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평가연구

2015 개정 교육과정에 근거한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 유형 탐색

조현희 1 , *
Hyunhee Cho 1 ,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고려대학교 연구교수
1Research Professor, Korea University
*제1저자 및 교신저자, hyunhc@korea.ac.kr

© Copyright 2019, Korea Institute for Curriculum and Evaluation.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ShareAlike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Apr 03, 2019; Revised: May 03, 2019; Accepted: May 17, 2019

Published Online: May 31, 2019

요약

본 논문은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에서 나타나는 의사결정 사안을 규명하고, 이러한 의사결정의 결과로서 창출되는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다양한 설계 유형을 탐색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하여 본 논문에서는 첫째, 역량기반 교육과정에 관한 주요 현안 및 쟁점을 바탕으로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에서 직면하는 의사결정 사안을 크게 두 차원으로 규명하였다. 이러한 의사결정의 한 차원은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가능성에 대한 쟁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핵심개념 및 일반화된 지식에 대한 이해(understanding)와 역량(competency) 중 무엇을 중심으로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내용 및 활동을 선정·조직할 것인지에 관한 의사결정으로 가시화된다. 다른 한 차원의 의사결정은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에서 성취기준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해야 하는가에 관한 쟁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성취기준에 의거한(standards-driven)’ 교육과정 설계와 ‘성취기준을 의식한(standards-conscious)’ 교육과정 설계 사이의 의사결정으로 가시화된다. 본 논문에서는 이와 같은 두 차원의 의사결정을 기반으로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의 4가지 유형(Type A, Type B, Type C, Type D)을 도출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우리나라 교육과정 체제에 적합한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 유형을 모색하고, 나아가 역량기반 교육과정 관련 정책 및 실행의 개선 방안을 논의하였다.

ABSTRACT

This study aims to explore types of competency-based curriculum design based upon teachers’ decision-making for their curriculum planning. By investigating current issues related to competency-based curriculum reforms, this study identified two axes of teachers’ decision-making for their competency-based curriculum planning. One axis deals with what to present as a pivot for selecting and/or organizing curriculum content and activities, such as teachers’ decision-making between a deep understanding of core concepts and generalized knowledge and a key competency, which is caused from the controversy as to whether there is a thread of connections between the Understanding by Design (UbD) and a competency-based curriculum. The other axis deals with how to understand and utilize curriculum standards, such as teachers' decision-making between standards-driven curriculum planning and standards-conscious curriculum planning, which is rooted in different epistemological stances. This study reveals that these two axes of decision-making come up with four types of competency-based curriculum design. Based on the findings, this study sought to identify a type for competency-based curriculum design that best fits the current status of South Korean education system. Suggestions and implications for educational policies and practices were also provided.

Keywords: 역량기반 교육과정; 교육과정 개발; 교육과정 설계; 이해중심 교육과정; 성취기준
Keywords: Competency-Based Curriculum; Curriculum Development; Curriculum Design; Understanding by Design; Standards

Ⅰ. 서론

지식의 폭발적 증가와 급속한 사회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미래세대 양성을 위한 21세기 교육개혁에서는 학습자들이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에서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하는가’로 논의의 초점이 전환되고 있다(Sinnema & Aitken, 2013). 지식의 단순한 습득을 넘어서 다양한 학문분야의 연계와 통합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인과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역량을 함양하는 데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역량 함양에 대한 교육계의 관심은 기존의 학교 교육이 삶에서 직면하는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문제의식과 함께 학교 교육과 학습자 삶의 연결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탄원 속에서 여러 형태의 교육개혁 운동으로 연결되고 있다(김선영, 2016).

역량은 일찍이 직업훈련 분야에서 오랜 기간 사용되어 온 개념이기는 하나(강경종, 2009), 지난 200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의해 추진된 ‘역량의 정의와 선택(Definition and Selection of Competencies, DeSeCo) 프로젝트’에서 미래사회에 필요한 역량 함양의 중요성을 공식적으로 표명함에 따라 교육 혁신과 관련하여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관심을 받게 되었다(이주연 외, 2017). DeSeCo 프로젝트에서 정의한 역량은 ‘특정한 상황이나 맥락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요구들을 개인의 심리사회적 특성들을 동원하여 성공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으로, 기존의 직업훈련 분야에서 사용되었던 기능 중심의 역량을 넘어서 지식, 행동, 가치 및 태도를 포괄하는 전인적 능력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Rychen & Salganik, 2003, p. 43). 역량에 대한 이러한 총체적인 접근을 기반으로 호주, 캐나다, 핀란드, 싱가포르 등을 비롯한 전 세계 많은 국가에서는 자국의 교육과정에 ‘역량’ 개념을 도입해왔다(백남진, 2014; 임유나, 2018).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변화의 흐름에 맞추어 기존의 지식중심 교육과정을 역량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교육 혁신에 대한 요구가 등장하였다. 2007년 대통령자문교육혁신위원회에서 제시한 ‘미래교육비전과 전략(안)’에서 미래사회에 요구되는 핵심역량을 중심으로 한 교육과정 개편이 제안되었으며,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역량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이러한 역량 교육에 대한 강조는 현재 아젠다 수준을 넘어 교육과정의 편성 및 운영과 관련한 구체적인 실행 정책으로 구현되고 있다(손민호, 조현영, 2016). 대표적인 예로 2015년 9월에 고시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국가교육과정 역사상 처음으로 역량 개념을 도입하였으며, 최종적으로 확정·고시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6개의 핵심역량(자기관리 역량, 지식정보처리 역량, 창의적 사고 역량, 심미적 감성 역량, 의사소통 역량, 공동체 역량)과 교과역량을 각각 총론과 각론에 제시하였다(교육부, 2015). 아울러 이러한 역량이 창의적 체험활동을 비롯한 학교생활 전반을 통해 함양되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으며(교육부, 2015), 2016년에는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일환으로서 전국의 중학교를 대상으로 자유학기제가 전면 시행되기도 하였다(손민호, 조현영, 2016).

역량 함양을 위한 교육과정적 변화와 대응은 역량기반 교육과정에 대한 그간의 연구 성과와 깊이 맞물려 있다. 역량기반 교육과정에 관한 국내 선행연구들을 살펴보면, 2009 개정 교육과정 고시 이전에는 주로 역량의 개념을 탐색하거나 역량 교육의 중요성을 논의한 연구들이 주를 이루었다(e.g., 소경희, 2007; 윤현진 외, 2008). 그리고 이와 같은 초기 연구들이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해외 사례를 탐색하기 위한 연구(e.g., 홍원표, 이근호, 2011; 백남진, 2014), 범교과 차원에서의 핵심역량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e.g., 이광우 외, 2009; 이근호 외, 2012) 등으로 이어지면서 2015 개정 교육과정 문서상에 역량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실질적인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였다. 한편, 2015 개정 교육과정 고시 이후에는 국가교육과정 문서상 역량 구현 방식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가 잇따랐다. 이러한 후기 연구들은 2015 개정 교육과정 상에 나타나는 핵심역량의 위상에 관한 문제(황규호, 2017), 핵심역량과 교과역량의 모호한 관계 설정에 관한 문제(강이화, 2015), 역량 함양을 목표로 한 국가수준 교육과정 내용, 방법, 평가, 지원의 일관성 문제(임유나, 2018) 등을 중심으로 국가교육과정 상 역량 구현 방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보다 최근에는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수업 지원 방안에 관한 연구(e.g., 임유나, 2016; 조수영, 2017)나 역량기반 교육과정 실천 사례에 관한 연구(e.g., 김현진, 2017; 이주연 외, 2017; 이태성, 2018)와 같이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도입된 역량을 학교 및 교실 수준의 교육과정과 수업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에 관한 연구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역량기반 교육과정에 대한 이제까지의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정작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설계 원리와 모형에 관해서는 여전히 모호한 채로 남겨져 있다(손민호, 조현영, 2016). 역량기반 교육과정 실천 사례에 대한 선행연구들이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설계의 다양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본 논문은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 방식이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둘러싼 현안 및 쟁점에 대한 의사결정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 착목하였다.

