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대학수학능력시험(약칭 수능) 제2외국어는 2001학년도 도입 이래로 세계화, 다문화 시대를 대비한 다중 언어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난이도 조절의 아쉬움, 특정 과목 쏠림 현상 등이 지적되며 다소 논란을 가져왔고, 심지어 축소 또는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게 되었다. 시선을 국외로 돌려 여러 주요 국가들의 상황을 보면 이 같은 축소·폐지 주장은 세계 교육의 주류에서 다소 벗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져 있듯 프랑스는 2017년부터, 태국은 2018년부터 한국어를 대입 시험 과목으로 포함하고 있으며(교육부, 2018.07.10.), 이 밖에 미국, 영국, 호주 등 영어권 국가는 물론 중국, 일본 등 많은 주요 국가들이 영어 이외의 언어들을 대입 시험 과목으로 채택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지난 8월 교육부가 발표한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최종안에서 수능 제2외국어/한문 영역의 존치가 확정되었다는 점이다(교육부, 2018.08.17.). 이와 더불어 주목할 만한 점은 그 동안 특정 과목 쏠림 현상의 해결 방안으로 많이 언급되던 절대평가 전환이 실제로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앞선 영어 절대평가 전환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난이도 조절의 어려움은 평가의 신뢰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제2외국어의 절대평가 전환은 가 본 적이 없는 길인 까닭에 장차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는 치밀한 사전 연구를 통해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연구하여 장점을 취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다양한 외국어를 대입 시험 과목에 포함하는 것은 세계 각국의 공통적인 추세이지만, 실제 운영 방식은 나라별 특성에 따라 천차만별이어서 우리가 가 본 적이 없는 길을 밟아 본 사례들이 많다. 이러한 사례들을 심도 있게 연구하면 우리 수능의 개편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중심으로 외국의 대입 시험 제도를 비교한 연구들이 이루어졌는데, 김주훈, 설현수, 김영애(2001)는 일본, 중국, 대만의 대학 입시 제도를 연구하였으며, 2002년에는 한국, 프랑스, 독일, 영국, 일본, 중국의 대학입학시험 문제를 비교하는 세미나가 개최되고 자료집이 발간되었다. 그리고 백순근(2001) 은 한국과 일본의 대입 시험을 비교하고 분석하였다.
2000년대 초반은 7차 교육과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제2외국어 영역이 최초로 도입되는 등 많은 변화를 모색하던 때이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수능이 부분적 절대평가로 전환되고 고교학점제 도입이 논의되는 또 다른 변화의 시기를 겪고 있다. 해외 사례 연구가 다시 한 번 대대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시점이다. 이에 본 연구는 중국·일본·태국 대입 시험의 영어 이외 외국어 과목의 운영 현황을 분석하고 시사점을 도출함으로써 수능 제2외국어의 운영 방식과 문항 질 개선을 위한 참고 자료를 제시하고자 한다.
논의 대상을 중국·일본·태국으로 하는 것은 그 나름의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이 세 나라는 우리나라와 더불어 동아시아의 주요국들이고 외국어에 대한 교육열이 상당히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특히 태국은 대입 시험에서 영어 이외에 선택할 수 있는 외국어 수가 7개로 우리나라에 못지않으며, 중국 교육부에서 파견하는 원어민 보조교사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용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각국 대입 시험의 영어 이외 외국어 과목의 운영 현황은 문헌 조사만을 통해서도 대략적으로 드러날 수 있겠으나 실제 평가 문제지를 연구 대상으로 포함하면 좀 더 구체적인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본 연구는 운영 방식과 평가 문항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태국의 현황을 비교 분석하고 시사점을 도출해 보고자 하였다.
본 연구는 영어 이외의 외국어를 ‘제2외국어’로 지칭하였는데, 이것은 우리말에서 ‘제2외국어’라는 말이 갖는 일반적인 쓰임새를 고려하는 한편 서술상 편의를 도모하기 위함이다. 중국·일본·태국 대입 시험의 경우 ‘제2외국어’에 해당하는 용어는 쓰이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문항 수, 시험 시간 등을 통해 영어와 그 밖의 외국어 과목을 구분하고 있다.
