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 론
정치교육은 타인과의 협력적 이해관계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함으로써 개인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학습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설규주, 강대현, 2010, pp. 13-20). 이를 위해 초등사회과교육과정은 정치의 기본 개념과 원리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함으로써 초등학생들이 정치 현상에 대한 인식과 사고의 폭이 깊어지기를 기대한다. 이것은 과거 정치학적 지식을 도구적으로 활용하여 정치교육의 목표를 도달하려고 했던 모습에서 학교, 가정 등의 일상적 생활세계에 적용할 수 있는 정치교육으로의 의미있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정치교육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가?’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고 초등학생들에게 ‘정치교육을 왜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미흡하다.
오늘날 학교 내 다루어지는 정치교육은 초등학생들의 생활세계에서 의미를 발견하기보다는 이미 정해져 있는 사회현상의 가치를 그대로 수용하거나 탐구하도록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초등학생들은 ‘체화된(embodied)’ 살아있는 정치적 경험에서 의미를 발견하거나 찾기보다는 정치학자들에 의해서 ‘재현된(represented)’ 정치적 삶의 모습들을 자신들의 경험세계로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하다. 초등학생들의 관점에서 보면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정치적인 현상들이 자신들의 삶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으며, 그 경험이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초등학생들의 삶과 거리가 먼 어른들의 낯선 삶의 모습을 중심으로 정치학습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초등학생들은 정치를 학습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 삶과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초등학생들의 정치학습은 익숙한 삶의 모습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삶의 모습에서 정치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므로 학습 부담이 커진다. 이렇게 초등학생들의 삶에 대한 정치적인 학습이 아니라, 타인의 삶에 근거한 정치적인 학습은 결국, 초등학생들의 생활세계에 대한 이해마저도 어렵게 만들고, 정치교육에 대한 관심과 흥미마저 반감시킴으로써 정치학습 내용을 암기하는 교육으로 인식하게 한다.
반면, 초등정치교육에서는 중·고등학교에 비해 다양한 일상적인 소재들을 적용하여 정치 현상에 대한 초등학생들의 이해를 도와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양상은 초등정치교육 내용도 중·고등학교의 정치교육 내용과 크게 차이 없이 초등학생들의 생활세계가 아닌 어른들의 생활세계에서 보편적인 정치적인 현상을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한 수단으로서 초등학생들의 일상적인 사례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어른들의 입장에서 보면, 초등학생들의 생활세계에서의 정치적인 현상은 정상화된 정치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적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초등학생들은 어른들의 생활세계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치적인 현상보다 자신들이 생활세계에서 나타나는 정치적인 경험에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초등학생들의 내면적인 이해를 기반으로 그들의 생활세계에서 정치적인 경험의 의미를 탐색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활정치’(life politics)에 대한 이해는 어른들이 바라보는 방식에 의존하는 초등정치교육이 아니라 온전한 의미에서 초등학생들의 생활세계 경험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교육을 구성·실천하기 위한 유의미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생활정치의 관점에서 초등학생들은 일상적인 필요와 요구에서부터 시작하여 자신과 자신 주변에서의 공적인 일에 대한 관심과 참여, 그리고 문제를 민주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을 경험함으로써 스스로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초등학생들의 일상생활 경험은 학교와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경험은 정치학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경험들이기 때문에 적어도 어른들의 관점에서 이와 같은 생활세계에 관련한 정치학습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내 경험들은 초등학생들의 생활세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경험이다. 따라서 초등학생들의 실존적 상황 속에서 그와 같은 경험들이 자신들의 삶과 어떤 관련을 맺는지를 알게 해주는 것은 초등정치교육에서 중요한 과정이 될 수 있다.
본 연구는 ‘생활세계’와 ‘생활정치’의 개념을 기반으로 학교 내 초등학생들의 정치적 특성을 탐색함으로써 초등학생들의 생활세계에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정치적 요소를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러한 초등학생들의 생활정치적 특성 분석을 통해서 현재의 초등사회과교육과정 발전의 방향성은 어떠해야 하는지의 주요한 시사점을 얻고자 한다. 본 연구의 연구문제는 아래와 같다.
첫째, 초등학생들의 생활세계에서 나타난 생활정치적 특성은 무엇인가?
둘째, 초등학생들의 생활정치적 특성이 초등사회과교육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본 연구는 초등학생들의 학교 내 생활정치적 특성을 탐색하기 위해 경기도 파주시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6학년 초등학생 29명(남자 15명, 여자 14명)을 대상으로 사전·사후 질문지와 면담을 실행하였다. 경기도 파주시 ○○초등학교는 2019년에 경기도 혁신학교로 지정되어 2021년까지 민주적인 회의문화 정착, 창의적인 교육과정 운영, 집단지성을 통한 교사 전문성 향상의 교육사업을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으로 연구에 참여한 6학년 학생들은 2년간 민주적인 학생자치 활동을 경험하였고, 그 결과 학생들은 학급회의를 통해서 학교 내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표현하여 토의하는 과정에 익숙하였다. 또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로 인한 학교 건물 증축 공사와 화장실 리모델링 공사로 인해 몇 년간 학교는 안전문제가 제기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회의 과정에 학생들이 참여하기도 하였다.