따라서 본 논문은 역량기반 교육과정에 대한 주요 쟁점을 검토하고, 이러한 쟁점으로 인해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에서 교사들이 직면하게 되는 의사결정(decision-making) 사안들을 규명하며, 각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 결과로서 창출되는 다양한 교육과정 설계 유형을 탐색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하여 먼저, 본 논문의 II장과 III장에서는 각각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가능성’에 대한 쟁점과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에서 성취기준이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에 대한 쟁점을 중심으로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둘러싼 현안 및 쟁점을 논의하고, 이러한 쟁점에서 비롯되는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의사결정 사안을 크게 ‘무엇을 중심으로 교육 내용 및 활동을 선정·조직할 것인가’와 ‘성취기준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할 것인가’라는 두 차원의 의사결정으로 규명할 것이다. IV장에서는 이러한 두 차원에 대한 의사결정 결과로 도출되는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의 4가지 유형’을 설명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V장에서는 우리나라 교육과정 체제 및 환경에 적합한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 유형은 무엇인지, 그리고 본 연구가 향후 역량기반 교육과정 관련 정책 및 실행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논의할 것이다.

본 논문은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 유형과 이러한 유형을 결정짓는 근본적인 원리들을 가시화함으로써 2015 개정 교육과정 고시 이후에 수행된 역량기반 교육과정 실천 사례들을 보다 깊은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며, 아울러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지원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Ⅱ. 교육 내용 및 활동의 중심: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가능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바탕으로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표방한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역량 함양의 중요성을 공식적으로 표명하고 총론과 각론 수준에 각각 핵심역량과 교과역량을 반영함으로써 국가 교육과정 문서상 역량의 구현을 현실화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역량기반 교육과정이 핵심개념, 일반화, 기능 등 이해중심 교육과정에서 사용되는 용어들과 ‘함께’ 도입되면서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가능성을 두고 상반된 입장이 대두되었으며, 이로 인해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구현하는 데 있어서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한혜정, 이주연, 2017, p. 208). 본 장에서는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가능성에 대한 쟁점을 구체화하고, 이러한 쟁점에 대한 의사결정에 따라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 방식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논의하고자 한다.

1.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 가능성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가능성에 대한 입장은 역량교육의 교육론적 위치에 대한 철학적 관점을 토대로 한다. 예컨대 역량교육이 행동주의 및 사회적 효율성, 형식도야이론 및 자유교육론, 학문중심 교육과정, 진보주의 교육과정 등과 같은 교육론과 관련하여 어떠한 위치를 점하는가에 대해 서로 다른 철학적 관점이 존재하며(정영근, 민용성, 이주연, 2018), 이러한 관점에 따라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에 대한 입장이 상이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두 교육과정의 공존가능성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입장을 역량교육의 교육론적 위치에 대한 철학적 관점과 관련지어 설명하고, 이러한 두 입장이 교육과정 설계 맥락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논의하면 다음과 같다.

가.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에 대한 긍정적 입장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두 교육과정이 ‘지식의 수행’을 중심으로 교차한다는 점에 근거한다. 역량중심 교육개혁의 역사를 고찰한 백남진, 온정덕(2014)의 연구에서는 역량 교육의 근원을 1910년대 후반에 등장한 ‘사회적 효율성 운동(social efficacy movement)’과 1970년대에 확산된 ‘능력중심교육운동(competence-based education movement)’ 및 ‘결과중심교육(outcome-based education)’으로 규명함으로써 역량기반 교육과정에서 수행이 지니는 의미와 가치를 강조하였다. 또한 역량기반 교육과정이 지식의 수행을 강조하며 1980년대 후반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된 ‘성취기준운동(standards movement)’과 비슷한 맥락에 있는 것으로 규명함으로써, ‘성취기준운동’의 이론적인 기반이 되었던 이해중심 교육과정과 역량기반 교육과정이 사실상 역사적 궤를 같이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입장은 내용에 대한 이해는 곧 수행을 의미하며, 수행은 역량을 함의하는 개념이자 역량 구현의 수단이 되는 동시에 수행을 통해 역량이 드러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해와 수행, 그리고 역량이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라는 논리를 전제로 한다(백남진, 온정덕, 2014, pp. 31-32).

수행은 관찰 가능하고 측정 가능한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을 넘어서는 개념이며, 지식을 적용하는 과업을 강조한다(Marzano & Kendall, 1995, p. 44). 즉, 수행은 학생이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적용하고 나타내는 것에 초점을 둠으로써(Foriska, 1998, p. 3) 역량을 함의하는 개념이다...(중략)...교과 교육과정 개발 과정에서 역량은 수행을 통해 드러나는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역량은 ‘잘 할 수 있는 능력’이며 이는 수행을 통해서 드러난다. 즉, 역량은 특정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개인의 특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역량(능력)의 개념을 학교 교육과정과 결부지어 생각해보면, 결국 학생의 교육 내용에 대한 ‘이해’가 된다. ‘이해’는 학습의 전이를 목표로 하며, 학습자가 습득한 지식을 맥락 속에서 의미를 파악하고 그것을 새로운 상황에서 유연하면서도 유창하게 적용시켜 새로운 산출물이나 결과물을 도출하는 수행으로 정의된다(김경자, 온정덕, 2011)

이해, 수행, 역량에 관한 위의 논의에 따르면, 심층적인 이해는 지식의 수행을 의미하며, 지식의 수행은 곧 역량의 함양을 의미하므로, 결과적으로 심층적인 이해는 역량의 함양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역량과 이해를 사실상 동일한 개념으로 정의하고, 수행을 역량 및 이해를 함의하는 개념이자 역량 및 이해를 함양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의함으로써 이해중심 교육과정과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공존가능성을 타진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역량교육의 교육론적 위치를 학문중심 교육과정과 관련지어 설명한 홍원표, 이근호, 이은영(2010)의 연구 또한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을 지지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다. 해당 연구에서는 브루너의 교육과정 이론과 역량기반 교육과정이 지식 전달 및 암기 위주의 수업을 지양하고 탐구 중심의 학습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교차하며, 역량교육과 교과교육이 결코 대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홍원표, 이근호, 이은영, 2010). 이러한 주장을 이해중심 교육과정이 학문중심 교육과정과 유사한 이론적 관점을 공유한다는 주장(한혜정, 이주연, 2017)과 연결하면, 학문중심 교육과정의 탐구학습을 중심으로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 사이에 광막한 공유지대가 형성된다.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은 전자와 후자를 각각 교육 목표와 내용 차원으로 구별하는 방식으로 그 정당성이 논의되기도 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시안 개발 연구(김경자 외, 2015)에서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역량과 함께 핵심개념, 일반화된 지식, 기능 등이 들어온 이유를 ‘역량 함양의 목표’와 ‘이해 중심의 내용 선정 및 조직’이라는 논리로 설명하고 있다. 역량 함양을 위해 무엇보다 교육과정 내용의 적정화가 요구되는데, 이에 대해 단순한 내용(학습량)의 양적 조정을 넘어 내용의 질적 개선을 도모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핵심개념, 일반화된 지식, 기능 등을 중심으로 교육과정 내용이 재구조화되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김경자 외, 2015, p. 24).

나.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에 대한 부정적 입장

2015 개정 교육과정이 고시된 이후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 또한 대두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2018년 12월에 개최된 제3차 국가교육과정 전문가 포럼에서 강현석(2018)은 2015 개정 교육과정에 구현된 역량중심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불안한 동거’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두 교육과정이 ‘한편으로 관련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대립적 관계에 있는 모양새’를 그리고 있음을 술회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와 같은 ‘불안한 동거’로 인해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현장 교사들의 혼란이 가중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은 크게 교육사조 및 교육론, 교육 내용 및 목표, 그리고 교육과정에 대한 철학적 관점이라는 세 측면에서 논의된다. 먼저, 교육사조 및 교육론 측면에서의 논의는 이해중심 교육과정이 학문중심 교육과정과 유사한 이론적 관점을 공유하는 반면, 역량기반 교육과정은 이들과 다른 이론적 관점을 토대로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한혜정, 이주연, 2017). 이와 같은 전제 하에 수행된 임유나, 홍후조(2016)의 연구에서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핵심개념을 중심으로 각 교과의 내용 체계를 재구조화한 것은 학문중심 교육과정과 지향을 같이 하는 것으로, 핵심역량과 교과역량을 함양하기 위한 방안으로서의 타당성과 적합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하였다. 실제 학교 현장의 교사들 또한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도입된 핵심개념과 일반화된 지식을 지식중심 교육과정과 유사한 개념으로 오해하여 지식중심 교육으로의 회귀를 우려한다는 점이 보고되기도 하였다(한혜정, 이주연, 2017). 일부 연구에서는 이해중심 교육과정과 역량기반 교육과정이 지식의 학문적 전이를 넘어 실생활로의 전이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교차하면서도 두 교육과정에서 지식의 구조가 차지하는 위상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공존가능성에 대해서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강현석, 2018; 한혜정, 이주연, 2017).

