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성취평가제는 학생 점수의 상대적 서열에 따라 누가 더 잘했는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무엇을 어느 정도 성취하였는가’ 를 평가하는 제도로, 교육과정에 근거하여 개발된 교과목 별 성취수준에 도달한 정도로 학생의 학업 수준을 평가한다(서민희 외, 2015). 이는 학생의 개인별 성취수준을 성취기준과 성취수준에 근거하여 평가하는 준거참조평가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종래의 규준참조평가(상대평가)에서 얻지 못했던 학생의 실질적 수준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 있다는 이점을 지닌다. 따라서 현재 교육부에서는 2025년 고교 학점제의 본격적 시행을 위하여 단위학교 내신 성취평가제의 정착을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2019년에는 고1부터 진로선택 과목의 성취도를, 2025년에는 고1부터 모든 과목에서 성취도를 대입에 반영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1)
그런데 성취평가제의 성공적 안착에는 다음과 같은 현실적 어려움이 존재한다. 먼저, 성취평가 결과에 대한 신뢰도 문제이다. 고등학교는 지역별 학력 수준과 교육 여건의 편차가 크고 학교 유형이 다양하기 때문에 단위학교에서 산출해내는 평가 결과를 공정하게 비교하는 일은 쉽지 않다(김순남 외, 2014). 특히 내신평가 결과가 대학입시에 반영되는 현재의 대입 체제 속에서는 성취평가제의 이점이 오용되어 단위학교의 성적 부풀리기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교사가 시험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경우 상위등급 학생의 부재라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성취평가는 교사가 사전 설정한 준거에 학생들이 도달하지 못한 경우 높은 등급을 받지 못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므로 교사의 난이도 조절 실패가 학생의 성적에 치명적 영향을 끼칠 수가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교사의 평가 전문성에 관한 문제이다. 2012년부터 성취평가제가 도입된 중학교와는 달리 고등학교는 2016년에서야 성취평가제가 전 학년을 대상으로 확대 적용되었기 때문에 교사들의 성취평가제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석차 9등급제와 성취평가제가 병기되는 현 상황은 교사로 하여금 성취평가제가 형식적이고 업무를 가중시키는 제도로 인식되게 하여(김신영, 2012; 손민정 외, 2015) 제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적용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교사가 평가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채 기계적인 평가업무를 처리하게 만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성취평가제도의 지속성에 관한 의문이다. 2011년 교육부가 발표한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에서 공식적으로 도입된 성취평가제는 2012년 중학교 전 교과와 고등학교 전문 교과를 시작으로 하여 2014년부터는 고등학교 보통교과2)에 연차적으로 적용, 현재는 모든 학년에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성취평가제의 대입 반영과 그 시점에 대한 교육부의 잦은 입장 변경3)을 두고 교사들은 성취평가제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다른 정책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박은아 외, 2014). 또한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권 맞춤식 교육정책을 내어놓는 관행으로 인해 최근 8년 사이에 세 번이나 이루어진 교육과정 개정은 성취평가제에 대한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회의적인 입장을 이끌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 준거참조평가를 채택하여 적용하고 있는 해외의 사례를 살펴보는 일은 성취평가제의 성공적 안착을 위한 유의미한 시사점을 가져다 줄 수 있다. 핀란드의 경우 대학 입시에 있어서 고교 내신의 반영, 표준화된 국가시험, 그리고 형태는 상이하지만 대학별 고사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핀란드는 내신 성적보다 고등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대학입학자격시험이 대학 입시에 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소속 학교의 교육과정에 충실한 학생이 대학 입시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또한 내신을 반영하는 대학에서도 준거참조평가 방식에 따른 평균 평점을 점수화하여 반영하므로 내신 성적이 상대적 서열이 아닌 학생의 실질적 학습 수준과 능력을 증명해 보이는 절차로서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으로 인해 핀란드 교사는 준거참조평가의 본래적 목적인 학생의 성장과 발달을 도모하는 피드백 제공에 집중할 수 있다. 이렇듯 고교 내신, 대학입학시험, 대학별 고사가 공존하는 가운데에서도 고등학교 교육이 독립성을 지니는 핀란드의 사례는 우리 교육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나침반이 되어줄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2019년부터 성취평가제를 대학입시에 반영할 계획을 갖고 있으므로, 양국의 내신평가 체제에 대한 비교 분석은 성취평가제의 성공적 정착을 위한 시사점을 탐색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한국과 핀란드의 고등학교 내신평가체제를 비교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하고자 하며 다음의 연구 문제를 지닌다. 단, 연구의 간결성과 명확성을 위하여 연구의 범위를 인문계 고등학교에 한정 짓도록 한다.
