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 론
공교육은 ‘모두를 위한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 학생의 가정배경, 출신지역, 학업능력, 인종, 장애 유무 등과 관계없이 모두에게 균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해야 하고, 교육의 과정이나 결과에서도 차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유네스코는 ‘Education for All(EFA)’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세계 모든 나라가 누구에나 차별 없이 평등한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기본 취지로, 세계 각국의 교육 상황을 ‘EFA’의 관점에 따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UNESCO, 2015). 우리나라의 2022 개정교육과정 역시 ‘모든 학생을 위한 교육기회의 제공’ 항목에서 “학습자의 개인적 특성이나 사회⋅문화적 배경에 의해 교육의 기회와 학습 경험에서 부당한 차별을 받거나 소외되지 않도록 한다.”, “학습 부진 학생, 특정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학생, 특수교육 대상 학생, 귀국 학생, 다문화 가정 학생 등이 학교에서 충실한 학습 경험을 누릴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교육부, 2022).
그러나 학교현장에서 이러한 이상을 구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입시경쟁교육의 폐해는 소수의 학생들을 선별하기 위해 다수의 학생들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또한 다인수 학급이라는 조건에서 모든 학생들의 특성을 고려하는 교육을 진행하기란 쉽지 않으며, ‘모두를 위한 교육’에 공감하는 교사라 할지라도 이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방법론을 찾지 못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제 ‘모두를 위한 교육’은 추상적인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의 과제가 되고 있다.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다문화 학생의 증가, 코로나19 이후 심각하게 벌어진 학습격차 등을 고려해 볼 때,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또한 인구수 급감이라는 미래사회의 문제를 고려해 볼 때, 이제 더 이상 소수의 학생을 선별하기 위해 다수의 학생을 배제하는 시스템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지속가능하지 않다. 학생 한명 한명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소수의 수월성’을 위한 교육이 아닌 ‘다수의 탁월성’을 위한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 따라 ‘보편적 학습설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보편적 학습설계’는 본래 건축물에 있는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모든 이용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보편적 설계의 원리(Universal Design)에서 출발하였고, 이것이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위한 도움이 궁극적으로는 모든 학생에게 도움이 된다’는 원리(Universal Design for Learning)로 이어지게 되었다(김남진, 2019). 이는 장애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교육 분야에서 출발하였고 지금도 여전히 주로 특수교육 분야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최근에는 이를 모든 학교교육에 적용하려는 연구와 실천도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일반교육에서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를 적용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소수의 장애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실상황과 다인수 학급에서의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오랫동안 일제식 수업에 익숙해져 왔던 교사들이 이러한 원리를 창조적으로 적용하기에는 경험이나 역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 연구에서는 ‘모두를 위한 교육’이라는 이상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방법론으로서 ‘보편적 학습설계’의 중요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일반적인 중등교육 분야에 창조적으로 적용해 수업혁신의 지평을 확산할 가능성을 찾아 찾고자 한다. 그동안 많은 학교들이 ‘배움중심수업’ 등의 담론을 바탕으로 학생 참여형․협력형 수업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배움중심수업은 교과 지식의 일방적 전달 수업을 넘어 학생을 배움의 주체로 놓고 학생의 자발적 역량을 기르는 수업을 지향해 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경기도교육청, 2016).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움에 특별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까지 참여하는 수업을 실천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대안을 찾기 위해 이 연구에서는 A중학교를 연구대상 학교로 선정하여 보편적 학습설계를 중학교 수업에 적용하는 실행연구를 진행하였다. 이 연구는 특히 특정 교과에서의 교사 개별적 실천을 넘어 모든 교과에서 공동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원리를 도출하여, 수업혁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II. 이론적 배경 및 선행연구
‘모두를 위한 교육’이라는 이념은 모두가 다른 사람과 비교될 수 없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학생들이 가진 고유한 가능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모든 학생이 의미 있는 학습경험’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야 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학생 개인별 특성에 적합한 학습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정신이 국가교육과정 차원에서 명시된 대표적인 사례가 핀란드이다. 핀란드의 국가교육과정에는 ‘모두를 위한 교육’ 실현을 위한 규범과 지침이 곳곳에 명시되어 있다. 모든 학생이 학습에 대한 지원과 복지를 제공받을 권리가 명시되어 있으며, 이러한 중층적 지원을 ‘일반지원’, ‘집중지원’, ‘특별지원’으로 구분하고 있다(Finnish National Board of Education, 2014). ‘일반지원’은 일반적인 교실상황에서 모든 학생이 학습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의 지원을, ‘집중지원’은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소수 학생을 위한 추가적인 지원을, ‘특별지원’은 장애학생 등 특별한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을 위해 전문적 지원을 의미한다.