둘째, 교육 내용 및 목표에 측면에서의 논의는 이해중심 교육과정이 지식과 기능 중심의 인지적 능력 발달에 무게를 두는 반면, 역량기반 교육과정은 가치 및 태도를 포함한 총체적 능력의 함양을 강조한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한혜정, 이주연, 2017). 이는 역량기반 교육과정에 대한 보다 최근의 논의들이 역량의 정의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중심 교육과정은 정의적 능력을 함양하는 데 여전히 취약하다는 평가와도 맞물려 있다. 역량기반 교육과정이 정의적 영역의 발달을 강조한다는 주장은 역량이 특정 상황에서 심리사회적 자원을 동원하여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으로서 지식뿐 아니라 동기와 기질적 특성을 포함하며, 이에 역량교육은 지식, 기능, 가치 및 태도를 포함한 모든 영역의 전인적 발달을 지향한다는 점을 근거로 삼는다(Trilling & Fadel, 2009; Wiley & Haertel, 1996; OECD, 2005). 한편, 이해중심 교육과정이 정의적 영역의 발달을 간과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해중심 교육과정에 근거한 성취기준이 지식(인지적)과 수행(행동적)을 중심으로 진술되어 사실상 가치·태도(정의적)를 함양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지 않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된다(김선영, 2016).

캐나다, 싱가포르 등과 같이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표방하고 있는 일부 국가에서 정의적 영역의 성취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정의적 측면과 전인적 성격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볼 수는 있겠으나, 이러한 접근이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이론적 토대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않는다(한혜정, 이주연, 2017). 더군다나 지난 2015년 이후부터 추진되어 온 ‘OECD 교육 2030(OECD Education 2030)’ 프로젝트에서는 이제까지의 역량교육에서 지식과 기술에 비해 다소 간과되어 온 ‘가치 및 윤리(value and ethics)'를 보다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이상은, 2018) 정의적 영역을 축으로 한 이해중심 교육과정과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간극은 보다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교육과정에 대한 철학적 관점의 측면에서 볼 때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가능성은 역량기반 교육과정에 대한 존재론적 접근에서 한층 불투명해진다.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미래사회의 학습 속성에 비추어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대안적 방향을 탐색한 이상은(2018)의 연구에서는 ‘수행성’이 강조되고 있는 현재의 역량기반 교육과정이 ‘존재론적 접근’을 토대로 한 역량기반 교육과정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음을 제안하였다. 비슷한 맥락에서 역량의 총체성에 주목한 손민호, 조현영(2016)의 연구에서는 아이덴티티의 형성 과정이자 삶의 궤적으로 재개념화한 역량기반 교육과정이 제안되기도 하였다. 해당 연구에서는 핵심역량을 바라보는 입장을 교육의 수월성과 지식의 수행성 및 책무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입장과 지식기반사회를 넘어서는 지속가능한 보편적 인격성을 강조하는 ‘공동체주의적’ 입장으로 구분하고, 전자에 대한 경계와 후자에 대한 지지를 아래와 같이 표명하였다.

전자(신자유주의적 관점)는 ‘지식기반사회에 대비하는 교육의 수월성 및 지식의 수행성과 학교의 책무성을 강조하면서 기능적 합리성을 극대화하는 방안으로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역설해 온 반면, 후자(공동체주의적 관점)는 ’지식기반사회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경험을 다루는 교육과정의 주요성을 강조해왔다. 예컨대 창의성이나 협력이라는 가치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준비시켜야 할 지식기반사회에 부응하는 새롭게 부각된 가치이기도 하지만 ’오래된 미래‘와 같이 새로운 사회에서도 지속가능하게 될 보편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전자(신자유주의적 관점)의 입장에서는 역량은 지식의 수행적 가치를 지적인 행위는 표출된 행동이어야 한다는 행동주의적 인식과 더불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는 결과의 효율성을 제1목표로 두고 사태를 인식하기 때문에 초래된 현상이다.

이해중심 교육과정이 실제 행동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여기서 지칭하는 ‘신자유주의적’ 역량교육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이 지식(앎)의 수행성을 중시한다는 면에서 인식론적 입장을 공유한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공동체주의적 관점을 기반으로 한 역량기반 교육과정에서 ‘지식’ 혹은 ‘앎’이라고 하는 것은 의도된 결과라기보다는 ‘구성원들이 함께 공존하면서 의미를 공유하고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며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기반으로 해서 나오는 부차적 산물’이다(손민호, 조현영, 2016, p. 147). 이를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개혁 흐름에 비추어보면,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의 기조를 해체하고 교육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데 중점을 둔 문재인 정부의 교육개혁 기조(성열관, 2018) 하에 추진될 혹은 추진되어야 할 공동체주의적 역량기반 교육과정에서는 이해중심 교육과정이 상존할 수 있는 공간이 점차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2. 무엇을 중심으로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내용과 활동을 선정·조직할 것인가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가능성에 대한 시각에 따라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에서 교육 내용 및 활동을 설계하는 방식이 상이하게 나타날 수 있다. 먼저, 지식의 수행을 중심으로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을 추구하는 입장에서는 핵심개념과 원리, 일반화된 지식을 기반으로 한 빅 아이디어(big ideas)를 중심으로 교육 내용과 활동을 선정, 조직함으로써 이해(지식의 수행)를 증진시킬 수 있으며, 이러한 이해의 증진이 곧 역량의 함양과 연결된다고 본다(백남진, 온정덕, 2014; 김선영, 2016). 반면,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핵심개념, 원리, 일반화된 지식 등을 중심으로 설계된 내용 체계를 통해 역량을 함양한다는 것이 이론적, 논리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임유나, 홍후조, 2016; 한혜정, 이주연, 2017).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에 대한 대립된 입장은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내용 및 활동을 이해(핵심개념 및 일반화된 지식)를 중심으로 선정·조직할 것인지, 역량을 중심으로 선정·조직할 것인지에 대한 의사결정으로 연결된다. 이를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의 맥락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 이해(understanding)를 중심으로 한 내용과 활동의 선정·조직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하는 경우, 학교 및 교실 수준에서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역량 및 교과역량을 교육과정의 궁극적인 지향으로 고려하는 한편, 교과별 핵심개념, 원리, 일반화된 지식으로 구성된 내용 체계를 기반으로 빅 아이디어를 선정하고, 이러한 빅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교육 내용과 활동을 선정, 조직하는 방식에 따라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설계할 수 있다. 이는 2015 개정 교육과정 시안 연구(김경자 외, 2015)에서 제시하고 있는 교육과정 설계 방안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역량을 일종의 상위 목표로서 염두하고 고려하되 빅 아이디어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학교 및 교실 수준의 교육과정과 수업을 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교육과정과 교수학습 설계를 관통하는 중심적인 위치와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이해(understanding)이며, 이러한 이해를 통해 역량이 함양된다는 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빅 아이디어에 대한 ‘이해’라는 것은 빅 아이디어에 대한 수행을 의미하기 때문에 빅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선정·조직된 내용과 활동은 지식과 수행을 결합한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선정·조직된 내용 및 활동과 사실상 유사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설계 방식은 Drake(2007)의 통합교육과정 설계 모형에서도 일부 나타난다. 해당 모형에서는 교사들이 교육과정 및 수업 설계에 앞서 빅 아이디어를 선정하고, 이러한 빅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교과별 성취기준들을 선정, 조직한 후, 성취기준의 도달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평가와 그 과정을 지원하기 위한 구체적인 교수학습 경험을 창안하는 방식으로 교육과정 및 수업 설계가 진행된다. 아울러 교사들은 학생들이 함양해야 할 인성(dispositions)을 선정하고 이를 교육과정 및 수업 설계에서 지속적으로 고려한다. 여기에서 성취기준에 도달하도록 돕기 위한 평가와 교수학습을 창안한다는 것은 지식의 수행, 즉 이해를 중심으로 교육과정과 수업을 설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학습자들이 함양해야 할 인성을 선정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은 지식, 기능의 발달과 더불어 가치·태도의 발달을 지원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로써 역량교육에서 추구하는 전인교육과 지향을 같이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김선영(2016)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교과별 성취기준이 핵심역량 및 교과역량을 달성하기 위한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으며, 정의적 측면의 성취기준을 새롭게 도입함으로써 가치·태도를 포함한 전인적 발달을 추구하는 역량중심 교육과정을 보다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음을 제안하였다.