Ⅱ. 이론적 배경
본 연구에서는 한국과 핀란드의 내신평가체제를 비교하기에 앞서 성취평가제도에 대한 개략적 이해와 더불어 한국과 핀란드의 교육체제 비교를 이론적 배경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양국의 교육체제에 대한 비교를 앞세우는 것은 내신평가체제의 근간을 살필 수 있게 하며 더 넓은 맥락에서의 이해를 도모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의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에 따라 도입된 성취평가제는 ‘학생이 무엇을 어느 정도 성취하였는가’를 평가하는 제도로, 평가의 준거가 되는 성취기준과 성취수준에 비추어 학생의 성취도를 판단하는 준거참조평가이다(서민희 외, 2015). 기존의 석차 9등급제가 비교 집단 내에서 상대적인 서열을 매기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면 성취평가제는 기준 성취율에 근거하여 개인의 성취율을 판단하는 데 중점을 둔다. 따라서 성취평가제는 학습자의 개별적 특성을 존중하는 평가, 다양한 평가 도구를 활용한 맞춤형 교수·학습 실천에 부합하는 평가로의 패러다임을 전환한 것이다(김신영, 2012; 지은림, 2011). 이러한 성취평가제는 2012년 중등학교 전 학년 및 고등학교 시범 적용을 시작으로 2014년부터는 고등학교에 학년별 순차 적용되어 2016년에는 전 학년을 대상으로 확대되었다. 단, 단위학교 학생평가의 질 관리와 성취평가제의 점진적 전환을 위하여 기존의 석차 9등급제와 5등급 성취평가제는 병기되고 있으며 대학입시에는 현재 석차 9등급제가 반영되고 있다. 성취평가 결과의 대입 반영은 2019년 진로선택 과목을 시작으로 차기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2025년 고1 모든 과목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성취평가제에서 제시하는 학기 단위 성취수준은 아래 <표 Ⅱ-1> 와 같다.
성취도 | 정의 | 기준 성취율 |
---|---|---|
A | 성취기준에 대한 이해와 수행이 매우 우수한 수준 | 90% 이상 |
B | 성취기준에 대한 이해와 수행이 우수한 수준 | 80~90% |
C | 성취기준에 대한 이해와 수행이 보통 수준 | 70~80% |
D | 성취기준에 대한 이해와 수행이 다소 미흡한 수준 | 60~70% |
E | 성취기준에 대한 이해와 수행이 미흡한 수준 | 60% 미만 |
* 출처 : 서민희 외(2015). 성취평가제의 이해와 실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ORM 2015-109.
핀란드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학생 평가의 목적은 학생들의 학습을 안내하고 촉진하며 자기평가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있다. 그리고 학생들의 학습은 다양하게 평가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진다(General Upper Secondary Schools Act, 629/1998, Section 17(1)). 따라서 학생에 대한 평가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거친 학생들의 학습 결과 및 학습 향상 정도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해주는 데 초점을 두고 있으며 따라서 ‘해당 과목의 목표에 어느 정도 도달하였으며 어느 정도 향상 되었는가’를 판단하는 준거참조평가방식을 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각 교과 교사는 자신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학생 평가를 이루며, 학점 기준은 아래와 같다(김순남 외, 2014).
성취도 | 10점 | 9점 | 8점 | 7점 | 6점 | 5점 | 4점 이하 |
---|---|---|---|---|---|---|---|
정의 | Excellent | Very good | Good | Satisfactory | Moderate | Adequate | Fail |
우리나라에서는 학생의 인지적 역량 뿐 아니라 정서적·사회적 역량을 다면적으로 평가하여 각 전공영역에 적합한 우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하여 학교생활기록부 반영의 비중 확대와 수능 시험의 개선이 강조되어 왔다(김미숙 외, 2006). 입학생 모집 시기에 따라 수시와 정시 전형으로 구분되는 대학입학 전형은 일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 전형과 사회적 배려자와 특기생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전형으로 나뉘고, 이러한 큰 틀 속에서 대학들은 다양한 전형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대체적으로 다음의 방식을 따른다.
1) 학생부 전형 : 교과 성적 +비교과 활동 + 특기사항 + 교사 추천서 |
2) 학생부 수능 혼합 전형 : 교과 성적 +비교과 활동 + 특기사항 + 교사 추천서 +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 |
3) 수능 전형 :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 |
4) 특별 전형 : 실기 중심 |
5) 기회균등전형 : 농어촌 또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 |
학생부 전형과 학생부 수능 혼합 전형에서는 교과 성적이 반영되고 있다. 교과 성적은 석차 9등급제로 학생들의 성적을 백분위에 따라 9개 등급으로 나누어 평가하는 상대평가 제도이다. 그런데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만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수능 전형 또한 존재하기 때문에 단위학교에서 실시하는 내신 평가는 수능과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수능을 준비하는 성격으로 활용되는 경향이 있다(안상진, 2017).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모든 문항이 객관식으로 출제되며 전국의 수험생은 매년 11월 약 8시간 동안 동시 다발적으로 시험을 치르게 된다.
핀란드의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이 대학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속 고등학교의 교육과정과 목표를 충분히 달성하였는지 여부를 평가하는 대학입학자격시험(the matriculation examination)에 통과해야 한다. 16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이 시험은 대학입학자격시험위원회4) 에서 주관, 매년 9월과 2~3월 사이 두 차례 실시되며(Harju, 2013), 이를 통과한 학생은 고등학교 졸업 자격과 더불어 대학입학 자격을 부여 받는다(김순남 외, 2014). 핀란드 대학들은 각 학과 및 전공마다 별도의 절차를 통해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으나 대체적으로 다음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Bouwen, 2009).
