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학생들이 생각과 열정과 의지를 갖고 탐구활동에 참여하고, 교사 역시 학생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깨닫는 교실은 함께 성장하는 행복한 삶의 공간이다. 자라나는 학생들이 일상의 수업 과정을 통해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끼며 삶 속에서 늘 서로 함께 배우려는 습관을 체득해간다면, 그것은 학교교육에 기대하는 최상의 결실일 것이다. 하지만 학교현장에서 아이들 스스로가 탐구 과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몰입하여 목적하는 배움에 이르도록 이끄는 수업을 실현하기란 좀처럼 쉽지가 않다. 특히 교육과정 진도가 정해져 있고 학업성취도 평가가 중시되는 상황에서 교사는 교과지식 그 자체만 염두에 두고 효율적인 수업 진행에 급급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교사가 마주한 학생들의 모습에서 다양하게 형성·변화하는 지적, 정서적, 사회적 성향에 주의를 기울일수록, 유의미한 수업 경험에 대한 고심은 깊어진다. 단순히 기존에 몰랐던 교과내용을 배우는 것만으로 교육적인 경험이라 할 수 있을지, 과연 학생과 교사에게 본질적 가치를 지닌 교육적 경험이란 무엇인지 되짚어보게 된다.
한편, 4차 산업혁명시대, 지능정보사회 등 급속하게 진행되는 사회 변화로 인해, 학교교육을 통해 갖추어야 하는 경험과 배움은 갈수록 심각한 도전적 과제로 떠오른다.2) 지식과 기술의 혁명적 변화가 모든 사람들의 삶에 근본적 변화와 함께 불안과 위기를 야기하는 현대 세계의 교육에 대해서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전적으로 ‘그 직업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지식이나 기술, 또는 이전에 그 일을 했거나 지금도 그 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입증된 지식이나 기술들만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대신 필요한 비법은 바로 ‘그 어떤 누구와도 같지 않은’ 특이한 생각들과 그 어떤 누구도 결코 이전에는 제안한 적이 없었을 정도로 이례적이며 우수한 기획들, 또한 그 무엇보다도 마치 고양이처럼 자기 혼자 잘 지내면서 홀로 자기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그러한 성향을 갖는 것이다. (중략) 인간 역사의 그 어떤 전환기에서도 지금 교육자들이 마주한 분수령에 비견될 만큼 중요하고 많은 변화를 초래하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던 적은 없었다. 지금처럼 정보 과잉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은 결국 계속해서 배우는 일 뿐이다(Bauman, 2010, p. 202).
지식과 학습의 의미가 급변하고 소통 방식이 급속히 달라진 현대 세계에서 요즘 아이들은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 속에서 고립된 채 살아가고 있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다양한 서적들을 참고하고 서로 묻고 답하며 궁금증을 해결했던 이전 세대와 달리 포털 사이트 검색 결과로 빠르게 필요한 정보를 습득해간다. 많은 책과 자료를 찾아보면서 풍부하게 알아보려는 의지를 다지기보다 잠깐의 시도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찾는 정보가 없다며 푸념하곤 한다. 새로운 지식과 의미를 제대로 배우는 데 필요한 주의력과 관심을 지속시키고 대화적 관계의 공동탐구에 참여하도록 학생들을 이끌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변화된 기술적 환경의 영향으로 인해 개인주의적 의식이 가중되고 협력과 상호 교감 능력은 줄어들 위험이 커지면서, 교실에서의 공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현대 세계에서 학생들에게 나타나는 지적, 정서적, 사회적 성향의 변화에 주목할 때, 학교교육에서 필요하고 가능한 교육적 경험의 의미와 방법에 대한 탐구가 더욱 절실해 보인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재조명해 볼 만한 것이 철학과 교육과 사회의 근본적 변화와 혁신을 모색한 사회철학자 존 듀이의 교육적 경험 이론이다. 그는 근대 공교육제도 하에서 학교교육이 점차 확대되고 형식화함에 따라 삶과 교육의 괴리, 즉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사회적 삶에서 부딪히는 것 사이의 간극을 문제로 인식하였다. “형식화된 수업은 현실과 거리가 먼 죽은 교육, 부정적 의미에서 추상적이고 딱딱한 서적 중심의 교육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DE, p. 48)3). 따라서 듀이는 ‘경험중심 교육론’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알려졌고, 그가 말하는 ‘교육적 경험’의 이론적·실천적 의미는 다각도로 탐구되어왔다(고영준, 2012; 양은주, 1999; 정정철, 2011). 하지만 듀이의 교육철학적 저술 중심으로 이론적 해명에 중점을 둔 선행연구들은 현장 교사들에게 구체적인 실천적 의미를 제공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경험과 실천을 중시했던 듀이는 시카고 대학 재임시절에 뜻을 같이 하는 교사, 학부모, 동료 교수 등 지역 사회의 진보적 지식인들과 함께 실험학교를 설립했다. 그가 교사들과 함께 7년여에 걸쳐 학교교육의 실험적 대안을 모색했던 실천사례는 교육적 경험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데 귀중한 자원이다. 당시 실험학교 교사였던 두 자매 매이휴와 에드워즈는 거의 30년이 지난 뒤에 그때의 경험과 풍부하게 남긴 기록들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책으로 발간한다(Mayhew & Edwards, 1936). 여기에는 실험학교의 교육철학적 토대 뿐 아니라, 점진적으로 발전시켜나갔던 학년별 교육과정과 학생과 교사의 활동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있다. 듀이 실험학교 관련 선행연구들은 교육과정과 학교 운영체제, 교사의 역할, 과학적 기초 등에 초점을 두었으나 그의 경험철학과 연결하여 당시 교실활동의 기록을 분석한 연구는 부족한 편이다(양은주, 2005; 이승은, 2010; 진미숙, 2010). 실험학교에서 실행되었던 다양한 경험 사례를 미시적으로 접근하고 듀이의 교육적 경험 이론과 연결하여 구체적인 실천적 의미와 현재적 가치를 탐구해볼 필요가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일상의 수업경험을 이끌어가는 교사의 실천적 관심에 비추어 듀이의 교육적 경험의 원리에 담긴 이론적·실천적 의미를 명료화하는 것이다. 특히 급변하는 현대 세계에서 학생들이 교육적 경험을 형성해가도록 안내하는 일에 여전히 유효한 교육적 가치 준거를 탐색하고자 한다. 둘째는 시카고대학 실험학교의 교육과정 실행기록에서 유의미한 학습 경험 사례들을 추출하고 이론적 원리와 관련지어 미시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실천적 특징과 방법을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종합하여 학생들에게 유의미한 수업 경험을 만들어가는 교사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현재적 시사점을 밝혀보고자 한다.
Ⅱ. 경험의 의미와 교육적 가치 준거
경험은 의미심장한 것일 때 당사자에게 모종의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경험함으로써 배우는 것은 생생하고 온 몸에 아로새겨지는 감각으로 남는다. 살아가면서 풍부한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고 성장해가는 사람은 실천적 지혜가 남다르고 현명하다. 그렇기에 흔히 경험을 통해 가슴 깊이 새겨 체득하게 하는 교육은 단지 서책에 담긴 지식 그 자체로 가르쳐 머리로만 알게 하는 교육과 대비되곤 한다. 경험의 교육적 효력을 지지하는 한편에서는 ‘경험중심’의 ‘직접 해 봄으로써 배우기’(learning by doing)를 전통적 교육의 대안으로 강조한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직접 경험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경험과 교육을 관련짓는 데 유보적이 된다. 감각 뿐 아니라 이성의 능력을 지닌 인간에게 가능하고 필요한 교육은 사유의 힘을 통해 직접 경험의 범주를 넘어서는 인식에 이르게 하는 데에 있다고 본다. 이러한 대립적 견해에서 짐작되듯이, 교육적 가치를 지닌 경험과 경험을 통한 교육의 의미에 대해 엄밀한 이해를 갖추는 일은 간단치 않다. 이 장에서는 실험학교 실천 사례 탐구에 앞서 듀이의 경험철학을 토대로 ‘교육적 경험’의 의미와 가치 판단의 준거를 이론적으로 밝혀볼 것이다.
