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 론
한국의 교육과정은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이다. 국가 교육과정은 각급 학교의 교육목적과 교육목표를 제시하고, 학교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을 위한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기준을 제공한다(박서연, 홍후조, 2015). 즉, 전국의 초·중등학교의 학교 교육과정은 고시된 국가 교육과정에 따라 운영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국가 교육과정이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활동 전반에 영향력과 구속력을 행사한다.
국가 교육과정은 대체로 ‘목표’와 ‘성격’, ‘내용’, ‘교수·학습 방법’, ‘평가’ 등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내용’은 교수·학습 및 평가의 실질적인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2015 개정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에서 ‘내용’은 다시 ‘내용 체계’와 ‘성취기준’의 하위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 체계’에서는 대주제와 소주제를, ‘성취기준’에서는 구체적인 수업 활동의 지침이 되는 교육목표를 제시한다. 특히, ‘성취기준’은 교과서 집필의 기준이 될 뿐만이 아니라, 교사가 교수·학습 활동을 구안하고 실행하는 데에 실질적인 지침이 되기 때문에, 학교 수업 실제에 가장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따라서, 교육과정 성취기준에 관한 연구는 현장의 문제 개선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중요한 연구 분야라고 하겠다.
성취기준에 관한 연구는 주로 향후 교육정책 수립과 교육과정 개정을 위한 기초 연구 차원에서 이루어져왔다. 1996년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수행한 ‘국가 공통 절대평가기준 일반 모형 개발 연구’를 시작으로(허경철 외, 1996; 백순근 외, 1997; 백순근 외, 1998; 류재택 외, 1998), 한국교육개발원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다양한 연구 보고서가 나왔다(허경철, 2006; 윤현진 외, 2008; 김종윤 외, 2018). 일련의 연구 보고서의 발행을 통해 점차 성취기준의 의미가 정련되었으며, 성취기준의 진술 방식에 대한 여러 방면에서의 고찰이 이어졌다.
한편, 2009 개정 교육과정부터 성취기준이 교육과정 문서의 목차에 전면 등장하면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또한, 중학교에 성취평가제가 도입되면서 현장에서의 성취기준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각 교과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다방면에서 분석한 연구들이 나타났다.
이미 역사 교과의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분석한 연구가 다수 있다. 대표적으로 초등학교 역사 영역의 교육과정을 분석한 김동국(2013)의 연구, 국내 역사과 교육과정과 미국 세계사 표준서를 비교한 김민정(2014)의 연구, 고등학교의 한국사와 세계사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분석한 이병인(2016)의 연구, 2015 개정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을 분석한 김성자(2016)의 연구가 있다. 이들의 연구는 공통적으로 역사 교과의 교육과정 성취기준이 명료하지 못하게 진술되어 있으며, 특정 영역에 집중되어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특정 영역에의 집중이 사고 기능을 강조하는 역사과 교육과정의 목표에 역행함을 비판하면서, 사고 기능 영역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은 새로운 교육과정 고시와 함께 등장하였다가 논의를 확장시키지 못하고 사장되었다. 이들의 연구가 각각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고 있음에도, 이를 종합하여 통일된 논의를 마련하지 못한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이들 연구에 공통된 분석틀 및 분류 기준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앞선 연구에서 사고 기능 영역을 보완해야 한다고 제안하였을 때, 각 연구에서 말하는 사고 기능은 큰 틀에서는 유사하지만, 세부적으로는 서로 다른 대상을 지칭하였다. 즉, 공통의 분석틀 및 분류 기준의 부재함은 앞선 연구를 더욱 확장된 논의로 이끌고 나갈 수 있는 토대의 부재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교육과정 성취기준과 관련하여 지속적인 논의가 가능할 수 있도록, 공통의 분석틀과 분류 기준의 마련이 필요하다.
반면, 다른 교과에서는 서로 비슷한 분석틀과 분류 기준을 사용하여 이전 교육과정의 논의를 이어받아 다음 교육과정의 논의로 이어나가는 연구가 많다. 먼저, 국어과에서는 정혜승(2007)과 서영진(2013), 이현숙과 강현석(2013), 박기범(2020)등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성취기준형 진술 방식이 국어 교과에서 교육목표나 내용을 제시하는 데에 적합한지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국어 교과의 성격에 비추어 적합한 진술 방식을 제안하였다. 특히, 이현숙과 강현석, 그리고 박기범의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Bloom의 신교육목표분류체계에 기초하여 2007 개정 교육과정과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국어과 성취기준을 분석하고 개선 방안을 제안하였다. 한편, 과학과에서는 성취기준을 Bloom의 신교육목표분류체계에 기초하여 분석하고, 그 특징과 문제점을 밝혔다(최정인, 백성혜, 2015; 이성민, 천주영, 홍훈기, 2017). 이들은 공통적인 분석틀과 분류 기준에 의거하여 성취기준을 분석하고, 그동안 성취기준이 점진적으로 다양한 지식의 유형과 인지과정을 지향하였음을 확인하였으나, 외국 교육과정과 비교하여 여전히 상당수의 성취기준이 일부 지식의 유형과 인지과정에 집중되어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분석 결과를 토대로 더욱 명료하게 교육목표와 내용을 진술할 것과 더욱 다양한 지식의 유형과 인지과정을 지향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처럼 공통된 분석틀과 분류 기준은 이후의 논의가 이전의 논의를 기초로 하여 확장성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도 역사과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Bloom의 신교육목표분류체계에 기초하여 분석하고 분류해보고자 한다. 