1) 대학입학자격시험 점수 + 고등학교 내신 학점 + 대학 본고사 점수의 합산 |
2) 대학 본고사 점수 |
3) 대학입학자격시험 점수 + 고등학교 내신 학점 |
대학 별, 학과 별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입학자격시험점수이다. 대학입학자격시험과 본고사 점수가 합산될 경우 지원자의 대학입학자격시험 결과에 따라 최초의 점수가 산정되고, 내신 학점의 경우 단위 학교별 교사별 상이한 평가방식과 척도로 인해 이를 반영하는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고등학교 자체 교육과정과 목표에 충실하며 대학입학자격시험에 집중한다. 이 시험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토대로 주관식, 서술형으로 출제되며 학생들은 자신이 소속된 학교에서 최소 4과목의 시험을 보아야 한다. 과목당 주어지는 시간은 약 6시간이고 자신이 선택한 과목 시험이 치러지는 날 해당 시험에 응시하게 되며 이후 해당 학교의 교사가 채점하고 정상 분포 기준의 7등급 상대평가로 등급이 매겨지게 된다. 2019년 봄부터 치르게 되는 대학졸업자격시험은 모두 디지털화되어 이미지, 비디오, 오디오 기능을 평가에 활용할 수 있게 될 예정이다.5)
Ⅲ. 연구 방법
본 연구에서는 한국과 핀란드의 고등학교 내신평가체제를 비교 분석하기 위하여 양국의 고등학교 학생평가와 관련된 연구 보고서 및 국제동향 보고서를 분석 자료로 활용하였다. 이후 OECD(2013) 가 제시한 ‘학생평가의 개념적 분석 틀(student assessment conceptual framework)’을 재구성하여 분석의 틀로 활용함으로써 해당 자료들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분석 결과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단, 기존의 연구 보고서를 2차적으로 분석한 연구인만큼 번역과 문화적 차이에서 발생하는 오류가 존재할 수 있음을 밝힌다.
한국의 내신평가체제 분석을 위하여 본 연구에서 활용한 자료는 성취평가제와 관련된 연구보고서이다. 현 정부에서는 2019년 성취평가제의 대입 반영을 계획에 두고 단위학교 전면에 성취평가제의 적용을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현행의 상대평가보다 준거참조평가인 성취평가제를 비교의 중심에 두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고교 학점제는 성취평가제와 연계되어 추진 중인 정책이므로 관련 보고서를 추가 선정하여 내신평가와 관련된 부분만을 발췌하여 분석하였다. 한편 핀란드는 2014년 국가 교육청(Finnish National Board of Education)의 주도 하에 국가 핵심 교육과정을 전면 개편한 바 있고 이를 바탕으로 2017년까지 지역 및 단위학교 교육과정이 개편되었다. 따라서 개정된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작성된 연구보고서 및 국제동향 보고서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분석 대상을 정리하면 아래 <표 Ⅲ-1> 와 같다.
본 연구에서는 한국과 핀란드의 고등학교 내신평가체제를 비교 분석하기 위하여 OECD(2013) 가 제시한 ‘학생평가의 개념적 분석 틀(student assessment conceptual framework)’을 재구성하여 활용하였다. 이는 교사의 학생평가와 학교 및 교육 체제의 효율성, 학교장 및 교사 평가의 역할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기 위하여 고안된 개념틀로, 교육체제 수준, 학교 수준, 교사 수준에서의 평가 체제를 분석할 수 있게 한다(OECD, 2013, p. 143). 본 연구에서는 고등학교 내신평가 체제 중에서도 교사의 평가 측면에 중점을 두어 분석을 실시하고자 하므로, 김천홍, 홍수진(2017) 이 차용한 ‘교사 수준’에서의 분석 틀을 목적에 맞게 재구성하여 활용하였다.
Ⅳ. 연구결과 및 논의
먼저 분석 결과를 요약하면 아래 표 Ⅳ-1 와 같다.