Ⅱ. 한국 수능 제2외국어 영역의 운영 현황
수능은 대학 교육에 필요한 수학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에 맞게 출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출제 범위가 비교적 명확하게 제한되어 있다. 2019학년도 수능 제2외국어의 출제 범위 및 특이사항은 다음과 같다(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18).
첫째, 2009 개정 교육과정(교육과학기술부, 2012)에 의거하여 출제한다.
둘째, 교육과정의 ‘의사소통 기본 표현’과 ‘기본 어휘표’를 중심으로 출제한다.
셋째, 교육과정에 규정된 제외 문법 사항은 다루지 않는다.
넷째, 일상생활 및 문화와 관련한 다양한 소재와 자료를 활용하여 출제한다.
수능은 매년 11월 둘째 주 혹은 셋째 주 목요일에 시행되며 제2외국어 영역은 마지막 5교시에 40분 동안 치러진다. 제2외국어 영역은 2001학년도 최초 도입 당시에 독일어Ⅰ, 프랑스어Ⅰ, 스페인어Ⅰ, 중국어Ⅰ, 일본어Ⅰ, 러시아어Ⅰ 등 모두 6개 과목을 포함하고 있었으나, 2005학년도에 아랍어Ⅰ과 한문Ⅰ이 추가되면서 이름이 ‘제2외국어/한문 영역’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2014학년도에 베트남어Ⅰ이 추가되면서 모두 8개 과목(한문Ⅰ 제외)을 포함하게 되었다.1)
수능 제2외국어 성적을 각 대학이 반영하는 정도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학생들이 비교적 선호하는 서울 소재 10개 대학교의 2019학년도 정시모집 요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필수 응시이다. 서울대학교는 인문 계열 응시자가 제2외국어/한문 영역에 반드시 응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둘째, 탐구 영역 대체이다. 서울시립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는 제2외국어/한문 영역의 성적이 탐구 영역 1개 과목 점수를 대체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경희대학교, 중앙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한양대학교는 사회탐구에 한하여 대체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셋째, 성적 불인정이다. 고려대학교와 서강대학교는 제2외국어/한문을 필수 응시 영역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를 표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구분 | 대학교 | 개수 | 비율 |
---|---|---|---|
필수 응시 | 서울대학교 | 1 | 10% |
탐구 영역 대체 | 경희대학교 | 7 | 70% |
서울시립대학교 | |||
성균관대학교 | |||
연세대학교 | |||
중앙대학교 | |||
한국외국어대학교 | |||
한양대학교 | |||
성적 불인정 | 고려대학교 | 2 | 20% |
서강대학교 |
제2외국어/한문 영역의 성적이 탐구 영역 1개 과목 점수를 대체할 수 있도록 하는 학교의 비율이 70%로 가장 높음을 알 수 있다. 필수 응시가 단지 서울대학교 1개교인 한편 성적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학교는 고려대학교, 서강대학교 2개교인데, 주목할 만한 점은 이 두 학교가 2017학년도 수능까지만 해도 탐구 영역 대체 제도를 유지했었다는 점이다.
수능 제2외국어는 총 30문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만점은 50점이다. 내용에 따라 크게 발음 및 철자(문자), 문법, 의사소통, 문화로 나눌 수 있는데2), 배열 순서는 과목별로 차이가 있다.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는 1∼5번 발음 및 철자(문자), 6∼21번 의사소통, 22∼26번 문화, 27∼30번 문법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반면 일본어와 러시아어는 문화가 의사소통 앞에 놓여 1∼5번 발음 및 철자(문자), 6∼10번 문화, 11∼26번 의사소통, 27∼30번 문법 순서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아랍어와 베트남어는 문법이 두 번째, 문화가 맨 마지막에 배열되어 1∼5번 발음 및 철자(문자), 6∼9번 문법, 10∼25번 의사소통, 26∼30번 문화 순서이다.