이는 교육목표분류체계의 초석을 마련한 Bloom이 언급한 것처럼, 서로 사용하는 개념이 의미하는 바가 다름으로써 나타나는 정보의 상호 교환 상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함이다. 다만, 역사교육에서는 특정 내용에 대한 지식이 적용 등의 상위 사고보다 높은 위계를 갖기도 하여, 지식을 가장 낮은 수준의 인지 활동으로 설정한 Bloom의 교육목표분류체계 적용이 어렵다는 분석도 있었다(박진동, 박주현, 신항수, 2012; p.296). 그러나 이후 등장한 Bloom의 신교육목표분류체계는 지식을 인지 과정으로 분리하여 앞선 한계를 보완하였으며, 지식을 여러 유형으로 분류하여 역사교육의 다양한 지식을 상세하게 분류하는 데에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이미 여러 교과에서 Bloom의 신교육목표분류체계를 이용하여 교육과정의 분석을 시도하였으므로 그 범용성을 입증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 Bloom의 신교육목표분류체계를 이용하여 역사과 교육과정 성취기준 분석을 위한 용어를 명확히 정의하고 통일된 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연구자들과 현장 교사들의 의사소통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분석 및 분류 결과를 토대로 2015 개정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러한 특징과 문제점에 대한 분석 및 개선 방안 제시는 차기 교육과정 성취기준 연구 및 개발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II. 성취기준의 도입과 그 의미
한국의 교육과정에서 ‘성취기준’이라는 개념은 제7차 교육과정 개발 전후에 도입되었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국가 수준의 절대평가 기준 개발 연구가 4단계로 진행되었으며, 이 일련의 연구에서 ‘성취기준’의 기초적인 개념이 정립되었다. 국가 수준의 절대평가 도입이 적극적으로 검토되면서, 이를 위한 명료하고 구체적으로 정의된 평가의 준거가 필요하였다(허경철 외, 1996, pp. 1-29). 제6차 교육과정의 ‘주제 나열형 제시’ 방식은 학습의 결과를 명료하게 나타내지 못하여, 명료하고 구체적으로 정의된 평가 준거라고 하기 어려웠다(서영진, 2013, p. 419). 이에 새로운 교육목표 진술 방식을 모색하게 되었고, 기존의 교육목표와 내용을 한 단계 또는 두 단계 정도 상세화하여 재진술한 ‘성취기준’이 등장하였다(백순근 외, 1997, p. 11). 초기의 연구들에서 ‘성취기준’은 다음과 같이 정의되었다.
성취기준(achievement standards)이란, 교육과정이 제시하는 교육목표와 내용을 구체화·상세화하여, 학생들이 학습 활동의 결과 성취해야 할 능력 또는 특성을 규정한 것으로, 국사과에서는 교과서의 중영역 범위에 있는 내용을 분석하여 내용+행동의 형식으로 진술한다(류재택 외, 1998, p. 17).
위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성취기준’은 기존의 교육과정에서 제시하고 있는 교육목표와 내용을 더욱 구체화하고 상세화하여 재진술 한 것이다. 기존의 교육목표가 학습 주제인 내용 요소만을 제시하는 데에 그쳤기 때문에, ‘성취기준’은 내용 요소와 더불어 학습의 방법이나 결과인 행동 요소를 함께 진술하였다. 내용과 행동을 함께 진술함으로써 학생들이 성취해야 할 능력과 특성을 명료하고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취기준’의 진술 방식은 제7차 교육과정부터 교육과정의 가장 하위의 목표를 진술하는 데에 적용되었다. 그 예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제6차 교육과정(주제 나열형 제시) : “게르만족의 이동과 프랑크 왕국”
제7차 교육과정(성취기준형 제시) : “게르만족의 이동에 따라 새로운 왕국이 건설되고 유럽 세계가 성립된 과정을 이해한다.”
제7차 교육과정부터 교육목표는 “게르만족의 이동”과 “새로운 왕국의 건설”, “유럽 세계의 성립 과정”과 같은 내용 요소와 더불어, “이해”라는 행동을 함께 명시하였다. 이처럼 기존의 ‘주제 나열형’에서 ‘성취기준형’으로의 교육목표 진술 방식 변화란, 내용 요소를 더욱 상세하게 규정하고, 학습의 방법인 ‘활동’이나 학습의 결과인 ‘수행’을 행동 동사를 사용하여 구체화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제7차 교육과정부터는 교육과정의 가장 하위목표가 성취기준형으로 작성되면서, 성취기준은 곧 최하위 교육목표 혹은 교육내용 그 자체를 의미하게 되었다. 따라서, 제7차 교육과정부터 교육과정을 성취기준의 형식으로 작성하였다는 점에서 이전의 기존 교육과정을 재진술하는 ‘성취기준’과 구분하여 ‘교육과정 성취기준’이라고 명명하기로 한다. 이러한 교육과정 성취기준의 정의와 진술 방식이 이후에도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음은 아래의 <표 1>을 통해 알 수 있다.
교육과정 시기 | 교육과정 성취기준의 정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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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차 교육과정 | 교수-학습의 실질적인 기준으로서 각 교과목에서 가르치고 배워야 할 내용과 그러한 내용 학습을 통해 학생들이 성취해야 할(또는 보여주어야 할) 능력 및 특성을 명료하게 진술한 것(류재택 외, 2000, p. 5) |
2007 개정 교육과정 | 잘 정의된 교수·학습 목표 체계로 최소 어느 수준에서 어느 수준까지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한 합의된 진술 …… 내용+행동의 형식으로 교육내용을 진술해야 한다(박은아 외, 2008, p. 9). |
2009 개정 교육과정 | 각 교과목에서 학생들이 학습을 통해 달성해야 할 지식, 기능, 태도의 능력과 특성을 기술한 것(박진동 외, 2012, p. 11). |
2015 개정 교육과정 | 학생들이 각 교과 수업을 통해 배워야 할 내용(지식, 기능, 태도)과 관련된 능력 또는 특성을 진술한 것, 단위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수·학습 활동의 근거(문영주 외, 2018, p. 9) |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표방하였다. 이 때문에 교육과정 문서의 체제와 구성이 크게 바뀌었다. 문서의 전반적인 목차는 2009 개정 교육과정과 비슷하게 ‘성격’, ‘목표’, ‘내용 체계 및 성취기준’, ‘교수·학습 및 평가의 방향’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 하위 항목 수준에서 큰 변화가 나타났다. 그동안의 교과 교육과정 내용 체계의 내용 요소가 지식 중심으로 나열된 것을 문제점으로 보고,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내용 체계에 ‘기능’을 함께 제시할 것을 제안하였다(이광우, 정영근, 2017, pp. 600-609). 즉, 2015 개정 교육과정은 내용 요소의 지식 편중을 해소하기 위하여 기능의 보강을 주안점으로 삼고 있다.