비교 영역 | 한국 | 핀란드 | |||
---|---|---|---|---|---|
내적 운영 원리 | 평가 목적 | 성취기준과 성취수준에 비추어 학생의 성취도를 판단하고 학력의 실질적 향상을 도모함 | 학생들의 학습을 안내하고 촉진하며 자기평가 능력을 향상시킴 | ||
평가 거버넌스 | 교사 평가/학교장 관리 | 교사 평가/외부 사정관 확인 | |||
평가 과정 | 평가도구 | 지필 평가, 수행 평가 | 서답형 평가, 수행평가, 지속적인 관찰, 자기 평가 | ||
평가절차 | 형성평가(수시), 총괄평가(중간/기말) | 형성평가(수시), 총괄평가(기말) | |||
평가결과 산출 | 고정 분할/단위학교 분할 중 선택 | 교사의 전문성에 따라 등급화 | |||
평가의 질 관리 | 학생 이의제기/교사 검토 | 학생 이의제기/외부 기관의 검토 | |||
평가 결과 | 평가 결과 보고 | 시기 | 2월, 9월 | 학기 말 | |
내용 | 9등급(상대), 5등급(절대) 병기 | 4~10등급(절대) | |||
평가결과 활용 | 형성평가 시 수시 피드백 제공 성적표에 5등급(절대),석차9등급(상대) 병기 | 형성평가 시 수시 피드백 제공 성적표에 등급(숫자/문자) 표기 | |||
평가 역량 | 교사의 평가결과에 대한 신임도 낮음 | 교사의 평가결과에 대한 전적 신임 | |||
외적 맥락 | 평가 문화 | 성적 부풀리기 | 성적 부풀리기 가능성 높음 | 대입 반영비율이 적어 상대적으로 성적 부풀리기 현상 적음 | |
사교육 의존도 | 사교육 의존도 높음 | 사교육 의존도 높지만 국가 지원금 존재 | |||
대학 입시 | 내신 산출 | 9등급(상대) 반영, 2025년 5등급(절대)로 변경 예정 | 7등급(상대) 반영 | ||
학생선발방식 | 정부가 정책적 주도권을 가짐 | 정부의 개입이 거의 없음6) 독자적 철학과 방식을 통해 선발 | |||
대입반영요소 | 고등학교 내신 성적· 대학입학시험(수능)·대학 면접 혹은 논술 점수의 합, 혹은 일부의 | 합 고등학교 내신 성적·대학입학자격 시험 성적·대학 본고사 성적의 합, 혹은 일부의 합 |
양국의 고등학교 내신평가의 목적은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먼저, 우리나라의 성취평가제도는 성취기준과 성취수준에 비추어 학생의 성취도를 판단하고 궁극적으로는 학력의 실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데 평가의 목적을 두고 있다. 반면 핀란드는 학생들의 학습을 안내하고 촉진하며 자기평가(self-assessment)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학생평가의 목적이 있다. 2014 핀란드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 사항에는 학생의 자신감과 학습 동기를 강화시키기 위하여 건설적이고 정직한 피드백을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또한 ‘아이들에게 어떻게 의미를 만들 수 있는 지,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를 이해하도록 도우라. 그래서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도록 하라.’ 는 메시지를 통해 피드백과 자기평가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Finnish National Board of Education, 2014). 자기평가는 학생이 자신의 학습에 책임을 지고 자신의 강점과 약점에 대한 이해를 하면서 내면적 피드백을 통해 개별적으로 자신의 학습에 가이드를 줄 수 있도록 한다(Heritage, 2013).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평가 목적은 여전히 학생을 바라보는 외부자의 시선에서 학습에 대한 평가(assessment of learning)에 머물러 있다면, 핀란드는 학생 스스로의 성장을 도모하는 학습을 위한 평가(assessment for learning)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평가 거버넌스란, 학생평가의 목적에 부합하는 권한과 책임을 평가 주체별로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이다(김천홍, 홍수진, 2017). 본 연구의 목적에 따라 고등학교 내신평가에 초점을 두어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교과목 별 평가는 담당 교사가 실시하고 채점하며 초·중등교육법 제 25조에 의거하여 학교장이 학생 개인의 학업성취도 및 인성 등을 종합적으로 교육목적에 필요한 범위 안에서 작성·관리토록 한다(김순남 외, 2014). 핀란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교과목 별 담당 교사가 문제를 출제하고 채점하지만, 이후 교사의 평가를 감독하는 외부 사정관들에 의해 평가의 결과가 검토된다. 이 때 외부 사정관의 역할은 중립자적인 위치에서 교사가 실시한 평가 결과를 검토해주는 것이며 따라서 교사는 결과에 대한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실제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평가 도구의 개발 및 활용 실태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먼저 문항 출제를 위한 설계도에 해당하는 이원목적분류표를 작성한 후 각 성취기준에의 도달 정도를 평가하기에 적합한 평가 도구를 개발하게 된다(서민희 외, 2015). 평가 도구의 유형으로는 선다형, 서답형, 수행평가가 있으며 평가 계획에서 이미 지필평가와 수행평가, 그리고 서술형 평가 문항의 비율은 정해져 있으므로 교사는 정해진 범위 내에서 성취기준 도달 여부를 측정하기에 적합한 문항을 개발해야 한다. 핀란드는 평가 문항의 비율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며 단위학교 별로 교사의 재량껏 다양한 도구를 활용할 수 있다. 형성평가에서는 교과목 별로 다양한 유형의 평가 도구가 활용되는데 언어 과목은 개별적인 구두 평가나 프로젝트, 기타 과목들은 포트폴리오, 발표, 실습과 수학적인 탐구들이 포함된다. 학기 말 총괄평가는 지필평가로 이루어지나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서술형, 구두형 평가를 실시한다(김병찬, 2011, p. 32). 2014 개정 핀란드 교육과정에서는 정량평가보다 서술형, 구두형 정성평가를 권장하고 있으며 각 지방정부가 정량평가를 언제부터 폐지할 것인지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성평가가 굉장히 모호한 평가 결과만을 남길 수 있으므로 정량평가를 폐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7)