문제 형식은 다른 수능 과목들과 마찬가지로 모두 객관식 오지선다형이다. 세트형 문항은 거의 출제되지 않아 2019학년도 수능의 경우 일본어 6∼7번, 아랍어 21∼22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단독형 문항으로 구성되었다.
지문은 대체로 짧은 편이며 길어도 8줄(중국어를 예로 들면 문장 부호 포함 약 110자) 정도이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수준에 맞게 출제하는 것이 원칙인 까닭에 지문의 길이를 일괄적으로 통제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문 내에 부득이하게 교육과정 기본 어휘표 범위를 벗어나는 단어가 포함될 경우 ‘*’ 표시를 하고 주석을 달았다. 다양한 소재와 자료를 활용하여 출제하는 것이 방침 중 하나인 까닭에 글로 된 지문 외에 각종 그림, 사진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발문은 대부분 한 줄로 간결하며 모두 한국어로 제시된다.
수능 제2외국어는 2001학년도 도입 이래로 몇 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며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해 왔다. 시행착오 과정에서 가장 흔히 제기되어 왔고 지금도 여전히 개선의 목소리가 높은 문제점 두 가지를 아래에 제시한다.
2001학년도 도입 당시 수능 제2외국어의 난이도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수준에 맞게 낮은 편이었다. 그러나 외국어고등학교 증설, 사교육 열풍, 조기 유학자 귀국 등의 원인으로 일부 과목 응시자들의 수준이 급격히 올라가면서 상대평가의 특성상 부득이하게 고난도 문제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인접국의 공용어인 중국어와 일본어에서 두드러진다.
흔히 변별력을 주기 위해 문법 오류가 있는(또는 없는) 문장을 고르는 문제가 출제되는데, 제2외국어 8개 과목의 문법 문제 중 해당 유형이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과목 간 난이도 차이가 존재함을 어느 정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2019학년도 수능 제2외국어 각 과목에서 출제된 해당 유형 문제3)의 번호와 개수를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각 과목의 문법 문제는 모두 4개로 동일하지만 해당 유형 문제의 수는 각기 다름을 알 수 있다. 독일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는 3개, 비율로 따지면 75%에 이르지만 러시아어, 아랍어, 베트남어는 1개, 즉 25%에 불과하다.
이 밖에 일부 과목에만 존재하는 ‘제외 문법 사항’ 또한 과목 간 난이도 형평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로 보인다. 제2외국어과 교육과정에서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아랍어 등 4개 과목은 제외 문법 사항을 6∼10개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교육과정상 오해의 여지를 막고 학습 내용의 적정화를 꾀하기 위한 매우 바람직한 조치이다. 하지만 수능 출제의 관점에서 봤을 때 나머지 네 과목, 즉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베트남어의 제외 문법 사항을 제시하지 않은 점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만약 언어의 특성상 제외 문법 사항을 선별하기 쉬운 경우가 있고 어려운 경우가 있다면, 일부 과목만 제시할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과목도 제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특정 과목 쏠림 현상은 교육부 대입 개편 최종안 보고서에서 절대평가 전환의 근거로 들 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여져 온 문제이다.4) 절대평가 실시 이후에는 완화될 것으로 기대되나 중요한 쟁점인 만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수능 제2외국어 도입 초기에는 일본어가 대체로 우세하였으나 2005학년도 아랍어가 추가된 이후 2009학년도에 이르러서는 아랍어의 강세가 시작되었다. 2014학년도와 2015학년도에는 베트남어 추가의 영향으로 응시자들이 잠시 베트남어에 쏠리기도 했으나, 2016학년도부터는 아랍어의 응시자 수가 다시 압도적인 1위에 복귀하여 2017∼2019학년도에는 제2외국어 전체 응시자의 약 70%가 아랍어를 선택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수험생들이 특정 과목에 쏠리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문제 난도가 낮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일부 과목은 다른 과목에 비해 고난도 유형 문제의 비율이 낮고, 교육과정에서 제외 문법 사항을 명시하고 있어 수험생들이 비교적 한정된 범위 내에서 문법 문제에 대비할 수 있다.