‘모두를 위한 교육’의 취지가 교수학습의 차원에서 구체화된 대표적인 방법론이 ‘보편적 학습설계(Universal Design for Learning, UDL)’이다(김남진, 2019; Bowe, 2000; Council for Exceptional Children, 2005; Hall & Rose, 2012; Nelson, 2014; Posey & Novak, 2020). 보편적 학습설계는 학생마다 지니고 있는 다양한 특성을 고려해 모든 학생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교수학습을 다양하게 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특히 배움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 주목하여 이들의 학습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을 제거하고, 학생들의 특성에 따른 다양한 자료와 학습활동을 제공하여 모든 학생의 학습을 촉진하는 개별화 학습을 지향한다. 이것을 ‘보편적(universal)’인 학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배움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한 교수학습이 궁극적으로는 모든 학생을 위한 최상의 학습 환경을 조성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와 방법론이 체계화된 것은 미국의 Council for Exceptional Children(CEC, 2005)과 Center for Applied Special Technology(CAST, 2011)에 의해서이다(김남진, 2019). 여기에 정리된 보편적 설계의 지향과 원리는 국내에도 널리 인용되고 있다. 이를 다음과 같이 구조화할 수 있다.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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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상의 원리 | 인지적 학습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와 매체 제공 |
표현의 원리 | 전략적 학습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학습활동 제공 |
참여의 원리 | 정서적 학습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참여 방식 제공 |
이를 바탕으로 김남진 외(2017)은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를 한국의 특수교육 현장에서 적용하기 위한 수업 체크리스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는 주로 특수교육 현장에서 구체화되어 왔으며, 이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져 왔다. 특수학급이나 통합학급에서는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가 ‘표상의 원리’(보조공학 활용, 다양한 매체 활용, 교구나 실물 활용, 전자 교과서 활용 등), ‘표현의 원리’(난이도 변경, 의사 표현을 돕는 매체 활용 등), ‘참여의 원리’(흥미 유발 전략, 보상 및 강화물 제공, 성취 지향적 피드백 제공 등)에 따라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김미령 외, 2021; 김은선 외, 2011; 유성균 외, 2017).
그러나 특수교육에서 적용되고 있는 수업의 방법을 일반교육에까지 적용하기에는 그 조건이 다르다. 특수교육은 개별화 교육계획에 따라 소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다양한 보조공학을 활용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의 개별적 특성에 따른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익숙하다. 하지만 다인수 학급에서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일반학교, 특히 학습부진이 누적되어 있는 학생을 대상으로 교과의 지식을 가르쳐야 중등학교에서는 이러한 원리를 적용하기가 수월하지 않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반교육에서도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를 적용하려는 노력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는 교사들이 특히 배움에 특별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은 보편적 학습설계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초보적인 단계라 할 수 있어, 이에 대한 연구물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장애학생이 없는 일반학급에서 보편적 학습설계의 적용 과정을 분석한 연구물은 조윤정 외(2021a, 2021b)의 연구가 거의 유일한 실정이다. 조윤정 외(2021b)는 연구대상 초등학교의 수업에서 학생들의 학습성향 진단, 학생의 수준에 맞는 목표 제시, 다양한 교구와 방법을 활용한 표현 방식 제공, 꼬마 선생님 활동, 과정중심 피드백 전락 등이 이루어졌다고 분석하였다. 하지만 이는 실험적 환경에서의 교사 개인의 수업 전략을 분석한 것이기 때문에 학교현장에 일반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김수연 외(2021)는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를 혁신학교의 배움중심수업의 원리와 비교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보편적 학습설계와 배움중심수업 모두 학생을 배움의 주체로 놓고 학생의 참여와 협력을 촉진하여 모든 학생의 수업 참여를 돕고 있지만, 학생주도성과 실행 방법의 명시성은 보편적 학습설계에서 더욱 두드러진다고 보았다. 그리고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가 일반교육에도 확산되기 위해서는 학습자에 대한 깊은 이해, 일반교사와 특수교사의 공동 책무성, 평가 조정의 시도 등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연구 역시 일반학교 현장에서의 일반화 가능성을 검토한 것은 아니다.
이상의 연구는 일반학교에서도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가 적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소중한 성과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가 아직은 개별 교사 차원의 실천에 머물러 있어 여전히 일반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동안 혁신학교 등에서 실천된 사례를 통해 볼 때, 수업혁신을 위해서는 모든 교사가 수업철학을 내면화하고 공동체적인 실천을 모색해야 한다. 보편적 학습설계라는 한 단계 높은 과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이 연구에서는 이러한 가능성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연구대상 학교 전체 교사와 협의 하에 보편적 학습설계 구현을 위한 실행연구를 진행하였다.
III. 연구 절차
이 연구에서는 보편적 학습설계를 구체적으로 중등학교 현장에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기 위해 A중학교를 연구대상으로 한 실행연구를 진행하였다. A중학교는 2009년에 혁신학교로 지정된 이래 지금까지도 모범적인 혁신학교로 인정받고 있다. 이 학교가 모범적인 혁신학교로 성장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교사공동체 문화의 힘이 크다. 혁신학교 초창기부터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활발히 운영해 왔으며, 이를 통해 교육과정-수업-평가 혁신을 이루어 왔다. 이 학교 교사문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수업을 공개하는 것이 일상적이고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교사들의 집단지성을 발휘하여 ‘배움중심수업’을 구현해 왔다.
하지만 이 학교에서도 수업을 혁신하는 데에 있어서 여러 어려움이 존재해 왔다. 여느 학교와 마찬가지로 학생들 사이에 다양한 편차가 존재하고 있으며, 일부 학생은 배움에 어려움을 겪고 학습을 포기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A중학교 교사들은 이 학생들에게도 질 높은 배움이 이루어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기존의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보편적 학습설계에 대한 실행연구를 진행하게 되었다.