연구를 위한 자료 수집은 2021년 5월부터 7월까지 약 3개월 동안, 초등학생들의 질문지와 면담을 통해 이루어졌다. 먼저 초등학생들은 학교 내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조사하였고, 이러한 내용을 해결하고자 학급회의를 실행하였다. 초등학생들이 조사한 학교 내 문제는 ‘교실 자리 배치’, ‘급식 잔반 처리’로 나타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수결의 방식으로 ‘교실 자리 마음대로 앉기’와 ‘급식 잔반 남기지 않기’를 학급규칙으로 결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초등학생들은 문제 해결을 위한 의사결정과정에서 나타난 자기 생각을 사전 질문지에 작성하였다. 다음으로 초등학생들은 학급회의를 통해 결정한 학급규칙을 1주일에서 2주일간 실천한 뒤에 학급규칙 내용과 규칙을 결정하는 방식에 대해 검토하기 위해 토론을 실행하였다. 토론의 방식은 먼저 찬성과 반대 입장을 번갈아 가면서 주장할 수 있는 1대1 토론, 다음으로 모둠에서 2명은 찬성, 2명은 반대의 입장에서 토론하는 2대2 토론이었다. 초등학생들은 1대1 토론과 2대2 토론 실행을 통해 문제에 대한 다른 초등학생들의 생각을 알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정리할 수 있는 경험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학급규칙의 내용에 대해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나눠서 의견을 말하고 상대편을 설득하는 학급전체 토론을 실시하였다. 토론이 끝난 뒤 초등학생들은 문제 해결과 관련한 내용에 대한 자기 생각을 사후 질문지에 작성하였다. 마지막으로 토론 후 입장이 변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생각이 변하게 된 이유를 반구조화된(semi-structured) 집단면담 방법1) 실시를 통해 탐색하였다. 면담방법은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하여 Zoom 온라인 회의 프로그램을 사용하였다. 정리하면, 초등학생들은 스스로 학교 내 문제를 찾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학급회의를 실시하였고, 이를 일정 기간 동안 실천한 뒤에 학급규칙의 내용에 대한 토론을 실행하였다. 본 연구는 초등학생들의 생활세계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결정과정을 관찰함으로써 초등학생들의 생활정치적 특성을 탐색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연구자는 최대한 관찰자의 입장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본 연구에서 실행한 사전·사후 질문지 주요 내용과 표본 수, 그리고 실천 기간은 <표 1>과 같다.
면담 내용은 초등학생들과 학부모의 동의2)하에 녹음하였으며, 녹음된 내용은 15일 이내에 모두 전사하였다. 그리고 추가 질문이 필요할 경우에는 별도로 개인별 온라인 면담을 진행하였다. 또한, 연구자는 초등학생들의 의사결정과정 현장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학급회의 진행 과정, 학급규칙의 실천 양상과 토론 활동을 관찰하고 의미 있다고 판단되는 내용을 수시로 메모하였다. 본 연구를 위해 수집된 자료는 사전·사후 질문지 A4용지 약 464장, 면담 내용 전사량 A4용지 약 20장 분량이었다. 연구자는 수집된 연구자료를 반복적으로 읽으면서 생활정치적 특성이 반복적으로 진술된 내용이라 판단된 내용에 표기하고, 그 내용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사전·사후 질문지의 내용을 연결하여 분석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과정에서 Giddens가 제시한 생활정치 핵심요소와 생활정치 핵심원리인 참여·공감·소통의 원리를 참고하였다.
본 연구는 질적 연구로서 연구의 타당성을 높이기 위해 연구참여자 확인법(member check)을 사용하였다. 연구자는 수집자료 및 연구결과에 대해서 초등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왜곡하지 않고 제대로 해석하였는지, 분석과정에서 빠뜨리거나 임의로 추가된 사항은 없는지를 검토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초등사회과교육 전공자 3명3)을 연구참여자로 선정하여 그들에게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사전·사후 질문지 내용, 연구자료 분석과 연구결과에 대한 검토를 요청하는 동료 검토법(peer examination)의 전략을 사용하여 연구의 타당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최종적으로 연구자는 이렇게 분석된 자료를 통해 학교 내 초등학생들이 생활세계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해결하는 생활정치적 특성을 정리하였다.
II. 생활세계와 생활정치
생활정치는 삶의 주체적 구성과 관련된 자아실현의 정치를 중심으로 구축된 질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새로운 정치 질서로서 공적 질서의 생활세계적 확장을 모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생활정치는 일상적 삶의 영역에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생활세계’를 그 기반으로 한다(조대엽, 2014, p. 134). 생활세계는 일상적인 ‘생활’(삶)에 기반을 두고 ‘인식’(앎)의 차원을 포함하는 개념으로써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는 세계, 언제나 둘러싸고 있는 세계로서 우리가 직접 사는 주위세계이며, 생생하게 사는 자연스러운 세계이다(고진호, 1992, p. 177; 한전숙, 1996; 이용주, 2002).
Husserl은 우리가 사는 일상생활의 세계, 학문과 과학의 근원이 되는 세계, 이념화 이전에 필연적 기반이 되는 참된 세계를 생활세계라고 한다(손영수, 2000; 한전숙, 1996). 그가 이야기하는 생활세계는 객관적·일상적·직관적인 경험계로서 자연과학적 세계의 바탕이 된다. 자연과학적 세계는 우리의 직관적 경험의 세계를 이념화한 결과이며, 경험의 세계를 추상화한 결과이고, 생활세계를 보는 하나의 관점과 방법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생활세계에 주목한다는 의미는 자연과학적 세계의 이념에서 탈피하는 현상학적 환원을 통하여 외부세계에 존재하는 사물이나 현상·객관적 타당성에 대한 믿음·인간 현실의 세계를 괄호침으로써, 인간의 순수한 의식 그 자체의 근원적 세계에 도달하는 것이다(한전숙, 1996). 그리고 Husserl은 생활세계에서 나를 포함한 자아공동체가 하나의 동일한 세계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자아는 다른 자아와의 연대 관계 속에서만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자아가 된다고 하였다(서정갑, 오문환, 1996, p. 17). 즉 Husserl의 생활세계의 개념은 자연과학적 세계 안에서 자신도 모르게 제거해 버린 인간 실존의 의미를 찾고, 인간이 세계에 대한 주체적 존재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Schutz에 따르면 생활세계란 인간이 일상생활을 살아가면서 겪는 경험이 축적되고 이를 바탕으로 그들의 삶이 진행되는 총체적인 영역이다(금소영, 1988). 이러한 Schutz의 생활세계는 개인의 주관적 의미가 사회의 객관적 의미로 연결되는 총체로서 의미를 지닌다. 