경험의 의미는 한 가지가 아니며, 철학의 역사를 통해 다양한 관점이 존재해왔다. 어떤 경험이 교육적인지 비교육적인지 구분하는 개념적 준거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전근대와 근대의 경험에 대한 관점과 구별되는 듀이의 경험철학 형성의 배경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의 경험철학을 특징짓는 차이는 주로 『민주주의와 교육』 제20장 ‘이론적 교과와 실제적 교과’에서 다뤄진 논의를 통해 밝혀볼 수 있다. 여기서 듀이는 한편으로 경험을 이론적 지식과 위계적으로 구분했던 고대 희랍의 전근대적 경험관과, 다른 한편으로 경험을 감각적 인식의 방법으로 간주한 17세기 과학혁명 이후 근대의 경험관을 대비시킨다. 이러한 배경 논의를 바탕으로 양자 모두와 차별화되는 자신의 견해를 ‘실험’(experimentation)으로서의 경험관으로 제시한다. 듀이의 경험철학은 경험론과 합리론으로 대표되는 근대철학의 경험 개념을 비판적으로 극복하려는 점에서 포스트모던한 맥락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듀이는 먼저 경험을 이성적 지식과 대립시키고 주먹구구식의 시행착오적인 것으로 여긴 고대 희랍의 경험관의 한계를 짚어낸다(DE, pp. 389-394). 플라톤의 이데아와 현상의 이원론적 구분으로 알 수 있듯이, 시시각각 변하는 다양한 개별자에 대한 감각적 경험은 동굴의 어둠 속 그림자에 비유된다. 그것은 영구불변의 실재와 진리의 세계 ‘아래에서’ 실제적 삶의 필요에 속박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전근대적 관점에서 경험은 이성적 원리에 대한 인식 없이 얼마간 ‘우연’에 맡긴 채 실제적 필요에 따라 반복적으로 시도해봄으로써 축적된 성과를 뜻한다. 듀이는 당시에 경험과 지식을 위계적으로 대립하는 관념 형성의 근거를 이성적 진리를 추구하는 자유인과 감각적 욕구를 따르는 생산자가 계층적으로 구분된 사회적 삶의 조건에서 찾았다. 더 나아가 현대의 일상적 통념에서도 ‘경험적으로’ 또는 체험을 통해 몸으로 익히는 활동을 폄하하는 의식이 여전히 지속되는 것은 전근대적 경험관의 흔적으로 본다.
한편, 근대 과학혁명으로 감각경험의 위상이 변하면서 전근대적 관점과 달라진 경험관이 형성되는데, 이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한계를 내포한다(DE, pp. 394-400). 근대에 이르러 경험은 단순히 먹고사는 실제적 행위 차원에 머무는 것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것은 초월적, 외부적 절대권위로부터 해방된 독립적 개별 주체가 감각과 이성의 힘을 통해 진리를 인식하는 방법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듀이는 근대철학의 경험론과 합리론 모두가 인식방법으로서 경험의 가치에 대한 입장을 달리할 뿐 공통된 오류를 범하는 것으로 비판한다. 즉, 양자 모두가 경험을 외부 대상이 각인하는 감각인상의 수동적 수용이라는 의미에서 인지적 차원으로 고립시킴으로써 인간 삶의 행위와의 근원적 관련성을 놓치는 한계를 지닌다는 것이다. 근대철학에서 “경험이란 그 내재적인 능동적, 정서적 측면이 무시된 채, 순전히 인지적인 것으로 취급되고 단편적인 ‘감각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동일시” 되었다(DE, p. 406). 물리적·사회적 환경 조건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로서 인간의 경험이란 인식의 목적 이전에 일차적으로 삶을 위한 능동적 행위라고 하는 본질적 맥락이 간과되었다는 것이다. 흔히 과학교육의 맥락에서 경험의 개념을 관찰과 실험과 검증이라는 체계적 절차를 통한 과학적 탐구 방법의 의미로 다루는 방식에서 이러한 근대적 경험관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전근대적 경험관과 근대적 경험관에 대한 듀이의 비판적 해석에 의하면, 경험은 전근대적 관점에서처럼 단순 반복적인 시행착오(routine doing)를 통해 우연히 도출된 결과로 얻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근대적 관점에서처럼 순수하게 인식의 목적을 위한 객관적 감각 인상의 수동적인 수용 결과(mere undergoing)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근대적 관점과 달리 경험은 오히려 목적을 가지고 하는 일을 이끌어가는 능동적인 관심과 의지 행위를 포함한다는 점, 그리고 전근대적 관점과 달리 경험은 이성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사고 작용을 포함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양자의 경험관에서 간과되었고 듀이가 재조명하려는 핵심은, 경험이란 곧 삶의 과정, 즉 생명체가 환경 조건과 상호작용하면서 갱신을 통해 자기를 보존해가는 일련의 과정이요, 인간이란 생명체는 행함(doing)과 겪음(undergoing)을 상호 관련짓는 지적 작용을 통해 의미(meaning)를 파악하고 세계를 향한 실험적·창조적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경험’은 희랍식의 ‘경험적인’ 것이 아니라 ‘실험적인’ 것으로 된다. 이제 이성은 멀리 있는 관념상의 정신능력이 아니라, 활동이 풍부한 의미를 가질 수 있게 하는 일체의 자원을 가리킨다”(DE, p. 406). 듀이는 이와 같이 살아있는 유기체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연속성을 확보해가는 생명활동에 뿌리를 둠으로써 전근대와 근대를 대표하는 경험에 대한 철학적 관점들과 자신의 견해를 구분한다.
특히 주목할 점으로, 듀이는 철학이 전문화하면서 당대의 인간 삶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 한계를 비판한다. “철학 회복의 필요성”(The Need for a Recovery of Philosophy)이란 글에서 그는 근대철학의 경험관과 그것을 비판적으로 극복하려는 실험주의적 경험철학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대비시킨다(Dewey, 1917, p. 6). 첫째, 전자는 경험을 주로 ‘앎(지식)’의 문제로 다루었던 반면, 후자는 경험을 생명체가 물리적·사회적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한 소통과 상호작용 과정으로 본다. 둘째, 전자는 경험을 인식 주관에 의한 마음의 내면적 현상으로 보았지만, 후자의 입장에서 경험이란 오히려 인간이 직접 행위하고 어떤 일을 겪으며 그 결과를 변경시키는 식으로 외적 객관적 조건이 결부된 과정이다. 셋째, 전자에서 경험은 감각인상과 같이 이미 일어났고 주어진 인식 자료로 여겨졌으나, 후자의 새로운 경험이론에서 경험은 주어진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애쓰며 미지의 세계를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실험적인 것으로 된다. 넷째, 전자의 경우에 경험은 개체적인 것으로서 관계나 연속성과는 이질적인 것으로 보았던 반면에, 후자에서 경험이란 생명체가 환경조건과의 긴밀한 상호작용 방식을 갱신하고자 부단히 애쓰는 일련의 연속적 관계로 가득한 것이라고 본다.
요컨대, 듀이의 경험철학에서는 경험과 사고를 대립시킨 전근대적 한계를 극복하는 한편, 근대적 관점에서 간과되었던 삶의 활동으로서의 의미를 복원하고자 한다. 즉, 현대적인 관점에서 경험이란 행위와 느낌과 사고의 능력을 지닌 인간 생명체가 환경과 일련의 상호작용을 통해 실험적으로 열린 가능성을 향해 자아와 세계를 변화시켜가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을 더욱 풍부한 의미로 가득한 삶을 향해 성장하도록 이끄는 교육적 경험이란 어떤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까? 듀이에 의하면, 교육과 경험이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경험은 그 사람에게 이후 경험의 성장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경험 그 자체가 교육과 동일시될 수는 없다(EE, pp. 32-35). 교육적 경험을 통한 성장이란 단순히 습득된 지식이나 규범이 증대되는 외적 변화가 아니라, 특정한 방향을 향한 지적·정서적 성향의 질적이고 의식적인 변화라고 본다. 결국 경험의 질(quality of experience)이 교육과 성장의 기반임을 인식하면 할수록, 경험의 원리를 이론적으로 밝히는 철학적 기틀이 요구된다. 듀이는 경험의 형성과 성장 원리를 그의 후기 저서 『경험과 교육』에서 ‘연속성’과 ‘상호작용’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압축하여 제시한다.