실행연구(action research)는 실행자인 교사가 자신이 부딪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안을 모색하고 그 결과를 성찰하며 문제해결 방안을 도출하는 방식의 실천적 연구방법론이다(이용숙 외, 2005). 실행연구를 위해서는 ‘문제의 원인 분석’, ‘잠정적 대안 설정’, ‘1차 실행’, ‘실행 후 성찰’, ‘2차 실행’, ‘해결방안 도출’ 등의 절차를 거친다. 이 때 실행연구 과정 및 결과를 검증하고 대안을 함께 모색하기 위해 외부 연구자와 함께 협력적 연구를 수행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A중학교의 실행연구는 연구자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연구자는 A중학교의 전년도 교육활동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교사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실행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하였다. 연구자는 학력 격차나 학습 소외와 같은 상황은 개별 교사나 특정 교과를 넘어 모든 교사들이 공통적으로 접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개별 교사의 실천과 성찰을 통한 깨달음을 일반적 수업혁신의 원리로 일반화해 가는 방법을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연구자는 또한 A중학교 교사들이 전문적 학습공동체 운영 경험으로부터 협력적 문화가 충분히 형성되어 왔으며, 교사 20여 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학교이기 때문에 모든 교사가 참여하는 실행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A중학교 교사들은 연구자의 안내에 따라 보편적 학습설계 및 실행연구의 개념과 방법론을 학습하였다. 그리고 매월 1회 정기적으로 공개수업을 진행하였다. 공개수업을 진행하기 전에는 교사들이 모여 공개수업을 담당한 교사가 작성한 수업지도안을 사전에 검토하는 모임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공개수업을 참관한 후 이에 대한 의견과 개선 방안을 함께 나누었다. 이 과정에서 나온 의견을 다음 공개수업 담당자가 자신의 수업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실행 및 성찰’을 반복해 나갔다. 1학기 말에는 중간 연구 결과를 정리하였다. 이후 2학기 실행연구 계획을 수립한 후 1학기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실행 및 성찰’을 반복해 갔다. 2학기 말에는 1년 동안에 진행된 실행연구 과정 및 결과를 함께 공유하며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을 도출하였다. 그리고 1년 동안 진행되어 온 실행연구 성과를 확산하기 위해, 다른 학교 교사들을 초대하여 교육과정 컨퍼런스 행사를 진행하였다. 이상의 실행연구 과정을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이 연구는 실행연구의 유형 가운데 교육과정 실행 주체인 교사가 자신들과 래포 관계에 있는 외부 전문가와 함께 이론과 실천의 통합을 지향하는 협력적 실행연구에 해당한다. 연구자는 A중학교의 학교교육과정 평가회, 연수, 수업 참관 등에 컨설턴트로 참여하면서 교사들과 자연스러운 래포 관계를 형성해 왔다. 연구자는 1년 동안 이 과정을 꾸준히 참관하면서, 월별 정기모임마다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학기말에는 그동안 진행된 실행연구 성과를 일반화하여 ‘A중학교가 지향하는 수업의 원리’를 교사들과 함께 정리하고,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가 일반학교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도출하고자 하였다.
IV. 보편적 수업설계의 적용 방안 실행연구
우선 연구자의 제안으로 수업실행연구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시간을 마련하였다. 일반교사에게 아직 실행연구라는 개념은 낯선 상황이다. 그러나 A중학교 교사들은 수업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답을 찾기보다 본인들이 스스로 그 문제를 탐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공감하였다. 이는 A중학교 교사들이 평소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꾸준히 운영하며 알게 모르게 연구자로서의 역량도 축적해온 결과이다.
교사1 : 그동안 학생이 참여하는 수업, 학생끼리 서로 협력하는 수업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어요. 교사가 아무리 노력해도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고, 기초학력이 심각하게 부족한 학생들도 있어요.
교사2 : 우리 학교는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는 어떤가요?”, “전반적인 모둠 분위기는 어떤가요?”, “언제 배움이 일어나고 언제 배움이 주춤거리나요?”, “표현과 공유 활동은 어떤가요?”라는 질문으로 수업나눔을 진행해 왔어요. 그런데 이런 수업나눔 방식은 한계가 있어요. “이게 문제니까 이걸 해결해야 한다.”라고 말은 하지만, 거기에 끝나 버리고, 정작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없었어요.
A중학교 교사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연구자가 제안한 실행연구에 흔쾌히 동의하고, 실행연구 계획을 수립하였다. 먼저 교사들은 ‘자신이 수업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자신들의 실행연구 주제를 “학업 수준이 다른 학생들이 모두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가?”라는 연구 문제로 정리하였다. 연구자는 ‘보편적 학습설계’라는 개념을 학습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을 하였다. 연구자는 ‘보편적 학습설계’의 개념에 대한 전반적인 강의를 진행하였고, 교사들은 조윤정 외(2021a)의 연구를 읽고 토론도 진행하였다.
교사3 : 책을 읽었지만,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가 잘 이해되지는 않아요. 표상의 원리, 표현의 원리, 참여의 원리가 머릿속에 맴돌기는 하는데, 책에 나온 사례를 읽어봐도, 이걸 내가 내 수업에 적용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교사2 : 이걸 우리 식으로 적용해야 하는데, 표현의 원리를 적용하려면, 학생의 수준에 맞는 다양한 학습활동 선택지를 제공해야 할 텐데 이게 가능할지 의문이네요.
교사들은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가 복잡하고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는 보편적 학습설계라는 개념이 처음 나오게 된 특수교육의 상황과 일반 중등학교의 상황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은 자신들이 이해한 만큼,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맞게 이 원리를 적용하는 방법을 하나하나 찾아 나갔다. 이 과정을 통해 A중학교 교사들은 본인들이 이해한 보편적 학습설계의 개념, 그리고 학교의 상황에 맞는 보편적 학습설계의 지침을 다음과 같이 잠정적으로 정리하였다.
연구 문제 | 보편적 학습설계의 개념 | 보편적 학습설계의 지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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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 수준이 다른 학생들이 모두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가? | 학습의 장애를 제거하고 출발선에서부터 모든 학습자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학습설계 | 1. 배움의 걸림돌 제거 |
2. 협력적 학습구조의 형성 | ||
3. 표현 방식의 다양화 |
교사들은 우선 ‘배움의 걸림돌 제거’를 보편적 학습설계의 출발점으로 보았다. 이는 ‘보편적 설계(Universal Design)’의 원뜻에 충실한 것이기도 하다. 중학교만 하더라도 학생들 사이에 상당한 학습 격차가 생겨나기 시작한다는 점, 특히 수학이나 영어와 같은 주지교과에서는 선수학습 부족 등으로 인한 학습의 어려움이 심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보았다.