개인의 주관적 의미는 특정 시간, 특정 환경에서 특정 개인에 의해 이해된 특정 경험 영역의 총체로서, 개인에게는 실제적인 전체 세계의 경험이 된다. 따라서 객관적 의미는 어떤 관찰자가 다른 사람의 경험과 행동에 전가한 의미가 된다. Schutz의 생활세계는 주관적 측면과 객관적 측면이 구별되지 않는 상호주관성이 강조된다. 나의 세계는 그 근원부터가 순수한 나만의 세계가 아니며, 그렇다고 타인의 세계만이 아닌 우리의 세계인 것으로 구성된 것이다(정형탁, 1996). Schutz는 생활세계 개념을 통해 상호주관성으로 말미암아 이 세계가 개인 혼자 만이 아니라, 타인과 더불어 존재하고 있으며, 상호 공통적인 경험과 의미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Habermas의 생활세계는 의사소통행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여러 가지 사실들을 서로 점검하면서 상호이해와 합의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전제 위에서만 존립할 수 있다(서정갑, 오문환, 1996, p. 17). 이러한 생활세계에 대한 논리는 합리화를 위한 도입이며, 집단적으로 공유한 확신, 행위자가 서로 의사소통하고 이해를 성취하는 지평이다(손영수, 2000). 그리고 Habermas의 생활세계 개념은 의사소통 행위 개념의 보충개념과 동시에, 배경이며, 본질적인 구성성분이기도 하다. 즉 생활세계는 화자와 청자가 상호이해를 지향하는 행위가 나타나는 세계이고, 의사소통적 행위가 발생하는 배경으로서의 세계이며, 담화상황에서 발생한 문제 해결을 위한 지식보고로서의 세계다(정재훈, 1997). Habermas는 생활세계 개념을 통해 인간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공통 인식에 도달하려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상호 작용하는 ‘의사소통 행위’에 대한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생활세계는 인간의 행동·사고·경험이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적인 세계이며, 그 안에 존재하는 주체들 간의 사회적이고 의사소통적인 상호작용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학교는 교육의 목적을 가지고 형성된 특수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생들의 학교생활은 자발적 의도에 의해 선택한 세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세계가 아니다. 따라서 학교 내 세계 안에서 초등학생들의 행동·사고·경험·감정은 부자연스러우며, 동시에 사회적 의사소통적 상호작용 또한 부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초등학생들은 학교 내 생활이 자기 삶의 세계이기 때문에 수동적·능동적 행동을 통하여 부자연스러운 학교 내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초등학생들의 자연스러운 학교 내 생활은 어른들의 생활세계와는 다른 그들만의 독특한 경험과 의미가 부여된 생활세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생활정치는 서구 근대 사회에서 합리주의와 주관주의적 지식의 양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질적으로 향상된 삶을 누리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기존의 정치적인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비판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의 필요성을 주장하게 된다(임효선, 1984, p. 10). 따라서 생활정치는 객관적인 현상에 대한 제도, 형식 등의 절차상 민주주의에서 정치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성장 또는 자아실현의 맥락에서 정치를 모색해보고자 하는 접근이다(서정갑, 오문환, 1996, p. 3).
Giddens는 정치를 해방의 정치와 생활정치로 구분한다. 해방의 정치는 개인과 집단적인 삶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어떤 구속으로부터 해방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Giddens, 1994, p. 334). 따라서 해방의 정치는 개인과 집단을 지배하고 종속시키는 계급, 착취와 불평등, 억압 등의 구속을 폐지하는 것을 본질로 하며, 자유롭고 독자적인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를 지향한다(Tucker, 1998). 반면 Giddens는 해방의 정치와 대립된 것으로서 생활정치를 설명한다. 그것은 선택에 관한 정치이자 각 개인이 자아 반성에 기반하여 이루어지는 삶의 결정에 관한 정치이다. 따라서 생활정치는 시민들의 참여와 분권, 권리를 주장하고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하는 것에 주요 관심이 있다(Giddens, 1994, p. 334). 해방의 정치가 삶에 대한 기회의 정치이자 행위의 자율성을 높이는 과정이라면, 생활정치는 선택의 정치이자 정체성의 정치로서 탈전통적 맥락 속에서 자아반성 과정에서 비롯되는 정치적 쟁점들을 다룬다(Giddens, 1991). 따라서 생활정치의 본질은 선택에 있으며, 자기실현성에 기반하여 행해지는 삶의 결정에 관한 정치이다. 즉 생활정치는 모든 것이 선택되거나 결정되어야 하는 세계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실존적인 의문에 답을 찾는 과정이다(Giddens, 1994).
생활정치의 핵심요소는 ‘자아실현성(self-realizability)’과 ‘자기확장성(self-expandability)’에 있다. 생활정치는 삶의 양식(life style)과 관련된 정치로서 반성을 통해 질서가 발생하고, 반성적(reflexive)으로 동원된 환경 속에서 전개되는 ‘자아실현성’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생활정치에서 반성성은 국가, 시장, 계급, 정당정치 등에 의해 억압된 윤리적·실존적 문제들을 전면에 등장시킨다는 점에서 생활정치를 삶의 결정에 관한 정치, 정체성에 영향을 주는 선택의 정치로 만든다(Giddens, 1991, pp. 210-231). 생활정치를 억압적 제도와 현실에 대한 실존적 문제 제기라고 할 때, 개인의 구체적인 존재 양식은 일상생활에서 구현된다. 그리고 개인이 소속되거나 관여하는 현장인 학교, 작업장, 직장, 마을, 모임 등에서 발생되는 생활정치의 이슈는 자연스럽게 ‘자기확장성’에 따라 지역수준이나 국가수준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가진다(조대엽, 2014, p. 138). 생활정치에서 작용하는 요소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각각의 의미 요소들은 서로가 서로를 순환적으로 규정짓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활정치에 참여하는 개인은 고유의 ‘자아실현성’을 지향하며 자아실현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을 정치 참여의 목적으로 갖게 된다. 이에 생활정치는 다양한 사회적 공간에서 나타날 수 있고, 생활정치가 발생하는 사회적 공간은 개인 수준에 머무르던 ‘자아실현성’이 사회적 공간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을 기대하게 된다. 다시 말해 ‘자아실현성’과 ‘자기확장성’은 생활정치를 이루는 핵심적 의미 요소가 되며, 생활정치는 곧 삶의 주체들이 추구하는 자아실현과 자기확장의 정치적 과정이 될 수 있는 것이다(이현경, 2014, pp. 16-17).