국내 초등학교 역량기반 교육과정 재구성 사례를 탐구한 김현진(2017)의 연구에서도 ‘이해 중심의 교육과정 설계를 통한 역량 함양’의 단면이 제시되고 있다. 해당 연구의 대상이 된 A학교와 B학교의 교사들은 교육과정 설계에 앞서 학생들이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에 관한 철학을 공유하고, 이를 기반으로 공통된 가치 주제를 선정하였다. 다음으로 사회과, 도덕과, 과학과의 성취기준을 가치 주제별로 배열하고, 이러한 성취기준들을 고려하여 교수학습 활동을 선정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활동별 관련 핵심역량을 찾아 해당 활동에 추가하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두 학교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에서 성취기준, 즉 이해(지식의 수행)를 중심으로 교육 내용 및 활동이 선정되는 한편, 역량은 교육과정 설계의 커다란 방향을 제시하면서도 교육과정 및 교수학습을 설계하는 데 직접적으로 혹은 긴밀하게 관여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나. 역량(competency)을 중심으로 한 내용과 활동의 선정·조직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경우, 다시 말해 두 교육과정이 교육에 대한 이론적, 철학적 토대를 달리하며 교육 내용 및 방법에 있어서도 상이한 접근을 취한다고 상정하는 경우에는 핵심개념과 일반화된 지식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의 논리적 타당성이 약화된다(한혜정, 이주연, 2017).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역량을 중심으로 한 교육 내용과 활동을 설계가 제안된다.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실천 사례를 분석한 이주연 외(2017)의 연구에서는 역량을 중심으로 학교 및 교실 수준의 교육과정을 재구성해나가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해당 연구의 대상이 된 교육과정 연구학교 6개교에서는 학교 단위에서 선정한 역량의 개념을 명확히 하는 가운데 역량의 하위요소들을 규명하였으며, 이러한 역량을 함양하는 데 적합한 성취기준들을 교과별로 찾아내어 연결하는 방식으로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설계하였다.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역량기반 교육과정 재구성 사례를 분석한 김현진(2017)의 연구에 참여한 3개교 중 C학교에서는 역량을 중심으로 학교 및 교실 수준의 교육과정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하였다. C학교의 교사들은 먼저 교원 협의회를 통해 핵심역량을 연구, 선정하였으며, 이렇게 선정된 역량을 기반으로 전 교과목의 과목별, 단원별, 차시별 핵심역량을 분석하고 분류하였다. 다음으로 교과 성취기준을 역량별로 분류하고 재배열하였으며, 최종적으로는 역량을 기반으로 한 주제 중심의 교육과정을 창안하였다. 이처럼 C학교에서는 역량을 교육과정 재구성을 위한 기준이자 방향으로 정의하는 동시에 역량을 교육과정 분석과 설계의 축으로 활용한 것을 볼 수 있다(김현진, 2017).

역량 중심의 교육과정 설계를 시도한 위의 사례들에 나타난 공통점은 역량이 교육과정 설계의 커다란 방향을 제시하는 동시에 교육 내용 선정 및 조직의 실질적인 기준이 되었다는 점이다. 한편, 핵심개념 및 일반화된 지식에 대한 수행, 즉 이해의 도달점으로서 진술된 성취기준은 역량중심 교육과정 설계를 지원하는 유용한 자원이자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즉, 성취기준이 교사들로 하여금 학생들이 습득해야 할 지식과 기능을 도달점의 형태로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학교 및 교실 수준 교육과정의 책무성을 확인하고 보장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로 활용된 것이다.

역량기반 교육과정에 대한 공동체주의적 혹은 존재론적 접근에서는 교육과정 설계 과정에서 역량이나 이해가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이 위의 사례들과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역량에 대한 공동체주의적 혹은 존재론적 접근에서는 ‘핵심역량의 하위요소를 가법적으로 다루는 것(손민호, 조현영, 2016, p. 147)’이나 ‘역량을 하위요소를 가르쳐서 전체 역량의 총량을 높이는 것(김현진, 2017, p. 104)’이 역량 함양을 위한 교육과정 설계 방식으로서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며, 이러한 점에서 앞서 제시한 역량기반 교육과정 재구성의 방법론적 타당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특히 역량에 대한 존재론적 접근은 역량의 가치·태도 영역을 강조하면서도 역량을 구성하는 지식(지식), 기능(실천), 가치·태도(정서) 영역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이상은, 2018), 이러한 접근에서는 ‘정의적 측면의 성취기준을 부가적으로 진술함으로써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전인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주장의 논리적 타당성 또한 약화된다. 그밖에도 역량에 대한 공동체주의적 혹은 존재론적 접근에서는 지식(앎)이라는 것을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의미를 나누고, 공유된 소속감과 정체성을 형성하며,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부차적 산물’로 정의하기 때문에(손민호, 조현영, 2016, p. 147) 이러한 접근에서는 지식 수행의 도달점이자 지향점으로 진술되는 성취기준의 존립 자체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요컨대 성취기준의 수행적, 결과중심적 성격이 존속되는 한 성취기준의 진술방식을 변화시키거나 정의적 측면의 성취기준을 추가하는 것은 공동체주의적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질을 제고하는 데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의 중심이 이해가 되어야 하느냐, 역량이 되어야 하느냐, 혹은 인격성이나 인격체와 같은 또 다른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의 문제는 단순하고 표면적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며, 그 기저에는 이해중심 교육과정과 역량기반 교육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역량 함양을 위한 교육과정 설계에서 무엇을 중심으로 교육 내용과 활동을 선정, 조직할 것인가에 대한 의사결정은 학교공동체 구성원들이 어떠한 지식(앎)에 대한 어떠한 인식론적 관점을 지니고 있는지, 학교 교육의 의미를 무엇으로부터 찾고 있는지, 그리고 이해중심 교육과정과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를 기반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Ⅲ. 성취기준의 이해 및 활용: 성취기준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바탕으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국가 교육과정 사상 최초로 역량 개념을 도입하는 한편, 각론에 있어서는 제7차 교육과정부터 시행된 ‘성취기준’ 진술 체제를 유지하였다. 이에 2015 개정 교육과정 고시를 전후로 역량기반 교육과정에서 추구해야 할 성취기준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이러한 논의는 성취기준이 교과역량 및 핵심역량을 달성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견해에서부터 성취기준이 교사의 교육과정 자율성을 제한함으로써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재구성을 실천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견해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다. 예컨대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반영된 핵심역량을 신자유주의에서 공동체주의로의 교육개혁 흐름에서 논의한 성열관(2018)은 현행 성취기준이 지닌 통제적 법규로서의 성격을 ‘행위유도성을 지닌 최소 기준’으로서의 성격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였으며, 구체적인 방안으로 교사 수준의 성취기준 개발, 성취기준의 예시화 등을 제안하였다. 또한 이근호 외(2013)의 연구에서는 핵심역량의 상당 부분이 학습의 과정을 통해 길러진다는 점에 주목하여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내용과 행동목표의 혼합형 성취기준 제시 방식’이 향후에는 ‘활동 안내형 성취기준 제시 방식’으로 변화될 필요가 있음을 제안하였다. 이처럼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둘러싸고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성취기준이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본 연구에서는 보다 근본적으로 성취기준의 위상 및 역할에 대한 쟁점이 학교 지식(school knowledge)과 학생 지식(student knowledge)에 관한 서로 다른 인식론적 관점에서 비롯되며, 이러한 쟁점이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에서 성취기준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의사결정으로 연결된다고 보았다. 이를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의 맥락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에서 성취기준이 지니는 위상과 역할

모든 학생들에게 유의미하고 효과적인 학습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학교 교육의 대명제로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되어 왔다. 그 중에서도 학습자의 선행 경험과 지식을 학습자가 배워야 할 지식과 연결하는 것은 효과적인 교수학습 설계 원리로서 수년간 그 중요성이 강조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습자의 경험적, 문화적 지식과 같이 학습자가 학교 안팎에서 습득한 암묵지와 실천지가 학교 교육과정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이견이 존재해왔다. Paulo Freire, Henry Giroux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비판교육학자로 잘 알려진 McLaren(1991)은 일찍이 ‘학교를 통해 전수되는 지식’과 ‘가정이나 지역사회를 통해 체화되는 지식’을 각각 학교 지식(school knowledge)과 학생 지식(student knowledge)으로 구분하고, 두 지식 사이에 나타나는 권력 역학을 규명하였다.

