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한국과 인도는 식민지배에 항거하여 민족의 독립을 위해 치열한 저항을 펼쳐왔다는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저항운동의 시발점이 되는 중요한 사건으로 한국은 3·1운동을, 인도는 세포이 항쟁을 떠올릴 수 있다. 3·1운동은 지식인을 비롯하여 각계각층의 민중이 참여한 최대 규모의 비폭력 항일 독립운동이었다. 3·1운동은 이후 독립운동사의 밑그림을 제공하며, 대한민국 임
시정부 수립과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뒷받침하고 있으며(염주희, 2007), 중국의 5·4운동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독립운동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되고 있다.
인도의 세포이 항쟁은 영국의 식민통치 정책이 그들의 전통적, 종교적, 사상적 가치체계를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차별정책과 토지정책 등 경제수탈에 따른 불만이 고조되면서 영국 지배 시기 인도에서 채용된 현지 용병인 세포이들에 의해 반란이 촉발되었고 이후 일반인도 가세한 대규모 반영(反英)운동으로 확대된 사건이다. 영국은 이 사건을 축소하여 하극상, 군사폭동을 뜻하는 ‘세포이 반란’으로 편파적 평가를 했지만(이옥순, 2004a), 영국인의 축출과 민족 독립의 회복이라는 목표 하에 모든 인도인들이 뭉친 위대한 국민 봉기였으며1), 민족주의적 반항의 씨앗이 되었다고 평가되고 있다(조길태, 1994; 정병조, 1992). 인도에서는 ‘1857년의 항쟁(The Revolt of 1857)’ 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유이다.
식민지배에 대한 항쟁의 역사를 기록하고 후대에게 전달하는 것은 여러 의미에서 중요하다. 불행한 과거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제시함은 물론, 독립에 대한 민족적 열망, 그 과정에서 일어난 희생의 가치가 공동의 기억으로 형성되고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동의 기억을 형성하는 방법과 매체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역사 교육과 역사 교과서일 것이다.
역사교육은 국가별로 전개되어 온 역사적 특징, 현재 처해진 현실적 상황, 그 국가를 구성하는 민족, 종교 등의 다양성 등에 따라 지향점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기존의 민족·국민의 정체성을 함양하고 애국적 국민을 만든다는 차원에서 민주시민의 자질을 함양한다는 논의로 점차 발전하고 있다(주진오, 2017). 또한, 역사교육의 방법론에 있어서도 비판적 사고력과 역사 탐구역량을 계발할 수 있도록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인도의 역사교육도 역사적 감수성과 사고력을 키우고 역사적 토론 능력을 중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양국의 역사교육의 특징적인 면이 자국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식민지배에 대한 항쟁의 역사를 어떻게 다루고 있으며, 후대인 학습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공동의 기억을 전달하고 있는지에 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한국 역사교과서의 3·1운동 서술에 관한 연구로는, 남한과 북한 교과서의 3·1운동 서술을 비교한 연구(염주희, 2007), 해방 이후부터 최근까지의 남한 교과서에 서술된 3·1운동 서술경향의 변화를 밝힌 연구(최병택, 2009; 김정인, 2019),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제작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3·1운동 서술을 심층적으로 고찰한 연구(조규태, 2011) 등이 있다.
인도 역사교과서의 세포이 항쟁 서술에 관한 연구로는, 세포이 항쟁에 대한 인도와 영국 역사교과서의 서술관점의 상이성을 밝힌 연구(이옥순, 2004b), 현행 12학년 역사교과서 서술을 분석하면서 세포이 항쟁에 관한 서술특징을 부분적으로 밝힌 연구(안진경, 2010) 등이 있다.
이 글은 선행연구의 결과를 토대로 양국의 상징적인 반식민주의 민족운동인 3·1운동과 세포이 항쟁에 대한 한국과 인도의 역사 교육과정 및 교과서 내용체계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민족운동을 다루는 관점과 방법상의 특징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시사점도 탐색하고자 한다. 다만, 교과서 내용이 실제 수업에 구현되는 방법은 교사의 교수학습 방법과 역량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므로 양국의 수업 사례 조사를 포함해야하겠지만, 현 시점에서 어려운 상황이므로 이 점은 본 연구의 한계점임을 밝혀둔다.
분석을 위해 한국은 『중학교 역사 2』(9종)와 『고등학교 한국사』(8종) 교과서들을 살피고, 인도의 경우에는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을 수립하고 표준 교과서를 출판하고 있는 국립교육연구훈련원(National Council of Educational Research Training, 이하 NCERT)에서 발행한 8학년과 12학년용 역사교과서를 연구대상으로 삼고자 한다.2) 후술하겠지만 인도는 한국과 교과서 발행 체제가 상이하기 때문에 분석대상으로 삼은 교과서 권수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양국의 역사 교육과정 및 교과서 특징과 관련하여 함께 언급하면서 상론하겠다.
Ⅱ. 역사 교육과정과 교과서 단원 체계
현재 한국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사용되는 역사 교과서는 2011 개정 교육과정에 의거하여 개발된 것이다. 역사과는 2017년 7월에 발표된 교육부의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후속 조치’에 따라 2015 개정 교육과정을 새롭게 개발하여 2020년 3월에 적용하기로 하였다. 이전의 2009 개정 교육과정의 역사과에 대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는 동안 고조선부터 현대까지의 통사 학습을 세 차례나 반복하는 구조라는 문제점이 지적되었는데(역사교육연구소, 2015), 통사 학습의 반복은 2011년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3·1운동에 관한 서술도 현행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모두 등장하고 있다.
