관련 과목을 집중적으로 이수할 수 있다는 점을 고교학점제의 큰 장점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은 폭넓고 유연하게 진로를 탐색할 수 있기를 희망하였다. 즉, 1학년 때처럼 2, 3학년 때도 특정 진로에 관한 과목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두루 공부하고, 진로와 선택 과목을 정한 경우에도 이를 유연하게 변경할 수 있기를 원했다. 또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배려가 필요하며, 고교 입학 전부터 이러한 학생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나. 과목 선택이 가져온 변화와 어려움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과목 선택으로 인해 여러 가지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학생의 관점에서 선택형 교육과정을 이수함으로써 나타난 긍정적인 변화와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1) 흥미롭고 활기찬 수업

학생들은 자율적으로 선택한 과목을 공부함으로써 수업 분위기와 참여도가 긍정적으로 변화하였다고 인식하였다. 공부하는 내용이 자기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분야인 경우, 더욱 열심히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고 싶고 관심이 있는 과목을 듣다 보니 그 과목 수업의 수준이나 분위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거 같습니다. 그래서 모든 활동을 할 때나 수행평가를 할 때 열의를 가지고 참여해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J고 2학년 학생]

또한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나 학습활동 자체가 학생의 흥미와 참여를 유발하기 때문에 만족스러웠다는 의견도 있었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은 영어 과목의 경우 단순히 지문과 단어를 외우는 수업이 아니라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학생이 직접 나와서 설명하는 수업이어서 재미있다고 느꼈다. 앞서 교사의 면담 내용과 연결해 볼 때, 이는 학생 중심 수업을 활성화하려는 교사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교사들과 마찬가지로 학생들 역시 성취평가제가 적용됨에 따라 성적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하였다.

내신 성적이 1~9 등급제로 나오는 게 아니다 보니까 학생들이 수업을 들으면서 일단 좀 부담이 덜 하니까 적극적으로 선생님께 질문을 하기도 하고, 아니면 선생님들이 수행평가로 모둠활동을 진행하기도 해요. (…중략…)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학생들끼리 소통하고 선생님과도 소통하면서 조금 더 밝은 수업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 같아서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만족했던 것 같아요.

[F고 3학년 학생]

아울러 일부 학생들은 매시간 이루어지는 이동 수업으로 인해 학습 분위기에 활력이 더해졌다고 보기도 하였다. 다양한 선택 과목 수업이 운영되다보니 학급 교실뿐만 아니라 특별실 등을 오가며 이동 수업이 이루어지는데, 처음에는 번거롭고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선택 과목에 적절한 학습공간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이점이 있고, 학교 전체 학습 분위기에도 활력을 주는 측면이 있다고 하였다.

2) 새로운 학업 부담과 비대면 수업의 부작용

학생들은 과목 선택으로 인해 수업의 만족도와 참여도가 모두 향상되는 경험을 하였지만 새로운 학업 부담과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학생들은 이수하는 선택 과목 수가 증가함에 따라 학습해야 하는 내용 역시 증가하였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더욱이 선택 과목을 학기제로 운영하는 경우, 한 과목의 내용을 한 학기 안에 모두 배워야 하기 때문에 학기당 학습량이 늘어났다고 인식하였다. 또 교육과정 페스티벌, 진로캠프, 학교 자율교육과정 주간 등 고교학점제 관련 학생 참여 행사가 많아져 내신과 학업을 챙기기에 더욱 바빠졌다고 느끼고 있었다.

일단은 과목이 늘어난 거긴 하니까요. (…중략…) 공부 양이 더 많아진 거니까 그런 것도 있고 고교학점제 관련 행사가 되게 많이 진행되니까 그런 것도 참여하는 걸 생각하게 되면 시간이 되게 빡빡해지죠.

[B고 2학년 학생]

그러나 앞서 면담 내용에서 학생들이 과목 박람회 참여 경험을 긍정적으로 인식한 점으로 미루어볼 때, 이러한 행사가 학생에게 갖는 교육적 의미 또한 큰 것으로 보인다. 또 새로운 학업 부담은 학생들이 그만큼 고교학점제 교육과정에 충실하게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다른 한편,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하여 과목 개설 방식과 수업 형태는 이전에 비해 더욱 다양화되었다. 선택 과목은 공동교육과정이나 학교 밖 교육은 물론, 온라인 수업을 통해서도 이수가 가능해졌다. 또 일부 수업의 경우 정규수업 시간을 벗어나 배정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더욱 다양한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지만 다른 학교로의 이동, 수업 집중도 저하, 학습 부담 등의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한 예로 온라인 수업의 경우, 준비 부족으로 수업 진행이 원활하지 못하거나, 비대면 수업의 특성상 수업 집중도가 저하되기도 하였다.