오늘날의 교육과정 맥락에서 본다면 McLaren(1991)이 지칭한 학교 지식은 사실상 공통교육과정의 성취기준과 맥을 같이하며, 이러한 성취기준과 학생의 경험적, 문화적 지식을 연결하기 위한 방안은 보다 보수적인 접근에서 비판적인 접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의 접근으로 나타난다(Rodriguez, 2013). 공통교육과정으로서 성취기준이 지닌 주류중심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학생들의 경험적, 문화적 지식을 학교 교육의 장으로 초대함으로써 학교교육과정의 다양성을 촉진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보수적인 접근과 비판적인 접근 사이에 커다란 이견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각 접근에서 학생들의 경험적, 문화적 지식이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에 있어서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먼저, 보수적인 접근에서는 학생 지식이 학교 지식을 보다 효과적으로 학습하도록 돕는 일종의 수단이 된다. 학교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습득해야 할 지식과 기술은 공통교육과정 상 성취기준으로 제시되며, 학생들이 자신에게 보다 유의미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성취기준에 도달하도록 돕기 위해 학생들의 경험적, 문화적 지식을 활용하여 교수학습을 설계하는 것이다. 반면, 비판적인 접근에서는 학생 지식을 기반으로 학교 지식이 전면적으로 재구조화된다. 학생들의 경험적, 문화적 지식과 기능이 차지하는 위상이 성취기준(공통교육과정에서 제시하는 지식과 기능)의 위상과 평등화되는 동시에 공통교육과정의 일부를 구성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면서, 공통교육과정의 성격에 대한 질적 변혁(transformation)이 일어나는 것이다(Banks, 1994).

비슷한 맥락의 논의를 지식자본(funds of knowledge) 이론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지식자본은 ‘가정과 개인의 안녕한 삶을 위하여 역사적으로 축적되고 개발된 지식과 기술의 집합체(Gonzalez et al., 1995, pp. 446-447)’로서, 지식자본을 활용하여 교육과정을 설계한다는 것은 학습자가 속한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암묵지 혹은 실천지를 공통교육과정에 제시된 학문적 지식과 기능, 즉 성취기준과 긴밀히 연결하여 교수학습을 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학생 지식을 학교 지식과 연결함으로써 학생들이 학교 지식을 보다 유의미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McLaren, 1991). 지식자본 이론의 궁극적인 목적은 학교 지식과 학생 지식, 교사와 학생, 그리고 주류집단과 소수집단 간에 나타나는 권력 역학을 평형화하는 데 있다(Rodriguez, 20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학교 및 교실 수준의 교육과정 설계에서 지식자본 이론에 접근하는 방식은 다양하게 시도될 수 있다. 공통교육과정 상의 성취기준을 학생들에게 보다 유의미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가르치기 위해 학생들의 문화적 지식자본을 활용하여 학교 및 교실 수준의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것이 다소 소극적인 수준의 접근이라고 한다면, 학생과 학생이 속한 가정 및 지역사회가 보유한 지식, 기능, 가치 등을 토대로 공통교육과정 혹은 성취기준 자체를 재구조화하는 것은 보다 비판적인 수준의 접근이라 할 수 있다(Moll, 1992).

요컨대, 학교 및 교실 수준의 교육과정 설계 방식은 성취기준의 위상과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고 해석하는지에 따라 보수적인 수준에서 보다 비판적인 수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나며, 이러한 성취기준의 위상과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고 해석하는지는 보다 근본적으로 학교 지식과 학생 지식 간 역학에 관한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수준의 성취기준 체제는 국가 내 모든 학생들이 그 배경에 관계없이 질 높은 교육과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취지를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점에서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성취기준 재구조화에 대해서는 보다 세심하고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2.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에서 성취기준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할 것인가

국가교육과정은 교육과정에 대한 강제성과 자율성 간의 접점을 제공하는 거버넌스로서의 기능을 지니고 있으며(성열관, 2018), 이러한 국가교육과정 체제 하에서 학교 및 교실 수준의 교과 교육과정을 설계할 때 성취기준은 중앙정부와 교사 사이의 권한을 조정하는 실질적인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학교 및 교실 수준의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경우 교사가 성취기준의 위상과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즉 성취기준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는지에 따라 교육과정 설계 방식이 상이하게 나타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Sleeter & Carmona(2017)는 국가 혹은 주 단위의 성취기준이 제시되는 교육과정 체제 하에서 학교 및 교실 수준의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교사들이 성취기준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방식을 크게 ‘성취기준에 의거한 교육과정 설계(standards-driven curriculum planning)’와 ‘성취기준을 의식한 교육과정 설계(standards-conscious curriculum planning)'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가. 성취기준에 의거한(standards-driven)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

‘성취기준에 의거한’ 교육과정 설계의 첫 번째 단계는 공통교육과정에 제시된 성취기준들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으로, 성취기준이 교육과정 설계의 출발점이 된다(Sleeter & Carmona, 2017). 다음으로 교사는 교과별 성취기준에 포함되거나 직접적으로 관련된 빅 아이디어들을 도출해낸다. 이어서 빅 아이디어들을 중심으로 성취기준을 재배열한 후, 성취기준의 도달 정도를 파악하기 위한 평가와 함께 성취기준에 도달하도록 돕는 교수학습 경험을 창안한다. 이 때 학생들의 경험적, 문화적 지식은 학생들이 성취기준에 유의미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도달하도록 돕기 위한 유용한 교수 자료로 활용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나타나듯, 성취기준에 의거한 교육과정 설계에서 성취기준은 학교 및 교실 수준 교육과정의 주요 자원이 되며, 학생들의 경험과 문화는 효과적인 교수학습을 지원하기 위한 수단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성취기준에 의거한’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경우, 역량은 일종의 지향점이자 철학적 토대로서 해당 교육과정의 커다란 그림을 제시하기는 하나 교육과정 설계의 각 단계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않는다. 초등학교 역량기반 교육과정 실천 사례를 분석한 김현진(2017)의 연구에 나타난 교육과정 설계 방식을 예로 들 수 있다. 해당 연구의 대상으로 선정된 A학교와 B학교의 교사들은 교과별 성취기준과 단원별 내용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가치 있는 주제들을 선정하였으며, 이러한 주제들을 중심으로 성취기준을 재배열하고, 마지막으로 성취기준에 따라 교수학습 내용과 활동을 선정, 조직하였다. 교사들은 교육과정 설계에 앞서 역량에 대한 철학적 관점을 공유하고, 교육과정 설계 이후 활동별 관련 핵심역량을 찾아서 추가하기도 하였으나, 실질적인 교육 내용 및 활동의 선정과 조직은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빅 아이디어 대신 주제를 도출한 점에 있어서는 Sleeter & Carmona(2017)가 설명한 ‘성취기준에 의거한 교육과정 설계’와 다소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성취기준으로부터 주제가 도출되고 성취기준에 따라 교수학습 내용과 활동이 선정, 조직된 점에서 볼 때 두 교육과정 설계에서 성취기준이 지니는 위상과 역할이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밖에도 A학교와 B학교의 교사들은 성취기준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활동들을 포함시키고자 하는 경우 이를 창의적 체험활동에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성취기준 자체의 재구성(추가, 삭제, 통합, 변경)은 전혀 시도되지 않았다.

나. 성취기준을 의식한(standards-conscious)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

‘성취기준을 의식한’ 교육과정 설계에서 성취기준은 교육과정 설계의 출발점이 아닌 일종의 도구가 되며, 교육과정의 이념이나 중핵 아이디어를 정의하는 역할을 담당하지도 않는다(Sleeter & Carmona, 2017). 이러한 교육과정 설계의 첫 번째 단계로서 교사는 학생들의 경험적, 문화적 지식과 기능, 흥미, 그리고 교사의 흥미를 포함한 광범위한 자원들을 포괄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교육과정의 중핵이 되는 빅 아이디어를 선정한다. 교사들이 협력적으로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경우 이 단계에서 교사들은 지식에 대한 인식론적 관점과 학교교육에 대한 철학적 관점을 공유하며, 학생들과 학생들이 속한 가정 및 지역사회에 대해 탐구한 내용을 공유한다. 교사들은 빅 아이디어를 선정하는 단계에서 성취기준을 참고할 수는 있으나, 빅 아이디어의 선정 범위를 성취기준에서 다루는 지식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이어서 선정된 빅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내용 지도를 그린 후, 관련된 성취기준들을 연결한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유의미하고 효과적인 방식의 평가 및 교수학습을 구안한다. 이와 같은 교육과정 설계에서 성취기준과 학생들의 경험적, 문화적 지식은 빅 아이디어를 선정하는 데 동등한 수준으로 고려되며, 하나가 다른 하나의 목적이나 수단이 되지 않는다.