인도는 독립 이후, 식민사관과 종교적 편견을 지양하고 독립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역사 서술을 목표로 1966년 국가주도로 NCERT에서 역사교과서를 편찬한 이래, 2002년, 2007년 3차에 걸쳐 교과서를 개정하였다(구하원, 2018). 2007년 개정 교과서는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6학년부터 8학년까지는 사회(social sciences)를 학습하며, 역사·지리·정치 등 세 개의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고 각 학년에서 병렬적으로 학습한다. 9학년부터 12학년까지는 사회, 역사, 지리, 정치, 경제와 같은 사회과학 계열 과목을 독립된 형태로 학습하며 9-10학년은 이들 과목이 필수로 지정되어 있는 반면, 11-12학년부터는 선택과목으로 전환된다.
6학년부터 8학년까지는 인도 역사를 연대기에 따라 학습하며 6학년에서는 ‘선사시대-7세기’를, 7학년에서는 ‘9세기-18세기’를, 그리고 8학년에서 ‘19세기-20세기’의 인도 역사를 배우게 된다. 따라서 세포이 항쟁에 관한 내용은 8학년 교과서에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 9-10학년에서는 정치, 경제, 문화사로 섹션을 구분하여 세계사 맥락 안에서 인도의 역사를 다루며, 이 과정에서 세포이 항쟁은 포함되지 않는다. 선택과목으로 전환되는 11-12학년 과정에서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과 과정을 특정 주제로 선정하여 심층적으로 탐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세포이 항쟁은 12학년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한국과 인도는 3·1운동과 세포이항쟁을 각각 중학교와 고등학교 역사교육에서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필수과정인 반면, 인도의 경우에는 고등학교 과정은 선택과목으로 편제되어 있는 차이점이 있다.
이 장에서는 양국 교육과정 또는 교수요목에 제시된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의 3·1운동과 세포이 항쟁 관련 학습목표와 내용요소에 관해 살펴볼 것이며, 이를 교과서에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지 목차구성을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한국은 9종의 『중학교 역사 2』와 8종의 『고등학교 한국사』를3), 인도는 NCERT 발행 8학년 인도사 교과서의 제3권인 『Our Pasts Ⅲ』와 12학년 인도사 교과서의 제3권인 『Themes In Indian History Part Ⅲ』를 살펴볼 것이다.4)
2011년 개정 역사과 교육과정에는 중학교 역사교육의 목표를 ‘초등학교에서 학습한 한국사에 대한 기초적 이해를 바탕으로 과거와 현재, 우리나라와 세계를 연관시켜 체계적으로 이해하는데 주안점을 두며, 특히, 정치사와 문화사를 중심으로 내용을 구성하여 역사 학습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고 문화적 창조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한다.’라고 제시하고 있다. 또한, 역사 학습에 대한 흥미 유발과 창의적 사고력 함양, 다양한 역사 자료를 통한 관점의 다양성 이해와 역사에 대한 통찰력 함양도 함께 제시되어 있다. 3·1운동이 포함되어 있는 단원 <민족운동의 전개>에서는 ‘일제 강점기 일제의 통치정책을 파악하고, 이에 맞서 지속적으로 광범위하게 전개된 민족 운동의 흐름을 파악한다.’고 성취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며 내용체계는 다음과 명시하고 있다(교육과학기술부, 2012).
구분 | 영역 | 내용요소 | |
---|---|---|---|
근대이후 | 한국사 영역 | 민족 운동의 전개 | · 3·1운동의 배경과 과정 및 의의 |
· 1920년대 국내외 민족 운동의 다양한 흐름 | |||
· 1930-40년대 국내외 민족 운동의 흐름 | |||
· 민족 말살 정책에 맞선 민족 문화 수호 운동 |
위의 내용요소는 중학교 역사 교과서의 단원을 구성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교과서가 <일제의 무단통치-3·1운동 발발-임시정부 수립-일제의 민족분열 정책에 맞선 1920년대 중심의 항일운동-민족말살 통치에 맞선 1930-40년대 중심의 항일운동-민족문화 수호운동 전개>의 흐름으로 되어 있다. 3·1운동에 관해서는 <배경-전개-의의>의 순서로 서술되고 있다.
<표Ⅱ-2>의 출판사별 교과서 구성 체계를 보면 [천재교과서], [교학사], [금성출판사]의 대목차는 교육과정의 내용요소와 배열 순서를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천재교육], [미래엔], [지학사]는 1920년대를 ‘민족 분열통치’의 시대로, 1930년대를 ‘전시 동원과 수탈’ 또는 ‘민족 말살’의 시대와 같이 일제 강점기의 식민지 지배 정책으로 대목차명을 제시하고 있다. [비상교육]과 [동아출판]은 내용요소를 그대로 따르되, 통합하거나 세분화하여 대목차를 구성하고 있다.
한편, 고등학교 역사교육의 목표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학습한 역사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바탕으로 사회·경제사, 사상사 및 대외 관계사를 연계하여 한국사의 특성을 심층적으로 파악하고, 외국과의 다양한 교류를 통해 독창적이면서도 개방적인 문화를 형성했음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과 ‘역사적 탐구력, 역사적 상상력, 역사적 판단력 등을 토대로 한 학습자의 역사 인식 함양’에 관한 사항이 언급된다.
3·1운동이 포함되어 있는 단원 <일제 강점과 민족 운동의 전개>에서는 ‘일제 강점기의 통치 방식을 살펴보고, 이 시기 우리 민족이 국내외에서 전개한 저항 운동에 대하여 파악하며, 유럽의 파시즘과 일제의 군국주의가 대두하면서 일제의 침략 전쟁이 확대되는 가운데 꾸준히 전개된 우리 민족 운동과 건국 준비 활동을 이해한다.’고 성취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내용체계는 다음과 같다(교육과학기술부, 2012).