각각의 항목의 변화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2015 개정 교육과정은 교과 교육의 필요성 및 역할과 함께 교과역량을 제시하고 있다. 핵심역량과 마찬가지로 교과역량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표방하면서 처음 등장한 항목이다. 교과역량이란, 총론에서 제시한 핵심역량을 중심으로 교과의 내용을 재검토하고 재설계할 수 있는 준거이며, 교과 교육과정의 내용 선정 및 조직의 대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에서 제시하는 교과역량은 ‘역사 사실 이해’와 ‘역사 자료 분석과 해석’, ‘역사 정보 활용 및 의사소통’, ‘역사적 판단력과 문제 해결 능력’, 그리고 ‘정체성과 상호 존중’이 있다.
이어서 교육과정 문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 체계 및 성취기준’은 ‘영역’, ‘핵심개념’, ‘일반화된 지식’, ‘내용 요소’와 ‘기능’으로 구성된 내용 체계와 교수·학습 활동의 지침인 교육목표로서의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담도록 하였다. 각각 용어의 개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영역’이란, 교과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최상위의 교과 내용 범주이다. 구체적으로 초등학교 사회의 역사영역은 ‘영역’을 “역사 일반”, “정치·문화사”, “사회·경제사”로 제시하고 있다. 각 ‘영역’ 아래에는 ‘핵심개념’이 제시되어 있다. ‘핵심개념’이란, 교과가 기반하는 학문의 가장 기초적인 개념이나 원리를 의미한다. 초등학교 역사는 “역사의 의미”, “선사시대와 고조선의 등장”, “신분제의 변화”와 같은 내용을 각각 “역사 일반”, “정치·문화사”, “사회·경제사” ‘영역’에 해당하는 ‘핵심개념’으로 제시하였다. ‘핵심개념’ 아래에는 ‘일반화된 지식’이 제시되어 있다. ‘일반화된 지식’이란, ‘핵심개념’을 배우기 위해 학생들이 해당 ‘영역’에서 알아야 할 보편적인 지식을 의미한다. ‘일반화된 지식’은 ‘핵심개념’과 ‘내용 요소’를 연결하여 주는 가교의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하위의 내용 체계 항목이면서,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이루는 한 부분인 ‘내용 요소’란, ‘영역’, ‘핵심개념’과 ‘일반화된 지식’으로부터 추출한 실질적인 학습 주제에 해당한다.
한편, ‘기능’은 지식을 습득할 때 활용되는 교과 고유의 탐구 과정 및 사고 기능을 반영한다(교육부, 2016, p. 135). 여기서 말하는 ‘기능’은 역할 의미의 기능(function)이나 지식과 태도 같은 교육목표분류체계의 기능(skill)과는 구분된 개념이다. 즉, ‘내용 체계’에서 제시하는 ‘기능’은 학습자가 해당 교과 혹은 영역에서 할 수 있어야 할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앞서 제시된 ‘내용 요소’를 가지고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기존의 교육과정 성취기준이 내용과 행동의 결합으로 진술되었으나,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내용 요소’와 ‘기능’의 결합으로 진술된다. 행동이 ‘기능’으로 대체된 것은 학습의 결과를 교과 및 영역 특수의 능력의 형태로 제시하도록 한 것이다(이광우, 정영근, 2017, pp. 17-24). 따라서,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내용 요소’와 함께 ‘기능’을 결합하여 진술하게 한 것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이 표방하는 핵심역량이 교과 교육과정 문서뿐만이 아니라, 단위 학교 수업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이광우 외, 2015, pp. 17-24).
하지만 2015 개정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 본문에서 제시한 ‘내용 체계’는 다른 과목과 다르게 대주제와 소주제로 구성되었다.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 역시 시안 개발 연구 단계까지는 다른 과목과 마찬가지로 ‘영역’-‘핵심개념’-‘일반화된 지식’-‘내용요소’-‘기능’으로 이루어진 ‘내용 체계’를 구성하였다(진재관 외, 2015, pp. 36-42). 그러나 이후 “개별 사실들의 특수성을 중시하는 과목”인 역사 과목의 성격을 고려하였을 때, 총론에서 제시한 ‘내용 체계’의 형식을 적용할 수 없음을 밝혔다(김성자, 2016, pp. 177-179). 따라서 최종적으로 고시된 교육과정의 본문에 제시된 ‘내용 체계’는 대주제와 소주제로 구성되었고, ‘기능’은 제외되었다. 2015 개정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아래의 <표 2>와 같은 ‘기능’들이 검토되기도 하였으나, ‘내용 체계’에서 ‘기능’이 삭제되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반영되지 않았다(김성자, 2016, p. 179).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총론은 ‘내용 체계’에 ‘내용 요소’와 더불어 핵심역량 및 교과 역량으로부터 추출한 ‘기능’을 함께 포함하도록 규정하였다. 하지만 2015 개정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의 본문에서 제시된 ‘내용 체계’는 ‘기능’이 제외되어 있으며, ‘내용 요소’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은 이전과 같은 지식 중심의 ‘내용 체계’를 가지게 된 것이다.
최종 고시된 교육과정은 ‘내용 체계’에서 대주제와 소주제를 제시하고, 교육과정 성취기준은 소주제 수준에서 진술되었다. 교육과정 성취기준은 교육과정 문서 본문의 ‘내용 체계’에서 따로 ‘기능’을 제시하고 있지 않아, 소주제에서 추출한 ‘내용 요소’의 특성에 따라 “파악하다”, “설명하다” 등의 행동 동사를 사용하여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작성하였다. 이전 교육과정인 2009 개정 교육과정와 비교하였을 때,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추론하다”와 “분석하다”와 같이 행동 동사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이는 비록 ‘기능’이 ‘내용 체계’에서 삭제되었으나, 기능을 강화 혹은 보강하는 전체적인 기조는 유지되었음을 보여준다.