‘성취기준을 의식한’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는 역량의 성격과 지향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다소 상이한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다. 이를 앞서 논의한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가능성의 맥락에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경우 빅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하되 빅 아이디어를 선정하는 단계에서 성취기준과 학생들의 경험적, 문화적 지식이 동시에 고려될 것이다. 반면,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에서는 빅 아이디어에 대한 이해 대신 역량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할 것이며, 역량을 선정하는 데 있어 성취기준과 함께 학생들의 경험적, 문화적 지식과 기능이 고려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술한 두 교육과정 설계 방식은 학생들이 무엇을 알아야하고,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하는지를 선정하는 데 있어 성취기준뿐 아니라 학생들의 경험적, 문화적 지식, 그리고 교사와 학생들의 흥미 등이 포괄적으로 고려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에서 학생들의 경험, 문화, 지식, 흥미 등이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이 성취기준과 비슷한 수준으로 강화됨으로써 학생 지식과 학교 지식 간 권력 조정 혹은 평등화(equalization)가 일어나는 것이다.

국가교육과정의 엄격성이 상대적으로 큰 우리나라의 경우 학생의 특성이나 학교 여건에 따라 교과협의회를 통해 성취기준을 재구조화할 수는 있으나(교육부, 2015), 실질적으로는 학교 및 교실 수준의 교육과정 실행에서 이러한 재구조화의 범위가 성취기준의 ‘추가' 혹은 ‘통합'으로 제한되어 ‘삭제'나 ‘변경'은 불가한 것으로 논의되고 있다(서경혜, 2016; 이윤미, 조상연, 정광순, 2015). 이러한 구조적 혹은 체제적 연유로 ‘성취기준을 의식한’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에 대한 국내 실천 사례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일부 비슷한 성격을 지닌 사례가 김현진(2017)의 연구에 제시되고 있다. 이 연구에 참여한 C학교 교사들은 교원 협의회를 통해 핵심역량을 연구, 선정하였으며, 교사 설문과 학부모 설문을 통해 역량별 차시량을 증배 혹은 감축하였다. 다음으로는 선정된 역량별로 성취기준을 분류하였으며, 역량에 따른 주제 및 교수학습 내용과 활동을 구안하였다. 이주연 외(2017)의 연구에 참여한 교육과정 연구학교 6개교의 교사들 또한 역량의 개념과 하위요소를 우선적으로 선정하였으며, 이후 성취기준을 교과별로 찾아 연결하는 방식으로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설계하였다.

위의 두 사례에 나타나는 공통점은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데 있어 성취기준의 위상과 역할이 다소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학교 수준의 핵심역량을 선정하는 단계에서 학생들의 경험적, 문화적 지식이 공식적으로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이 단계에서 학생들의 흥미와 요구가 비공식적인 형태로 논의되기도 하였으며, 이와 동시에 역량 선정에 있어 성취기준이 차지하는 위상은 다소 약화되었다. 또한 교육과정 설계 전반에 걸쳐 성취기준이 국가교육과정의 강제성을 강화하는 규율로서의 역할보다는 교사들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지원하는 유용한 도구로서 기능한 것을 볼 수 있었다(김현진, 2017; 이주연 외, 2017).

IV. 학교 및 교실 수준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의 네 가지 유형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는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에 대한 의사결정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가능성에 대한 입장에 따라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에서 무엇을 중심으로 교육 내용 및 활동을 선정·조직할 것인지에 관한 의사결정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음을 설명하였다. 아울러, 공통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이 지닌 위상과 역할에 대한 인식에 따라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에 성취기준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의사결정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을 설명하였다. 이러한 두 차원의 의사결정을 기반으로 도출되는 학교 및 교실 수준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4가지 설계 유형을 도식화하면 [그림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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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의 네 가지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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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도식에서 가로축은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에서 무엇을 중심으로 교육 내용과 활동을 선정·조직할 것인지에 대한 것으로, 그 중심이 핵심개념과 일반화된 지식에 대한 이해(understanding)가 되어야 하는지 혹은 역량(competency)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사결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사결정은 이해중심 교육과정과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공존가능성에 대한 입장을 기반으로 하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역량 혹은 역량교육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와 같은 철학적, 인식론적 관점에서 비롯된다. 한편, 도식의 세로축은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데 있어서 성취기준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관한 의사결정으로 ‘성취기준에 의거한(standards-driven)’ 설계와 ‘성취기준을 의식한(standards-conscious)’ 설계 사이에서의 선택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사결정은 교육과정 설계에 있어 성취기준의 위상과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고 해석하는지, 학교 지식과 학생 지식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다 근본적으로는 지식(앎)을 무엇으로 정의하는지와 같은 인식론적 관점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각 차원에 대한 의사결정의 결과로 도출되는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네 가지 설계 유형을 상술하면 다음과 같다.

1. Type A: 성취기준에 의거한 이해 중심의 교육과정 설계

Type A는 핵심개념 및 일반화된 지식을 기반으로 선정된 빅 아이디어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유형이며, 동시에 성취기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유형이다. 이와 같은 설계 유형은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이 지식의 수행을 중심으로 같은 맥락에 있다는 인식에 기반하며, 핵심개념 및 일반화된 지식으로 구성된 내용 체계를 이해하는 것이 역량을 함양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는 논리, 즉 이해와 역량이 각각 내용과 목표로 연결될 수 있다는 논리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이 유형에서 역량은 교육과정의 지향으로서 큰 그림을 제시하기는 하지만, 교육 내용 및 활동을 선정하고 조직하는 데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않는다. 한편, 교육 내용 및 활동은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선정·조직된다. Type A에서 성취기준은 빅 아이디어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촉진하는 동시에 역량을 함양하기 위한 자원이자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의 출발점이 되며, 학생들의 경험적, 문화적 지식은 이러한 성취기준에 쉽고 유의미한 방식으로 도달하도록 돕는 유용한 교수 자료가 된다.

Type A에서 나타나는 교육과정 설계 방식의 구체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먼저 교사들은 국가교육과정에서 제시하는 교과별 성취기준을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학교교육을 통해 함양해야 할 빅 아이디어를 도출한다. 다음으로는 빅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교과별 성취기준을 재배열한다. 마지막으로 교사는 학생들의 성취기준 도달 정도를 파악하기 위한 평가과제와 함께 학생들의 경험적, 문화적 지식을 반영한 교수학습을 창안한다. 교사들은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설계에 앞서 역량에 관한 철학적 관점을 서로 간에 공유하고, 학교교육을 통해 함양해야 할 역량에 관해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 및 교실 수준의 교육과정을 통해 함양되는 실질적인 역량은 어디까지나 국가교육과정 및 성취기준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2. Type B: 성취기준에 의거한 역량 중심의 교육과정 설계

Type B는 역량을 중심으로 성취기준에 따라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유형이다. 빅 아이디어에 대한 이해가 아닌 역량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한다는 점에서는 Type A와 구별되지만, 성취기준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는 Type A와 동일하다.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에 대한 이러한 의사결정은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을 토대로 한다. 한편,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엄격성과 책무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서 성취기준의 위상과 역할이 높이 평가되며, 학생들의 문화적, 경험적 지식은 학생들이 성취기준에 보다 효과적이고 유의미한 방식으로 도달하도록 돕기 위한 수단으로서 활용된다. 이 유형에서는 현행 성취기준이 지식의 수행을 중심으로, 즉 지식과 기능을 결합한 형태로 진술되어 역량의 가치·태도적인 측면을 함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정의적 측면의 성취기준을 부가적으로 진술하는 방안이 제시될 수 있다. 역량의 전인적 성격과 관련하여 성취기준의 정당성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공통교육과정 상에 새로운 성취기준을 개발(추가)함으로써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전인성을 강화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Type B에서 나타나는 교육과정 설계 방식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 먼저 교사들은 교과별 성취기준을 면밀히 검토함여 성취기준에 반영된 주요 역량들을 도출한다. 다음으로 교과별 성취기준들을 역량에 따라 재배열하고, 마지막으로 성취기준 도달 정도를 판단하기 위한 평가와 함께 학생들의 경험적, 문화적 지식을 반영한 성취기준 기반의 교수학습을 창안한다. 이러한 유형에서 역량은 성취기준을 재배열하는 기준으로서 교육 내용 및 활동을 선정·조직하는 과정에 보다 직접적으로 관여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역량은 어디까지 성취기준에 대한 검토를 통해 도출된 것으로 학생 특성과 학교 여건을 반영한 특색 있는 역량이라기보다는 국가교육과정에서 제시하는 핵심역량 및 교과역량의 연장(延長)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유형에서 교사들은 사전 협의회를 통해 국가교육과정에 제시된 핵심역량과 교과역량 중 학생과 학교의 상황 및 맥락을 고려할 때 더욱 ‘강조’되어야 할 역량들이 무엇인지에 관한 합의를 도출해볼 수 있을 것이다(이주연 외, 2017).