영역 | 내용요소 |
---|---|
일제 강점과 민족 운동의 전개 | · 국제 정세의 변동과 동아시아의 변화 |
· 일본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 통치 방식의 변화 | |
· 3·1운동의 전개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활동 | |
· 국내 민족 운동의 전개/ · 국외 민족 운동의 전개 | |
· 일제 강점기의 사회·경제적 변화/ · 건국 노력과 국제 사회의 움직임 파악 |
<표Ⅱ-4>는 8종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해당 단원 체계를 정리한 것으로 중학교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교과서 대목차가 교육과정의 내용요소를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상교육], [리베르스쿨], [교학사], [지학사]는 내용요소의 배열과 순서를 대목차에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금성출판사], [미래엔], [동아출판]은 내용요소의 순서를 따르되, 통합하거나 세분화하여 대목차를 구성하고 있다. 반면, [천재교육]은 시기별로 상이하게 전개된 일제의 식민 통치 정책을 당시 국제정세와 연계시키고, 민족운동이 변화해간 양상과 특징에 관해 시기별로 접근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중목차를 살펴보면, [교학사], [금성출판사]·[천재교육], [미래엔] 은 각각 <3·1운동 이전 민족 운동의 전개>, <1910년대 국내외 민족운동>, <항일 비밀 결사의 활동과 독립운동 기지의 건설>을 3·1 운동 이전에 배치하고 있어 이후 전개되는 3·1운동을 비롯한 항일 민족운동의 기반이 되었음을 연계하고 있다. 그 외 교과서는 3·1운동을 먼저 다루고, 이후 일제 강점기의 국내외 민족운동 부분에서 개별적으로 다루고 있다.
중·고등학교 역사 교육과정은 공통적으로 일제강점기를 <민족 운동 전개>라는 하나의 단원으로 편성하고 있어서 3·1운동은 그 안에서 다뤄지며, 해당 단원이 교과서에 구현된 형태는 교육과정의 내용요소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학교급, 출판사를 막론하고 내용의 배열순서와 배치방법이 대동소이하게 나타난다.5)
인도의 역사 교수요목(syllabus)은 6-8학년, 9-10학년, 11-12학년으로 구분하여, 각 단계별 이론적 근거, 역사교육의 목표를 포괄적으로 제시하며, 학년별 교과서의 각 단원의 학습목표(Objectives)와 다루게 될 내용요소(Themes)를 명시한다.
6-8학년에서는 인도 역사의 연대기별 학습이 이루어지며, 역사적 사실의 단순한 학습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경제적·정치적·문화적 측면에 대한 통합적 이해와 역사적 사고력을 기르는 것이 교육목표로 강조되고 있다. 구체적 목표로 다양한 역사자료에 대한 비판적 검토 역량, 유사한 사건에 대한 사례 학습을 통한 역사적 다양성과 상관관계의 이해 능력을 함양하도록 하고 있다. 세포이 항쟁은 8학년 과정에서 학습하게 되는데, 교수요목에서 제시하는 학습목표와 내용요소, 이들이 구현된 교과서 단원 체계는 다음과 같다(National Council of Educational Research and Training, 2006).
8학년 과정에서 세포이 항쟁은 ‘1857-1858 항쟁’으로 명명되고 있으며, 군대에서의 반란이 엘리트와 농민까지 참여한 독립운동으로 확대되는 과정과 이 사건의 본질이 학습하게 될 주요 주제이다. 그리고 ‘항쟁의 기원과 확산에 관한 토론활동, 이후의 식민지배 정책 변화의 이해, 사건에 대한 기록물의 해석활동’을 학습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교과서가 이를 구현하는 방법은 우선, 동인도 회사의 식민 통치 방식과 개혁 방향을 사건의 배경으로 다루고 항쟁의 촉발과 확산, 동인도 회사(영국)의 반격, 그리고 사건의 후유증을 주요한 내용으로 구성하고 있다.
12학년 과정에서 세포이 항쟁은 심층적 주제로 다루어진다. 11-12학년의 역사교육은 ‘역사 지식이 토론을 통해 향상된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주지시키며, 사료들을 신중히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시키는 점’을 중요한 목적으로 삼고 있다. 사료의 비판적 해석 훈련을 통한 역사가의 연구방법론 이해, 다른 시대의 유사한 역사적 사건과의 관련성 분석 능력, 사료 유형의 차이점 이해와 사료의 출처 조사를 통한 역사에 대한 거시적 관점도 함양하도록 하고 있다(National Council of Educational Research and Training, 2006).
12학년에서 다루는 세포이 항쟁은 교수요목에 ‘1857년의 묘사들(Representations of 1857)’이라고 단원명이 제시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의 기록들이 사건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고 있다. 학습목표로 사건이 어떻게 재해석되는지, 역사가들이 시각자료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관해 토론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내용요소에는 학습목표와 연계하여 사건들에 대한 기록과 묘사들을 통해 사건에 다시 접근해보고, 사건을 기록한 그림들이 영국에서 여론형성에 어떻게 활용되었는지에 관해 다루도록 제시하고 있다. 이를 구현한 교과서는 사건의 개요, 배경, 전개 과정, 그리고 사건의 결말로 구성하고 있으며, 마지막 절인 ‘항쟁의 이미지(Images of the revolt)’에서는 어떻게 시각자료가 여론을 형성하고, 역사가들에 의해 활용되는지에 관해 다루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교수요목에는 해당 단원의 내용과 연계할만한 역사자료의 유형과 활동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8학년과 12학년에서 세포이 항쟁을 다루는 방법과 관점도 상이함을 알 수 있다.
Ⅲ. 교과서 내용 체계
앞의 장에서 양국의 교육과정 및 교수요목에 제시된 3·1운동과 세포이 항쟁 관련 단원의 학습목표와 내용요소, 이들이 교과서 단원 체계를 통해 구현되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이 장에서는 구체적으로 교과서의 서술 내용과 방법, 사료 및 시각자료의 제시와 역사하기(doing history)와의 연계에 관한 양국 교과서의 특징을 살펴볼 것이다. ‘역사하기’는 역사가의 연구 과정과 동질의 과정을 학습자가 경험하도록 하여 ‘스스로 역사를 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한다는 역사적 탐구수업이다(손성호, 2013). 구체적으로는 어떤 역사적 주제에 대한 지식과 정보, 개인의 지적·정서적 경험, 비판적인 자료 읽기를 통한 의문의 제기,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과 그 결과의 표현 등으로 구성되는 과정이다(방지원, 2007). 역사하기를 구현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이 장에서는 비판적인 자료 읽기를 통한 의문의 제기와 관련된 활동을 ‘자료조사, 사료 및 자료 분석’으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활동과 결과의 표현을 ‘토론 및 추론, 글쓰기’로 범주화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서술 내용과 방법은 <배경-전개-결과 및 의의>의 틀에서 고찰할 것이다.