생활정치에서 주목하는 핵심원리는 참여와 소통, 그리고 공감의 원칙이다. 첫째, 생활정치는 ‘참여’의 원리를 지향한다. 시민들은 생활정치를 통해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 시민으로 전환한다. 시민들은 다양한 참여방식을 통해 입법, 사법, 행정의 정치과정에 시민참여를 확대할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에서 운동의 형태로 참여민주주의를 실천하기도 한다. 둘째, 생활정치는 ‘소통’의 원리를 지향한다. 이러한 원리에서는 시민과 시민의 대표가 정책 결정에 앞서 자신들의 이해와 논거를 이성적 토론을 통해 증명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조대엽, 2014, pp. 147-149). 따라서 소통의 과정은 공공선에 호소하거나 공공토론에서 모든 시민이 수용할 수 있는 논거를 주장함으로써 자신들의 결정과 견해를 정당화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주성수, 2006, p. 44). 셋째, 생활정치는 ‘공감’의 원리를 지향한다. 생활정치의 이슈는 공동체 구성원의 가장 기본적인 삶의 요건과 관련되고, 생활정치는 그러한 요건을 질적으로 고양시키는 정치과정을 구성한다. 이를테면 생활정치가 내재하고 있는 ‘자아실현성’과 ‘자아확장성’은 환경, 인권, 평화, 평등의 이슈들이 사회적 경계와 물리적 영역을 넘어선 인간적이고 생태적 공감에 바탕을 둔 본원적 공감의 질서라는 점을 말해준다. 이 같은 생활정치가 지향하는 참여, 소통, 공감의 원리는 민주주의에 공유된 세 가지 핵심원리이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의 내적 성장의 단계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조대엽, 2014, pp. 149-150).
본 연구의 목적은 초등학생들의 학교 내 생활세계에서 나타난 생활정치적 특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이에 초등학생들이 생활세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하려는 과정을 통해 자기 삶의 주체로서 성장 또는 자아실현을 지향하는 정치적인 양상을 생활정치로 정의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참여’, ‘소통’, ‘공감’의 생활정치 원리에 초점을 맞춰 초등학생들의 생활정치적 특성을 탐색하고자 한다. 2015 개정 초등사회과교육과정은 민주적 의사결정의 원리를 일상생활 차원에서 학습함으로써 우리 생활과 민주주의의 관련성을 탐색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교육부, 2019b). 이를 생활정치적 관점으로 본다면, 초등학생들은 자신들이 만들어가는 생활세계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의사결정 특성 탐색하고, 이러한 의사결정과정이 여러 가지 한계가 있음을 스스로 반성함으로써 민주적 의사결정의 원리를 학습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다.
III. 초등학생들의 생활정치적 특성 탐색
초등학생들은 교실에서 어디에 앉는지와 그곳에서 누구와 앉게 되는지의 자리 배치 방식에 매우 민감하다. 심지어 이러한 교실 자리 배치는 초등학생들의 학습 상황에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초등학생들은 학급회의를 통해 교실 자리 배치 방법을 결정하는 일에 대해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먼저 초등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다수결 원칙에 따라서 ‘교실 자리 마음대로 앉기’로 교실 자리 배치 방법을 결정하였다. 연구에 참여한 초등학생 29명 중 ‘교실 자리 마음대로 앉기’에 찬성 18명, 반대 7명, 그 외 4명은 기권하였다. 찬성하였던 초등학생들의 의견을 정리해보면 “친한 아이들과 같은 모둠이 되면 수업시간에도 재미있고, 쉬는 시간에도 같이 놀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았다”이다. 그리고 반대하였던 초등학생들의 의견은 “수업시간에 친구가 계속 말을 걸면 공부하는 데 방해될 것 같고, 친한 친구들과 서로 앉으려고 다툼이 일어나고 이것 때문에 소외되는 친구들은 속상할 것 같다”로 정리할 수 있다.
초등학생들은 ‘교실 자리 마음대로 앉기’에 반대하는 초등학생들의 명수와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다수결 원칙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초등학생들은 다수결 원칙이 전체 초등학생들의 1/2 이상이 만족하는 것이고, 다수결 원칙은 공평하고 공정한 의사결정 방법이라고 학습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교실 자리 마음대로 앉기’에 찬성하면서도 다수결 원칙이 공평한 의사결정 방법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초등학생들이 있다. 그들은 “내가 앉고 싶은 자리에 앉는 것은 좋지만, 모두가 앉고 싶은 사람끼리 앉을 수 없으니까 불공평하다”라고 생각하였다.