3. Type C: 성취기준을 의식한 이해 중심의 교육과정 설계

Type C는 빅 아이디어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설계하되, 성취기준에 의존하기보다는 성취기준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활용하는 교육과정 설계 유형이다. 이러한 의사결정은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가능성을 전제로 하며, 핵심개념과 일반화된 지식에 대한 이해가 역량의 함양으로 연결된다는 논리를 기반으로 한다. Type A와 마찬가지로 Type C에서 역량은 교육과정의 커다란 지향을 제시하기는 하나, 교육 내용 및 활동을 선정·조직하는 원리나 기준으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대신 핵심개념과 일반화된 지식을 기반으로 선정된 빅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교육 내용 및 활동이 설계된다. 성취기준은 이러한 빅 아이디어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로 활용되며, 필요한 경우에는 빅 아이디어를 선정하는 데 참고할 수 있다. 또한 학습자의 경험적, 문화적 지식은 빅 아이디어를 선정하는 단계에서부터 빅 아이디어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는 교수학습 내용과 방법을 선정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교육과정 설계 전반에 걸친 의사결정에 중요한 자원을 제공한다.

구체적인 예를 통해 Type C에서 나타나는 교육과정 설계 방식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의 첫 단계로서 교사들은 성취기준뿐 아니라 학생들의 경험적, 문화적 지식, 학생들의 흥미, 교사의 흥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학생들이 이해해야 할 빅 아이디어를 선정한다. 여기서 빅 아이디어는 성취기준으로부터 진술될 수도 있으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다음으로는 빅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성취기준을 재구조화한다. 이 때 성취기준을 어느 수준까지 재구조화할 수 있는가는 국가 혹은 주 수준의 교육과정 체제가 지닌 유연성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국가 혹은 주 수준의 성취기준에 대한 교사의 자율성 범위가 상대적으로 큰 미국에서는 빅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성취기준이 추가(개발), 통합, 변경, 삭제될 수 있을 것이며(Sleeter & Carmona, 2017), 국가교육과정의 권한과 성취기준 적용의 경직성이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교사가 성취기준을 통합하거나 추가(개발)할 수는 있으나 변경이나 삭제는 불가한 범위로 제한될 것이다(서경혜, 2016; 이윤미, 조상연, 정광순, 2015). Type C의 마지막 단계는 학생들의 경험적, 문화적 지식을 바탕으로 빅 아이디어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는 교수학습과 평가를 구안하는 것이다. 이러한 설계 유형에서 역량은 교육과정의 지향을 제시하나, 교육과정 설계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않는다.

4.Type D: 성취기준을 의식한 역량 중심의 교육과정 설계

Type D는 협의를 통해 도출된 역량을 중심으로 성취기준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활용하는 가운데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유형이다. 역량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한다는 점에서는 Type B와 유사하지만, 성취기준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는 점에서 Type B와 구별된다. 핵심개념 및 일반화된 지식으로 구성된 빅 아이디어 대신 역량 자체를 교육과정 설계의 중심으로 선정하는 것은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을 토대로 한다. 또한 성취기준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성취기준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재구조화하는 것은 학교 지식과 학생 지식에 대한 변환적인 인식론을 기반으로 한다. 이 유형에서 학생들의 문화적, 경험적 지식은 역량을 선정하는 단계에서부터 역량 함양을 촉진하는 교수학습 평가를 구안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교육과정 설계 전반에 걸쳐 교육 내용과 활동을 구성하는 중요한 자원이 된다. 즉, 학생들의 경험적, 문화적 지식이 기존의 성취기준에 보다 효과적이고 유의미한 방식으로 도달하도록 돕는 유용한 교수학습 자원(instructional materials)으로서의 가치를 넘어서서 학교 혹은 교실 내의 모든 학생들이 함께 배워야 할 내용지식(content knowledge)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Gay, 2018; Moll, 1992)

Type D의 교육과정 설계방식을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설계하기 위한 첫 단계로서 교사들은 학생들의 경험적, 문화적 지식, 흥미, 교사 자신의 가치와 흥미, 그리고 공통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학생들이 함양해야 할 주요 역량들을 선정한다. 이와 같이 학교 수준에서 협의를 통해 역량을 선정하는 과정은 공통교육과정의 강제성 정도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날 수 있다. 예컨대, 국가교육과정에 대한 충실도 관점이 상대적으로 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국가교육과정에 제시된 핵심역량 중 일부 역량을 강조하는 수준으로 학교 수준의 역량 선정이 제한될 수 있으나(이주연 외, 2017), 공통교육과정 적용 체제의 유연성이 큰 국가(주)의 경우에는 공통교육과정에 제시된 역량을 참조하되 학생의 특성과 학교의 여건을 반영한 특색 있는 역량을 도출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교사들은 앞서 협의를 통해 선정된 주요 역량들을 중심으로 기존의 성취기준과 학생들의 경험적, 문화적 지식을 통합하여 성취기준을 재구조화한다. 마찬가지로, 성취기준 재구조화의 범위나 수준은 해당 국가 혹은 주 교육과정의 경직성과 유연성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사들은 학생들의 경험적, 문화적 지식과 성취기준을 고려하며 역량의 함양을 촉진하는 구체적인 교수학습과 평가를 구안한다.