핀란드의 평가 도구 활용에서 특히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바로 난독증이 있거나 이민자 자녀인 경우, 그리고 기타 언어상의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위해 필답형 평가 이외에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 점이다(김순남 외, 2014). 학생의 장애 요인들은 과목 학점을 산출하는 과정에도 반영이 되고 있으며 이는 학생 개인의 능력 및 수준에 맞는 평가를 실질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교사의 학생평가 시기 및 횟수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형성평가는 수시로, 총괄평가는 기말 및 중간고사의 형태로 두 번에 걸쳐 진행된다. 형성평가는 교사가 수업 중에 학생들의 성취기준 도달 정도를 파악하기 위한 준거로 활용할 수 있으며 관찰, 탐구, 실험 등의 다양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핀란드도 형성평가를 위해 구두평가, 프로젝트, 포트폴리오, 발표, 실습, 탐구 등의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며 이는 수시로 진행된다. 학기 말 총괄평가는 한 번 진행되고 교사는 시험을 평가한 후 외부 사정관에게 이를 송부하며, 최종적으로 4~10 수준의 절대등급이 부여된다. 경우에 따라 학생들은 자신의 학교가 아닌 다른 기관에서 특정 과목을 이수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해당 기관에서 부여한 학점을 그대로 인정해 준다. 해외에서 이수한 과목과 학점들도 인정을 받을 수 있으며 필요 시 학생들에게 학점을 입증할만한 추가적인 과업을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성취평가제는 학생의 내신평가결과를 산출하기 위하여 고정 분할 점수와 단위학교 산출 분할점수 중 하나를 선택하여 적용할 수 있다. 고정 분할 점수는 사전에 성취준거를 고려하여 평가도구를 제작한 후 학생의 성취도에 대하여 90/80/70/60점의 분할점수를 고정하여 적용하고, 단위학교 산출분할점수는 학교 내 교과 협의회를 통해 각 성취준거에 해당하는 적절한 분할점수를 산출하여 적용하는 방법이다. 단위학교 산출 분할점수는 Ebel 방법8) 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이는 이원목적 분류표를 활용하도록 보안한 변형된 Ebel 방법이다(서민희 외, 2015). 전국 고등학교의 분할점수 선택 현황을 살펴보면 28.6%~49.7%의 학교들이 단위학교 산출 분할점수를 선택하였고, 수학 교과에서의 선택률이 가장 높고 사회에서 가장 낮았다. 학교 유형에 따라서는 과학고에서 단위학교 산출 분할점수를 선택한 비율이 90% 이상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손민정 외, 2015). 두 방법에 대한 선택 현황을 살펴보면 아래 그림 Ⅳ-1와 같다.
핀란드의 경우는 성취평가제도와 같이 국가 차원에서 평가 기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사는 자율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평가 준거를 수립할 수 있으며, 그 준거에 따라 학생에 10/9/8/7/6/5/4/(낙제)의 등급을 부여하게 된다. 그러나 핀란드 교육연구기관(Finnish Institute of Educational Research)에 따르면, 일부 학생들은 교사마다 서로 다른 채점 형식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으며 이는 학교 및 교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국가 수준의 평가 기준이 부족한 것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소수점 하나 차이가 장래의 학업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현재의 평가 시스템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9)
우리나라는 시험 후 문항에 대한 문제점이 발생하게 되면 해당 교과 교사와 교무부장 등이 참여하는 교과협의회, 그리고 최종적으로 교장이 주관하는 학업성적관리위원회의 절차를 거쳐 정답 정정, 채점 기준의 변경, 재시험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게 된다. 핀란드의 경우도 과목에 대한 최종 등급에 대해 학생들이 불만을 갖는다면 재평가를 요청할 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결과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지방 정부에 이의신청을 제기하여 지방 정부는 교사가 새 평가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한다(김순남 외, 2014). 이렇듯 평가 후에 이루어지는 조치는 양국이 유사한 측면이 있으나 평가가 이루어지기 전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핀란드의 교사는 학생들에게 평가 기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어야 하고 평가 기준 마련을 통해 교사와 학생 모두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된다(General Upper Secondary Schools Act, 810/1998, Section 9(1)). 더욱이 과목 개강 초기에 교사는 학생들에게 상세한 평가 기준을 안내하거나 학생들과의 협의를 통해 그 기준을 정하면서 평가의 질을 관리하게 된다. 성취평가제도 역시 평가의 기준을 분명히 하고 이를 교수·학습과 연계시킴으로써 평가의 질을 관리하게 되지만 교사들마다 학생에게 평가기준을 명시하는 정도가 상이하고 학생들과 평가기준을 협의하는 경우는 사실상 부족한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평가결과를 매년 2월, 9월 두 번에 걸쳐 학생들에게 보고하며 성적표에 기재되는 내용은 아래 표 Ⅳ-2 와 같다. 핀란드의 경우 학기 말 한번 학생들에게 평가결과가 보고되며 단, 학부모와 학생, 혹은 노동시장이나 다른 이해관계자가 요구하면 언제든지 정보를 제공한다(김순남 외, 2014). 핀란드는 4~10등급의 숫자 척도 뿐 아니라 문자 평가 방식도 함께 활용하고 있는데 중도에 수업을 포기한 경우는 K, 수업을 끝마치지 못한 경우 T, 과락의 경우는 H로 표기한다.