우선 연속성(continuity)의 원리는 이전 경험에서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이후 경험의 특질을 변화시키게 됨을 뜻한다(EE, p. 47). 듀이는 이것을 생명체의 습관(habit) 형성과정과 관련짓는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습관화가 이루어질 때 이전 경험의 요소가 그 사람에게 새로운 행동 방식, 개념적 의미, 느낌 등으로 남아 후속 경험의 질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듀이에게 성장의 표현으로서 습관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연상하는 몸에 굳어진 습관과 같은 제한된 의미 범주를 넘어선다. 경험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습관이란 신체적·지적·정서적 성향과 태도, 삶의 조건들에 대한 기본적인 감수성과 능력과 욕구로 나타나는 반응 방식들, 특정 대상에 대한 선호나 혐오 등을 포괄하는 의미이다. 그런데 듀이는 모든 종류의 성장 또는 습관 형성을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경험의 소산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어떤 방향으로의 성장이 오히려 이후의 의미 있는 경험을 어렵게 하거나 그 사람의 전체적인 통합적 성장을 가로막는다면, 교육적으로 가치 있게 연속성이 확보된 경험이라 할 수 없다. 즉, “특정한 방향으로 이루어진 발달은 그것이 계속적인 성장에 기여할 수 있을 때, 오직 그 때라야만 성장으로서의 교육이라는 준거에 부합하는 것이 될 수 있다”(EE, p. 49). 가령, 현재의 유쾌한 경험이 어느 아이에게 특정 상황에 대한 호기심 어린 흥미와 난관 극복에 필요한 목적의식을 발달시킨 경우가 있고, 다른 아이에게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만 좋아하고 인내심을 요할 때 무력해지게 된 경우가 있다면, 각각에서 연속성은 이후의 성장에 상반되게 작용한 것이다. 듀이에게 연속성의 원리는 경험이 일어나는 일반적 양상일 뿐 아니라 교육적 가치 판단의 준거가 된다. “경험의 가치는 그것이 무엇을 향해 어떠한 방향으로 움직여 나가는가 하는 점에 근거해서만 판단될 수 있다”(EE, p. 51). 따라서 교사는 경험의 기회 제공 자체에 그쳐서는 안 되며, 학생의 현재 흥미와 능력과 욕구가 변화하는 양상을 세심히 살피고 더 고양된 방향으로의 발달을 이끌어가야 한다. 즉, 학생들의 지적‧정서적 성향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후 계속적 성장에 기여할 태도와 능력이 무엇인지 판단하면서 경험의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조력해야 한다.
한편, 상호작용(interaction)의 원리는 정상적 경험을 이루는 객관적인 외적 조건과 주관적인 내적 조건의 상호성에 의해 하나의 경험적 상황이 구성됨을 뜻한다(EE, p. 57). 이것은 전근대적 관점에서 경험을 외적인 시행착오적 행위로만 보거나 근대철학의 경험론에서 경험을 독립적인 개별 주체의 내적인 인식 작용으로만 봄으로써 간과했던 특성이다. 듀이는 경험이란 고정된 외적 환경조건에 의해 틀지어지는 것만도 아니고, 고립된 자아의 내면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경험하는 사람을 둘러싼 외부의 환경과 그 사람의 현재 내적 조건이 상호작용함으로써 특정한 경험이 이루어지는 하나의 상황이 만들어진다고 본다. “경험은 언제나 한 개인과 그 시점에서 그의 환경을 형성하고 있는 것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교섭을 통하여, 즉 개인과 환경이 서로 무엇인가를 주고받음으로써 경험으로 성립되는 것이다”(EE, p. 59). 여기서 환경은 개인이 만나게 되는 사람들, 접하게 되는 책들, 대화 주제 등을 포함한다. 우리는 많은 사람과 사물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살아가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할 뿐 아니라,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의 분위기, 관습, 문화로 인해서 특정한 방향의 경험을 하도록 자극받는다. 따라서 상호작용을 교육적 경험의 가치 준거로 볼 때, 교육자의 과제는 경험이 일어나는 내적 조건(학생의 필요와 관심과 능력, 지적 정서적 성향 등)과 외적 조건(학습 소재와 방법, 교사의 말과 행동, 교실 분위기 등) 양자 모두에 평등한 권한을 부여하는 길을 찾는 데 있다.
경험의 연속성과 상호작용은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하는데, 듀이는 이것을 각각 경험의 시간 축과 공간 축, 또는 ‘종적인 측면’과 ‘횡적인 측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EE, p. 60). 우리의 경험은 지금 여기서 이루는 삶의 과정을 통해 보다 더 풍부한 의미를 축적하며 점진적으로 확장되기도 하고 위축되기도 하며,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이렇듯 개별 경험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후 경험의 특질과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점을 의식하며, 경험의 교육적 가치를 분별하고 현재 경험의 과정을 조절해나가야 한다. 연속성과 상호작용의 원리는 이러한 의미에서 교육적 경험의 준거로 제시된 것인데, 수업의 실천적 맥락에서 활용 가능하려면 그 의미를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연속성과 상호작용의 양상을 보이는 모든 경험 가운데 교육적 경험과 비교육적 경험의 구분이 가능하고 필요함을 듀이는 강조한다. 가령, 우리가 경험하는 수많은 일들 중에 우리 자신에게 궁극적으로 이로운 것도 있지만 해로운 것도 있듯이, 경험의 교육적 가치에 대해 그는 이렇게 단언한다. “모든 참된 교육이 경험을 통해서 일어난다는 신념은 모든 경험이 순전히 동일하게 교육적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EE, p. 25). 듀이는 앞서 살펴본 두 가지 원리를 경험이 일어나는 일반원리로 제안할 뿐 아니라, 이를 단위경험의 교육적 가치 판단의 준거로 활용 가능하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연속성과 상호작용은 서로 밀접하게 결합되어 경험의 교육적 의의와 가치를 재는 척도를 제공해 준다”(EE, pp. 44-45). 이 두 가지 경험의 가치 준거를 구성하는 특징적 요소들을 더 세분화하여 그가 대비시킨 교육적 경험(educative experience)과 비교육적 경험(mis-educative experience)의 의미로 풀어보면 아래의 <표 Ⅱ-1>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여기 도표에서 구분한 바와 같이, 경험의 연속성과 상호작용의 원리는 세부적으로 다음 네 가지 교육적 가치 준거로 풀어볼 수 있다. 첫째로 상호작용의 내적 조건은 경험하는 학생의 활동과 감각과 의미지각 능력이 살아있고, 행위와 느낌과 생각이 유기적, 통합적으로 작용하게 하기 위한 조건이다. 학생의 내적 조건이 상호작용하는 상황 속에 통합되지 못한 채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활동을 수동적으로 따르면서 무감각과 무관심을 초래하게 되면 비교육적이다. 둘째는 상호작용의 외적 조건인데 이것은 상호작용의 내적 조건이 잘 발휘되어 온전하게 발달하기 위해 마련되어야 할 물리적·사회적 환경 조건에 관한 것이다. 학생의 필요와 관심과 연결고리를 찾기 어려운 교육내용으로 기계적인 기능 숙달에 너무 큰 비중을 두어 전체적인 중점을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는 비교육적이다. 셋째는 단위경험의 내적 통일성에 의한 연속성으로, 마음에 그리는 목적을 지닌 하나의 경험이 흥미롭게 시작되고 발달하여 의미 있게 완결에 이를 때 교육적이라는 의미다. 반면에, 학생들의 순간적인 충동이나 즐거움의 욕구는 충족시켰을지라도 오히려 이것이 나태하고 부주의한 성향을 강화하여 이후의 유의미한 경험의 가능성을 위축시킨다면 비교육적이다. 넷째는 경험들 간의 외적 통합성에 따른 연속성으로, 단위경험들이 각기 의미가 있으면서 후속되는 경험과 밀접하게 종적·횡적 관련성을 이루며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교육적임을 뜻한다. 반면에, 경험 자체는 유쾌하고 흥미로울지라도 이후 경험과 관련 맺으며 의미를 누적해가지 못한 채 단편적으로 산만하게 흩어지는 경우에는 비교육적이다.