선생님별로 다르긴 하지만 보통 캠을 요구하지 않거나 마이크도 잡히지 않거나 해서 사용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뭐 그런 온라인상에서는 아무래도 학생들이 참여하는지 안 하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이제 그룹 활동을 진행했을 때 학생들이 수업을 듣지 않다가 갑자기 그룹 활동을 하려고 하니까 무엇을 해야 되는지 모르잖아요. 그런 상황에서는 조금 답답했던 거 같아요.

[F고 3학년 학생]

온라인 수업은 시공간적 제약을 넘어 다양한 과목 개설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고교학점제 교육과정 편성·운영시 활용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온라인 수업이 갖는 단점 또한 적지 않은바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학생들은 정규수업 시간 이외의 수업 운영에 따른 학습 부담이 크다고 인식하였다. 특히 이는 대부분의 공동교육과정 수업에서 나타났다. 공동교육과정의 경우, 학교 간 시간표나 학사일정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방과후나 주말, 방학 등 별도의 시간을 할애하여 수업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학생들은 해당 과목을 이수하지 않는 학생들보다 더 많은 수업을 들어야 하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학교 정규수업이 아니다 보니까 학교에 남아서 늦게까지 그 수업을 들어야 되는 경우가 생기거나 아니면 주말까지 학교에 나가서 수업을 듣는 경우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시험 기간 같은 경우는 일주일 전에는 (수업을) 빼 주시는데 그래도 시험을 일주일 전에만 준비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조금 부담감이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아요.

[A고 3학년 학생]

학생들에게 더욱 다양한 과목을 이수할 수 있는 기회가 증가한 것은 개별화된 맞춤형 교육과정 제공이라는 측면에서는 분명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선택 과목 확대에 동반되는 새로운 학업 부담은 학생들이 자기에게 필요한 다양한 교육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부분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부담이 학업과 학교생활을 저해할 만큼 크다면, 과목 선택권 확대의 부작용과 한계에 대한 대안을 탐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V. 결론 및 제언

고교학점제의 핵심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선택 과목을 제공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과목을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맞춤형 교육과정을 실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고교학점제의 이상을 구현하는 과정은 쉽지 않으며, 그 결과 역시 본래 의도와 달리 나타날 수 있다. 고교학점제의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이 학교 현장에서 안착되고, 유의미한 교육적 결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와 관련된 교육 주체들의 경험을 면밀히 살펴보고, 앞으로 고교학점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이 연구에서는 고교학점제하에서 교사들과 학생들이 실제 교육과정을 운영하거나 이수하는 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하는지, 그것이 가진 의미와 성과, 그리고 한계는 무엇인지 탐색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하여 연구·준비학교 교사와 학생 각 14명을 대상으로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 편성·운영과 이수 경험에 관한 반구조화된 면담을 실시하였다.