과목 | 구분 | 고사/영역명 (반영비율) | 만점 | 받은 점수 | 합계 | 원점수/과목평균 (표준편차) | 성취도 (수강자수) | 석차등급 |
---|---|---|---|---|---|---|---|---|
과학 (3) | 지필 | 중간고사(35.00) | 100.00 | 79.00 | 86.27 | 86/58.33 (21.2) | A (165) | 2 |
지필 | 기말고사(35.00) | 100.00 | 93.80 | |||||
수행 | 탐구실험(30.00) | 100.00 | 86.00 |
양국은 모두 형성평가와 총괄평가 결과를 합산하여 최종등급을 산출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학생의 점수를 산출하는 데 형성평가의 중점을 두는 반면 핀란드는 학생들에게 학습 결과 및 학습 향상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데 목적을 둔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핀란드의 고등학교 교육이 대학입시와는 독립적으로 운영되어 고등학교 자체 교육과정에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며10) 내신이 대학입시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신 성적은 전문대학이나 국제학위에 지원할 시 중요한 전형요소로 작용하며 일반대학에서는 반영비율이 적거나 반영하지 않는 학교가 많다. 내신을 반영하는 대학에서도 석차가 아닌 교과목의 평균 평점을 점수화하여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학생이 아닌 실질적으로 학습 수준과 능력을 갖춘 학생을 선발하게 된다.11) 따라서 각 교과별 교사는 점수를 산출하여 학생들의 상대적 서열을 매기는 데 집중하기보다 학생의 성장과 발달을 도모하는 과정을 중시하며 보다 건설적이고 진실한 피드백 제공에 초점을 둘 수 있게 된다.
교사가 평가 역량을 충분히 갖추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에 근거하여 성취기준이 적절한 지, 성취기준에 근거한 교사의 교수·학습 활동이 적절하였는지, 학생들이 성취기준에 잘 도달하였는지, 평가도구가 타당했는지 등에 대해 진단하고 개선해나가는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성취평가제는 교사로 하여금 학생들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중심으로 교수·학습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하며, 따라서 교사의 평가 전문성이 향상될 수 있다는 이점을 지닌다. 손민정 외(2015) 는 성취평가제의 도입 후 교사에게 나타난 긍정적 변화의 요인을 조사한 연구에서 ‘성취기준을 마련하면서 학생들이 무엇을 학습하고 도달해야 할 지 상세하게 알게 되었다’라는 답변이 65.9%로 가장 높게 나타났음을 보여준 바 있다. 이처럼 성취평가제도는 교사의 평가 역량 향상에 긍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핀란드 교사 평가 역량은 교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로부터 향상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핀란드는 교사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되어 있어 학생평가에 대해 교장이나 상위 교육 공무원들로부터 간섭을 피할 수 있으며(손민정 외, 2015), OECD 국가들 중 교사에 대한 평가체계가 없는 9개 국가 중의 하나인 만큼12) 교사의 전문성을 제도적으로 인정해주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핀란드 교사들은 수업시간 외에도 더 잘 가르치기 위한 교육과정과 평가에 매진함으로써(Sahlberg, 2011) 전 세계 유례없는 핀란드 최고 자질의 교사인 ‘연구자로서의 교사’ 또는 ‘학교현장의 연구자로서의 교사’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윤은주, 2013).
그러나 최근 교원노조(OAJ)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핀란드 교사들이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매우 증가했으며 약 60%가량의 응답자가 일에서 업무의 과도함을 느낀다고 응답하였다. 특히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는 44%가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한 것으로 보아13) 교사의 역량과 전문성을 확보하는 데에는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로 그만큼의 개인적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 [그림 Ⅳ-2]은 손민정 외(2015) 의 연구에서 실시한 ‘고등학교 성취평가제 안착을 위하여 필요한 항목이 무엇인가?’의 물음에 대한 응답 결과로, 전체 5,311명의 교사 중에서 28%가 성적 부풀리기 방지 대책의 마련이 필요한 것으로 응답하였다. 향후 성취평가 결과가 대입에 반영될 경우, 일부 학교에서는 단위학교 산출 분할점수를 의도적으로 활용하여 높은 등급을 받는 학생의 비율을 높일 가능성이 있어 고등학교 간 비교가 불가능해질 우려가 있다(김순남 외, 2014). 한편 핀란드는 대학입시에 내신 성적이 반영되기는 하나 이것이 성적 부풀리기 현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데 그 이유는 대학 입시에 내신 성적보다 대학입학시험성적 결과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을 대학에 잘 보내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기준 점수를 조정하기보다는 자신의 양심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전에 분명히 정의한 평가 기준에 따라 학생을 평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서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25.6만원으로 증가폭이 역대 최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서열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고 고등학교의 대학 종속화가 지속되는 현실 속에서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노력들은 사교육 경감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핀란드도 사교육 의존도가 낮은 것은 아니며, 법대, 의·약대, 경영/경제 등의 인기 학과의 경우 입학 경쟁률이 매우 높아 사교육을 받는 학생들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김순남 외, 2014). 그러나 핀란드는 2014년부터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고3 수험생을 대상으로 무상 사교육을 제공하고 있으며, 2010년에는 대학 본고사 폐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며 지속적인 사교육 경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학입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학입학자격시험이 고등학교 자체 교육과정에서 출제되고 있기 때문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 고등학교 수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등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하여 고등학교 내신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수시 전형에서 학생들은 주로 고교 내신으로, 정시에서는 수능과 대학 별 논술, 면접, 그리고 실기 시험을 통해 대학의 입학 여부가 결정된다. 내신 성적은 현재 석차 9등급(상대)에 의해 산출되며, 2019년부터는 고1 진로선택 과목의 성취도를, 2025년에는 고1 전 과목에 대하여 성취도를 5등급(절대)에 따라 반영할 예정이다. 핀란드의 경우 대학과 학과마다 입시 요강이 다르기는 하나 대부분 대학입학자격시험과 대학 본고사 성적의 합 또는 일부의 합을 통해 학생의 대학 입학 여부가 판가름 난다(김순남 외, 2014). 내신 성적의 경우 학교마다 다른 평가 방식과 척도로 인해 대학입시에서는 대학별 본고사와 대학입학자격시험이 중요한 전형요소로 작용하며 앞으로도 대학입학자격시험의 반영비율이 높아질 예정이다.14) 내신 성적은 직업학교나 국제대학에 지원할 때 중요한 요소이며 7등급(상대)에 따라 산출된다.