다음으로 ‘협력적 학습구조의 형성’을 중요한 원리로 보았다. A중학교에서는 이미 일상적으로 모둠별 협력학습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교사들은 이러한 경험을 발전시켜, 학생들 사이의 협력이 이루어지는 관계를 구조화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배움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동료학생들이 도움을 제공하는 구조를 자연스럽게 만들고자 하였다.
다음으로 ‘표현 방식의 다양화’를 도전적 과제로 설정하였다. 이는 A중학교 교사들이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가장 고민한 지점이기도 하다. 표현 방식을 다양화하려면 학생들의 개별적인 특성을 파악하여 이에 적합한 학습과제를 제시해야 하는데, 이를 다인수 학급에 적용하는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구체화하는 방법을 실행연구를 통해 찾고자 하였다.
A중학교 교사들이 설정한 ‘배움의 걸림돌 제거’는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다양한 방식의 학습자료를 제공하는 ‘표상의 원리’, ‘협력적 학습구조의 형성’은 학생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수업에 참여하도록 하는 ‘참여의 원리’, ‘표현 방식의 다양화’는 학생들 각자 자신의 방법에 따라 배운 내용을 표현하는 ‘표현의 원리’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를 이론적으로 정립하기보다는 교사들의 다양한 수업 실행 속에서 실천적 원리를 귀납적으로 도출하기로 하였다. 또한 교과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그 특성에 맞는 보편적 학습설계 원리를 우선적으로 적용하되, 타교과 교사들과 함께 사전모임, 수업참관, 사후모임을 진행하면서 모든 교과에 적용할 수 있는 일반화된 원리를 도출하기로 하였다.
A중학교 교사들은 그동안 학생들 사이의 협력을 활성화하는 수업을 일상적으로 진행해 왔으며, 이 속에서 학생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협력학습은 Vygotsky(1978)가 말한 ‘근접발달영역’을 창출할 수 있으며, 특히 배움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도 ‘또래와의 협력, 교사의 도움’을 통해 잠재적 발달영역을 실제적 발달영역으로 전환시킬 수 있게 된다. 이는 또한 뒤처지는 학생들에게도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정서적 지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 중 특히 ‘참여의 원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A중학교 교사들은 그동안 다소 산발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협력학습을 구조화하는 방안을 모색하였다. 실행연구 계획에 따라, 체육교사는 동교 교사들에게 자신의 수업 설계에 대해 사전 검토를 받고, 이를 공개수업을 통해 실행한 후 다시 동료들과 성찰하는 과정을 거쳤다. 특히 체육교과는 팀 활동이 많은 특성상 ‘협력적 학습구조의 형성’을 우선적으로 적용하였다.
‘이어달리기’는 잘하는 아이들만 참여하지 모두가 참여하는 종목은 아니에요. 어떻게 하면 소외되는 아이들이 없도록 할 것인가 고민을 했어요. 이 수업에서는 ‘협력’을 최우선의 과제로 설정했어요. 영상을 찍어 자기의 달리기 자세를 분석하고 훈련 일지를 작성하도록 하면서, 학생들이 서로 피드백을 주도록 했어요. 아이들이 협력해서 달리기 자세도 잡아주고 배턴 터치 연습도 하니, “와, 진짜 빨라졌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재도전의 기회를 주니, ‘C’에서 ‘A’로 향상된 아이들이 만족감을 크게 느꼈어요. (체육교사)
체육교사가 주안점을 둔 방법은 ‘서로 도울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었다. 우선 1차로 개인별 기록을 1차로 측정하였다. 학생들이 각자 자신의 달리기 모습을 촬영하고, 동료 학생의 피드백을 받도록 하였다. 그리고 개인기록을 2차로 다시 측정한 후 향상점수를 부여하였다. 그리고 팀별 기록도 1차와 2차로 나누어 향상도를 측정하였다. 팀 기록 향상을 위해서는 개인 기록 향상이 필수가 되도록 함으로써 협력을 구조화하였다.
참관교사 1 : 선생님 수업에서 학생들이 서로 도우면서 팀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좋았어요. 저도 모둠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냥 학생들에게 맡기만 하고 저는 뭘 해야 할지 잘 몰랐는데, 선생님처럼 구조화된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개인 책임과 집단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게 좋겠다는 걸 배웠어요.
참관교사 2 :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까, 잘하는 아이들만 다른 아이를 도와주는 건 아니더라고요.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다 같이 해 보자!”라고 분위기를 형성하는 아이도 있어요. 정서적으로 돕는 아이의 역할이 크다는 걸 알았어요.
참관교사 3 : 오늘 체육수업은 구조가 좋았어요. 개인기록, 팀 기록, 1차 측정, 2차 측정 등등을 통해 보편적 학습설계로 나아가더라고요. 모두가 책임을 갖고 모두가 도와주며 최선을 다하는 분위기였어요.
체육교사 : 하지만 여전히 고민이 남아요. 개인마다 기대 수준이 다른데 어느 수준까지 제가 설명해 주고 독려해야 하는지, 능력과 상관없이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가장 못하는 학생에게는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줘야 하는지 아직 모르겠어요.
이처럼 A중학교 교사들은 체육교사의 수업을 통해 ‘서로 돕는 구조’, ‘정서적으로 독려하는 분위기’ 등이 ‘참여의 원리’를 적용하는 방법임을 알아가게 되었다. 이는 A중학교처럼 협력수업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학교에서는 비교적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원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특별히 뒤처지는 학생들에게는 별도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도 인식하게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A중학교 교사들은 ‘배움의 걸림돌 제거’라는 과제를 실행해 보게 되었다.