『중학교 역사 2』(9종)와 『고등학교 한국사』(8종)에 서술된 3·1운동은 <배경-전개-의의>라는 유사한 얼개로 서술하고 있다. 3·1운동에 관한 교과서 서술내용 분석은 조규태(2011), 김정인(2019)에 의해 상세히 이루어졌다. 특히, 김정인은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교과서 서술의 변화, 오류 서술의 연원과 확대·반복되는 현상을 면밀히 고찰하였다. 이 글에서 살펴보는 교과서들도 선행 연구에서 밝혀진 오류 서술의 문제점이 그대로 발견되기도 하지만, 중·고등학교 교과서의 3·1운동 관련 내용 체계의 특징을 살펴보는데 중점을 두고자 한다.
3·1운동을 준비하게 된 국내외 동향을 대부분의 중·고등학교 교과서는 <3·1운동의 배경>으로 설정하여 서술하고 있다.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 제창, 레닌에 의한 식민지 민족의 독립운동 지원 표명, 중국 상하이 신한 청년당에 의한 파리 강화회의에 민족 대표로 김규식 파견, 만주 독립운동 지도자들에 의한 독립 선언 발표(무오 독립 선언), 일본 유학생들에 의한 2·8 독립 선언, 국내에서의 고종 독살설 확산, 천도교·기독교·불교 등 종교계 지도자들과 학생이 중심이 된 만세 시위 준비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6)
<표Ⅲ-1>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의 3·1운동 배경에 관한 내용과 출판사별 서술 현황을 나타낸 것이다. 레닌의 식민지 민족해방 지원 선언과 만주에서의 독립운동 지도자들에 의한 대한 독립 선언서 발표는 중학교 교과서보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언급되며, 고종 황제의 독살설은 일부 교과서에서 다뤄진다. 매우 드물게 미주 지역에서 이승만의 독립을 위한 외교활동이 언급되어 있기도 하다.
교과서 내용을 발췌하여 서술의 구체성을 살펴보기로 하자. 다음은 국내 배경에 관한 중·고등학교 교과서의 서술이다.
(중학교: 천재교육) 국내에서는 일제의 가혹한 무단 통치와 수탈로 반일 감정이 커져 가는 가운데, 고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의 종교계 인사와 학생들이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주진오 외, 2013).
(고등학교: 천재교육) 국내에서는 1919년 1월 고종이 사망하자,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한국인들의 분노가 커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종교계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독립 만세 운동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손병희와 이승훈 등 종교계 인사 33인은 대중화, 일원화, 비폭력 등 만세 시위의 원칙을 정하였다. 그리고 고종의 장례식을 이용하여 서울 탑골 공원에서 대규모 시위를 여는 동시에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도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하였다(주진오 외, 2014).
(고등학교: 미래엔) 국내에서도 국제 정세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거족적인 독립운동을 일으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러던 중에 고종 황제가 서거하자, 일제가 독살했다는 소문이 퍼져 국민이 크게 분노하였다. 이에 독자적으로 독립운동을 준비하던 천도교계, 기독교계와 학생들이 손을 잡았고, 불교계도 가세하였다. 그리하여 종교계 인사들로 구성된 민족 대표와 학생들은 군중이 많이 모이는 고종의 국장일에 즈음하여 대규모 비폭력 평화 시위를 벌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릴 것을 계획하였다(한철호 외, 2014).
3가지의 서술 사례를 보면, 고종의 독살설과 종교계 지도자·학생이 중심이 되어 고종의 국장일에 맞춰 시위를 벌이기로 준비했다는 얼개는 동일하다. 고등학교 교과서는 중학교 교과서보다 상술하고 있으며, 출판사에 따라 세부적 내용의 차이가 보인다. [천재교육]은 종교계 지도자의 이름, 만세 시위의 원칙을 서술하는 반면, [미래엔]은 불교계와 학생의 가세 경위를 언급한다.
<3·1운동의 전개>에 관해서는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들은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가진 후 체포되었으며, 학생과 시민들은 탑골공원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한 후 만세 시위를 벌였다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시위는 서울 전역에서 벌어졌고, 전국 주요 도시를 비롯하여 농촌지역에서까지 만세 시위가 확산되는 과정, 농민·노동자·상인 등 모든 계층이 참여한 전 민족적인 운동으로 발전해갔다는 점을 서술한다. 일제는 헌병 경찰, 군대를 동원하여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였고 화성 제암리에서의 집단 학살 사건과 같은 가혹한 탄압이 계속되자 식민 통치 기구의 공격과 같은 무력 투쟁이 나타나는 등 시위의 양상이 변화했음을 서술한다. 그리고 3·1운동 소식은 해외 동포에게도 전해져 만주, 연해주, 일본, 미주 등지에서도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고 언급한다. <표Ⅲ-2>에 알 수 있듯이 이와 같은 내용은 중·고등학교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다뤄지고 있어서 동질성이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
(고등학교: 비상교육) 비슷한 시간에 평양, 원산 등 각 지방의 주요 도시에서도 독립 선언식이 열렸다. 만세 시위는 순식간에 전국의 주요 도시로 확산되었고, 모든 계층이 참여하는 민족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수많은 학교에서 동맹 휴학이 잇따랐고, 상인들은 가게문을 닫거나 운동자금을 제공하였으며, 노동자들은 파업 등으로 만세 시위에 동참하였다(도면회 외, 2014).