초등학생들은 학급회의 결과에 따라서 교실 자리를 마음대로 앉았다. 그리고 일주일 뒤, 다시 한번 ‘교실 자리 마음대로 앉기’를 주제로 토론4)하였다. 토론 후, 29명 초등학생 중에서 10명은 입장 변화를 나타냈다. 찬성에서 반대로 입장 변화를 나타낸 초등학생들은 7명이었고, 그중에서 4명은 다수결 원칙이 ‘옳다’에서 ‘옳지 않다’로, 1명은 ‘옳지 않다’에서 ‘옳다’로 의사결정 방법에 대한 생각이 동시에 변하였으며, 2명은 처음 다수결 원칙이 ‘옳다’는 의사결정 방법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또한 3명의 초등학생은 처음 나타낸 반대 입장은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수결 원칙이 ‘옳다’에서 ‘옳지 않다’로 의사결정 방법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생들은 토론을 통해서 친구들의 의견을 듣고 ‘교실 자리 마음대로 앉기’가 친구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교실 자리 마음대로 앉기’ 경험을 통해서 친구가 없는 초등학생들은 타인의 강요로 인해 앉고 싶지 않은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찬성에서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초등학생들이 ‘교실 자리 마음대로 앉기’에 대한 토론 후에 찬·반과 다수결의 원칙에 대한 입장 변화의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초등학생들이 ‘교실 자리 마음대로 앉기’의 주제로 토론한 뒤에 찬성과 반대를 나타냈던 입장이 변하고, 다수결 원칙에 대한 생각이 바뀐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친한 애들끼리 앉을 거라고는 어느 정도 생각을 했어도 싸우는 친구나 그런 거는 이제 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원하는 자리에 앉다 보니까 마음에 안 들어서 싸우는 모둠도 생기고 친한 친구들끼리 앉는 모둠에서 떠드는 것도 많이 생기고 그래서 다수결로 정한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K. T. H.의 면담 내용 중에서)
이렇게 입장이 변하게 된 경험을 통해 초등학생들은 다수의 초등학생이 결정한 내용이 반듯이 옳은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다수결 원칙에 대해서 의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등학생들은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법의 다른 대안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소수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조건으로 다수결 원칙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여기고, 다수결 원칙으로 결정된 내용에 대해서는 불만을 가질 수 있어도 정해진 규칙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다른 방법에 비해서는 다수결이 더 옳은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교실 자리 마음대로 앉는 것에 반대하는 친구들이 있어도 많지 않으니까 반대하는 친구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교실 자리를 마음대로 앉고 싶다는 친구들이 훨씬 더 많으니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실 자리 앉는 방법을 결정해야 하니까, 많은 사람들에 의해 소수가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G. H. J.의 면담 내용 중에서)
초등학생들이 ‘교실 자리 배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결정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공평함’이다. 그래서 초등학생들은 다수결 원칙보다는 모두에게 같은 조건으로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제비뽑기로 ‘교실 자리 배치’의 방법을 결정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초등학생들은 다수결 원칙의 대안으로 ‘교실 자리 배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의견을 모아서 그 의견의 내용을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실행하는 방법을 생각하였다. 이러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초등학생들은 학교 내 생활세계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의사결정과정에서 ‘공평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수결 원칙으로 자리 앉는 방법을 정하면 반대하는 친구들이 불만을 갖게 되니까요. 모두가 공평하게 앉으려면은 제비뽑기처럼 뽑기를 한다든지 아니면은 번호순으로 앉거나. 그래서 돌아가면서 자리를 바꿔서 앉는 방법도 좋은 것 같습니다.
(L. Y. W.의 면담 내용 중에서)
또한, 초등학생들은 다수결 원칙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초등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학급회의나 토론 활동 등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초등학생들은 자신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의사결정과정에서는 능동적인 참여 양상을 나타냈다. 그리고 이러한 의사결정과정에서 타인의 입장에 공감하여 의사결정 내용의 생각이 바뀌기도 하였다. 짐작하건대, 초등학생들이 의사결정 내용을 실천하고 이를 바탕으로 타인과 소통하는 경험을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 내 생활에서 초등학생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시간은 급식 시간이다. 초등학생들이 학교에 오자마자 먼저 확인하는 것은 그날 급식메뉴이고, 심지어 급식메뉴에 따라서 그날 학교생활의 기분이 결정되는 초등학생들도 있다. 그리고 급식 먹는 순서를 정하는 일로 인해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감정이 상하는 일도 자주 발생한다. 반면 초등학생들은 급식 잔반을 남기지 않아야 하는 급식예절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초등학생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수결 원칙으로 ‘급식 잔반 남기지 않기’의 학급규칙을 정하였다. 초등학생들은 하기 싫은 일도 학급규칙으로 정하면 모두가 규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연구에 참여한 초등학생 29명 중 ‘급식 잔반 남기지 않기’에 찬성 13명, 반대 16명으로 나타났다. 찬성하는 초등학생들의 의견을 정리해보면 “초등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열심히 만든 음식을 남긴다는 것은 급식을 만드신 분들에 대한 성의를 무시하는 행동이고, 급식을 조금씩 받거나 안 받으면 되는데 굳이 다 받아서 버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였다. 반대하는 초등학생들의 의견은 “초등학생들이 특정한 음식에 대해서 알레르기가 있을 수도 있고, 단순히 싫은 음식이 있을 수 있는데, 모든 음식을 억지로 먹다가 체할 수 있어서 음식을 남기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로 정리할 수 있었다.
초등학생들은 ‘급식 잔반 남기지 않기’에 찬성 또는 반대하는 의견을 나타냈지만, ‘급식 잔반 남기지 않기’를 실천하려는 모습은 표현했던 입장과 일치하지 않았다. 급식 잔반을 남기면 안 된다는 의견을 나타낸 초등학생 13명 중에서 2명을 제외하고 11명은 급식을 남길 것이라고 하였다. 급식 잔반을 남겨도 된다는 의견을 나타낸 초등학생 16명 중에서 4명은 급식 잔반을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초등학생들이 ‘급식 잔반 남기지 않기’에 찬성하였지만, 급식 잔반을 남기려는 이유는 음식을 먹는 것은 개인적 취향이기 때문에 가끔은 남길 수도 있고, 음식을 남기는 것은 ‘교실 자리 마음대로 앉기’와 다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초등학생들이 ‘급식 잔반 남기지 않기’에 반대하였지만, 급식 잔반을 남기지 않으려는 이유는 ‘급식 잔반 남기지 않기’가 학급회의를 통해 정해진 학급규칙이고, 급식을 만들어 주는 영양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초등학생들은 학급회의를 통해서 ‘급식 잔반 남기지 않기’로 학급규칙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일주일 뒤 다시 한번 ‘급식 잔반 남기지 않기’의 주제로 토론했다. 토론 후, 29명 초등학생 중에서 15명은 입장이 변하였다. 찬성에서 반대로 입장이 변한 초등학생은 4명이고, 반대에서 찬성으로 입장이 변한 초등학생은 3명이다. 그리고 찬성에서 반대 또는 반대에서 찬성으로 입장이 변한 7명의 초등학생 중에서 3명은 ‘다수결 결정이 옳지 않다’에서 ‘다수결 원칙이 옳다’로 생각이 변하였고, 1명은 그 반대로 나타났다. 또한 8명의 초등학생은 토론 전에 나타냈던 ‘급식 잔반 남기지 않기’에 찬성 또는 반대의 입장은 그대로였으며, 다수결 원칙이 ‘옳다’, ‘옳지 않다’에 대한 생각만 변하였다. 구체적으로 찬성과 반대의 입장이 변하지 않고, 다수결 원칙에 대한 생각이 변한 초등학생들은 찬성 입장 4명, 반대 입장 4명으로 나타났고, 각각 4명의 초등학생 중에서 3명은 ‘다수결 원칙이 옳지 않다’에서 ‘다수결 원칙이 옳다’로 생각이 변하였고, 1명의 초등학생은 그 반대로 생각하게 되었다.