요약하자면, 경험이 이루어지는 양상을 밝혀주는 연속성의 원리와 상호작용의 원리는 또한 경험을 교육적인 것과 비교육적인 것으로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교육적 경험은 현재 학생들의 필요와 흥미를 자극하고 활동과 감각과 의미지각 능력을 발달시키면서 새로운 의미를 깨닫고 자기 성장에 이르게 하는 일련의 과정이요, 이를 통해 계속해서 더욱 풍부한 의미로 가득한 경험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것을 뜻한다. 반면에, 비교육적 경험은 현재 경험의 질이 조야해서 기계적이고 무감각하고 산만한 행위 습관을 형성하여 경험을 통한 배움을 방해하고 성장을 지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모든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비교육적 경험은 무엇보다 후속하는 경험의 범위를 축소시키고 느낌과 생각이 하나가 되는 행위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가로막는 방식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점에서 문제이다.
듀이는 전통적인 학교교육이 학생들을 새로운 아이디어에 무감각하게 만들고, 배움의 열의를 잃게 하였으며, 기계적인 훈련에 의한 기능 습득에만 집중함으로써 새로운 상황에서 자신의 판단력과 사고력을 행사할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 점을 비판한다. 또한, 학습 과정은 너무 지루했고, 학교에서 배운 것과 현실 삶과의 괴리가 컸으며, 책을 읽는 것을 괴롭게 여기게 하여 순간적 재미에 그치는 것들만 찾게 만들었음을 지적한다(EE, p. 34). 이러한 문제에 주목하면서 듀이는 학교교육에서 학생들에게 직접 와 닿는 현재 경험의 질이 즐겁고 유의미할 뿐 아니라 단위경험의 완성으로 이후 경험의 가능성을 계속 확장시켜줄 지적·정서적 성향 발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강조한다. 이를테면 지나치게 기계적이고 무의미한 반복 위주의 읽기와 쓰기, 셈하기 훈련은 현재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오히려 배움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만드는 점에서 문제라는 것이다. 학생이 자발적 관심과 섬세한 감각과 적극적 탐구 의지를 갖고 일련의 학습 과정을 완성하도록 조력하지 못할 때, 학교에서의 배움은 무의미하고 실제 삶과 유리된 세계로 분리되면서 경험의 통합적 자기조절 능력을 잃게 만드는 점에서 비교육적이다. 결국 학생들이 배움의 과정을 즐겁고 의미 있게 경험하며 성장하도록 이끌기 위해서 교사들이 축적해온 실천적 지혜를 바탕으로 상호 간의 교육적 경험 사례의 공유와 성찰적 대화를 통한 공동탐구가 요구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듀이가 뜻있는 교사들과 함께 설립하여 운영한 실험학교의 교육적 경험 사례를 살펴보는 것이 구체적인 이해를 위해 필요하다.
Ⅲ. 실험학교를 통한 교육적 경험의 실천적 이해
실험학교의 교육철학적 토대, 아동발달의 심리학적 기초, 실제 교육과정 구성과 운영의 특성 등에 대한 사실적 분석은 관련 선행연구들에서 다뤄져왔다(오인탁 외, 2006, pp. 126-144). 여기서는 듀이가 제안한 교육적 경험의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이론적 원리와 연결 지어 미시적으로 이해하는 데 초점을 두고자 한다. 분석의 범위는 실험학교에서 7년간에 걸쳐 실험적으로 재구성하며 발달시킨 전체 학년별 교육과정 중에서 당시 8〜10세(5그룹〜7그룹: 초등 중학년) 학생들의 연간 학습 경험을 다룬 『듀이 실험학교』 7장부터 9장으로 한정하였다. 각 장의 내용은 해당 학년 학생들의 발달 특성과 통합적 주제의 공동작업 활동을 중심으로 한 연간 경험의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분석의 절차로는, 학생들에게 유의미한 경험이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수업 사례들을 추출한 후, 듀이의 교육적 가치 준거 네 가지에 비추어 각각의 실천적 의미를 밝혀줄 맥락들을 분류하였다. 다만, 이 장에서 각 준거별로 해당 사례를 통해 풀어본 교육적 경험의 실천적 이해는 실제 수업 사례 분석이 아니고 실험학교 교육과정 실행 기록에 기초한 텍스트 분석이란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여기서 초점을 두어 분석한 시기는 아이들이 마음에 그리는 목적을 의식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하는 때로서, 전체적인 경험의 성장과 발달에 있어 매우 중요한 단계이다.5) 이 시기 어린이들은 바라는 결과를 위해 애쓰고 문제 상황에서 해결 방법을 스스로 찾고자 시도한다. 지속적으로 마음에 품은 목적을 향해 현재 자신의 활동을 수단으로 적절히 조절해 가는 단계로 특징지을 수 있다(DS, p. 143). 달성하려는 목적과 수단의 관련성을 알아가므로, 학습내용을 학생들이 직접적 흥미를 갖는 목적 실현을 위한 수단의 관계 속에서 구성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특정한 활동중심 경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 전반을 관통하는 원리인데, 자신이 바라는 결과를 인식하면 그에 필요한 지성을 얻고자 학생 스스로 의식적으로 노력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시기 어린이들은 다른 이들의 경험을 책을 통해 얻을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언어 능력과 기본 연산 능력의 숙달이 가능해진다. 또한 자의식이 형성되면서 해당 과업에 대해 자신이 해낼 수 있을지 가늠해보고 다른 친구들을 의식하기 시작하며, 행위와 결과를 관련지어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이 나아지는 시기이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여 교육과정 주제는 초기 페니키아인들의 삶과 발견과 발명을 통한 사회적 삶의 진보, 세계의 지리적 탐험과 미국 시카고 지역의 초기 개척자들과 식민지 역사와 독립혁명 등에 중점을 두어 구성하였다.
경험에 대한 듀이 견해의 독특한 점은 생명체와 환경, 자아와 세계, 주체와 객체의 연속적 상호작용으로 파악하는 데에 있다. 경험은 내부적이건 외부적이건 어느 한 편의 조건에 의해 통제될 수 없다고 본다. 결국 모든 경험이 상호작용의 결과인데, 특히 학생들의 지적·정서적·사회적 성장에 이르는 교육적 경험을 형성하려면 상호작용하는 양쪽 조건에 대한 특별한 이해와 사려 깊은 조절이 필요하다. 듀이는 “사고와 탐구의 계기가 되는 문제를 정상적으로 발생시킬 수 있는 사태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학생들로 하여금 능동적인 추구를 하도록 해야 함”을 강조한다(DE, p. 253). 먼저 실험학교에서는 상호작용의 내적 조건, 즉 학생의 심리적인 발달 조건을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사려 깊게 배려하였을까? 이와 관련된 사례들을 분석한 결과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학생들이 현재 활동에 본질적 흥미를 갖고 능동적으로 참여케 하기이다. 둘째는 현재 활동을 위해 요구되는 능력과 기능을 형성하기이다.