둘째, 응시자들의 수준이 높지 않다. 중국어와 일본어는 인접 국가의 공용어인데다 외국어고등학교 증설, 사교육 열풍, 조기 유학자 귀국 등으로 인해 응시자들의 수준이 상향평준화된 경향이 있지만, 일부 과목은 문자 체계가 생소하고 일상적으로 접할 기회가 드물며, 사교육은커녕 전국에서 개설하고 있는 고등학교를 찾기도 힘들어 고급 수준의 학습자가 많지 않다. 이러한 사실은 2018학년도 수능 제2외국어 채점 결과 다른 과목들의 1등급과 2등급을 구분하는 등급 구분 표준점수가 대체로 65점 내외인 반면 아랍어와 베트남어는 각각 81점, 76점으로 현저히 높았다는 데서도 확인된다.
셋째, 지난해 응시자 수가 많다. 러시아어는 아랍어와 마찬가지로 고난도 유형 문제의 비율이 낮고 2019학년도 수능 채점 결과 1등급과 2등급을 구분하는 등급 구분 표준점수가 69점으로 고급 학습자 비율도 높지 않지만, 응시자 비율은 최하위인 1.0%로 나타났다. 이것은 2018학년도 응시자 비율이 1.1%에 불과했던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응시자 비율이 낮으면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는 인원 수도 적어 수험생들이 선택을 꺼리게 된다. 2019학년도에 1등급을 받은 인원의 수가 아랍어는 2,050명이었으나 러시아어는 30명에 불과했다.
이상의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특정 과목은 조금만 공부해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폭발적인 쏠림이 발생한 것이다.
Ⅲ. 중국, 일본, 태국의 운영 방식 및 시사점
아래에서는 시험의 성질, 포함하는 언어의 수와 종류, 시험 시간, 성적 활용 등의 측면에서 중국, 일본, 태국 대입 시험 제2외국어의 운영 방식에 대해 살펴보고, 이로부터 한국 수능 개편에 주는 시사점을 도출해 보도록 한다.
중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일반대학입학 전국통일시험(普通高等学校招生全国统一考试, 약칭 ‘가오카오’)은 고등학교 졸업생 및 동등 학력을 지닌 수험생이 참가하는 선발 시험이다. 비록 경우에 따라 추천 입학이 가능하고 일부 학교는 정원 5% 범위 내에서 특별 전형을 통해 학생을 선발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가오카오의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국어는 제1외국어와 제2외국어를 구분하지 않으며, 영어 문항 수가 5문항 더 많은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언어의 시험 형식이 대동소이하다. 영어는 일부 지역에서 출제를 따로 하기도 하는데 그 밖의 외국어는 전국 통일 시험지를 사용한다. 출제를 따로 하는 지역은 경제가 발달하고 학생들의 전반적인 영어 능력이 우수한 베이징, 상하이 등이다.
일본의 대학 입시 센터 시험(大学入試センター試験, 약칭 ‘센터시험’)은 고등학교 단계에서의 기초 학습목표 달성 정도를 측정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기초학력평가이다. 각 대학은 해당 대학·학부의 특성에 맞게 과목을 지정하여 성적을 활용할 수 있으며, 일부 사립대학은 센터시험 성적을 이용하지 않고 본고사만으로 학생을 선발하기도 한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제1외국어와 제2외국어를 구분하지 않으나 영어와 그 밖의 언어 간에는 시험 형식에 차이가 있다. 영어는 듣기 평가가 있어 시험 시간이 다른 과목에 비해 60분 더 길다. 총점도 250점으로 50점 더 높은데 일반적으로 대학에서는 영어를 200점 만점으로 환산해서 반영한다.