초등학생들이 ‘급식 잔반 남기지 않기’의 주제로 토론한 뒤에 찬성과 반대를 나타냈던 입장이 변하고, 다수결 원칙에 대한 생각이 바뀐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초등학생들은 급식 양을 적게 받으면 잔반을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급식 잔반 남기지 않기’에 찬성했지만, 실제로 여러 가지 개인 사정으로 ‘급식 잔반 남기지 않기’의 규칙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반대 입장으로 변하였다.
원래 저도 급식을 남기는데. 제 생각에는 제가 급식을 남기는 정도는 남기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서 일단은 ‘급식 잔반 남기지 않기’에 찬성했는데요. 토론해보고 나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저도 급식을 남기는 것이구나 해서 생각을 바꿨어요.
(P. G. W.의 면담 내용 중에서)
그리고 초등학생들은 ‘급식 잔반 남기지 않기’에 반대했지만, 토론 후 찬성하는 친구들의 의견을 듣고 동의하여 찬성 입장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급식을 잔반을 남기지 않는 것이 어렵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실제로 ‘급식 잔반 남기지 않기’가 실천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입장을 바꾸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영양사 선생님께 적게 달라고 안 하고 받았어요. 조금은 남겨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급식이 너무 많아서 버리는데 양심에 찔리더라고요.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급식 먹을 때 조금만 달라고 영양사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조금씩 계속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이 정도는 다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찬성으로 생각을 바꿨어요.
(J. S. W.의 면담 내용 중에서)
초등학생들은 토론 후 다수결 원칙에 대한 생각이 변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처음에는 다수결 원칙으로 학급규칙을 정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학급규칙을 정하기 위한 회의시간과 토론 시간이 길어지고 실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해결방안에 대한 의견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을 확인한 후, 학교 내 생활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으로 어쩔 수 없이 다수결 원칙을 선택하였다.
학급규칙을 정할 때 소수의 생각이 중요하고 존중해야 하지만, 학급회의에서 소수가 고집을 부려서 회의가 끝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회의를 끝내려면 많은 사람의 의견으로 결정한 급식을 남기지 않는 것에 소수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L. J. Y.의 면담 내용 중에서)
반면에 ‘급식 잔반’ 문제를 다수결 원칙으로 결정하는 것이 ‘옳다’에서 ‘옳지 않다’로 생각이 변한 초등학생들은 ‘급식 잔반’ 문제가 학급 전체로 결정할 것이 아닌 개인선택의 문제라고 여겼다. 특히, 초등학생들은 다수결 원칙으로 ‘급식 잔반을 남기지 않기’에 찬성한 초등학생들이 실제로 급식 잔반을 남기는 것을 보고 학급규칙을 정한 다수결 원칙의 방식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다수결이 문제를 해결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이고 다수의 생각이 같으면 정확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결정한 것이니까 다 잘 지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다수결에 찬성한 친구들이 다수결로 정한 학급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을 여러 번 보았어요. 그다음부터는 다수결 다수가 잘못된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꼭 다수결이 나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다수결로도 해결하면 안 되니까, 그 사이에 적당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N. J. W.의 면담 내용 중에서)
초등학생들이 ‘급식 잔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결정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소수의 의견’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초등학생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수결 원칙을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초등학생들은 다수결 원칙으로 학교 내 생활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다수결 원칙에 대한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소수의 의견을 듣고 최대한 그 의견을 반영하여 다수가 선택한 의견을 수정하는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초등학생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충분한 시간을 통한 토론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문제에 대해 많은 초등학생의 의견을 들을 수 있고 다수의 의견과 소수의 의견을 서로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다수결은 일단은 다수의 의견만으로 해결방안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다수결로 문제 해결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선 많은 시간을 가지고 대화를 하고 시간이 없으면 토론을 짧게 진행해서 좋은 의견을 모은 다음에 그 의견으로 계속 토론을 한다면 모든 친구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고, 소수의 의견도 존중할 수 있기 때문에 다수결로 정하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C. J. S.의 면담 내용 중에서)
초등학생들은 자신들의 생활과 밀접하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의사결정과정에서는 수동적인 참여 양상을 나타냈다. 반면 자신 또는 타인의 실천 양상에 영향을 받아 기존의 의사결정 내용의 생각이 바뀌기도 하였다. 또한 초등학생들은 개인의 선택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의사결정과정에서 타인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초등학생들은 ‘제일 좋은 의사결정 방법은 무엇인가요?’의 질문에 29명 중에서 17명의 초등학생이 토의와 토론을 선택했고, 그다음으로 6명은 타협, 4명은 다수결 원칙, 2명은 만장일치를 선택했다. 초등학생들이 토의를 의사결정 방법으로 선택한 이유는 친구들과 함께 학교 내 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찾고 의사결정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갖고 다양한 해결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등학생들은 의사결정과정에서 서로 의견이 맞지 않거나 자신의 의견이 무시당하는 경우를 싫어했다.
친구들끼리 이기고 지는 것 없이 서로 따지며 지적해서 마음 상하는 것보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 함께 의견을 나누면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 들으면서 잘못된 점을 고치는 평화롭게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으니까 토의가 좋을 것 같아요.
(K. Y. A.의 면담 내용 중에서)
다음으로 초등학생들은 토론이 좋은 의사결정 방법이라고 선택했다. 초등학생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결정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다른 초등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에 흥미를 느끼고, 특히 문제해결방안과 관련하여 친구를 설득하는 과정을 재미있게 생각했다.