학생들은 특히 어릴수록 직접 해보는 활동에 흥미를 느끼고 잘 배운다고 여기면서 수업에서 이를 손쉽게 적용하곤 한다. 그렇지만 실상 모든 활동중심 수업이 교육적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듀이는 그 가치 판단의 척도로 학생의 내적 상태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능동적 행위(doing)와 민감한 감각(undergoing)과 풍부한 의미지각(meaning) 작용이 통합된 상태, 즉 학생의 ‘본질적 흥미’에 의한 능동적 참여가 교육적 경험의 필수 조건이라는 것이다.(양은주, 2003; 임황룡, 2010)6) 실험학교에서는 요리, 수공, 목공, 정원일 등 매우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졌는데, 외적 활동 소재만이 아니라 내적 조건 형성을 세심히 배려하였다. 단지 해보는 것 자체가 아니라 학생들이 본질적 흥미를 갖고 살아있는 생각과 느낌을 갖고서 새로운 의미를 알아가는 활동적 상황 구성이 관건인데 이에 관하여 다음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당시 8살이었던 5그룹 어린이들은 페니키아인들이 당시에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삶에서 편리함으로의 진보를 이루기 위하여 어떠한 해결책을 찾아갔을지 탐색하였다. 이를 위해 우선 페니키아 문명 당시의 집을 실제로 지어보기로 하고 재료를 탐색하였다.] 어린이들은 우선 돌이 그 당시에 흔했기 때문에 사용되었을 거라고 결론 내렸다. 문제는 어떻게 그 돌을 서로 달라붙게 할 것인가를 알아내야 했다. 석회의 원래 상태와 회반죽으로서의 석회의 용도에 대한 의논으로 이어졌다. 아이들은 회반죽 상자와 흙 손, 모래덩이를 작업실에서 만들어보면서 석공과 같은 역할을 해 보았다. 석회를 갖고서, 거기에 물을 섞어 넣었을 때의 반응을 살펴보는 실험을 했다. 회반죽이 만들어졌고 그 당시 지역에서 쓰였던 전형적인 집을 만들어보는 데 이를 사용하였다(DS, p. 123; [ ] 상황설명 추가).
위 사례에서는 당시 페니키아인들이 자기 부족의 안락한 삶을 위해서 해결해야 했던 문제에 대해 어린이들이 배웠던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집과 같이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활동은 이 단계의 아이들에게 직접적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쉬울 텐데, 주어진 재료와 절차에 따르는 신체활동에 그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면밀히 따져봄직하다. 초기 문명단계 사람들이 어떤 재료를 이용해서 어떻게 집을 지을 수 있었을지 아이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상상하고 세심히 느끼고 생각하면서 움직이도록 자극된 활동이었음이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옛 사람들이 수공 작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삶의 조건을 보다 나아지도록 하고자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공동의 탐구, 추측, 논의, 실험 과정을 통해 알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성의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현재 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면서 어떤 새로운 의미를 구성할 기회를 갖도록 이끌었다.
경험의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를 구성하기까지 흥미와 욕구의 내적 조건이 지속되게 하려면 현재 목적하는 활동의 완성을 위해 수단으로 요구되는 능력과 기능을 갖추어가야 한다. 듀이는 “학생들이 오직 교과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교과를 배우도록 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이유 또는 목적을 위하여 교과에 열중하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DE, p. 270). 즉, 필요한 능력과 기능의 형성을 위해 힘쓰되, 목표하는 지향점을 인식하면서 노력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경험도 도달하려는 목적을 향한 자발적인 관심과 노력이 함께 동반되지 않으면 진정으로 교육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읽기와 쓰기, 셈하기나 예술적 표현을 위한 기예 등도 여기에 포함되는데, 이러한 도구적 기능의 학습 과정에서 교육적 지원과 조력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실험학교에서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학급 학생들과 교사가 서로 익숙해짐에 따라, 그룹 내의 많은 어린이들이 쉽게 읽고 쓰는 활동을 위한 능력에서 부족하다는 점이 발견되었다. 그에 따른 결과로 함께 의논을 한 후에, 그룹 아이들은 부수적인 읽기 훈련에 더 많은 시간과 집중력을 쏟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읽기는 이전에 다루어진 내용에 대한 복습 차원에서 계획되었으며, 미국 독립혁명 이전의 식민지시기에 대한 탐구로 나아가기 위함이었다. (중략) 어린이들은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책을 잘 읽을 수 있기 전까지는 역사 공부를 계속해나갈 수 없음을 인식하였다(DS, p. 167).
듀이는 수업 자료와 방법에 있어서 획일성의 문제를 다루면서 흔히 학생들의 다양한 능력과 요구에 대해 학교 차원의 대응이 부족함을 지적한다. 특히 도구적 기능의 학습에서는 개별 학생들이 현재 준비된 능력의 차이에 따라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더 나아가 모든 학습자들이 도달하리라 기대하는 목표가 같으며, 누구나 모두 똑같은 속도로 배움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제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한다(Dewey, 1900b, p. 23). "현재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은 일을 성취해야 하는 경우에는 자꾸 좌절감만 쌓여갈 것이기 때문에 학습자의 수준을 확인하는 일은 중요하다"(Willingham, 2010, p. 21). 결국 학생에게 필요한 능력 발달을 위한 훈련을 지속해가도록 어려움과 낯설음을 매개하는 교사의 민감한 조력이 관건이다.
상호작용의 외적 조건은 개인의 필요나 욕구, 목적이나 능력 등과 상호작용하여 그 개인이 하게 되는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외적인 환경을 의미한다(EE, p. 60). 이와 관련된 실제 사례들을 분석한 결과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는 교육적 가치를 지닌 흥미의 대상을 생성하는 것이다. 둘째는 학생들 간의 의미 소통과 공동 활동을 장려하는 일이다. 셋째는 교사들의 자극과 조력, 학교 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학생이 보다 의미 있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려면 무엇보다 교사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넘어 새로운 의미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것이 교사와 학생 간의 상호작용의 질을 결정하는 첫 걸음이다. 따라서 학습자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흥미를 토대로 새롭게 확장할 수 있게 자극하고 도와야 한다. 이를 위해 실험학교에서는 학교 밖에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접하는 익숙한 내용과 밀접하게 관련된 교육과정을 고안하였다. 그는 학교와 사회적 삶과의 관계에 주목하며, 수업의 방법과 자료에 있어서도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도록 변화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어린 학생들은 구체적으로 자신의 일상 삶 속에서 배운 내용을 활용해 봄으로써 흥미 발달을 자극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순간적 흥미의 탐닉과 다르고 정교한 단계적 방향안내를 통해 의미 있는 지적 결실을 얻게 하는 과정임을 듀이는 강조하고 있다(Dewey, 1900b, p. 28; 양은주, 2018).
그날 아이들의 작업은 마침 달걀 요리하기로 되었는데, 그 과정은 채소 요리로부터 육류 요리로 넘어가는 단계였다. 채소류와 육류를 비교하기 위해 그들은 먼저 예전에 배웠던 채소류의 식품 구성성분을 정리해보았고, 육류에서 발견되는 것들과 기초적인 비교를 해보았다(Dewey, 1900b, p. 27).
이 사례로부터 우리는 실생활 속에서 익숙하게 접하는 요리 활동을 매개로 교육적 경험을 형성하기 위해 정교하게 계획된 방향안내의 방법적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여기서 요리활동은 그 자체로 직접적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라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연스럽게 과학적 내용의 학습으로 안내할 기회가 되기 때문에, 교육적 가치를 확보하게 된다. 현재 학교 현장에서 흔히 실과수업의 일부로 실행되는 요리실습과 달리, 음식 성분에 대해 사전의 과학적 이해 후에 조리 활동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점이 주목을 끈다. 보통 실과 과목과 과학의 내용을 따로 배우게 될 때에 찾기 어려운 관련성을 지각할 때 본질적 흥미가 일깨워진다고 본다.