III. Bloom의 신교육목표분류체계에 의한 교육과정 성취기준 분석
교육과정 성취기준의 진술 방식인 ‘내용 요소+기능’의 기원을 찾아보면, Tyler의 행동적 목표 진술 방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이림, 2018, p. 66). Tyler는 가장 유용한 형태의 교육목표 진술은 학생에게서 개발되어야 하는 행동과 이 행동이 수행되는 내용이나 생활 영역 두 가지를 모두 명료화하여 표현한 것이라고 보았다(Tyler, 1949/1996; pp. 54-55). 즉, 명료한 교육목표란 내용 측면과 행동 측면을 모두 포함한 것으로, ‘내용 요소+기능’이라는 현행 교육과정 성취기준의 진술 방식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Tyler는 목표의 기술에서부터 명료성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교육목표를 더욱 명세하게 진술하고, 진술된 교육목표를 오해 없이 이해하기 위해 교과의 핵심적 지식이나 기능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Bloom이 행동의 종류와 내용의 유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1956년 교육목표분류학 핸드북을 출간하였다. 당시에는 획기적이었으나 Bloom이 핸드북을 출간한 뒤 반세기가 흘러 다양한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에 기존의 분류체계를 보완하는 개정안들이 등장하였다. 대표적으로 Bloom의 교육목표분류체계 개발에 참여하였던 Anderson 등이 Bloom의 분류체계를 보완하여 4가지 지식 차원과 6가지 인지과정 차원으로 구성한 이차원적 분류체계를 만들었다(Anderson et al., 2001/2005, p. 14). 이를 이전의 Bloom의 교육목표분류체계와 구분하여 Bloom의 신교육목표분류체계라고 명명한다. 이 분류체계가 제시한 4가지 지식이 ‘내용 요소’에 해당한다면, 6가지 인지과정은 ‘기능’에 해당한다.
Bloom의 신교육목표분류체계가 제시한 4가지 지식의 유형에는 사실적 지식, 개념적 지식, 절차적 지식, 메타인지 지식이 있다. 먼저, 사실적 지식은 별개의 분리된 내용 요소, 즉 정보 단위에 대한 지식으로, 용어에 대한 지식과 특수한 사상 및 요소에 대한 지식을 포함한다(Anderson et al., 2001/2005, pp. 53-55). 역사교육에서 사실적 지식으로 분류할 수 있는 내용 요소는 구체적인 지리적 정보, 연대기적 정보, 인물의 이름이나 생몰년도와 같은 개별적 정보들이 있다.
한편, 개념적 지식은 다소 복잡하고 조직화된 지식을 말하며, 분류와 유목, 원리와 일반화, 이론, 모형, 구조에 대한 지식을 포함한다(Anderson et al., 2001/2005, pp. 55-59). 개념적 지식이란, 단편적 정보인 사실적 지식을 묶어내는 조직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조직개념이라고 하면, 문명과 혁명 같은 1차 개념(first-oreder concepts)만 떠올리기 쉬우나, 개념적 지식은 Lee가 제시한 2차 개념(second-order concepts)을 포함한다(Lee, 2005, pp. 45-61). 역사교육에서의 개념적 지식이란 변화와 지속성, 원인과 결과, 유사성과 차이성, 발전과 쇠퇴와 같이 내러티브에서 발견하게 되는 ‘종별성(spécificité)’의 원리 그 자체를 포함한다(Vayne, 1971/2004, pp. 89-126). 이와 같은 2차 개념은 내러티브 탬플릿으로 기능하면서, 개별 사실을 조직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다(김진아, 2016, pp.64-68). 변화와 지속성 같은 개념은 그 자체가 직접적으로 학습 대상이 되지 않으나, 여러 가지 사실적 지식을 학습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학습하게 된다.
대체로 역사과 교육과정의 내용 요소는 사실적 지식과 개념적 지식이 결합된 형태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유럽의 신항로 개척 이후 무역 확대가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 세계에 미친 변화를 설명한다.”에서는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 세계에서 나타난 개별적인 여러 사건을 “유럽의 신항로 개척”과 “무역 확대”가 가져온 ‘변화’라는 개념으로 묶어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사실적 지식과 개념적 지식을 분리하지 않고, 이 둘을 합쳐 사실·개념적 지식으로 분류하기로 한다.