(고등학교: 금성출판사) 서울의 탑골공원을 비롯하여 북부 지방의 주요 도시인 평양, 원산, 의주 등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그 열기는 철도와 간선 도로를 따라 인근 도시와 농촌으로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도시의 만세 시위는 학생들 주도로 전개되었다. 이들은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독립 선언서를 배포하거나 지하신문을 발행하고 동맹 휴학을 이끌었다. 상인들도 철시를 통해 만세 시위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였다. 농촌의 만세 시위는 주로 장날에 장터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도시에서 귀향한 학생들과 지방 유지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김종수 외, 2014).
전개에 관한 고등학교 교과서 서술을 비교해 보면 [금성출판사]의 서술은 만세 시위가 확산되는 루트,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했던 방법을 비교적 상세히 하고 있으며, [비상교육]은 상인들이 만세 시위에 지원하는 방식을 언급하는 등 출판사마다 주목하는 부분이 상이하다.
<3·1운동의 의의>와 관련하여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내용은 3·1운동은 이념과 계급의 차이를 넘어서 전개된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으로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항일 독립운동의 정신적 바탕이 되었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큰 성과로 독립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또한, 일제는 통치방법을 무단 통치에서 이른바 문화 통치로 전환하였고, 중국의 5·4운동 등 국제적으로도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인도, 베트남, 필리핀 등의 민족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과 만주, 연해주에서 본격적 무장 투쟁 전개의 계기가 되었다는 내용을 중학교 교과서보다 더 확장시켜 서술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3·1운동에 관한 서술 전개의 패턴과 내용들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거의 유사하게 나타난다. 이를 구현하는 서술은 고등학교 교과서가 중학교 보다 구체적이며 출판사마다 상세함의 차이를 보이지만 기본적 틀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다보니 3·1운동에 관해 이미 학습된 내용이 학교급이 올라가서도 유사한 내용의 틀이 반복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통사적 학습이 초·중·고등학교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을 상기하게 되는 부분이다.
역사 교육에서 다양한 사료와 사진 자료, 도표, 연표와 역사 지도 등을 활용하여 학생들의 탐구 능력을 기르도록 요구되고 있으며 교과서에도 다양한 사료와 시각자료들이 소개되고 있다. 시각자료와 사료는 교과서 서술을 보완하고 역사적 사건의 생동감을 전할 수 있어 역사적 상상력을 키우게 해주는 기능을 갖는다. 그리고 당시의 상황과 역사적 사건을 도표와 그래프, 지도 등을 통해 그 의미를 종합적으로 해석하고 고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표Ⅲ-4>에서 알 수 있듯이 3·1운동의 배경과 관련해서는 파리강화 회의에 파견된 김규식, 2·8 독립 선언 주역들의 사진이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공통적으로 비교적 높은 빈도로 실려 있으며, 사료로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무오 독립 선언서로도 불리는 대한 독립 선언서와 2·8 독립 선언서 및 결의문이 높은 비중으로 제시되어 있다.
전개 과정에서는 탑골공원, 광화문, 동대문 등 서울 각지에서 만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서대문 형무소 수감카드의 유관순, 폐허가 된 제암리 교회, 그리고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한인의 시위와 행진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공통적으로 많이 실려 있다. 3·1운동 시 투옥된 사람들의 직업별 분포를 보여주는 원그래프가 많은 교과서에 실려 있으며,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3·1운동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지도, 시기별로 비폭력에서 무력 형태로 변해가는 시위의 형태를 보여주는 도표 등도 높은 빈도로 제시되어 있다. 사료로는 고등학교 교과서를 중심으로 기미 독립 선언서가 실려 있다.
의의와 관련해서는 주로 3·1운동을 보도한 해외 신문을 사진 및 사료로 제시하거나 5·4운동의 톈안먼 대회 선언문과 네루의 『세계사 편력』에서 3·1운동이 언급된 부분을 발췌하여 소개하고 있다.
3.1운동이 일어났던 현장의 모습과 상징 인물을 담은 사진, 그 모습을 상상하여 만든 조각과 기록화, 시위에 직접 사용되었던 태극기를 찍었던 목각판, 시위의 전개 과정을 주제에 따라 분석한 표·그래프·지도 등의 2차 자료 등과 같이 <전개> 부분에서 사용된 사료와 시각자료는 다양하다. 사료로는 선언문·신문 형태의 자료가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2차 자료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더 많이 사용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와 같은 시각자료 및 사료는 ‘역사하기’와 같은 활동과 연계되고 있다. 자료조사 활동은 중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자료와 사료 분석은 상대적으로 고등학교에서 비중이 높다. 기미 독립 선언서, 2·8 독립 선언서, 대한 독립 선언서의 내용 비교, 각 선언서가 갖는 특징적 성격을 분석하게 하는 활동이 5종의 고등학교 교과서에 제시되어 있다. 활동 영역을 확장하여 이 선언서들을 참고하여 가상의 독립 청원서를 작성해 보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토론과 추론은 주로 시위 형태의 변화 양상과 그 원인을 파악하는 데 머물러 있으며 글쓰기 활동과 관련해서도 중학교 교과서 1종에서 3·1운동을 보도하는 신문 기사를 써보도록 하고 있다. 