학생들이 서로 의미 있게 소통하기 위해서는 우선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경험적 상황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사고 과정의 훈련은 실험학교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다루어진 사항 중 하나이다.7) 듀이는 어린이로 하여금 탐구의 실제적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생각하는 것을 일찍 시작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믿었다. 『어떻게 우리는 사고하는가?』에서 그는 학교에서 행해지는 생각의 진행을 저해하는 풍토에 대해 지적한다(Dewey, 1933). 첫째는, 학생들의 빠른 반응에 상당한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학교는 상당 부분 때로는 느림과 깊이 있는 반응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데 실패하였음에 주목한다. 듀이는 많은 어린이들이 지금 당장 주어진 문제에 대하여 즉시 대답하지 않으면 많은 비난이 주어질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음을 언급한다. 즉, 빠른 답변을 위한 시간의 압박은 상당히 피상적인 답변으로만 이어질 수 있다는 것으로 깊이 새겨볼 만한 대목이다(Tanner, 1997, p. 84). 수업 상황에서는 대부분 교사가 질문하였을 때 학생들이 빠른 시간 내에 대답하기를 기대하고, 학생들 역시 차분히 생각하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여유가 많지 않다. 시간을 두고 깊이 있게 생각한 후 본인이 했던 사고 과정을 다른 이들과 함께 공유하는 기회가 여러 가지 이유로 제약을 받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협력적 공동작업 활동 가운데 토론은 여러 친구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 해당 문제에 대하여 보다 생생하게 인식하며 탐구할 수 있는 좋은 통로가 되어줄 수 있다.
[10살의 어린이들이] 식민지 시기의 가정의 삶에 대한 보다 확장되고 깊이 있는 학습을 하기 위하여, 방 배치를 직접 계획하고 실행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실제 불을 놓기 위해 화롯가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정하고 첫 번째 작업으로서 돌을 즉시 모아서 분류하기로 하였다. 또, 4개의 기둥이 있는 침대 틀 만들기를 계획했으며, 의자, 큰 시계, 도는 바퀴 등이 고안되었다. 여자 아이들은 인형 옷을 입힐 것이라고 하였고 바닥에 깔 러그를 짰다. 작업은 가구에서부터 이루어졌으며 14일 안에 침대 틀, 깃털 침대, 집에서 만들어진 침구 등이 완성되었다. (중략) 이러한 과정에서 모든 제안은 어린이들이 의논해서 하였고, 도안도 짜 보았다(DS, p. 169).
위 사례를 보면 얼마나 학생들 사이의 협업이 잘 이루어졌을지 구체적인 상황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학생들이 함께 식민지 시대의 방의 배치를 재현해가면서 계획을 나름대로 세워보고, 이를 친구들과 함께 실행해보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처음에 세웠던 계획들을 변경해가면서 목적한 활동을 둘러싼 다양한 관련 내용에 대해 깊이 있게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실험학교 일상 기록의 곳곳에 보면 교사와 학생들 간에는 언제나 상당히 적극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교사는 학생들이 더 깊게 생각해 볼만한 질문거리를 직접 던지며 탐구를 자극하고, 학생들은 질문으로 떠오르는 내용에 대해 망설임 없이 교사에게 물을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모든 활동을 학생들 스스로 풀어가도록 맡기는 것이 아니고 학생들이 질문한 것에 대해서는 교사가 충분하게 보충 설명을 통해 직접 가르치기도 한다. 이러한 일련의 상호작용을 통해 활동에 관련된 학습 내용을 보다 심도 있게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학급 아이들은 영국인들이 보스톤을 떠난 후에 무엇을 했을지를 예상해보도록 질문을 받았다. 처음에는 아이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더니, 마침내 최고의 계획은 식민지를 나누어놓는 것을 시도하리라는 것에 생각이 일치했다. 캐나다에 영국 군대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한 후에, 그들 앞에 놓인 미국의 입체지도를 참고해가면서, 아이들은 북쪽과 허드슨강 계곡 둘 다로부터 챔플린(Champlain) 호수 쪽으로의 접근을 시도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DS, p. 173).
여기에 보이듯이, 교사는 학생들에게 해당 학습 내용에 대해서 미리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학생들로 하여금 실제 상황을 상상하면서 가능한 경우를 예측해 보도록 자극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학생들의 자발적 능동적 사고로 이끄는 적절한 발문을 통해 외부에서 주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 자신의 문제로 의식하며 참여하도록 이끌기 위해 노력한다.8) 학생들의 생각이 모아지고 난 이후에 수업 중간에 교사의 보충 설명을 통해 보다 심도 있는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이러한 탐구 과정으로 이끄는 발문 구성 뿐 아니라 어떤 부분까지 학생들의 추론적 과정을 기다릴지에 대한 판단은 마땅히 쉽지 않은 일이다. 실험학교에서는 매 주마다 교사들 간의 연구모임을 진행하면서 이전 주에 행했던 교육 활동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각자 어려웠던 점에 대해 협의하면서, 이를 수정하거나 발전시킬 방법을 함께 논의하였고, 그러면서 활동적 경험을 통해 추구하는 목적을 다시금 명료하게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교사들 각자가 자신들 내면에 교육적 가치 판단을 위한 독립적이고 고유한 힘이 있음을 인식하고 더욱 협력적 연대를 강화해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현재 확산 중에 있는 혁신학교 운동에서 ‘전문적 학습공동체’로서 교사들의 적극적 연대와 협력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하는 시도들과도 일맥상통한다.
듀이가 교육적 경험의 원리로 제시한 ‘연속성’은 우선 단위경험의 내적인 통일성을 말한다. 미적 경험에 기초하여 듀이가 독특하게 제시하는 견해로서, 의미 있는 경험이란 시작과 발달해가는 과정과 완결의 느낌을 통해 하나의 통일성 있는 단위를 구성한다. 따라서 단위 수업시간이든 한 해의 과정이든 교육적 경험을 이루려면, 경험이 시작, 전개, 완결의 계기를 통해 내적 통일성을 확보하도록 의식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본다.
듀이가 말한 의미 있는 하나의 경험이란 그 자체로 일관성과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 산만하게 흩어지는 경험들은 그 자체로는 즐거울지라도 교육적 경험이라 부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실험학교에서는 사전에 교사들 간의 긴밀한 협의를 통하여 단위 교육활동을 통해 추구하려는 교육적으로 가치 있는 목적을 명확히 하고, 학생들을 지도하였다.9) 다음의 수업 기록을 통해 수업에 있어서 목적의 명료화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식민지시기[의 방의 배치를 구성해보는 활동 등을 통한] 공부의 목적은 특정한 방식으로 무언가를 달성하고자 하였던 것이 아니다. 이 시기에 대한 [생생하고 포괄적인 이해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사회적 과정이 사회적인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쓰이는지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고, 어떻게 장애물이 극복되었고 이러한 결과를 얻기 위해 수단을 고안하고자 애를 쓰는지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DS, p. 176).
위 과정을 통해 추구한 교육적 목적은 전쟁과 관련한 감정적 측면보다는 나라의 지리작인 조건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었다(DS, p. 173). 이처럼 수업을 통해 활동적 경험을 시작하기 전에 아이들이 신체활동 그 자체를 넘어 도달해야 할 교육적 목적에 대해서 교사는 명확하게 인식하고 계획하어야 한다. 사전에 진행될 내용에 대해 미리 철저하게 계획하지 않으면 수업의 흐름에서 방향성을 유지하기가 어렵고, 학생들 입장에서도 중요한 배움의 내용은 놓친 채 산만한 활동에 그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오롯이 해당 학습 내용에 몰입하는 것도 어렵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Willingham, 2010, p. 20). 이러한 점에서 분명한 목적의식을 지닌 상태에서 교육 활동을 시작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실험학교에서는 본래 해당 단계의 학습자들을 위한 일반적 목적을 세운 다음, 이를 보다 구체적 형태로 만들어 가기 위하여 교사들 간에 공동탐구를 통해 교육적 목적을 구체적으로 협의하였다.
듀이가 말하는 교육적 경험은 순간적으로 경험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러한 배움으로의 경향이 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쓰기에 있어서 어린이의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그들의 기술적 부분에서의 미약함으로 인해 과도하게 점검받지 않도록 선생님 측면에 있어서 주의 깊은 계획이 필요했다. 선생님의 판단에, 흥미가 실패로 인해 시들해지면, 어린이들의 구술에 따라 선생님이 써주기도 했고, 또는 어린이들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방향으로 수업의 흐름을 전환하기도 하였다(DS, p. 148).