절차적 지식은 어떤 것을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지식을 의미하며, 특정 영역과 학문 분야에서 무엇을 언제 해야 하는가를 결정할 때 사용하는 준거에 관한 지식과 기능, 알고리즘, 기법에 대한 지식을 포함한다(Anderson et al. 2001/2005, pp. 59-62). 즉, 교과가 기초하고 있는 학문 분과의 탐구양식과 연구방법론이 그 교과의 절차적 지식이 된다. 역사교육에서 말하는 절차적 지식은 VanSledright의 ‘배경 개념(background concepts)’이 그 적합한 예시가 된다. 그가 제시한 배경 개념이란 일반적으로 교실 수업에서 다루는 ‘전경 개념(foreground concepts)’ 혹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떠올리는 역사적 지식과 구분된다. 배경 개념은 학생이 역사 탐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지식을 말한다. VanSledright는 자료의 출처, 증거의 유효성과 신빙성 그리고 해석과 관점 등을 그 사례로 제시하였다(VanSledright&Frankes, 2000, pp. 245-246). 즉, 역사교육에서 제시할 수 있는 절차적 지식이란, 역사가가 역사적 자료를 수집하는 방법, 역사적 자료를 접했을 때 자료의 출처를 확인하는 방법, 자료의 원저자를 파악하는 방법, 자료의 유용성과 신빙성을 검증하는 방법 등 역사가가 실제로 연구를 수행할 때의 과정과 절차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메타인지 지식은 자신의 인지에 대한 인식 및 지식과 인지 전반에 대한 지식을 말한다. 메타인지 지식은 전략적 지식, 맥락 및 조건적 지식을 포함하는 인지 과제에 대한 지식, 자기지식을 포함한다(Anderson et al., 2001/2005, pp. 62-71). 역사교육에서 메타인지 지식으로 분류할 수 있는 내용 요소는 역사 교과에 대한 관심과 흥미, 세계사 과목의 학습 목적과 방법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한편, Bloom의 신교육목표분류체계에서는 학습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 학생의 행동을 총 6가지의 인지과정으로 분류한다. ‘기억하다’와 ‘이해하다’, ‘적용하다’, ‘분석하다’, ‘평가하다’, ‘창안하다’가 바로 그것이다. 가장 첫 번째 인지과정인 ‘기억하다’는 장기기억으로부터 관련된 지식을 인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억하다’에는 ‘재인하기’와 ‘회상하기’ 등 단순한 정보의 기억과 인출에 관련된 인지과정이 포함된다. 둘째, ‘이해하다’는 수업을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지식을 기존에 알던 지식과 연결짓는 것을 말한다. ‘이해하다’라는 인지과정은 ‘해석하기’와 ‘예증하기’, ‘분류하기’, ‘요약하기’, ‘추론하기’, ‘비교하기’, ‘설명하기’ 등을 포함한다. 셋째, ‘적용하다’는 특정 장면에서 절차를 실행하거나 활용하는 것을 지칭한다. ‘집행하기’와 ‘실행하기’가 이에 포함된다. 넷째, ‘분석하다’는 자료를 구성 요소로 분할하고, 요소들의 상호관계와 전체 구조나 의도와의 관련성을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분석하다’에는 구체적으로 ‘구별하기’와 ‘조직하기’, ‘귀속하기’와 같은 인지과정이 포함된다. 다섯 번째인 ‘평가하다’는 준거와 기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을 뜻한다. ‘평가하다’에는 ‘점검하기’와 ‘비판하기’가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창안하다’는 부분들을 결합해서 새롭고 일관성이 있는 전체를 구성하거나 독창적인 산물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창안하다’는 ‘생성하기’와 ‘계획하기’, ‘산출하기’를 포함하며, 여러 인지과정의 종합적 결과를 산출해내는 것을 말한다. ‘기억하다’부터 ‘창안하다’까지 낮은 수준에서 점차 더 높은 수준의 순서로 나열이 되어 있지만, 각각이 직선적인 위계를 이루거나 연속적인 과정을 형성하는 것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Anderson et al. 2001/2005, pp. 72-105).
본 연구는 2015 개정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 문서에 제시된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분석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교육과정 성취기준은 복문으로 서술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9역04-02] 유럽의 산업화 과정을 이해하고, 제국주의 침략 실상을 사례를 중심으로 탐구한다.”와 같이 복문으로 서술된 경우, “[9역04-02-01] 유럽의 산업화 과정을 이해한다.”와 “[9역04-02-02] 제국주의 침략 실상을 사례를 중심으로 탐구한다.”의 2개의 단문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단, 복문으로 서술되어 있는 경우에도, 앞선 활동 및 수행이 뒤따르는 활동 및 수행의 선행되는 단계로 진술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9역12-01] 국민 국가를 건설하려는 다양한 노력들을 살펴보고, 그 결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음을 이해한다.”의 경우, “국민 국가를 건설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음”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선행경험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이 경우 둘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교육과정 성취기준으로 분석하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음”을 “이해”하는 것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2015 개정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의 분석 대상이 된 교육과정 성취기준은 총 54개이며, 교육과정 성취기준에서 ‘내용 요소’를 Bloom의 신교육목표분류체계의 4가지 지식 유형에 따라 분류하면 아래의 <표 3>과 같다.
사실·개념적 지식 | 절차적 지식 | 메타인지 지식 | 계(비율) | |
---|---|---|---|---|
세계사 영역 | 22(42.3%) | 1(1.9%) | 2(3.8%) | 25(48.0%) |
한국사 영역 | 26(50.0%) | 0(0.0%) | 1(1.9.%) | 27(52.0%) |
계(비율) | 48(92.3%) | 1(1.9%) | 3(5.7%) | 52(100.0%) |
2015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 성취기준의 내용 요소는 사실·개념적 지식에 편중이 나타났다.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에서 역사학의 방법론이나 탐구양식, 사고 기능에 관한 ‘내용 요소’는 “[9역01-01] 역사의 의미를 알고, 역사를 학습하는 목적을 이해한다.”에서의 “역사의 의미”를 제외하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절차적 지식의 부족은 다른 교과의 교육과정 성취기준의 ‘내용 요소’와 비교하였을 때 뚜렷하게 드러난다. 역사와 비슷하게 지식 교과로 간주되는 과학과 화학 영역의 경우 절차적 지식을 ‘내용 요소’로 하는 경우가 전체 40개 중 5개에 해당한다. “끓는점 차를 이용한 증류의 방법”과 같이 교과의 특수한 기법과 방법에 대한 지식이 이에 해당한다(이성민, 천주영, 홍훈기, 2017, p. 270). 따라서 역사과 교육과정에서 절차적 지식을 ‘내용 요소’로 하는 경우가 극히 적은 것은 단순히 지식 교과인 역사 교과의 특성이라고 할 수 없다.
다른 국가의 역사과 교육과정인 호주의 것과 비교해도 한국의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에서 절차적 지식이 매우 빈약하게 다뤄지고 있음을 더 잘 알 수 있다. 호주의 역사과 교육과정은 ‘역사적 지식과 이해(Historical Knowledge and Understanding)’와 ‘역사적 탐구와 기술(Historical Inquiry and Skills)’ 스트랜드(strand)로 구성되어 있다. 후자에 해당하는 ‘역사적 탐구와 기술’ 스트랜드에서는 “1차 사료와 2차 사료의 원전과 목적을 알아내기(Identify the origin and purpose of primary and secondary sources)”와 같이 역사학의 연구 방법과 탐구양식의 수행을 교육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역사적 탐구와 기술’에서 제시하고 있는 교육목표는 7학년 전체 교육목표 39개 중 10개에 해당하므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절차적 지식이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자세한 내용은 <표 4>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분석과 자료의 활용(analysis and use of sourc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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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와 2차 사료의 원전과 목적을 알아내기(Identify the origin and purpose of primary and secondary sources) |
출처: https://www.acara.edu.au/curriculum; 검색일: 2022.12.02.