학교급과 출판사별로 보면 중학교의 경우 역사하기 활동이 제시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으며, 교과서마다 1∼2개 정도의 활동을 제시하는데 그치는 등 ‘역사하기’는 출판사에 따라 편차가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8학년, 12학년 역사교과서에는 세포이 항쟁 자체가 대단원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사건을 둘러싼 배경과 경위에 관해 상술되어 있다. 우선, 8학년 교과서의 서술 전개는 항쟁의 배경, 항쟁의 시발과 확산 및 영국에 의한 진압, 그리고 항쟁 세력의 처단과 항쟁의 영향에 따른 지배 정책의 변화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해외의 유사한 시기의 역사적 항쟁으로 ‘중국의 태평천국운동’을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8학년 역사교과서의 특징이기도 한 것으로 모든 단원 마지막 부분에 타 지역·타 국가의 유사사례를 제시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분 | 내용 |
---|---|
배경 | 영국 통치 정책에 따른 기존 기득권자들의 권위와 명예 약화 |
영국에 의한 번왕국의 양자 상속 불인정, 바하두르 샤(Bahadur Shah)를 무굴의 마지막 황제로 표명 | |
총독 달하우지(Dalhousie)의 오우드(Awadh) 병합 필요성 선언8) | |
영국이 도입한 지세 제도에 의해 기존 권리를 박탈당한 대지주(zamindar)와 농부들의 불만과 분노, 가족 구성원인 세포이에게로의 분노 확산 | |
임금, 처우 조건에 대한 세포이들의 불만, 해외 근무 의무화하는 새로운 법의 통과9) | |
영국이 추진하는 개혁(사티 중단, 과부 재혼 장려법 통과, 영어교육 추진, 기독교 선교사와 개종자에 관한 특혜 등) ⇔ 인도인들의 불안(영국에 의한 그들의 종교, 관습, 전통적 삶의 방식 파괴) | |
전개 | 새로운 소총 사용 훈련을 거부한 세포이에 대한 해고 및 감형, 이에 대한 메이러트의 세포이들의 반발, 영국 장교 살해 및 무기 탈취 등 전쟁 선포 |
5월 10일 세포이들의 델리에 도착 및 델리 주둔 연대의 반란, 세포이들의 요구에 의한 바하두르 샤 황제의 통치 부활을 선언. 항쟁의 지도자들에 의한 각 번과 동맹 시도, 봉기의 확산 | |
영국의 통치가 붕괴되는 모습에 인도인은 자신감을 부여받음 | |
영국의 증원군 파견, 항쟁 세력이 쉽게 유죄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새로운 법 통과, 1857년 9월 델리 탈환, 바하드르 샤 황제 종신형 선고 및 랑군 감옥행. 영국은 델리 탄환 후 2년 간 대중적 항쟁 진압 | |
결과 및 의의 | 항쟁 세력과 번왕, 주요 지도자들은 재판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짐 |
영국은 1859년 말에 통치권 회복, 식민정책에 많은 변화 초래(6가지 변화된 주요 정책 제시) | |
[Elsewhere] 중국의 태평천국운동 |
항쟁의 배경으로 언급하는 주요한 내용은 정치·경제 분야의 식민지배 정책에 따른 각 영주의 지배세력의 약화, 지주와 농부들의 경제적 타격, 부당한 처우에 대한 세포이들의 누적된 불만, 종교와 사회적 관습을 부정하는 영국의 개혁 정책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 등이다. 세포이들이 각 영주의 지주와 농부들과 무관하지 않고 가족·친족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항쟁의 기획과 신속한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잠재적 상황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항쟁의 전개로서는 우선, 약포에 돼지와 소기름을 발라놓은 소총의 강요를 둘러싼 세포이와 영국 장교와의 메이러트(Meerut)에서의 대립, 이를 계기로 촉발된 항쟁과 델리로의 확산, 무굴황제 바하두르 샤의 통치 부활 선언, 삽시간에 확산되는 봉기와 붕괴되는 영국 세력, 영국군의 반격과 델리 탄환, 항쟁 종식이 주요 내용이다.
항쟁이 발전, 확산되는 과정에 대한 서술은 사건을 설명하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대면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관해서도 함께 언급하고 있다. 항쟁 확산의 중요한 계기가 된 바하두르 샤 황제의 통치 부활 선언은 전체 상황을 극적으로 바꿔놓았으며, 사람들은 현재 상황과 다른 가능성을 보았을 때 행동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된다고 서술하고 있다(National Council of Educational Research and Training,, 2007a). 항쟁의 확산에서 오는 두려움에 관해 영국 장교가 영국 정부에 보낸 전보에 “우리 군인들은 우리와 대적하는 많은 수의 적들과 끝없는 싸움에 겁먹었다. 모든 마을이 우리를 대적하고 대지주들(zamindars)이 우리를 반대하기 위해 일어났다.”라는 내용이 적혀져 있었다며 반격 이전의 영국 측의 심리에 대해서도 알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어서 영국의 반격과 항쟁 세력의 처단, 통치권을 되찾은 영국은 변화된 식민정책을 추진했다는 내용으로 결말을 맺고 있다. 영국이 도입한 식민정책의 중요한 변화를 6가지로 정리하여 제시하고 있는데, 인도 통치의 모든 권한에 대해 기존의 동인도 회사에서 영국 국왕에게로의 이관, 인도 국무 장관을 영국 내각의 일원으로 임명하는 등의 통치구조의 변화, 인도인들의 종교적·사회적 관행과 기존 기득권 세력의 토지에 대한 권리의 존중 입장 표명 등의 내용을 거론하고 있다. 그리고 항쟁의 의미를 “역사의 새로운 단계는 1857년 이후에 시작되었다.”라고 부여하고 있다.
한편, 12학년 과정에서는 도입에서 사건의 개요를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으며, 이어서 사건을 보는 다양한 접근, 예컨대 항쟁에 동참하는 일반인, 항쟁의 기획자·지도자, 추종자들에 관해 다루고, 항쟁을 실행하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되는 ‘소문들’이 신뢰되고 확산되었던 과정을 다루고 있다. 또한, 대표적인 사례 지역으로 항쟁의 중심지였던 ‘오우드(Awadh)’에서 사건 이전에 일었던 조짐들에 관해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으며, 항쟁을 통해 인도인들이 추구했던 비전을 탐구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영국군에 의한 진압까지의 과정을 다룬 후 영국에 의한 복수와 응징으로 결말을 맺지만, 영국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는 그림들을 제시하며, 그들에게 보복과 복수의 요구를 불러일으켰던 여론의 형성과정에 관해서도 살피고 있다.