고등학교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양국의 이견이 없다. 그러나 내신평가의 방향성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고등학교마다 학생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평가 기준과 척도가 다를 수밖에 없고 핀란드는 대학 입시로부터의 독립을 통해 고교 교육의 정상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내신 성적을 대학 입시의 주요 요소로 반영함으로써 고등학교 교육을 대학 입시에 종속시키고 있다. 이러한 현행의 체제 속에서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평가는 정상화되지 못한 채 학생들로 하여금 3년의 시간을 대학 입시의 굴레에 속박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Ⅴ. 결론 및 제언
본 연구에서는 한국과 핀란드의 고등학교 내신평가체제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고등학교 성취평가제의 성공적 안착을 위한 시사점을 탐색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의 성취평가제와 핀란드의 교육 정책에 관련된 주요 문헌들을 분석 및 종합하였으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 째, 평가의 목적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학생의 성취도를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학력의 신장을 도모하고자 하는, 즉 외부자의 시선에서 학습에 대한 평가(assessment of learning)를 이루고자 한다면, 핀란드는 평가 결과 및 향상 정도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고 자기 평가 역량을 향상시킴으로써 학생 스스로의 성장을 도모하는 학습을 위한 평가(assessment for learning)를 이루고자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 째, 평가 거버넌스의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교과목 별 담당교사가 출제하고 평가하는 일차원적인 체제를 가지고 있지만, 핀란드는 담당교사가 출제하고 평가한 후 그 결과를 외부 사정관에게 검토 받는 이차원적인 과정을 거침으로써 평가결과에 대한 객관성과 공정성을 추구하고 있다.
셋 째, 평가 과정의 측면에서 우리나라 고등학교는 고정 분할점수 또는 단위학교 산출 분할점수 중 하나를 선택하여 적용하도록 하며, 단위학교 산출 분할점수는 변형된 Ebel 방식으로 산출된다. 핀란드는 국가 차원에서 평가 기준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고 관리하지 않으며 교사가 자신의 양심과 전문성에 따라 기준을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는 국가 차원에서의 명확한 평가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반발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양국 모두 다양한 형태의 평가 방식을 활용할 수 있지만 한국의 경우 지필평가, 수행평가, 그리고 서술형 문항의 반영 비율이 평가 계획 단계에서 고정되며 그 범위 내에서 평가 방식을 다양화 할 수 있는 반면 핀란드는 고정된 비율은 없고 다만 정성평가의 적용 범위를 점차 확대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핀란드는 난독증, 이민자, 기타 언어상의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위한 별도의 평가 절차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지닌다.
넷 째, 평가 결과의 측면에서 양국 모두 총괄평가와 형성평가의 합산을 통해 학생들의 등급을 결정하나, 우리나라 성취평가제는 A/B/C/D/E의 5등급 절대평가를, 핀란드는 4~10등급의 절대평가를 통해 학생들에게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평가결과 중에서도 형성평가의 활용 측면을 살펴보면, 핀란드는 학습 결과 및 향상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두지만 우리나라는 내신 성적을 산출하기 위한 전통적 총괄평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편 핀란드 교사는 학생들에게 평가 기준을 명확히 공시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고 학생들과 함께 평가 기준을 수립하는 등 평가의 질 관리를 위한 명확한 근거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섯 째, 평가 역량의 측면에서 성취평가제는 교육과정과 평가의 일체화를 이룰 수 있게 함으로써 교사의 평가 역량을 향상시키는 데 충분히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핀란드의 경우 국가로부터 교사가 전문성과 자율성을 보장받는 만큼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구축해나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섯 째, 평가 문화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내신 성적이 대입에서 중요 요소로 작용하고 있으나 핀란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학입학시험과 대학 별 본고사가 더욱 중요하며 따라서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대학입시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신 성적이 대학 입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성적 부풀리기 현상은 발생할 수밖에 없으므로 이를 막기 위한 제도가 시급히 마련될 필요가 있는 것으로 교사들의 의견이 수렴되었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본 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이 제언하고자 한다.