태국의 대입 시험은 크게 학생의 일반적인 학력을 평가하는 보통 국민 교육 시험(Ordinary National Education Test, 약칭 ‘O-NET’)과 좀 더 수준 높은 능력을 평가하는 고급 국민 교육 시험(Advanced National Education Test, 약칭 ‘A-NET’)으로 구성된다. A-NET은 다시 일반 수학 능력 시험(General Aptitude Test, 약칭 ‘GAT’)과 직업적·학문적 수학 능력 시험(Professional and Academic Aptitude Test, 약칭 ‘PAT’)으로 나뉜다. 영어는 O-NET과 GAT에 포함되어 있는 반면 그 밖의 외국어들은 PAT에서 평가되는데, O-NET과 GAT는 모든 과목이 필수 응시이지만 PAT는 희망하는 대학 및 전공에 따라 PAT1(수학), PAT2(과학), PAT3(공학), PAT4(건축학), PAT5(교육학), PAT6(예술), PAT7(외국어) 중 과목을 선택해 응시한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제1외국어와 제2외국어를 구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 가오카오 외국어는 영어, 러시아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6개 외국어를 포함한다. 수험생은 이 중 한 가지 과목을 선택하여 응시할 수 있는데, 매년 전체 응시자의 99% 이상이 영어를 선택한다.(刘庆思, 2008)
일본 센터시험 외국어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 한국어 등 5개 외국어를 포함한다. 2018년 시험 결과 영어에 응시한 학생의 비율이 99.83%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은 중국어(0.1%), 한국어(0.03%), 프랑스어(0.02%), 독일어(0.02%) 순이었다. 영어 응시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영어를 제외한 4개 과목 내에서 다시 비율을 살펴보면 중국어가 61.2%로 절반을 훌쩍 넘음을 알 수 있다.
태국 PAT 외국어는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 아랍어, 팔리어5), 한국어 등 7개 외국어를 포함한다.6) 2011년 시험 결과 중국어에 응시한 학생의 비율이 36.85%로 가장 높았으며, 최근의 통계는 공개하지 않는 까닭에 알 길이 없다.(潘俊财, 2013)
중국, 일본, 태국의 대입 시험이 포함하는 영어 이외의 외국어 과목 수와 종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구분 | 프랑스어 | 독일어 | 스페인어 | 러시아어 | 한국어 | 중국어 | 일본어 | 아랍어 | 팔리어 | 개수 |
---|---|---|---|---|---|---|---|---|---|---|
중국 | ○ | ○ | ○ | ○ | ○ | 5 | ||||
일본 | ○ | ○ | ○ | ○ | 4 | |||||
태국 | ○ | ○ | ○ | ○ | ○ | ○ | ○ | 7 |
포함하는 외국어의 수는 태국이 7개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중국, 일본 순이다. 언어의 종류를 살펴보면, 대표적인 유럽 선진국의 언어인 프랑스어와 독일어는 중국, 일본, 태국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동아시아 강국의 언어라 할 수 있는 중국어와 일본어는 그것을 모국어로 하는 나라를 제외하고는 모두 포함하였다. 한국어는 기존에 일본만 포함하고 있었으나 2018년에는 태국 또한 한국어 과목을 개설하였다.
이 밖에 스페인어와 러시아어는 중국에서만 포함하였고 아랍어와 팔리어는 태국에서만 포함하고 있는데, 이 언어들은 두 나라의 정치 및 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부분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하는 남미와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하는 러시아는 과거 중국과 함께 사회주의 진영에서 이념을 공유하고 있었고 현재도 정치적으로 관계가 매우 긴밀하다. 아랍어와 팔리어는 각각 이슬람교, 불교와 관련이 깊다. 동남아시아에는 2억 5천만 명에 달하는 무슬림 인구가 있고 태국 국내의 무슬림 인구도 약 3%로 적지 않다. 이들은 아랍어를 모국어로 하지는 않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아랍어를 학습한다. 팔리어는 모국어 화자가 없는 언어로 불교 의례용으로만 쓰이는데, 태국은 대표적인 소승불교 국가인 까닭에 팔리어를 널리 학습하고 사용한다.
중국 가오카오는 매년 6월 7일과 8일, 이틀에 걸쳐 실시되며 일부 지역에 한해 7일부터 9일까지 사흘 동안 실시된다. 외국어 과목은 둘째 날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120분 동안 진행되는데 그 중 듣기평가 시간은 약 20분이다. 일반적으로 영어는 81문항이 출제되지만 그 밖의 언어들은 76문항이 출제된다. 76문항 기준으로 문항 당 풀이 시간은 평균 약 1분 35초이다.