학습 면에서 부진한 학생의 경우 실패했던 학습 경험에 의해 더 쉽게 좌절하고, 더 깊은 학습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위 사례를 통해 교사가 그러한 학습자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세심하게 관찰해가면서 학습 과정 및 방법을 부진 학생에 적합하게 변형해서 실시해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실험학교의 수업 장면들을 보면 해당 수업 내용에 대한 복습이 이야기 형식의 재현 활동을 통해 흥미 있고 지속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단위경험을 의미 있게 마무리하기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학습 목표를 선명하게 인식한 후에 학습 활동에 몰입하고 나서는 다음 활동으로 넘어가기 이전에 해당 경험의 의미를 잘 정리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어 내용이 바뀔 때에 이전 해에서 배웠던 내용을 상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새롭게 배울 내용을 도입하는 방식은 학생들로 하여금 학습 내용에 익숙해지면서 통일성 있는 이해를 형성케 하는 중요한 배려라 할 수 있다.
뉴욕 영주 저택에서의 식민지인들의 삶과, 통나무집의 건설과 제공, 입던 옷, 먹던 음식 등의 모든 것을 상상하였다. 또한, 길렀던 작물에 대해 토의하면서, 가게에 필요한 준비와 풍력발전에 의해 운영된 공장, 곡물이 보내졌던 시장에 대해 논의하였다. 매 시간마다 이전에 배웠던 것에 대해 복습하면서, 나머지를 보충하였다. 이 이야기까지 선생님은 지속할 수 있도록 충분히 자료를 보충해주었다(DS, p. 169).
지난 경험의 의미에 대한 복습이 단순히 기계적인 반복이 아니라 정서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 형식으로 구현되면, 계속적인 배움을 위해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10) 이를 통하여 아이들도 통일성 있게 체화된 이해를 얻고, 다음 대목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흥미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교사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적절한 시기의 자료 보충은 더욱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반복과 복습의 단계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더 많이 기억하게 된다”(Paul, 1996, pp. 56-57).
단일 경험 내의 통일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 경험 간의 유기적 관계가 잘 살아나야 보다 깊이 있는 경험이 이루어질 수 있다. 경험이 분리되지 않고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공통성을 발견할 수 있을 때에 학습자는 앎의 범위를 자연스럽게 넓혀갈 수 있다.11) 실험학교에서는 과목 간에 연결고리를 설정하여 자연스럽게 맥락이 이어지도록 해서 분절되지 않은 경험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아래 사례는 자연스럽게 역사와 지리를 함께 배울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운영했던 내용이다. 정치적으로도, 지리학적으로도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시카고를 학습 내용으로 선정하였는데, 그 이유는 ‘시카고가 모피 무역과 관련되어 있었고, 북과 남이 만나는 자연스러운 지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당시 캐나다를 소유하고 있었던 영국의 영토와 한동안 미시시피 서쪽 강둑을 보유했던 스페인의 영토가 위치해 있었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지역적 환경과 교사와 학생들의 경험을 고려하여 학습내용으로 선정되었다.
디어본 요새의 큰 지도를 모둠이 함께 그렸으며, 끊임없이 책의 지도를 참고하면서, 어린이들의 흥미는 지속되어 요새의 작은 각각의 지도와 둘러싸인 지역에 대해 친숙해졌다. 모둠의 일부는 다른 아이들보다 지도를 그리는 것을 흥미로워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첫 시도에서는 불만족스러워했으며 두 번째 지도를 만들어보기를 희망했다. 몇몇은 집에서 시도해보는 것을 자청해서 했다. 한 시간은 작업에 대한 개요를 만드는 데 쓰였다. 이것은 어린이들에게서 시카고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 시리즈에 대한 제목을 제안 받음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러한 복습 과정을 통해 분절된 세부사항에 집중하기보다는 전체 주제에 관한 보다 명확하게 연속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DS, p. 149).
보통 역사 시간에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일련의 사건들과 그 의미에 대해 파악하고, 지리 시간에는 해당 지역의 지질학적 특성 등을 분절적으로 배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어린이 입장에서는 그러한 과목의 내용들을 하나의 연결된 거시적인 안목으로 바라보기가 어렵다. 이는 오히려 배워야 할 또 하나의 지식 더미를 의미할 뿐이다. 교사로서 위 사례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학생들이 상당히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 나름대로 이전에 배웠던 내용들을 지도로 표현해볼 수 있었다는 것은 내용에 대한 충실한 이해가 뒷받침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짐작된다. 또한 스스로 좀 더 정확한 지도를 만들고자 애썼던 모습에서 아이들이 해당 내용에 대한 흥미를 지속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세부 내용을 배우면서도 전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에 대해 상호관련성을 인식하도록 상기해주는 부분에서 전체적인 내용과의 연결고리를 중요시하였다.
실험학교에서의 교육과정 운영의 특징적인 부분은 통합적, 계열적 접근을 동시적으로 하였다는 것이다. 해마다 특정 주제와 관련한 내용을 거의 전 교과에 걸쳐 자세히 배웠을 뿐만이 아니라, 학년이 올라갈수록 각 교과에 있어서도 점차 깊이 있는 내용을 접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고안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역사 과목을 중심으로 하여 교육과정의 계열성을 고려하여 구성한 사례이다.
당시 9세였던 어린이들은 다양한 일을 통해 살펴본 사회생활에 대한 공부를 그 전년도까지 6년간에 걸쳐서 마무리했다. 처음 3년 동안에 어린이들은 다양한 인물들이 어떠한 활동을 하였으며, 그로 인한 결과는 무엇이었는지에 관해 흥미를 가졌다. 따라서 이 시기의 사회를 보는 어린이들의 관점은 다소 정적이었다. 사회생활에 관련된 호기심이 점차 생겨나긴 했지만, 이러한 현상들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배경에 대한 깊은 관심은 없는 상태였다. 그 다음 해에는, 초기 문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배웠으며, 발견과 발명을 통해 사회가 점진적으로 발전하였음을 알았다. 이 시기에는 어린이들이 세상의 모습과 그 모든 삶이 진보적 과정의 결과임을 어렴풋하게 알아가기 시작했다. 네 번째 해에는, 세계 대륙을 열어나간 거대한 이주와 탐험을 통해 세계는 인종과 지리적 장벽 없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형성해갔다. 어린이들은 상상 속의 여행을 통해 우주에서 지구의 장소에 관한 지식을 얻었으며 사람들이 이에 따르고 기존의 환경을 활용하기 위해 생각해낸 물리적 힘과 수단에 대해 알아갔다. 그러면서 점차적으로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어떤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연환경의 이점을 활용하고 어려운 점은 극복해갔는지를 살펴보았다(DS, p. 164).
위의 사례에 9살 어린이들이 여러 해에 걸쳐 역사 수업을 통해 배운 내용이 개략적으로 서술되어 있는데, 처음에는 인물 학습을 통하여 역사를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배려하였다. 이후에는 보다 주제와 관련된 배경을 공부하면서 넓은 시야를 점차 갖추어가도록 안내했다. 관련 주제는 이후 학년에서도 발전적으로 이어졌고 동일한 주제를 역사와 예술과 과학 등 다른 과목을 통해서도 배우도록 종적, 횡적 연계성이 고려됨으로써 점차 깊이를 더하면서도 통일성 있는 이해를 형성하도록 이끌었음을 알 수 있다.
Ⅳ. 결론
현대 기술문명사회에서 공부와 일은 갈수록 외적 결과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학생들은 배움 그 자체의 즐거움을 느끼며 몰입하는 경험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이 연구는 학교현장에서 학생들이 의미 있는 학습경험을 하고 탐구 의지와 열정을 키워가도록 어떻게 안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교사로서의 물음에서 비롯되었다. 이를 위해 교육적 경험의 원리를 제시하고 시카고대학 실험학교 설립을 통해 실천 방법을 사례로 남긴 듀이의 교육철학에 주목하였다. 듀이의 경험철학과 교육론에 대한 이론적 연구 성과들은 많이 축적되었지만 현장 교사들에게 구체적인 실천적 의미를 제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한편, 듀이는 시카고대학 실험학교의 설립과 운영을 통해 뜻있는 교사들과 함께 교육적 경험을 형성해가는 실천 사례를 남긴 바 있으나, 그에 관한 연구는 미진한 편이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교육적 경험의 의미와 방법에 대해 듀이의 교육철학 이론과 실천적 사례를 연결하여 탐구하였다.