첫 째, 평가 결과의 신뢰도 회복을 위하여 단위학교 산출 분할점수에 대한 방법을 변형할 필요가 있다. 현재 적용되고 있는 이원목적분류표를 활용한 변형된 Ebel방식은 문항 난이도와 문항 내용 특성을 고려하여 문항 범주를 결정한 후 최소 능력자의 예상정답률을 기입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아무리 평가 전문성을 갖춘 교사라 할지라도 학생들의 정답률을 예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설정된 기준에 대한 교사의 확신이 따르기 어렵다. 더욱이 객관식 문항으로부터 주관식, 서술식 문항을, 지필평가보다는 수행평가를 확대 적용하고자 하는 교육부 정책 방향의 흐름상 정답률을 토대로 분할점수를 산정하는 방식은 이치에 맞지 않다. 따라서예상 정답률을 기입하는 방법 대신 성취평가제의 성취수준(A/B/C/D/E)에 따라 학생을 분류하고 문항 또는 수행을 학생수준에 연결지어 분할점수를 산출하는 방식을 고안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평가 방식은 서술형 평가 문항에 적합할 뿐 아니라 예상 정답률의 오류에 기인한 평가의 신뢰도 문제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둘 째, 교사 별 평가 결과에 대한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의 마련이 필요하다. 핀란드에서는 교사의 전문성이 높게 평가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 결과의 객관성과 공정성 확보를 위해 외부 사정관으로부터 검토 받는 절차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절차적 행위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결과에 대한 신뢰를 심어줄 뿐 아니라 교사의 전문성을 보다 굳건히 할 수 있는 매개로써 작용하게 된다. 우리나라 교사는 교과 별 문제를 출제, 채점 및 등급화하는 모든 과정을 담당하는 전문가임은 분명하나 평가의 질, 평가 결과에 대한 신뢰도는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교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를 보조해줄 수 있는 평가 점검 시스템 마련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셋 째, 평가 전문성 제고를 위하여 교사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인정해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될 필요가 있다. 핀란드는 교원 평가를 하지 않는 국가 중 하나로 교사의 자질을 충분히 높게 사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교사는 스스로 연구하고 발전을 도모하는 ‘연구자로서의 교사’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주도하고 관여하는 교육 정책들로 인해 사실상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이 보장된다고 볼 수 없다. 보다 전문성 있는 교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신념과 가치와 능력에 따라 다양한 수업과 평가를 구현해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 주어야 할 것이다.
넷 째, 성취평가제의 지속성 유지를 위하여 정부 차원에서 해당 제도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 국가교육회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2018년 8월 교육부가 고시한 2022학년도 대학입학제도 개편 방안에서는 차기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2025녀 고1에서부터 모든 과목의 성취평가 결과를 대입 전형자료로 제공할 계획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차기 교육과정의 시점으로 성취평가 결과의 적용 시기를 늦추면서 성취평가제는 지속성을 의심받고 있으며 교사들은 성취평가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나 활용을 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정부는 성취평가제를 대입 전형자료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보다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다섯 째, 각 대학에서는 고교 내신 반영 방식을 제고해볼 필요가 있다. 핀란드의 대학 입시에서는 고등학교 자체 시험인 대학입학자격시험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수시를 위해 내신 성적 관리를 하고 정시를 위해 전국 동시 시험인 수능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핀란드의 고등학교 평가체제에 주목해 보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고등학교 교육이 입시에 매몰되지 않고 본래적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과목 평균평점을 점수화하여 내신을 산출하고 있는 핀란드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 간의 상대적 서열이 무의미하다. 따라서 교사들은 학생들의 점수를 산출하고 등급화하기보다는 실질적 수준과 능력을 파악하고 피드백 해주는 데 더욱 집중할 수 있다. 이러한 핀란드의 사례를 참고하여 우리나라의 성취평가제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각 대학에서 석차가 아닌 성취수준을 바탕으로 학생을 선발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만일 학생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해당 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필수적인 교과 성적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이러한 대학의 노력은 모두 다 잘하는 학생이 아닌 학과의 적성에 부합하는 학생을 선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나아가 고등학교 교육이 학생의 성장과 발달을 도모하는 본래적 기능에 충실할 수 있도록 기여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사는 형성평가가 지니는 본래적 의미를 제고하고 이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핀란드의 경우에서처럼 형성평가가 구체적인 피드백을 제공할 목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교육이 정상화되는 과정이 우선시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체제가 바뀌기만을 기다리기보다 각 단위학교에서 개별 교사들이 조금씩 노력한다면 변화의 시기는 더욱 앞당겨질 수 있다. 현재 많은 교사들이 실험, 토론, 포트폴리오 등의 다양한 방식을 형성평가에 활용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상 학생들의 등급을 매기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교사들은 형성평가 계획 단계에서 학생들에게 어떤 피드백을 제공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평가 후에는 즉각적이고 구체적이며 정직한 피드백을 제공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분명 학생들의 성장과 발달에 촉진제로 작용할 것이며 궁극적으로 고교 정상화의 시기를 더욱 앞당길 수 있도록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