2015 개정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에서는 절차적 지식과 메타인지 지식으로 분류한 “역사의 의미”나 “역사를 학습하는 목적”과 같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절대다수를 사실·개념적 지식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특히 절차적 지식으로 분류할 수 있는 역사학의 연구 방법이나 탐구양식, 사고 기능에 관한 ‘내용 요소’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본 연구에서는 위에서 설명한 Bloom의 신교육목표분류체계에 따라 ‘기능’을 분류하였으나, 일부는 기존의 분류체계를 따르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추론하다”를 Bloom의 신교육목표분류체계에서는 ‘이해하다’로 분류하지만, 역사 교과에서 추론이 의미하는 바와 크게 다른 점이 있어 ‘이해하다’로 분류하지 않았다. 2015 개정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 중 “추론하다”를 사용한 경우는 “[9역09-04] 고려 시대 사회 모습과 문화의 특징을 유물이나 유적, 사례들에 기초하여 추론한다.”이다. ‘이해하다’는 기존에 가지고 있는 지식을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지식과 연결 짓는 인지과정을 말한다. 그러나 [9역09-04]는 학생들에게 제시된 정보들을 서로 관련 지어 새로운 지식을 추론해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제시된 자료들을 여러 부분으로 구분하고 그 부분들 사이의 관계 혹은 부분과 전체 구조나 목적과의 관계를 결정하는 ‘분석하다’로 분류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하였다.
기존의 분류체계를 따르지 않은 또 다른 사례는 “설명하다”이다. 2015 개정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 중 “설명하다”는 총 5차례에 걸쳐 사용되었다. 역사과 교육과정에서 “설명하다”는 학습한 개념의 의미를 학생이 자신의 언어로 재진술하는 것 이상의 인지과정이 요구된다. 역사 교과에서 말하는 설명(historical account)이란, 사료의 분석과 해석, 증거의 채택 등 탐구의 결과 수립하게 된 일종의 해석이다(김민정 외, 2021, pp. 110-113).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교육과정 성취기준과 함께 제공하고 있는 성취기준 해설을 통해 이를 잘 알 수 있다. “[9역01-03] 고대 제국들의 특성과 주변지역들과의 상호작용에 따른 고대 세계의 형성을 설명한다.”라는 교육과정 성취기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성취기준 해설이 덧붙여져 있다.
고대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갈등과 교류 그리고 로마 제국으로 이어지는 지중해 지역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고, 한이 흉노와 대립하면서 다양한 종족과 문화를 통일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지역의 발전 과정을 파악한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는 아테네 민주 정치의 특징에 초점을 맞추어 탐구하고, 한과 로마 등의 역사는 여러 민족을 지배했던 독특한 통치 체제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위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설명하다”는 “이해”와 “탐구”를 모두 포함한 종합적 인지과정이다. 따라서 기존의 Bloom의 신교육목표분류체계에 따라 “설명하다”를 ‘이해하다’로 분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설명하다”는 “탐색하다”와 “토론하다”와 더불어 종합적인 인지과정이자 새로운 결론과 지식의 산출을 의미하는 ‘창안하다’로 분류하였다.
분석 결과 2015 개정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 성취기준은 총 12개의 행동 동사를 사용하여 작성되었다. 각각의 행동 동사는 그 의미에 따라 6가지 인지과정으로 분류될 수 있으며, 그 결과는 아래의 <표 5>와 같다.
위의 <표 5>에서 알 수 있듯이 교육과정 성취기준이 ‘기능’으로 제시하고 있는 인지과정의 과반이 ‘이해하다’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특기할 것은 고차원적인 인지과정을 나타내는 ‘분석하다’와 ‘창안하다’의 비율 또한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지식 교과인 역사 교과의 특성을 생각해보았을 때, 새로운 지식을 기존의 지식과 연결 짓는 것이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인지과정에 해당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과목과 비교하여도, ‘이해하다’에 해당하는 인지과정이 과반을 차지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전재원, 2019, p. 1073; 이성민, 천주영, 홍훈기, 2017, p. 279; 김서현, 2021, p. 845).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분류가 사실상 무의미하게도 ‘기능’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 행동 동사 중 일부에서 일관성이 떨어지는 모습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특히 이러한 문제점은 한국사 영역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한국사 영역에서는 “파악하다”가 무려 12번이나 사용되었다. 그러나 각각의 경우에 연결된 ‘내용 요소’의 일관된 성격이나 특징을 찾을 수 없었을 뿐만이 아니라, 같은 “파악하다”를 사용하더라도 실제로 요구하는 인지과정의 수준이 극명하게 달랐다. 그 예를 보면 아래와 같다.
(가) : [9역07-01] 만주와 한반도 지역의 선사 문화와 청동기 문화의 특징을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이해하고 고조선의 사회 모습을 파악한다.
[9역09-01] 고려의 후삼국 통일과 체제 정비 과정을 통해 고려 지배 체제의 특징을 파악한다.
[9역07-03] 삼국의 성장 과정을 파악하고, 삼국 통치 체제의 특징을 탐구한다.
(나) : [9역08-01] 삼국통일의 과정과 의미를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발해 성립의 역사적 의의를 파악한다.
[9역11-01] 조선 후기 정치 운영의 변화와 제도 개혁을 파악한다.