A중학교에서는 배움에 특별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해 진단 활동, 정서 회복, 보충학습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하지만 수업의 과정에서 이들 학생을 개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특히 영어, 수학 교과 등 주지 교과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A중학교의 영어교사, 수학교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를 적용하고자 하였다.
영어수업이 단지 영어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영어를 통해 삶의 문제, 사회 문제를 배울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재구성해 왔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 없어요.”, “모르겠어요.”라는 반응을 듣는 게 가슴 아파요. ‘보편적 학습설계’를 공부하면서, 개별 학생들에게 어떤 배움이 이루어지도록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수업을 설계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도움 영상을 찍고 학습활동지 QR코드로 넣어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보도록 해 봤어요. (영어교사)
A중학교의 영어교사는 오랜 경력 동안 매우 숙련된 수업을 이끌어 왔다. 여기에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를 보완하고자 하였다.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배움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단어의 뜻을 모르는 학생, 기본적인 문장 해석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해 별도로 도움 강의를 짤막하게 촬영하고, 이를 학습활동지에 QR코드로 연결하였다.
간단한 진단 퀴즈를 통해 어휘력 수준을 확인하고, 자신의 수준에 따라 영어 혹은 한국어로 학습지를 작성하게 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QR코드를 통해 도움 강의를 복습하고, 모둠활동을 통해 각자가 작성한 내용을 친구들과 보완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도움 강의를 QR코드를 통해 제공한 것은 ‘표상의 원리’에, 학생들이 자신의 수준에 따라 답안을 영어 혹은 한국어로 작성하도록 한 것은 ‘표현의 원리’에 해당한다.
참관교사 1 : 학습활동지에 QR코드를 넣을 생각을 하신 게 너무 놀라워요. 이거라도 있으니까 아이들이 아예 포기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매번 도움 영상을 만들 수 있을지, 저라면 못할 것 같아요.
참관교사 2 : QR코드뿐만 아니라 선생님이 아이들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참여시키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각자 자기 수준에 맞게 학습 방법을 택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아 보이더라고요.
영어교사 : 솔직히 성공한 수업이라고 보기 어려워요. 여러 가지 학습 장치를 만들어 놨지만, 이것조차 활용하지 않는 아이도 있어요. 보편적 학습설계가 이루어지려면 어떤 아이는 30분, 어떤 아이는 2시간이 필요해요. 특히 ○○이는 더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A중학교 교사들은 도움 영상 제공 등 배움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보았으나, 일부 학생은 이 도움 자료조차 스스로 찾아보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데에 한계를 느꼈다. 이 학생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더욱 촘촘한 지원 시스템이 필요한데, 당장은 그 방안을 찾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영어 수업 못지않게 학생들이 큰 어려움을 겪는 교과는 수학이다. 수학교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교사제 수업’을 선택하였다. ‘협력교사제 수업’은 한 교실에 두 명의 교사가 진행하는 수업으로 ‘담당교사와 협력교사의 협력수업을 통해 모든 학생이 소외되지 않고 참여하는 수업 전략을 구사하며, 특히 배움이 느린 학생에 대한 개별화된 지원을 제공’하는 수업을 의미한다. 이의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배움에 어려움을 겪는 특정 학생을 위한 ‘특별지원 수업’, 소수의 학생을 위한 ‘집중지원 수업’, 모든 학생을 위한 ‘일반지원 수업’이 있다(이형빈 외, 2015).
이러한 협력교사제 수업은 보통 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외부 강사를 채용해 진행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A중학교에서는 협력교사제 수업의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동교과 교사가 본인의 수업시수 이외의 시간을 추가로 할애하여 협력교사 역할을 담당하였다. 협력교사 역할을 맡은 교사는 담당교사가 수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배움을 관찰하며, 특별히 어려움을 겪는 학생에게 개별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집중지원 수업’ 모델을 채택하였다. 이를 통해 배움의 걸림돌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이와 함께 수학교사는 학습의 과제를 다양화하여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목표에 접근하는 방식을 채택하였고, 이를 학습활동지에 구조화하였다. 수업시간에 배운 수학적 개념을 ‘글로 설명하기’, ‘예로 들어 설명하기’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였고, 수준이 다른 학생들을 위해 과제를 2~3가지로 개별화하였고, 개별 학습이 끝난 이후에는 이른바 ‘점프 과제 - 다소 어렵지만 흥미로운 과제, 학생들이 협력하면 해결할 수 있는 과제’를 제시하여 개별 학습과 협력 학습을 구조화하였다.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담당교사와 협력교사가 각각 모둠을 순회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제공하였다.
참관교사 : 저는 2모둠 학생들을 집중적으로 관찰했는데, ○○이와 □□이는 정확히 적었고, △△이와 ▽▽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해결을 하더라고요. 또한 아이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어요.
협력교사 : 제가 협력교사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모둠의 상황을 파악하면서 도움이 필요할 때에 다가가고 있어요. 하지만 특정한 학생에게만 도움을 주면 부담을 느낄 수도 있고 다른 곳에 도움을 주기도 힘들어요.
수학교사 : 협력교사 선생님이 시간을 내어 도와주셔서 큰 도움을 받고 있어요. 학생의 수준을 고려해서 아예 다른 학습지를 줘야 하는지, 아니면 학습지 안에서 과제를 선택하도록 하는 방법을 써야 하는지, 그리고 모둠에서 도움을 받도록 할 것인지, 협력교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도록 해야 하는지, 이 속에서 어떻게 하면 낙인효과가 생기지 않도록 할 것인지 더 고민해 봐야겠어요.