12학년 교과서는 개요, 전개, 배경, 전개, 결말의 틀로 내용이 전개되고 있으며, 항쟁이 촉발되게 된 ‘소문들’의 속성, ‘예언’이 소문들을 뒷받침하면서 나타나게 되는 ‘실천력’의 사회적 맥락을 다룬다거나, 사건의 한 가운데 있었던 ‘오우드(Awadh)’ 의 사례를 통해 영국의 통치정책에 대한 지주, 농부, 세포이들의 반응과 전통적 질서, 신분, 친족 관계와 같은 연결고리 속에서 상호 작용하며 항쟁으로 표출되는 과정을 다양한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 점들이 특징적이다. 이 가운데 ‘소문들’이 신뢰로 변화되어 갔던 과정을 영국의 통치 정책의 관점에서 다루는 부분을 발췌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소문들이 사실적으로 옳았는지 여부를 점검하는 것으로 과거의 소문과 예언의 힘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 즉 두려움과 염려, 신념과 확신에 소문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소문은 사람들이 깊은 두려움과 의심에 공감할 때에만 순환한다. (중략) 1857년의 소문은 영국이 1820년대 후반부터 추구했던 정책의 맥락에서 볼 때 의미가 있다. 그 당시부터 윌리엄 벤팅크(William Bentinck) 총독의 지도 아래 영국은 서구교육, 서구사상을 도입하여 인도 사회를 “개혁”하는 정책을 채택했다(National Council of Educational Research and Training, 2007b).
인도 교과서는 다양한 유형의 사료를 서술의 연장으로 수록하여 내용들을 전개해 나가고 있으며, 12학년의 경우에는 시각자료가 항쟁의 이미지를 어떤 방법으로 형성시켜갔는지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사료와 시각자료를 통해 세포이 항쟁이 다뤄지는 다각적인 관점과 역사하기와 같은 활동과의 연계에서 나타나는 특징도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인도의 역사교육도 다양한 역사 자료를 통해 역사적 사고력과 감수성을 키우고 역사적 토론 능력을 배양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교과서에 구현하는 방법으로 풍부한 시각자료와 자료들을 제시하고 사료 분석, 토론 등과 같은 활동과의 연계를 유도하고 있다. 세포이 항쟁을 다룸에 있어서, 8학년에서는 ‘사건에 대한 기록물의 해석’을, 12학년에서는 ‘역사가들에 의한 시각자료들의 활용에 대한 토론’을 학습목표의 하나로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12학년에서는 당대 기록물들을 발췌하여 탐구하도록 내용요소에 제시되어 있다.
시각자료의 유형은 대부분이 그림이며 그래프와 도표와 같이 특정 사안을 분석한 2차 자료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림과 사진의 주제들을 살펴보면, 8학년 교과서에서는 사건의 전개과정, 즉 사건의 기획, 영국장교와 군대를 공격, 확산, 영국군의 반격에 이르는 사건을 재현한 그림들이 대부분이다. 반면, 12학년의 경우에는 <전개>부분에서는 사건과 연관된 인도와 영국 측의 주요 인물, 사건에 참여한 대표적인 계층인 세포이와 대지주의 모습, 그리고 세포이에 대항하는 인도 여성을 묘사한 그림들로 구성되어 있다. <결말>부분에서는 영국의 응징과 그 결과를 묘사한 그림과 사진을 수록하고 있다.
사료의 제시 방법을 보면, 8학년의 경우, 두 종류의 사료 ‘세포이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의 기록’과 ‘은퇴한 세포이의 회고록’을 제시하고, 이 사료에 근거하여 당시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인 영국의 통치 정책, 이에 대해 누적된 불만이 세포이들에게 전달되는 방법, 사건으로의 촉발에 관해 사료 분석을 통해 파악하도록 하고 있다. 이 사료들은 참고 및 보완을 위한 형태가 아니라 <사람들의 눈을 통하여(Through the Eyes of the People)>이라는 소제목 하에 본문 서술로써 수록되어 있다.
12학년 과정에서 제시된 사료들은 항쟁의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했는지에 대한 사례, 모범적 리더십, 항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대호족의 경험담, 항쟁 세력이 작성한 포고문과 탄원서, 영국군의 진압에 대항했던 기록들이다. 그 형태는 신문기사, 개인 회고록, 포고문, 탄원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사료를 직접 읽어봄으로써 사건의 당사자 또는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대부분이 본문 서술의 연장으로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일반인들이 봉기에 동참하지만, 그들이 겪게 되는 봉기의 이면에 존재하는 불편한 요소들에 관해 보도되었던 당시 언론의 기사 <심상치 않은 시대의 평범한 삶(Ordinary life in extraordinary times)>를 발췌하고자 한다. 평범한 삶의 변화를 감수해야 했던 상황들의 사례를 소개하는 점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즉 사건에 대한 다양한 층위에서의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봉기가 일어났던 수개월 동안 도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사람들은 소동이 일어났던 몇 개월을 어떻게 살아갔는가? 정상적인 삶은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가? (중략) 야채와 시금치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심지어 호박조차도 시장에 나와 있지 않다고 불평했다. 약간의 농작물이 일부 지역에서 재배되지만 가난한 자와 중산층 사람들은 입맛만 다실뿐이었다(National Council of Educational Research and Training, 2007b).
이러한 시각자료와 사료는 학습자들로 하여금 역사하기와도 연계를 시키고 있는데, <표Ⅲ-9>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사료 및 자료 분석 활동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12학년 과정에서 세포이 항쟁을 다루면서 강조되는 요소 중 하나가 시각자료의 해석이다. <항쟁의 이미지>라는 소제목 하에서 항쟁의 진행과 진압 과정을 그림을 통해 어떻게 표상했는지에 관해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항쟁의 진행과 관련된 시각자료는 세포이에 의한 영국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폭력을 주제로 한 그림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그림을 통해 영국에서는 복수와 응징에 대한 공공의 요구가 있었다고 언급하며, 예술가는 외상과 고통의 시각적 표현을 통해 이러한 정서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표현했다고 언급하고 있다(National Council of Educational Research and Training, 2007b).