먼저 철학의 역사에서 경험 개념이 변천한 흐름에 비추어 근대적 경험관과 구별되는 듀이의 경험관을 살펴보았다. 듀이가 교육적으로 중요시하는 ‘경험’이란 전근대적 관점에서 단순히 시행착오적인 행위나 근대적 관점에서 외부적인 감각인상의 수용이 아니라, 삶의 활동으로서 행위와 감각과 의미지각이 함께 작용하고 창조적·실험적 변화 가능성을 지닌 것을 뜻한다. 이를 토대로 경험이 일어나는 양상을 해명하고 교육적 경험을 비교육적 경험과 구분 짓기 위해 제안된 연속성과 상호작용의 원리를 단위경험의 내적 통일성과 외적 통합성 및 상호작용의 내적 조건과 외적 조건으로 세분화하여 밝혔다. 즉, 수많은 경험들 중에서도 그 자체로 내적인 일관성을 지니면서도 이전과 이후의 경험들과 긴밀히 연결되고 통합되고 또한 일련의 상호작용 과정이 그 사람의 성향 변화와 새로운 의미 지각으로 종결될 때 유의미한 경험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적 경험은 학생들에게 현재의 호기심 어린 흥미를 이끌어낼 뿐 아니라 단위경험의 과정을 통해 열의를 지속해나갈 수 있도록 자극하고 추후에도 계속적으로 경험의 범위를 새롭게 넓혀나가는 지적, 정서적 성향의 변화로 귀결되도록 도울 때 일어날 수 있다. 이렇듯 경험의 교육적 가치는 학생들에게 현재의 활동적 배움의 과정이 살아있는 의미를 지니는가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남겨지는 것이 무엇인가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듀이 실험학교의 교육과정 실행기록을 분석하여 실제 수업사례에서 교육적 경험의 네 가지 개념적 준거가 어떤 실천적 특징과 양상으로 구현되는지 밝혀보았다. 상호작용의 원리가 중점적으로 드러나는 사례들을 보면, 내적으로 학생들의 본질적 흥미를 읽어내고 현재 활동으로 흥미를 이어가면서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배려하였고, 관련되는 기초 능력과 도구적 기능을 갖출 수 있게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외적으로는 교육적 가치를 지닌 대상에 대한 흥미와 지적 호기심을 발달시키도록 돕고, 또래들 간의 의미 소통 활동과 협동적 학습의 조건을 마련하고 격려했으며, 교사 간의 자율적 협의를 통해 수업 경험의 질적 의미를 축적해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연속성의 원리가 보다 깊게 반영된 사례들에서는 마음에 그리는 학습목표를 향해 단위경험을 즐겁게 시작하고, 학습과정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의 상황에서 때로는 필요한 자료를 적절히 보충하고 배경지식을 활성화하면서 의미 있는 학습 경험이 완성되도록 돕고 배운 내용을 재현해보는 기회를 마련하여 지적인 재구성이 일어나도록 이끌었다. 이로써 단위경험의 내적인 통일성이 확보됨과 동시에, 횡적 연관성과 종적 계열성을 확대해감으로써 각 경험들이 의미 있게 연결되어 외적 통합성을 이루도록 이끌었다. 이를 종합해볼 때 학생들이 스스로 유의미한 학습 경험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실천가로서 교사의 의미가 막중함을 읽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듀이의 교육적 경험에 대한 이론적·실천적 이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육적 경험은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능동적 존재로 바라보고 그들의 질적인 반응과 성향 변화를 의미 있게 읽어낼 때 가능하다. 흔히 학습소재, 수업모형, 방법적 전략 등은 다각도로 탐색하며 상호작용의 외적 조건을 개선하는 일에는 적극적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다수의 학생들을 하나의 집단적 덩어리로 간주하고 지도함으로써 상호작용의 내적 조건은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수업을 계획하고 실행하기 위해 무엇을 투입해야 할지를 고심하는 일에 더하여, 현재 마주한 학생들이 어떤 흥미와 관심을 보이고 지속적으로 어떤 지적·정서적 성향을 발달시키는지를 섬세하게 읽어낼 수 있을 때 교육적 경험의 가능성이 열린다. 이러한 조건 마련을 위해서는 교사가 학생들의 발달 상태에 관한 일반적 이해에 더하여 개별 학생들의 행동과 정서와 생각의 변화를 민감하게 관찰하면서 교육적 의미를 읽어내는 능력을 발달시켜가도록 지원해야 한다.
둘째, 경험의 교육적 가치는 객관적으로 평가되는 지식 자체가 아니라 이후 학생에게 지속적으로 남는 성향에 달려있다. 따라서 학생들이 반드시 발달시켜야 하는 지적인 태도와 습관이 무엇인지 깊은 숙고와 성찰이 필요하다. 현대의 급변하는 지식의 특성을 감안할 때, 단순히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기존 지식과 정보의 양적인 축적을 학교교육의 목표로 삼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스스로 찾아보고 관련 자료를 정리하고 능동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세계의 지적 의미를 실감해갈 수 있도록 자기 주도적인 배움의 습관을 형성해야 한다.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단위경험의 과정을 완성해가면서 학생들은 마음에 그리는 목적 실현을 위하여 방법을 지적으로 조절해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또한 학생들이 개별적 관심을 발달시키며 지적, 정서적 성장을 이루어가는 일에 더하여, 모든 지적인 의미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관계와 소통을 통해 얻게 된다는 점에서 살아있는 지식의 교환을 경험하는 특별한 기회로서 교실에서 함께하는 공동탐구활동이 확충될 필요가 있다.
셋째, 단위경험의 내적 일관성과 경험의 연계성을 고려한 교육과정을 개발·운영해야 한다. 국가수준 교육과정 개발 단계에서 교과의 통합적 연계성은 계속 강조되어왔지만 구체적으로 수업 경험을 계획하는 관점에서 볼 때 교과의 경계와 교육내용의 분리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교사가 개별 수업을 통해 ‘하나의 경험’의 장을 마련하였다 해도 경험의 연속성이 확보되지 못하면 유의미한 경험의 축적은 가능하지 않기에, 학년 내에서 교과 간의 연관성 및 학년 간의 교과내용 계열성을 치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단위 경험 간의 관련성을 감안하지 않은 교육과정을 운영했을 경우에 학생들의 입장에서도 수많은 지식 덩어리들을 분절적으로 접하게 되기 때문에 교과 간의 유기적 관계나 전체적 구조에 대해서는 파악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통합적 연계성의 준거에 부합하는 교육과정을 개발할 뿐 아니라 학교현장의 실행 수준에서 적합성과 변용 가능성을 계속적으로 수정, 보완하는 체계가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끝으로, 실험학교 사례에서 보이듯이 교육적 경험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사들의 역량을 신뢰하는 학교 문화 조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교사는 교육적 경험이 일어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일에서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는 주체이다. 수업 전과 후에 동료 교사들 간에 자율적으로 교수학습 경험과 문제를 공유하며 더 나은 길을 공동모색하는 협의야말로 진정으로 의미 있는 수업 반성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실천적 지식을 실험학교에서처럼 기록으로 남기도록 지원하는 체계적인 노력이 병행될 때 교육적 경험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갈 수 있다. 현실적으로 교사들의 실천적 연구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관료적인 학교조직의 문제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개선의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적 경험을 위한 환경조건을 개선해감으로써 학생들과 교사가 일상 삶의 모든 과정에서 스스로 즐겁게 배움의 우물을 찾아나가도록 돕는 일은 현대 학교교육에서 부단히 새롭게 추구해가야 할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