이처럼 A중학교 영어, 수학 교사들은 무엇보다도 ‘배움의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다. 도움 영상자료 제공, 협력교사제 도입 등은 교사의 더 많은 헌신을 요구하는 것이지만, 교사들은 모든 학생의 배움을 보장하기 위해 이러한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시도들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와 실천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A중학교 교사들은 세 차례의 공개수업과 협의를 진행한 후 1차 실행에 대한 성찰을 진행하고 향후 실행연구 계획을 새롭게 수립하였다. A중학교 교사들은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칙을 적용하면서 우선 ‘협력적 학습구조의 형성’, ‘배움의 걸림돌 제거’에 주목했다. ‘협력적 학습구조의 형성’은 이전부터 노력해 온 부분이라 이 과제를 실행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이를 각 교과의 특성에 맞게 구조화하고, 학생들이 이를 자연스럽게 내면화하도록 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향후 모든 수업에서 이 원리를 공유하고 실천하기로 하였다.
‘배움의 걸림돌 제거’는 다소 어려운 과제로 보였다. 도움 영상자료 제공하기, 협력교사제 운영 하기 등은 우선 교사의 추가적인 헌신이 요구되는 과제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중학교 교사들은 기존의 수업에서 덜어야 할 것을 먼저 생각하고 수업의 구조를 단순화하기로 하였다. 그래야 추가로 배치되는 다양한 학습 장치들이 교사나 학생의 입장에서 부담스럽지 않을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수학 수업에서 협력교사제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2학기에는 학교 예산으로 시간강사를 채용하여 협력교사제 수업에 활용하기로 하였다.
1학기 1차 실행연구를 마무리한 이후 A중학교 교사들은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를 조금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보편적 학습설계의 의미를 ‘배움의 걸림돌이 제거된 상태에서, 학생들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 이해하고 생각하는 방식, 배운 것을 표현하는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수업 설계’라고 다시 정리하게 되었다.
1차 실행에서는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 중 주로 ‘참여의 원리’(협력학습의 구조화), ‘표상의 원리’(배움의 걸림돌 제거)가 적용되었다. 물론 학생들에게 다양한 학습방법을 선택하게 하는 ‘표현의 원리’도 일부 적용되었다. 그러나 다인수 학급에서 개별 학생들의 학습 성향, 학습 수준 등에 따른 표현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님을 확인하였다. 그래서 2학기에는 ‘표현의 원리’에 주목한 실행연구를 진행하기로 하고, 이에 따라 사전계획을 수립하였다.
1차 실행연구에서 협력교사로 참여했던 수학교사는 자신이 담당할 실행연구에서 ‘표현의 원리’를 도입하기로 하였다. 수학교사는 보편적 학습설계의 이론을 학습하면서 다중지능이론에 주목하였다. Gardener(2006)에 의하면 인간의 지능은 단일한 차원이 아니라 다층적 차원에서 구성되어 있는데, 학교교육은 주로 언어지능, 논리수리지능을 활성화할 뿐 나머지 공간지능, 음악지능, 신체운동지능, 대인관계지능, 개인내적지능, 자연지능 등 나머지 영역을 배제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수학 수업에서는 정적인 환경에서 손으로 문제를 푸는 등 논리수리지능만을 활성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A중학교 수학교사는 이 점에 착안하여, 학생들이 수학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방법을 위주로 다양한 학습활동을 준비하였다. ‘내심과 외심’의 원리를 모래 뿌리기 활동을 통해 찾아가는 활동과 이 원리를 도시 설계에 적용하는 활동을 제시하고 학생들이 이 중에서 원하는 활동을 선택하여 수행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서로 다른 학습활동을 본인이 스스로 선택하게 함으로써, 학생들의 학습 성향에 따른 ‘표현의 원리’를 적용하고 다중지능을 활성화하도록 수업을 설계하였다.
참관교사 1 : 제가 관찰한 모둠에서는 ○○가 정확히 외심의 개념을 찾아냈고, □□가 다른 친구들이 흐름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어요. 하지만 모둠마다 상황이 다를 텐데, 모두가 배움으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궁금해요.
참관교사 2 : 제가 관찰한 모둠은 사실상 실험에 성공하지 못했어요. 학생들이 스스로 원하는 실험을 선택하도록 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교사가 학생의 수준에 맞게 과제를 제시해 주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수학교사 : 보편적 학습설계를 공부하면서 다양한 표현 수단 제공에 초점을 맞췄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을 제공하고 선택을 하도록 했을 때 시행착오를 통해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그런데 사실상, 본인이 스스로 선택하기보다 친한 친구들끼리 서로 몰려가는 모습을 보였어요. 이게 근본적인 한계인 것 같아요. 스스로 찾아내길 원했으나 대부분의 아이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것 같았고, 제가 자꾸 개입을 해야 학습활동이 진행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 수업의 의도는 ‘표현의 원리’에 따라 자신의 학습성향에 맞는 방식으로 탐구활동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수학적 개념을 활자화된 추상적 개념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조작적 활동을 통해 스스로 탐구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Bruner(1966)는 동일한 지식도 세 가지 방식(조작적, 영상적, 상징적)으로 표현될 수 있으며 이를 학습자의 발달단계에 맞게 제시해야 한다고 보았는데, 이 수업에서 제시된 활동은 이 중 ‘조작적 표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사의 의도와는 달리 이 수업에서 표현의 원리가 충분히 구현되지는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학생들이 학습의 방법을 스스로 선택하게 한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교우 관계에 따라 학습활동을 선택한 것도 원인이겠지만, 교사가 제시한 학습 방법이 학습자의 다양한 성향을 고려한 활동이라기보다는 사실상 동일한 성격의 활동이었다는 점이 근본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다인수의 학급에서, 학생들의 개별적 성향을 충분히 고려한 학습 방법을 다양하게 제시한다는 것을 매우 어려운 과업임을 확인할 수 있다.