한편, 인도에서는 항쟁의 영웅을 소재로 한 영화와 영웅시를 통해 민족주의를 형상화하는 과정이 있었다며 토후국의 여왕이자 항쟁의 영웅인 ‘락쉬미 바이’를 주제로 한 영화 포스터를 시각자료로 제시하고 있다. 영화에는 적을 쫓아다니면서 영국 군인을 살해하고 마지막까지 용감하게 싸우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으며, 인도의 어린이들은 그녀의 활약을 노래한 시를 읽으며 자란다고 서술하고 있다. 제작자가 만들어내고자 하는 이미지의 형성 방법과 과정, 그리고 이러한 심성이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메커니즘을 설명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제작자들의 관점을 식별하는 방법에 대한 토론활동으로 연계시키고 있기도 하다.
Ⅳ. 결론
식민지배에 대해 항거하고 독립을 위해 치열한 저항을 펼쳐왔다는 공동의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과 인도의 역사교과서에, 상징적 의미를 갖는 3·1운동과 세포이 항쟁에 관해 어떻게 서술되어 있는지 그 특징을 비교 분석하기 위해 양국의 중·고등학교 역사 교육과정, 해당 단원의 교수요목, 그리고 교과서의 내용 체계를 살펴보았다.
한국은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역사가 필수과목으로 편제되어 있으며 통사학습을 반복하는 구조이지만, 인도는 11-12학년 과정부터 선택과목으로 운영되며, 단계별 학습내용과 방법이 상이하다. 따라서 한국은 3·1운동에 관해 중·고등학교에서 반복해서 학습되며, 인도는 8학년과 12학년에서 세포이 항쟁을 상이한 체계로 학습한다.
교과서 내용 체계와 연계해서 보면, 3·1운동에 관해서는 중·고등학교에서 공통적으로 ‘일제강점기의 민족운동’ 단원에서 민족 운동의 흐름의 맥락에서 학습하며, 전개과정(배경·과정·의의)이 주요 내용요소이다. 교과서에 구현된 형태를 보면, 학교급과 출판사에 따른 상세함의 차이는 있으나 서술 내용과 패턴이 유사하게 나타난다. 반면, 인도는 8학년과 12학년 교수요목에 제시된 학습목표와 내용요소가 상이하다. 8학년에서는 사건의 본질과 사료 탐구를, 12학년에서는 사건의 재해석과 시각자료 탐구에 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단계별로 교과서의 서술관점과 다뤄지는 자료가 상이하다.
한국과 인도의 교육과정 및 교수요목에서 제시하는 학습목표와 내용요소는 표면적으로 ‘대강화’의 특징을 보이지만, 이것이 구현되는 방법은 상이하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은 3·1운동을 통해 민족운동을 이해한다는 목표 하에 ‘지식전달’에 좀 더 중점이 두어져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역사하기와의 연계’에 대한 구체적 제시가 없기 때문에 출판사별로 구현 방법은 편차를 보인다. 인도의 경우는 단원별 목표를 통해 교과서 서술, 사료의 유형, 해당단원에서 요구되는 역사하기의 범주가 제시되어 있으며 이와 같은 틀 안에서 탄력적으로 내용요소들이 구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은 양국의 교과서가 하나의 단원에서 다루는 내용의 범위 및 방법과 상관관계가 있다. 한국은 35년에 이르는 일제강점기의 민족운동을 하나의 단원으로 구성하여 3·1운동을 일부로 다루고 있다. 반면 인도는 세포이 항쟁만을 독립된 단원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어 주제 중심 교육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므로 단계별 수준에 맞게 사건 자체를 학습하면서 사건을 다각도로 해석할 수 있는 역사적 사고력과 탐구 역량에 집중할 수 있다. 8학년에서 배웠던 내용과 역사하기 방법과는 다른 각도로 12학년에서는 세포이 항쟁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세포이 항쟁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고대의 하라파 문명에 관한 단원에서는 고고학 자료를 해석하는 방법과 연계시킨다거나, 인도 중세 시대의 사회적 특징 관련 단원에서는 외부 여행자들의 기록물을 통해 제3자의 시각에서 통찰하도록 하는 시도들이 이루어진다. 단계별 각 단원마다 서로 다른 역사적 자료를 매개로 하여 역사적 상상력과 탐구 역량을 함양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양국 역사교과서 내용 체계에서 3·1운동과 세포이 항쟁이 구현된 방식을 비교하는 작업만으로 양국 역사교과서에서 민족운동을 다루는 방법상의 차이점과 특징을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인도 교과서의 사례는 비교 분석 차원에서 주목할 수 있다. 새롭게 적용될 2015 개정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은 기존 교육과정의 연대기적 구성에 따른 학습내용의 반복을 개선하기 위해 주제 중심의 통합적 구성을 지향하고 있다.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에서는 ‘세계 대전과 반제 민족 운동의 전개’라는 대주제 안에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소주제로 편제시켜 3·1운동을 세계사적 맥락에서 접근하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중학교 과정과 차별화 및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지식을 확장할 수 있는 방안 모색의 필요도 제기되고 있다(문경호, 2017).
실제적으로 3·1운동을 다루는 관점상의 유의미한 변화는 교과서보다는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역사교육연구소의 역사수업 연구 분과에서 교사가 교육과정 재구성 차원에서 다양한 사료를 통해 학생 참여 방식의 수업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관점의 연구 성과들이 발표되고 있다(조한성, 2019; 박찬승, 2019; 한국역사연구회, 2019).
이와 같은 국내에서의 연구 성과 축적과 교육과의 연계, 학교현장에서의 다양한 시도들뿐만 아니라 인도와 같은 외국 교과서의 주제 중심 접근에 대한 사례를 비교, 분석한다면 학습자들이 반식민주의 민족운동의 역사를 배우고 역사인식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능동적이고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역사 교과서를 통해서도 다양하게 모색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