V. 논의 및 제언

2015 개정 교육과정 고시 이후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실천 사례가 증가하는 가운데 본 논문에서는 역량기반 교육과정에 관한 쟁점을 둘러싸고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현장 교사들이 직면하게 되는 의사결정 사안과 이러한 의사결정 결과로서 창출되는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다양한 설계 유형을 조명하였다. 보다 구체적으로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가능성에 대한 쟁점은 핵심개념 및 일반화된 지식에 대한 이해(understanding)와 역량(competency) 중 무엇을 중심으로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내용 및 활동을 선정·조직할 것인가에 관한 의사결정으로 가시화되었다. 또한 성취기준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쟁점은 ‘성취기준에 의거한(standards-driven)’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와 ‘성취기준을 의식한(standards-conscious)’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 사이의 의사결정으로 가시화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이와 같은 두 차원의 의사결정에 대한 결과로서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의 4가지 유형(Type A, Type B, Type C, Type D)을 도출하였으며, 각 유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의 구체적인 단계와 절차를 설명하였다. 본 장에서는 교육과정 설계의 중심과 성취기준의 위상 및 역할에 관한 앞선 논의들을 확장하고,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4가지 설계 유형을 우리나라 교육 체제 및 환경의 맥락에서 보다 심층적으로 논의하며, 교육 정책과 실행 및 후속연구를 위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에 있어 무엇을 중심으로 교육 내용 및 활동을 선정·조직할 것인가에 대한 보다 적절한 판단을 돕기 위해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가능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역량기반 교육과정이 핵심개념 및 일반화된 지식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하는지, ‘역량’을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사결정이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이해중심 교육과정의 공존가능성에 대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 입장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날 수 있음을 설명하였다. 두 교육과정의 공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 핵심개념 및 일반화된 지식으로부터 선정된 빅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내용과 활동을 선정·조직하는 설계 방식에 논리적 모순이 없겠으나, 두 교육과정의 공존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설계 방식의 이론적, 논리적 타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이해중심 교육과정과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공존가능성에 대한 상반된 입장이 엇갈리는 가운데(e.g., 백남진, 온정덕, 2014; 김선영, 2016; 강현석. 2018; 임유나, 홍후조, 2016),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학교 및 교실 현장의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해중심 교육과정과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공존에 관한 일정 수준의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학문적 노력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밖에도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성격과 지향에 관한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보다 최근에는 역량의 보편적 인격성을 강조하는 공동체주의적 접근(Hargreaves & Shirley, 2009; Hargreaves, 2011), 역량의 가치 및 윤리적 측면에 중점을 둔 존재론적 접근(이상은, 2018), 역량의 총체성 및 공동체주의의 따뜻한 역량에 주목하여 역량을 아이덴티티로 재개념화하고자 하는 접근(손민호, 조현영, 2016) 등 역량기반 교육과정에 대한 대안적 접근들이 밀도 있게 논의되면서 이해중심 교육과정과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공존가능성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지고 있을 뿐 아니라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역량 구현 방식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 또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비판과 우려는 주로 가법적 형태의 역량교육 모형이 지닌 한계와 ‘핵심개념 및 일반화된 지식에 대한 이해를 통해 역량을 함양한다’는 명제가 지닌 이론적, 논리적 타당성 여부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나타난다. 이해중심 교육과정과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공존가능성에 대한 탐색과 함께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성격과 지향을 탐색하기 위한 학문적 노력과 그 성과는 현장 교사들이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중심으로 교육 내용과 활동을 선정·조직해야 할 것인지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데 유용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둘째,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실행을 지원하기 위한 성취기준 적용체제 마련이 시급하다. 본 논문에서는 학교 및 교실 수준의 교육과정 설계에서 나타나는 성취기준의 위상과 역할을 ‘성취기준에 의거한’ 교육과정 설계와 ‘성취기준을 의식한’ 교육과정 설계로 구분하여 설명하였으나 사실상 성취기준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의사결정은 해당 국가 혹은 주 교육체제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Gay, 2015; Cho, 2018a). 가령, 국가교육과정에 대한 충실도가 높고 성취기준 활용에 대한 교사의 자율성이 다소 제한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성취기준을 의식한’ 교육과정 설계가 극히 소극적인 수준에서 시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국내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실천 사례를 분석한 이주연 외(2017)의 연구에 참여한 교사들은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내용과 활동을 반영하는 교과 성취기준이 부재한 경우 성취기준을 새롭게 개발하기보다는 창의적 체험활동에 편성된 시수를 교과활동 시수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대응한 것을 볼 수 있다.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설계가 학교 및 교실 수준의 교육과정 재구성을 활성화한다는 점에서 볼 때(이주연 외, 2017),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실천 사례가 증가할수록 교육과정 재구성에 참여하는 교사들이 증가할 것이며, 이러한 교사들은 성취기준 활용의 제한된 범위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딜레마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추광재, 2018; 한광웅, 2010; 조현희, 최진영, 이정열, 2015; Cho, 2018a).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교육과정 자율성과 책무성 사이의 딜레마를 창의적인 방식으로 극복해나가는 교사들의 사례를 조명하는 것도 중요하기는 하나(Cho, 2018b), 보다 근본적으로는 교사의 교육과정 전문성과 자율성 신장에 조응하는 성취기준 적용 체제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활성화를 비롯하여 고교학점제, 교육과정 대강화, 혁신학교 확대 등 변화하는 미래사회에 대한 교육과정적 대응이 교육에 대한 학생의 선택권과 교사의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보다 유연한 성취기준 적용 체제가 구축될 필요가 있다. 성취기준에 관한 현행 규정에서는 현장의 교사들이 ‘학생의 특성·학교 여건 등에 따라 교육과정 및 교과서 내용을 분석하여 교과협의회를 통해 (성취기준을) 재구조화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교육부, 2015). 그러나 규정상 ‘재구조화’의 의미와 범위가 여전히 모호한 채로 남아 있으며, ‘교과협의회를 통해’ 가능하다는 규정은 교실 맥락이나 교사 전문성에 따른 성취기준 재구조화에 대한 실질적인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성열관, 2018). 교육과정의 강제성과 자율성 혹은 보편성과 다양성 사이의 접점을 제공하는 국가교육과정의 기능을 현재와 미래 사회에 보다 적절한 방식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교과 교육과정에 있어서도 변화와 개선이 필요하며, 이러한 맥락에서 성취기준 적용 체제 마련을 위한 논의의 장이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교실(교사) 수준에서 성취기준의 ‘통합’ 뿐 아니라 새로운 성취기준의 ‘개발’과 기존 성취기준에 대한 선택적 ‘삭제’와 ‘변경’이 가능한 미국의 사례(Sleeter & Carmona, 2017), 국가가 교육과정의 커다란 방향을 설정하고 학교 및 교실 수준에서 최종적으로 성취기준을 선정, 개발하는 핀란드의 사례(Sahlberg, 2014) 등 성취기준 적용 체제와 관련한 해외 사례들이 폭넓게 검토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본 논문에서 도출한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4가지 설계 유형 중 2015 개정 교육과정에 근거한 우리나라의 현행 교육 체제 및 환경에 가장 적합한 유형은 무엇인가? 교육과정에 대한 공동체주의적 접근과 함께 학교 및 교실 수준의 교육과정 자율성 및 다양성이 확대되는 등 미래사회에 대한 교육과정적 대응의 전반적인 흐름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유형은 Type D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ype D가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비롯한 현행 교육 체제와 환경에 가장 적합한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 유형이라고 단언하기에는 해결해야 할 난제가 산적해있다. 특히 성취기준에 대한 현행 규정을 고려할 때 ‘성취기준을 의식한’ 교육과정 설계를 지향하는 Type C와 Type D의 현실적인 범위는 성취기준의 ‘추가(개발)’과 ‘통합’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2015 개정 교육과정에 근거한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모형으로서 적합성이 높은 유형이라고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이해중심 교육과정과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공존을 전제로 개발되었으며(김경자 외, 2015), 성취기준에 관한 현행 규정이 교사의 성취기준 재구조화에 대한 제약과 모호함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성열관, 2018) 현 교육과정 체제에 가장 적합한 유형은 오히려 Type A인 것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Type D의 현장 적합성에 대한 평가는 향후 이해중심 교육과정과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공존가능성에 대한 이론적, 경험적 연구들이 어떠한 합의점을 그려나갈 것인지,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성격과 지향에 대한 논의가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 성취기준에 관한 규정이 어떠한 방향으로 개선될 것인지 혹은 어떠한 형태의 성취기준 적용 체제가 구축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가 Type A에 제한될 때, 즉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역량 구현 방식에 가장 밀착된 방식으로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설계했을 때 그 결과로서 도출된 교육과정이 과연 역량 ‘기반’ 교육과정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총론에서 표명한 핵심역량이 교과 교육과정 문서뿐 아니라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수업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학교 교육과정 핵심역량→교과 역량→(수행능력으로서의) 기능→(수업, 학습) 활동’이라는 구도를 구축하였으나(이광우 외, 2015), 핵심역량이 교과 역량과 (수행능력으로서의) 기능으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역량 개념이 지닌 총체성이 상당 부분 기능 중심으로 수렴되는 측면이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사실상 핵심역량을 토대나 축으로 하여 교육(교과) 내용을 설계, 조정, 재편한 ‘핵심역량 기반 교육과정(key competency-based curriculum)' 혹은 ‘핵심역량 중심 교육과정(key competence-centered curriculum)'이라기보다 교과(분과) 교육과정을 유지하면서 핵심역량을 고려하는 ‘핵심역량 반영 교육과정(key competency reflecting curriculum)’이라는 점에서 볼 때(정영근, 민용성, 이주연, 2018) 현행 교육과정을 가장 무리 없이 따르는 Type A의 결과로 도출되는 교육과정은 엄밀히 말하면 ‘역량기반 교육과정’보다는 ‘역량반영 교육과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학교 및 교실 수준에서 역량 ‘기반’의 교육과정을 설계한다는 것은 그 중심을 이해(understanding)로 설정하든 역량(competency)으로 설정하든 결국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모종의 재구성을 동반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역량의 중요성을 표명하고 이를 교육과정 상에 구현하고 있을지라도, 학교 및 교실 수준의 교육과정이 역량의 ‘반영’을 넘어서서 역량 ‘기반’의 교육과정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현행 교육과정 체제와 관련 규정들을 거스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Type B, Type C, Type D 등과 같은 설계 유형들이 보다 폭넓게 시도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2015 개정 교육과정 문서상의 성취기준을 변경하거나 삭제하지 않는 범위에서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성취기준(특히 정의적 영역의 성취기준)을 추가(개발)하거나 통합하는 가운데, ‘이해’ 혹은 ‘역량’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함으로써 ‘역량반영 교육과정’으로서의 2015 개정 교육과정이 학교 및 교실 수준의 다양한 ‘역량기반 교육과정’으로 입체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 유형을 탐색한 본 논문은 이론적 연구로서 수반하는 불가피한 방법론적 한계 이외에도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을 모두 포괄하지는 못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논문은 학교 및 교실 수준의 다양한 역량기반 교육과정 실천 사례를 분석할 수 있는 유용한 이론적 틀을 제시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밖에도 본 논문은 역량기반 교육과정과 관련하여 정책 및 실행을 위한 시사점을 제공하였다. 먼저, 교육 정책 측면에서는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실천이 증가함에 따라 국가교육과정, 특히 교육과정 각론의 성취기준 적용 체제의 유연성이 향상될 필요가 있음을 제안하였다. 교육 실행 측면에서는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설계에 있어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의사결정 사안이 무엇인지, 그러한 의사결정이 어떠한 이론적 입장과 인식론적 관점에 근거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의사결정에 따라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설계 유형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였으며, 이러한 지식과 정보는 역량교육에 대한 교사들의 교육과정 전문성 향상을 촉진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이 학교 및 교실 수준의 역량기반 교육과정 실천에 관한 논의의 장을 확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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