일본 센터시험은 매년 1월 13일 이후 첫 번째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에 걸쳐 실시된다. 외국어 과목은 첫째 날 3교시(15:10∼16:30)7)에 80분 동안 실시하는데, 문항 수가 54문항으로 가장 많은 중국어의 경우 문항 당 풀이 시간이 평균 약 1분 29초이다. 질병, 부상 등으로 응시를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거나 천재지변 등 특별한 사정으로 시험이 제대로 실시되지 못한 경우 일주일 뒤 추가·재시험이 실시되는데, 이때 모든 과목을 다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2018년 추가·재시험에서 독일어와 한국어는 응시자가 없어 실시되지 않았다.
태국 PAT는 매년 3월과 10월, 총 2회 실시되고 성적이 2년 간 유효하다.8) 외국어 과목은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180분 동안 진행된다. 문항 수가 100문항이므로 문항 당 풀이 시간은 평균 1분 48초이다.
중국 가오카오 외국어는 국어, 수학과 함께 문·이과 공통 필수 영역으로 정해져 있어 대학 입시에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외국어 영역에 속한 영어, 러시아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6개 과목은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 하지만 일부 대학교에서는 전공에 따라 영어 외의 외국어 성적을 인정하지 않으며, 학교에 따라서는 심지어 전공과 무관하게 영어만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王颖芳(2012) 에 따르면 상하이 소재 대학 절반 이상이 영어 외의 외국어 성적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학 자체 특별 전형(自主招生)은 영어만 인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다른 외국어를 선택한 학생들은 대학 입시의 문이 상대적으로 좁다.
일본 센터시험은 중국 가오카오와 달리 필수 영역의 개념이 없고 성적 활용 방식을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다음은 센터시험 공식 웹사이트에 제시된 예시이다.9)
첫째, 기초적인 학력을 폭넓게 평가하기 위해 출제 교과·과목을 종합적으로 활용한다.
둘째, 일반 입시 모집 인원의 일부에 한해 센터시험의 특정한 교과·과목을 선택한다.
셋째, 교과·과목에 융통성을 두고 수험자가 자신 있는 것을 선택하게 한다.
넷째, 조사서와 센터시험으로 1차 선발을 하고 그 합격자를 대상으로 면접시험을 실시한다.
다섯째, 공학부의 경우 센터시험의 수학·외국어를 선택하고 대학 자체 시험은 이과만 실시한다.
여섯째, 모집 인원의 일부에 한해 센터시험과 대학 자체 시험 중 점수가 높은 쪽을 합격 여부 판정에 사용한다.
일곱째, 추천입학의 경우 센터시험 국어·외국어만 활용하고 대학 자체 시험으로는 면접을 실시한다.
여덟째, 필요한 센터시험 성적 기준을 명시하고 성적이 그 기준에 도달한 자는 대학 자체 시험에 참가하도록 하여, 센터시험 성적은 합산하지 않고 대학 자체 시험 성적만으로 합격 여부를 판정한다.
아홉째, 대학의 자체 판단에 근거하여 전년도 센터시험 성적을 당해 연도 입학생 선발에 사용한다.
위의 예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일본 센터시험은 성적 활용 면에서 대학의 자율성을 크게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외국어 과목 중 어떤 것을 반영하는지는 각 대학, 각 학부마다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2018년 입시 요강에 따르면 국립 도쿄대학교의 모든 학부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 한국어 등 5개 외국어를 다 반영하지만, 국립 교토대학교 이학부는 영어만을 반영한다. 그리고 사립 와세다대학교 문학부, 상학부, 사회과학부, 인간과학부의 경우 5개 외국어를 모두 반영하지만, 법학부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만 반영하며 정치경제학부, 스포츠과학부, 국제교양학부는 영어만을 반영한다.