A중학교 음악교사는 ‘학생이 직접 곡을 만들고, 이를 합동으로 공연하기’라는 프로젝트 수업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인 ‘배움의 걸림돌 제거, 협력적 학습구조의 형성, 표현 방식의 다양화’ 등을 종합적으로 적용하고자 하였다.
우선, 학생들이 오선지 악보를 통해 직접 곡을 만드는 것이 어렵다는 판단하에 보조공학 도구인 음악 앱을 활용하여 누구나 손쉽게 작곡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특수교육에서 흔히 시각장애나 청각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위한 보조공학을 활용하는 것과 유사하게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학생들은 자신이 작곡한 음원을 모둠원과 공유하였고, 모둠원들은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을 골라 가사를 공동창작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완성된 창작곡을 모둠원들이 함께 연주하는 공연을 진행하였다. 학생들의 악기연주 능력은 개인적 적성이나 사교육 경험 등에 따라 격차가 벌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수업에서는 모든 학생이 공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래에 취미가 있는 학생은 노래로, 악기연주 경험이 있는 학생은 악기 연주로, 특별한 악기 경험이 없는 학생들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타악기 연주를 진행하였다. 모둠별로 연주 연습을 진행한 후 전체 학생들 앞에 공연을 진행하고, 이를 촬영해 유튜브에 탑재하여 모든 학생이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도록 하였다.
이러한 음악교사의 수업은 ‘배움의 걸림돌 제거’(보조공학 도구 활용), ‘협력적 학습구조의 형성’(모둠별 공동창작), ‘다양한 표현수단 활용’(개인의 특성을 살린 연주) 등 A중학교 교사들이 그동안 실천해 온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를 다양하게 적용한 것이다.
참관교사 1 : 저는 보조도구를 활용하신 게 참 좋더라고요. 콩나물 악보를 모르는 학생도 작곡할 수 있게 도와주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수학시간에 지오지브라라는 공학도구를 쓰는데, 이런 공학도구를 활용하는 게 보편적 학습설계에서 꼭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참관교사 2 : 아이들이 공동작업을 보니, 한 명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면 그렇게 진행될 수밖에 없겠다 싶었어요. 만약에 음악적 성향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모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아니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고 충분히 시간을 두어 창작에 몰두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음악교사 : 이 수업의 의도가 어느 정도는 이루어진 것 같아요. 하지만 보편적 학습설계란 곧 개별화 수업으로 이어지는 것 아닌가 해요. 핀란드 수업에서 작곡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한 선생님이 대여섯 명의 학생들을 지도하더라고요. 학생수가 더 줄어야 아이들 성향을 파악하고 개별화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음악교사는 A중학교 교사들이 진행해 온 여러 가지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를 종합적으로 적용하였다. 교사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힘든 과제를 수행하였지만, 학생들은 거의 모두 ‘창작과 공연’이라는 도전적 과제에서 성취의 경험을 하였다. 또한,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를 더욱 심화시키기 위해서는 학생 개별적인 특성과 성향에 대한 진단 하에 개별화된 수업 진행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실행연구의 경험이 성숙해지면서 이러한 새로운 과제도 실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A중학교 교사들은 1학기 1차 실행 이후 2학기 2차 실행에서는 특히 ‘표현의 원리’를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각자의 수준이나 성향에 따라 학습과제를 선택하고 그 결과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수업이 설계되어야 한다. 학생들의 개별적 특성을 진단해야 하고, Gardener(2006)의 다중지능이론이나 Bruner(1966)의 지식의 표현 원리 등에 입각한 다양한 학습과제를 설계해야 한다. 이는 기존의 관행이나 다인수 학급 상황등 중등학교의 실정을 고려해 볼 때 결코 쉬운 과업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중학교 교사들은 학교의 실정에 맞는 보편적 학습설계의 구현 방안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서로 다른 과제를 통해 수학적 원리를 발견하는 수업이나, 각자의 특성에 맞는 음악 활동을 통해 공동창작 및 공연을 진행하는 수업에서 그러한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A중학교에서 진행한 실행연구 결과가 보편적 타당성을 지니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우선 1차 실행 주체인 개별 교과 교사가 실행 중 성찰을 바탕으로 2차, 3차 실행을 해 가는 과정을 공동체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웠다. 이는 월1회씩 여러 교사가 돌아가며 공개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제약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도출한 수업혁신의 원리의 타당성을 검증하기에는 1차년도 연구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기에, A중학교 교사들은 2차년도 연구를 이어가기로 하였다.
V. 결 론
A중학교 교사들이 실행연구를 진행한 이유는 이로부터 모든 수업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수업혁신 방안을 도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A중학교 교사들은 예전에도 배움중심수업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실행연구를 통해 학교가 부딪힌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일반화된 원리를 찾고 이를 모든 교사가 각자의 수업에서 구현하고자 하였다. 특히 보편적 학습설계 실행연구 결과는 일반적인 배움중심수업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 배움에 특별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었다.
A중학교 교사들은 실행연구 과정을 통해서 ‘실행 중 성찰’과 ‘실행 후 성찰’을 끊임없이 진행하였고, 이 과정에서 연구자와 협력하여 모든 교사의 수업에 적용할 수 있는 원리를 정리하였다. 다음은 보편적 학습설계 실행연구 결과에 따라 연구자와 함께 도출한 ‘A중학교가 지향하는 수업의 원리’이다.