(가)의 3개 교육과정 성취기준은 “파악하다”라는 행동 동사를 사용하고 있어 ‘이해하다’로 분류하기는 하였으나, 각각이 요구하고 있는 인지과정의 수준이 상이하였다. [9역07-01]의 “파악하다”는 “비교”와 “이해”를 통해 “선사문화와 청동기 문화의 특징” 파악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즉, [9역07-01]은 “비교”와 “이해”를 포함한 복잡하고 다단한 인지과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한편, [9역09-01]은 “고려 지배 체제의 특징”을 “통일과 체제 정비 과정”을 통해 파악하도록 하고 있다. [9역07-01]만큼은 아니지만, [9역09-01]도 두 단계 이상의 인지과정을 요구하고 있다. 즉, 이 두 교육과정 성취기준은 모두 일반적인 의미에서 ‘이해하다’로 분류할 수 없으며, [9역07-01]과 [9역09-01] 사이에서도 분명한 수준의 차이가 드러난다. 가장 일반적인 의미의 “파악하다”를 사용한 [9역07-03]은 “삼국의 성장 과정”을 파악하도록 하고 있어, 앞선 두 교육과정 성취기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순한 인지과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상의 세 사례의 “파악하다”라는 행동 동사의 사용에서 일관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처럼 동일한 행동 동사를 사용하면서도, 인지과정의 수준의 차이가 극명한 경우, 교육과정 성취기준의 명료성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
한편, (나)의 경우 동일한 “파악하다”를 사용하고 있으나, 그 대상이 되는 ‘내용 요소’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 [9역08-01]의 경우 “발해 성립의 역사적 의의”를, [9역11-01]은 “조선 후기 정치 운영의 변화와 제도 개혁”을 ‘내용 요소’로 제시하고 있다. “역사적 의의”는 종합적인 판단을 전제로 한것인 반면에, “정치 운영의 변화와 제도 개혁”은 특수한 역사적 사실과 사건에 관한 지식 습득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두 사례의 ‘내용 요소’의 수준과 범위가 크게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내용 요소’의 수준과 범위가 크게 다른 경우에도 같은 행동 동사를 사용하는 것은 교육과정 성취기준의 명료성을 떨어뜨릴 수 있어 지양해야 한다.
IV. 교육과정 성취기준의 개선 방안
앞서 2015 개정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의 교육과정 성취기준 52개를 분석한 결과, ‘내용 요소’의 대부분이 사실·개념적 지식으로, 뚜렷한 편중이 나타났다. 이 편중 현상은 다른 교과나 외국의 교육과정과 비교하여도 두드러진 편이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절차적 지식과 메타인지 지식의 보완이 필요하다.
절차적 지식에 대한 강조는 단순히 ‘역사적 기능’ 혹은 ‘기술’에 대한 강조에 그치지 않는다. 교과 영역의 특수한 방법론과 탐구양식인 절차적 지식을 적극적으로 ‘교육내용’화 하는 것은 탈맥락화된 사실·개념적 지식을 원래의 맥락에 되돌려 놓기 위함이다. 여기서 말하는 맥락이란 지식이 구성되어 온 맥락을 의미한다. 그동안 교사와 학생들은 역사가의 연구 결과로서의 사실·개념적 지식을 교수·학습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렇게 역사 연구의 결과만을 교수·학습의 내용으로 삼음으로써, 연구의 과정은 자연스럽게 관심 영역의 바깥에 놓이게 되었다. 연구의 과정이 도외시되면서 연구의 결과인 지식이 불변의 진리로 여겨지게 되었다.
하지만 역사가는 연구의 과정에서 문제와 모순에 직면하게 되고, 이러한 문제와 모순을 해결하면서 정합적 설명을 도출해낸다. 즉, 역사 지식이란 역사가의 연구 결과로써 구성된 것이지, 자연히 그러한 류의 것은 아니다. 따라서, 탈맥락화된 지식을 다시 맥락 속에 배치하기 위해 역사가의 연구 과정 그 자체를 교육내용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역사의 연구 과정 그 자체를 교육내용으로 삼으려는 시도는 일찍이 영미권 역사교육 연구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를 국내에서 시도한 연구들도 있다(Levstik&Barton, 1996/2007; Wineburg, 2011; 강선주, 2013; 허은철, 2018). 특히 역사 연구 과정을 ‘교육내용화’하는 구체적인 방안은 임병철(2020)의 논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임병철은 로렌초 발라의 『위작 콘스탄티누스 기진장에 대한 연설』(이하 『연설』)을 세계사 교과의 사료 학습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는 발라의 『연설』을 사료 학습의 자료로 활용하는 것에 2가지 의미를 부여하였다. 첫째는 사료 비판의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는 발라의 『연설』에 드러난 치밀한 사료 비판의 단계와 내용을 분석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사료의 의미와 사료 비판의 실제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로서 제시할 것을 제안하였다. 둘째, 그는 『연설』이라는 사료가 당대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나아가 대표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연설』 자체가 중세와 르네상스를 이해하는 유용한 역사 자료라고 보았다. 역사가로서 로렌초 발라가 사료를 활용하는 과정을 교수·학습 내용으로 삼는 것은 절차적 지식을 ‘교육내용화’ 하는 구체적인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연구는 모두 각 학문의 전문가들이 어떻게 사유하고 탐구하는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전문가의 사유와 탐구 과정 자체를 학생이 배우고 체화하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그들의 관점과 태도를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홍은숙, 2007). 여기서 메타인지 지식을 ‘교육내용’화 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릴 수 있다. 메타인지 지식은 과제를 수행하고 해결하기 위한 인지과정을 메타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지식을 의미한다. 따라서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와 관련이 깊다.
Hirst(1974)는 지식의 형식을 교육내용이자 교육목표로 삼을 것을 제안하였다. 지식의 형식이란 인간의 경험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지식의 형식에 입문함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를 비로소 갖게 된다. 그러나 각 학문에 따라 지식의 형식은 상이한 방식으로 존재하는데, 이는 학생이 여러 가지 교과를 배워야 하는 이유가 된다. 이를테면 수학과 역사학의 지식의 형식은 상이한데, 두 교과를 배움으로써 학생은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렌즈를 가지게 되어 더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하게 된다. 따라서 역사를 배우는 것은 곧 세상을 인식하는 관점과 태도를 배우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역사 교과에서 ‘교육내용’화할 수 있는 메타인지 지식이란 이처럼 세상을 인식하는 관점과 태도라고 할 수 있다.