토론은 저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고 자신이 몰랐던 다른 의견의 좋은 점을 듣고 제가 설득될 수도 있고 저의 의견으로 다른 사람의 의견 중 잘못된 점을 밝히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토론은 친구들과 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여러 가지 해결방법의 장점과 단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K. M. S.의 면담 내용 중에서)
초등학생들이 타협을 좋은 의사결정 방법으로 선택한 이유는 “의견을 서로 나누어도 1~2명 정도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다수가 양보할 수도 있고 반대로 소수가 다수에게 양보할 수 있으므로 서로 배려할 수 있는 타협을 선택합니다”로 나타났다. 그리고 초등학생들이 다수결 원칙을 선택한 이유는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면서 다른 의사결정 방법 중 가장 빠르고 편하게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선택합니다”로 나타났다. 또한 초등학생들은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만장일치가 최선의 의사결정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다수결 원칙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반대하는 친구들로 해결방안을 결정하지 못했던 경험을 통해 실제로 만장일치는 불가능한 의사결정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초등학생들이 토의와 토론, 타협, 다수결 원칙, 만장일치의 의사결정 방법과 별도로 초등학생 29명 중 25명이 가장 선호하는 의사결정 방법으로 제비뽑기와 사다리타기 방법을 선택했다. 초등학생들이 생각하는 좋은 의사결정의 핵심원리는 ‘공평함’과 ‘재미’이다. 초등학생들이 생각하는 의사결정과정에서 ‘공평함’이란 우연성을 포함하는 것으로 자신이 만족하지 못해도 모두에게 평등한 의사결정의 기회가 제공되는 것이며 더불어 어떻게 의사결정의 결과가 나타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한 토의 과정에 ‘공평함’을 응용하여 친구들이 제시한 여러 가지 의견 중에서 제비뽑기로 해결방안을 결정하는 방법을 제안한 초등학생도 있었다. ‘재미’란 초등학생들이 의사결정과정에서 즐거움과 흥미를 기대하는 것을 의미하며,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친구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에서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초등학생들이 우연성에서 누구의 의견이 선택될지 모르는 상황을 즐기는 것 또한 초등학생들이 학교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결정과정에서 ‘재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IV. 결론
본 연구에서는 초등학생들의 학교 내 의사결정과정 사례를 통해 생활정치적 특성을 탐색하였다. 이를 위해 경기도 파주시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6학년 초등학생 29명의 학교 내 생활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결정과정을 탐색하고자 사전·사후 질문지를 작성하였고, 문제의 해결방안에 대한 입장이 바뀌거나 생각이 변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면담을 실행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집된 연구자료를 생활정치적 관점으로 분석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초등학생들의 의사결정과정에서 표현한 입장과 실천 양상은 학교 내에서 발생한 문제의 특성에 따라 불일치하게 나타날 수 있다. 초등학생들이 토론 전에는 ‘교실 자리 배치’의 문제해결방안을 다수결 원칙으로 결정하는 것에 대해 신뢰하였기 때문에 학급회의에서 ‘교실 자리 마음대로 앉기’에 반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결정된 학급규칙을 준수하는 양상을 나타내었다. 반면 초등학생들은 ‘급식 잔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결정과정에서 찬성 또는 반대 입장을 표현한 것과 관계없이 개인의 생각이나 상황에 따라서 결정된 학급규칙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이것은 초등학생들이 ‘교실 자리 배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수결 원칙에는 신뢰하지만, ‘급식 잔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수결 원칙에는 신뢰하지 않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초등학생들은 학교 내 발생한 문제의 성격이 개인의 선택으로 인해 타인과 집단에 영향을 미치는 여부에 따라서 다수결 원칙을 신뢰하거나 의심할 수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해결해야 할 문제의 성격은 초등학생들의 의사결정과정 결과가 실천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본 연구에서는 제시하지 못했지만, 초등학생들이 학교 내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결정과정에서 입장 변화나 생각이 바뀐 양상이 나타나지 않은 사례가 있다. 그것은 초등학생들이 ‘복도에서 실외화를 신어도 되는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급회의 진행한 것이었다. 문제 제기의 이유는 어른들이 복도와 심지어 교실에서도 실외화를 신는데, 초등학생들은 실외화를 신지 못하게 하는 규칙은 부당하다고 여긴 것이었다. 이어 초등학생들은 학급회의를 진행하였지만, 문제를 제기한 2명을 제외한 다수의 초등학생은 ‘복도에서 실외화를 신으면 안된다’는 학교규칙이 정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초등학생들은 같은 공간에서도 어른들의 생활세계와 초등학생들의 생활세계는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어른들의 생활세계에서 발생한 문제와 관련된다면 수동적인 입장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초등학생들은 학교 내에서 발생한 문제가 초등학생들의 생활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결정과정에서 수동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초등학생들은 학교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결정과정에서 ‘공평함’, ‘우연성에 의한 재미’의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초등학생들은 사회과 수업을 통해 다수결 원칙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법임을 학습하였고, 실제 여러 번의 학급회의에서 다수결 원칙을 사용하여 학교 내 문제를 해결한 경험을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초등학생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른 의사결정 방법을 찾지 못해서 다수결 원칙을 사용한다고 하였다. 추측하건데, 초등학생들이 문제를 해결할 때 다수결 원칙을 당연하게 사용하면서 다수결 원칙의 사용 이유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형식적인 학습결과에 영향을 받은 것일 수 있다. 초등학생들은 문제해결을 위한 의사결정의 결과가 자신의 삶과 관련이 없다고 판단할 때는 다수결 원칙을 선호하지만, 자신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다고 생각할 때는 다수결 원칙을 부당하다고 판단하여 ‘공평함’, ‘우연성에 의한 재미’의 요소가 포함된 제비뽑기와 사다리타기의 의사결정과정을 기대한다. 초등학생들에게 제비뽑기와 사다리타기는 주로 운에 맡기는 놀이이고 승부를 쉽게 내고 싶을 때 쓰는 놀이임과 동시에 누구나 동등한 의사결정에 대한 선택의 기회를 갖고, 그 과정 자체가 재미있는 의사결정과정인 것이다. 조금 확대해석한다면, 초등학생들이 학교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대하는 의사결정과정은 고정된 규칙 및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으며, 제약과 제한도 없는 하나의 놀이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초등학생들은 학교 내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결정과정에서 생활정치의 공감·참여·소통 원리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생들은 학급회의에서 ‘교실 자리 마음대로 앉기’를 다수결 원칙을 사용하여 학급규칙을 결정하고 실천하였다. 그리고 초등학생들은 실천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토론에서 ‘교실 자리 배치’에 대한 찬성·반대 입장 변화를 나타내었고, 다수결 원칙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경우가 있었다. 