보편적 학습설계와 같은 새로운 과제를 도입하려면 기존의 수업 방식에서 복잡한 요소를 덜어내고 수업구조를 단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보편적 학습설계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은 배움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이 협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학습 방법이나 표현 방법 등에서 학생이 선택할 기회를 보장하는 것 등이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 밖에 피드백, 성장 지원, 성찰의 기회 제공 등은 모든 수업에 공통적으로 필요하지만,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를 구현하는 데에 있어서도 필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이는 교사 개인의 실천이 아니라 모든 교사가 함께 지향해야 할 원리로 자리잡을 때 수업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다.
A중학교 교사들은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를 기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실천했던 수업혁신의 맥락에서 이를 도입하였다. 여기에서 도출된 수업의 원리는 교사들의 실행연구 과정에서 나온 것이기에 의미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특수교육과는 맥락이 다른 일반교육에서도 일반화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여기서 도출한 수업의 원리가 완결성을 지닌 것은 아니므로, A중학교 교사들은 2차년도 실행연구를 통해 이를 보완해 가기로 하였다. 향후 학교현장에서의 연구와 실천을 통해 이러한 원리가 또다시 갱신되어 가기를 기대해 본다.
A중학교의 보편적 학습설계 실행연구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는 특수교육 분야에서 먼저 연구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일반교육, 중등교육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와 실천이 필요하다. 특수교육은 서로 다른 장애의 유형과 정도를 지닌 소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 한명 한명의 특성에 따른 보편적 학습설계에 대한 연구와 실천이 확산되어 왔다. 초등학교에서도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 중등학교보다는 수월하다. 담임교사가 담임 학급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수업과 학생생활교육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를 우선적으로 초등학교에서도 적용하고자 하는 노력이 확산되어야 하며, 중등학교 역시 자신의 상황에 맞는 원리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중등학교는 다인수 학급의 조건 때문에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가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중등학교에서의 적용 사례에 대한 선행연구가 매우 적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의 집단지성과 연구자의 전문성이 결합된 실행연구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 A중학교의 사례는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 중등학교에서는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하기보다 기존 수업혁신의 성과를 확장하는 가운데 이를 접목하는 것이 타당하다. 일반적인 중등교사의 입장에서 볼 때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는 매우 낯설 수밖에 없으며, 이 원리를 내면화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수업혁신의 성과를 바탕으로 이 원리를 도입하려는 전략이 필요하다. 배움중심수업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배움이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주목하는 가운데, 학생들 사이의 협력적 관계 형성을 중시한다. 여기에 ‘배움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에 대한 우선적 지원’이라는 보편적 학습설계의 지향이 결합될 때 중등학교 교사들도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에 접근할 수 있다.
셋째, 중등학교에서는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를 단계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특수교육과는 달리 다인수 학급이라는 조건, 그리고 기존의 수업 방식에 익숙해 있는 중등학교 교사들이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를 동시에 적용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무리가 따른다. 이런 조건을 고려해 볼 때, 중등학교에서 우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원리는 학생들의 정서적 학습을 지원하기 위한 ‘참여의 원리’이다. 이를 위해서는 배움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 대한 개별적인 배려와 격려가 우선되어야 하며, 학생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협력적 학습구조가 형성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적용할 수 있는 원리는 학생의 인지적 학습을 지원하기 위한 ‘표상의 원리’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배움의 걸림돌 제거’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도움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중등학교에서 적용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원리는 학생들의 전략적 학습을 지원하기 위한 ‘표현의 원리’이다. 이 원리를 구현하려면 학생들의 개별적인 특성에 맞는 다양한 학습과제를 제시해야 하며, 학생들이 자신이 배운 지식과 기능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미 상당 수준의 학습 격차가 생겨난 다인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중등학교에는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진단하고자 하는 교사의 노력과 함께 이를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넷째,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를 모든 수업에 일반화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업의 구조가 마련되어야 하며, 이 원리를 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 중 하나가 ‘간단하고 직관적인 교수학습’이지만, 역설적이게도 ‘표상의 원리’, ‘표현의 원리’, ‘참여의 원리’ 등은 교사의 입장에서 볼 때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적 상황, 중등학교의 상황에 맞는 원리, 교사라면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원리가 새롭게 정립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A중학교에서와 같은 실행연구가 확산될 필요가 있다. 또한 학생들 입장에서도 ‘다양한 과제를 자신의 수준에 맞게 선택’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교수학습의 구조는 단순해야 하며, 학생들도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학습활동지가 친절하게 제작되어야 한다.
이러한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에 따른 수업이 확산되기 위해서는 학교와 교육당국 차원의 지원이 세심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학교 차원에서는 배움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을 위한 중층적 지원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핀란드에서는 ‘모든 학생을 위한 일반지원’, ‘소수의 학생을 위한 집중지원’, ‘전문적 지원이 필요한 학생을 위한 특별지원’ 등 중층적 지원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일상적인 수업만으로 지원이 충분하지 않은 학생들을 위해서는 별도의 지원 방안이 추가로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교과교사, 담임교사, 상담교사, 보건교사, 특수교사, 학교관리자 등이 함께 학생들을 학업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세심히 배려하는 전문적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보편적 학습설계 확산을 지원하기 위한 교육당국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미 일부 시도교육청에서 진행해 온 협력교사제 사업이 이에 해당한다. 더욱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학생들이 학습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으며, 가정이나 학교 모두에서 방치되는 학생들도 늘어가고 있다. 학생들이 개별적인 학습 상황이나 성향을 판별할 수 있는 진단 도구의 개발, 협력교사제의 확대, 상담이나 정신건강 영역의 전문인력 확충 등을 통해 ‘모두를 위한 교육’ 구현을 위한 지원이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학교 안에서 새로운 수업혁신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이 결합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