연구 결과, 고교학점제의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 운영과 이수 경험은 일면 교사와 학생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교사들은 학생 수요를 반영한 선택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하여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고, 수업 방법에도 변화를 주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 결실로, 학생과 교사 모두 학생의 과목 선택권이 실질적으로 확대되었다고 보았으며, 다수의 학생들은 개설된 과목에 대하여 만족하였다. 또 교사와 학생은 공통적으로 학생들의 수업 만족도와 참여도가 향상되고, 수업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좋아졌다고 인식하였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존중하는 학교 문화와 다과목 지도 등에 대한 교사의 협력적인 태도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학생들은 과목을 스스로 선택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인 자기 성찰, 주도적인 탐색과 결정 등을 통해 성장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반면,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거나, 과목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아직도 많은 교사들이 고교학점제의 취지에 공감하지 못하고,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른 교육과정의 변화에도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있으며, 교육과정 편성 과정에서는 교과 간의 이해관계가 대립하기도 하였다. 또 학생들의 불확실한 진로는 교사들에게 진로·학업 설계 지도의 어려움은 물론,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불안정성을 야기하였으며, 학생들에게는 등급(성적)에 대한 부담과 함께 과목 선택의 장애가 되기도 하였다. 이에 더하여 교사들과 학생들은 선택 과목이 확대되고, 과목 개설 및 수업 형태가 다원화됨에 따라 파생된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교사들은 시간표 편성 작업이나 지도 과목 수의 증가로 업무가 과다해졌고, 학생들은 온라인 및 정규수업 시간 외 수업, 학기당 이수 과목 수 및 학생 참여 행사 증가로 수업 집중도 저하와 학업 부담 등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고교학점제의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 편성·운영에 관한 제언을 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고등학교 교사 정원에 대한 기준 개선과 주당 수업 시수 체계화를 통해 다과목 지도로 인한 부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다수의 연구 참여 교사들은 늘어난 과목 수만큼 수업 준비와 평가에 투입해야 하는 시간이 증가하였다고 보았다. 이러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우선 여러 과목들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들이 충분히 배치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순회 교사 제도나 강사 인력풀을 확대하여 유동적인 선택 과목 수요에 대응하는 한편, 교사 정원과 배치의 기준도 학교당 개설 과목 수 등을 고려하는 등 제도적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현재 교사 정원은 학생 수 및 학급 수에 비례하여 기계적으로 산출되고 있다. 이는 같은 행정 학급 학생들이 동일한 과목을 이수할 때는 적절하지만, 학생 개별 시간표를 운영하는 고교학점제에서는 수업 학급이 교사 정원의 기준에 반영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교사의 주당 수업 시수 역시 단순히 수업 시간만이 아니라 지도 과목 수를 고려하여 조정될 필요가 있다. 2021년 기준 고등학교 교원의 주당 수업 시수는 평균 16.4시간이나(교육부, 한국교육개발원, 2022, p. 56), 다과목 또는 다교과 지도 교사에게는 이보다 적은 시수가 배정되도록 새로운 기준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교사의 전공 교과 개념을 확장하고 다과목 지도 역량 개발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연구 참여 교사들은 선택 과목의 증가로 인해 다과목 및 다교과 지도가 불가피해지면서 새로운 과목이나 비전공 교과를 가르쳐야 하는 부담이 크다고 하였다. 아직 대부분의 교사들은 전공 외 교과를 가르치는 것에 대한 의향이나 경험이 많지 않고, 심리적인 장벽 역시 높은 것으로 보인다(이상은, 백선희, 2019a). 이에 따라 교사들이 지도 과목 이외에도 다양한 과목이나 비전공 과목도 충분히 가르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현직 교사에게는 복수전공 및 부전공 자격 연수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교사 양성 과정의 개편을 통해 예비교사들이 단일한 교과 정체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말하자면, 다른 교과와의 연결 가능성이나 전체 교육과정 속에서 자신의 교과를 생각하는 ‘연계적 전문성’(소경희, 2006, p. 289)과, 다른 교과나 분야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넘나들 수 있는 ‘복합적인 정체성’(이혁규, 2012, p. 28)을 교직 입문 전부터 함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학생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또는 새로운 과목을 가르칠 수 있는 교과 지도 역량이 개발된다면, 연구 참여 교사들이 우려하고 교과 간 갈등 요인으로도 지목했던, 학생의 미선택으로 인한 교과의 위축 문제도 일면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교내의 선택 과목 다양화에도 기여하여 연구 참여 학생들이 토로한 온라인 수업이나 타학교 수업 참여에 따른 어려움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셋째, 학생의 진로와 과목 선택을 지나치게 경직되게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연구 참여 학생들은 선행연구에서 지적한 바(박주현, 서경혜, 2021)와 마찬가지로 진로 미결정 및 중도 변경으로 인한 진로·학업 설계의 어려움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진로 탐색과 설계는 개인 성향, 가정환경, 학습경험 등에 따라 그 시기와 속도가 다를 수 있으며, 심지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다. 하물며 다양한 경험이나 자기 이해가 아직 부족한 고등학생의 진로는 불확실하거나 언제라도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학생의 진로와 선택 과목을 일대일의 대응 관계로 보거나, 한번 정해지면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인식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본 연구와 선행연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듯이 교육적 성장은 오히려 학생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스스로 성찰하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으로부터 일어남에 주목해야 한다(박진희 외, 2020). 학생의 진로 미결정 또는 재탐색과 변경은 일면 당연하고 언제든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학생들이 새롭고 다양한 것을 폭넓게 배우면서 자신과 세상에 대해 탐색하고 실험해볼 수 있도록 융통성 있는 진로·학업 설계 지도와 교육과정 편성이 필요할 것이다.