초등학생들의 이러한 의사결정과정에서 입장이 변한 이유는 학급규칙으로 결정된 ‘교실 자리 마음대로 앉기’에서 친구들이 불편했던 상황을 확인하고 교실 자리 배치에 대한 친구들의 생각에 공감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초등학생들은 ‘급식 잔반 남기지 않기’의 학급규칙을 실천한 경험을 바탕으로 토론하였고, 그 과정에서 급식을 만드는 영양사에 대한 고마움과 특정한 알레르기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급식 잔반을 남기는 친구들의 입장에 공감하여 다수결 원칙으로 결정한 학급규칙에 대한 입장이 변하기도 하였다. 초등학생들은 학교 내에서 발생한 문제와 관련된 대상과 관계맺기 경험을 통해 공감하고 그러한 공감의 내용은 의사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등학생들은 의사결정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원하고 동시에 다른 친구들이 생각하는 문제해결방안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로 초등학생들은 학교 내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토의와 토론 방식의 의사결정과정을 선택한다. 초등학생들은 토의와 토론의 의사결정과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다수결 원칙에 비해 효과적인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결정 결과보다는 의사결정과정에서 친구들과 소통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초등학생들은 학교 내 발생한 문제와 관련된 대상과 관계맺기를 통해 그 상황에 공감하고 문제해결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 소통함으로써 의사결정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초등학생들은 자신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의사결정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반면 초등학생들은 생활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라도 자신들의 생활에 불편하지 않거나 자신들의 생활과 관련이 없다고 판단한다면 의사결정과정에 수동적으로 참여한다.
본 연구는 초등학생들의 학교 내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결정과정 사례를 통해 생활정치적 특성을 탐색하는 질적 연구로서 연구결과를 일반화하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존재한다. 특히, 초등학생들은 반성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워하고, 초등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학교 외 활동이 제한적이라는 이유로 초등학생들의 생활정치 핵심요소인 자아실현성과 자기확장성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탐색하지 못한 것은 본 연구의 한계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등정치교육에서 초등학생들이 생활세계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와 갈등을 그들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특성을 적용하여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을 학습할 수 있다면 실제적이고 능동적인 민주시민성 함양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초등정치교육 및 초등사회과교육과정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초등사회과교육과정은 초등학생들의 생활세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 상황들을 좀 더 확대하여 적용할 필요가 있다. 초등학생들은 자신의 삶과 연결되고, 그 삶에서 자신이 주체가 되었을 때 능동적으로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한다. 초등 『사회 4-1』(교육부, 2019a)은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주민참여의 다양한 방법을 알아보고 주민참여가 중요한 까닭을 알도록 단원을 구성하고 있다. 그중에서 11~12차시는 ‘예준이네 지역에서 주차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초등학생들이 간접적으로 문제해결과정을 학습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초등학생들이 주민참여에 대한 과정을 형식으로 학습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초등학생들이 생각하기에 주차 문제는 어른들의 생활세계에서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결정과정에서 문제 상황과 관련된 대상의 입장에 공감하기 어렵고, 적극적인 참여와 원활한 소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초등 『사회 6-1』(교육부, 2019b)은 생활 속 사례에서 민주주의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아보는 단원을 구성하고 있다. 그중에서 13~14차시는 ‘점심시간에 운동장을 사용하는 문제를 민주적 의사결정 원리에 따라 해결해보는 학습 내용’으로 초등학생들의 생활세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학습 내용은 초등학생들의 생활세계의 내용이지만 교과서에 제시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결정과정은 초등학생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어른들의 의사결정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초등학생들이 학습을 통해 정치교육 내용을 내면화하기 위해서는 초등학생들의 생활세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을 탐색하여 교육과정에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둘째, 초등사회과교육과정은 초등학생들의 생활정치적 특성이 반영된 생활세계 경험을 중심으로 초등정치교육 내용·방법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초등학생들은 사회과 수업에서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을 학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들은 다수결 원칙을 사용하여 형식적으로 문제해결방안을 결정하고 있었다. 즉 초등학생들이 알고 있는 생활 속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태도와 실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양상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학습결과와 실천 양상의 차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초등정치교육 내용에 공감·참여·소통의 생활정치 원리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정치의 원리는 상식적인 수준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정치 원리라고 하더라도 초등학생들의 생활세계에서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사회 6-1』(교육부, 2019b)의 일상생활과 민주주의의 교수·학습 방법의 내용 중에서 ‘교실 자리 바꾸는 문제’를 제시하고 이를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으로 해결하는 차시가 있다. 본 연구에 참여했던 6학년 초등학생들은 이러한 내용을 학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자신들의 교실 자리 배치 문제는 제비뽑기나 사다리타기 방식으로 결정하는 것을 선택했다. 짐작하건대, 교육과정에서 제시하고 있는 의사결정과정에는 초등학생들이 생각하는 ‘공평한 선택 기회’와 ‘재미’의 요소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보아 어른들이 생각하는 상식적인 수준의 의사결정 원리가 반듯이 초등학생들의 생활세계에서 같은 양상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초등학생들의 생활세계에서 직접 탐색한 특성을 바탕으로 초등정치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구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초등학생들은 생활 속에서 발생한 문제를 자신들만의 생활정치적 원리로 해결하는 경험을 통해 생활세계를 구성하려고 노력한다. 이에 초등학생들은 정치적으로 미숙한 존재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초등사회과교육을 통해 초등학생들이 능동적인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면 초등학생들이 생활세계에서 나타낸 정치적 특성을 초등사회과교육과정에 확대 적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초등학생들 생활세계에서의 사적 경험과 그들만의 의사결정과정의 특성을 보편적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으로 연결하여 학습할 수 있는 교육방안을 탐색하는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