2015 개정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이 제시하고 있는 52개의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분석한 결과, ‘기능’의 많은 수가 낮은 수준의 인지과정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역시 적지 않은 수의 ‘기능’이 또한 높은 수준의 인지과정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는 제7차 교육과정 이후 꾸준하게 고차원적 사고 기능을 강조해 온 결과라고 하겠다. 하지만, 교육과정 성취기준에서 사용하고 있는 12개의 행동 동사 중, “파악하다”와 같이 여러 번 사용된 행동 동사의 경우 그 의미가 명료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때 일부는 성취기준 해설을 제공하지만, 대부분 성취기준 해설을 제공하지 않아 사용된 행동 동사의 의미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교육과정을 지나치게 상세하게 진술할 경우 교사의 수업 자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수의 교사가 교육과정 성취기준의 의미하는 바가 모호하며, 특히 행동 동사가 의미하는 바가 뚜렷하지 않아 사실상 ‘내용 요소’만을 참고하여 교수·학습 활동을 구안한다고 밝힌 바가 있다(길말선, 2019, pp. 79-106). 따라서 교육과정 성취기준에서 단위 수업의 구체적인 교수·학습 활동을 제시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만, 교사들이 교육과정 성취기준이 의도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화하여 ‘기능’을 제시하여야 한다.
행동 동사의 의미를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교육과정 성취기준에서 제시하고 있는 행동 동사의 가짓수를 늘려서 각각의 ‘내용 요소’의 성격에 딱 맞는 행동 동사를 사용하는 것이다. ‘내용 요소’의 성격에 따라 중복되지 않게 행동 동사를 사용하여 ‘기능’을 나타낸다면, 의미가 모호해지는 경우가 적어질 것이다. 가령 “파악하다”는 ‘내용의 본질을 확실하게 이해하여 알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역사적 의의처럼 종합적 이해를 전제로 하는 ‘내용 요소’에는 “파악하다”를 사용한다. 그리고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실을 ‘내용 요소’로 하는 경우는 “알다”와 “이해하다”를 사용하여 중복을 피할 수 있다.
다른 하나의 방안은 지금처럼 중복되는 행동 동사를 사용하여 ‘기능’을 나타내되, 해당 교육과정 성취기준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해설을 덧붙이는 것이다. 2009 개정 교육과정부터 교육과정 대강화 방침에 따라 교육과정 해설서가 사라졌지만, 교육과정 성취기준의 진술 방식은 변하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이로 인해 구조적으로 교육과정 성취기준의 의미가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비록 2015 개정 교육과정부터 성취기준 해설이 추가되기도 하였으나, 모든 교육과정 성취기준에 대한 해설을 제공하지는 않고 있다. 앞서 제시한대로 “파악하다”라는 행동 동사가 가지고 있는 다의성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하나의 의미로만 사용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므로 특정 교육과정 성취기준에서 “파악하다”라는 행동 동사를 사용한 경우, 그 ‘내용 요소’에 따라 어떠한 ‘기능’이 요구되는지 좀 더 구체화한 해설을 덧붙이는 것이 의미의 모호성을 해소하면서도 대강화의 방침을 이어나갈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된다.
V. 결 론
2015 개정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을 Bloom의 신교육목표분류체계에 따라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2015 개정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이 제시하고 있는 ‘내용 요소’가 심각하게 사실·개념적 지식에 편중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절차적 지식과 메타인지 지식은 사실·개념적 지식과 함께 역사를 ‘역사적으로’ 학습하기 위해 필수적인 교육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아예 다뤄지지 않거나,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사실·개념적 지식에의 편중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절차적 지식과 메타인지 지식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보완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2015 개정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이 제시하고 있는 ‘기능’을 분석한 결과 낮은 수준의 인지과정으로 분류된 경우도 많았으나, 적지 않은 수의 ‘기능’이 높은 수준의 인지과정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는 제7차 교육과정부터 강조되어 온 고차원적 사고 기능을 교육목표로 제시한다는 교육과정 개정의 기조와 맞닿아 있는 결과라고 하겠다. 그러나 각각의 행동 동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료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같은 “파악하다”라는 행동 동사를 사용하더라도 앞선 ‘내용 요소’의 성격이 달라서,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었다. 따라서 행동 동사의 의미를 더욱 구체화하여 제시할 필요가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교육과정 성취기준 진술 시에 더욱 다양한 행동 동사를 사용하여, 교육과정 성취기준이 교수·학습 활동 구안에 좀 더 명료한 지침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상과 같이 2015 개정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의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Bloom의 신교육목표분류체계에 따라 분석하고, 문제점을 파악하여 개선 방안을 제시하였다. 교육목표 분류 시 교과를 불문하고 널리 사용되고 있는 Bloom의 신교육목표분류체계에 근거하여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분석하고 분류하였다는 점에서 역사교육의 연구자는 물론 다른 교과의 연구자들과 함께 논의를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Bloom의 신교육목표분류체계는 Bloom의 교육목표분류체계의 일부인 인지적 영역에 국한되어 있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본 연구에서 명백히 인지적 영역에 속한 교육과정 성취기준은 분류체계에 따른 분류에 어려움이 없었으나, 일부 정의적 영역의 교육과정 성취기준의 분류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의적 영역 역시 인지적 영역에 못지 않게 교육목표로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인지적 영역의 교육과정 성취기준 분류만큼이나 정의적 영역의 교육과정 성취기준 역시 체계적인 분석틀과 분류 기준에 따른 연구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 이는 앞으로의 중요한 연구 과제라고 하겠다. 본 연구의 제언들이 앞으로의 역사과 교육과정 성취기준 개선에 기여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