넷째, 고교학점제에 따른 학생 선택형 및 맞춤형 교육과정을 내실 있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단위학교 중심의 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할 수 있도록 학교의 교육과정 운영 역량을 강화하고, 공동교육과정이나 학교 밖 교육 활성화에 따른 교육과정 질 관리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고교학점제에서의 과목 선택권은 학생의 진로와 적성을 폭넓게 탐색하는 학습 기회를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접근하되 단순히 백화점식으로 여러 과목을 나열하거나, 학교생활기록부 등을 화려하기 구성하기 위해 과목을 수강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연구 참여 교사와 학생과의 면담에서 드러났듯이 일부에서는 교육과정 시수를 무리하게 증배하고 방과 후나 주말 학습 부담을 지면서까지 다양한 과목을 이수하고자 하였다. 결과적으로 교사의 업무 부담이 증가했을 뿐 아니라, 해당 과목의 교육과정 이수나 수업에 대한 질 관리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확실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 물론 고교학점제 도입 초반에는 학교 교육 전반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선택 과목 확장과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에 학교의 모든 역량을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이는 면담 참여자들이 호소한 학업과 업무 부담을 불가피하게 가중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학교와 교사의 교육적 판단과 현실적인 여건, 학생의 요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핵심적인 것을 중심으로 정련해 나아가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학생의 충실한 교육과정 이수를 지원하기 위하여 단위학교는 물론 교육부 및 교육청 차원에서도 공동교육과정이나 학교 밖 교육에 대한 체계적인 질 관리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학교가 학생의 다양한 요구에 맞는 학교 교육과정을 내실 있게 설계하여 운영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행정적 업무를 간소화하고 교육과정 전문성 개발을 지원함으로써 단위학교의 학점제 운영 역량을 전반적으로 강화해 나아가야 한다.

한편 이 연구에서는 다양한 지역 및 학교 규모를 고려하여 연구 참여자를 섭외하였고, 여러 사례를 종합하여 고교학점제 교육과정에 대한 일반적인 경험을 살펴보는 데 초점을 두었다. 그러다보니 지역 및 학교 규모나 연구·준비학교 운영 연차에 따른 차이 또는 특징에 대해서는 충분히 주목하지 못하였다는 한계가 있다. 향후 연구에서는 지역 또는 학교 규모와 고교학점제 운영 연차 등에 따라 나타나는 경험 양상을 보다 깊이 있게 분석하고, 다양한 특성에 따른 쟁점과 발전 방안에 대하여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Notes

1) 본 논문의 III장과 IV장은 김영은 외(2022)의 「고교학점제 단계적 도입에 따른 현장 실행 모니터링 연구(I)」 5장 2절에 사용된 데이터 일부를 재구성한 것임.

2) 2023년부터 선도학교의 명칭이 ‘준비학교’로 변경됨에 따라 본 연구에서는 선행연구 고찰 또는 정책 문서 내용 인용 등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준비학교’라는 용어를 사용함.

3) 이 연구에서 일부 발췌 및 활용한 김영은 외(2022)에는 해당 연구에 3년간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68개교의 연구 참여 학교들이 있음. 연구 참여 학교 68개교 가운데 고교학점제 담당 교사가 면담 참여 의사를 밝히고, 직접 면담 참여자(교사 1명, 학생 1명)를 추천해 준 경우에 한하여 섭외를 진행하였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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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빈, 지은림(2022). 고교학점제와 성취평가 도입에 따른 진로선택과목 운영 및 이수에 대한 고교생의 인식. 학습자중심교과교육연구, 22(22), 1085-1102.

2.

교육부(2021a). 고교학점제 종합 추진 계획. 2021.2.16.

3.

교육부(2021b).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적용을 위한 단계적 이행 계획(안)(2022-2024). 2021.8.2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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