태국 대학 입시는 대학 자체 선발 전형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고등학교 3년 간 내신 성적 평균(GPAX)과 O-NET, A-NET의 성적을 합산하여 이루어진다. 세 가지 요소의 반영 비율은 각각 20%, 30%, 50%이다.10) A-NET 가운데 GAT와 PAT의 성적 배분율은 대학에서 결정하며, 각 과목의 반영 여부, 반영 정도 역시 각 대학, 각 전공마다 다르다. 그러므로 수험생이 희망하는 대학 및 전공이 영어 이외의 외국어 성적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PAT에서 외국어 과목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태국은 한국처럼 영어와 영어 외의 외국어 과목을 다른 영역으로 분리하였으나, 중국과 일본은 모든 외국어를 단일한 영역 내에서 선택하여 응시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각 언어에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였다는 점에서 진정한 다중 언어 교육을 추구하는 정책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영어는 이미 국제어로서의 지위가 확고하고 사회적 수요가 압도적으로 높다. 그러므로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영어를 제외하고 다른 외국어를 포함하는 일은 일어나기 힘들고, 이것은 대입 시험에서의 응시자 비율 편중으로 이어진다. 매년 응시자 99% 이상이 영어에 쏠리고 해에 따라서는 0.2%도 안 되는 수험생들이 나머지 4∼5과목에 분산되는 중국, 일본의 현실을 생각하면, 한국의 현행 수능 체제처럼 제2외국어를 영어와 분리하는 것이 오히려 다중 언어 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겠다.
각국 대입 시험 외국어 영역이 포함하는 과목(영어 제외)의 수는 중국 5개, 일본 4개, 태국 7개로 모두 한국보다 적다. 한국 수능은 제2외국어와 한문이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해당 영역이 포함하는 과목의 수는 9개에 이른다. 어느 한 외국어를 대입 시험 과목으로 도입할 때는 해당 언어의 국제적 영향력과 정치적·종교적 필요성 등이 근거가 된다. 태국은 한국어의 영향력 증대에 따라 2018년부터 PAT에 한국어 과목을 추가하였다. 한국은 아랍어 수요가 증가하면서 2005학년도 수능 제2외국어에 아랍어를 추가하였고, 베트남과의 교류가 확대되면서 2014학년도 베트남어를 추가하였다. 그런데 전공 적합성을 평가하는 태국 PAT와 달리 한국 수능은 대학 교육에 필요한 수학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그러므로 각 언어들이 대학에서의 일반적인 수학 능력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지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수능은 고등학교 학교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 가운데 하나로 삼는다. 수능 과목의 추가는 학교 현장의 과목 개설 및 보급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한국 수능 제2외국어는 시험 시간이 40분으로 길지 않고 문항 당 풀이 시간도 1분 20초로 중국(1분 35초), 일본(1분 29초), 태국(1분 48초)에 비해 짧다. 그리고 일본 센터시험에는 추가·재시험 기회가 있으며 태국 PAT는 1년에 2회 실시되고 성적이 2년 간 유효하다. 반면 한국 수능은 재시험 기회가 없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시험을 제대로 못 치르더라도 1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물론 기존의 간결한 시험 방식의 장점도 분명 있지만 일본과 태국의 사례를 참고해 볼 필요도 있을 듯하다.
중국, 일본, 태국은 공통적으로 대학, 전공에 따라 반영하는 언어의 종류와 반영 정도가 다르다. 특히 중국과 일본은 영어와 그 밖의 언어들이 외국어 영역 내에서 동등한 지위를 갖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라도 대학 입학에 지장이 없다. 반면 한국은 거의 모든 수험생이 반드시 영어 영역에 응시해야 하고, 제2외국어 영역은 서울대학교 진학을 희망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꼭 응시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수능 제2외국어 과목 선택과 해당 외국어 학과 진학 간에 아무런 연계성이 없어, 일본어학과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이 수능에서 일본어를 선택하든 아랍어를 선택하든 성적 반영 면에서 다를 것이 없다. 장차 절대평가 전환 이후 평가의 신뢰도가 확보된다면, 각 대학에서 수능 제2외국어 성적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들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Ⅳ. 중국, 일본, 태국의 평가 문항 및 시사점
아래에서는 문항 구성, 문제 형식, 지문과 발문의 형태, 난이도 등의 측면에서 중국, 일본, 태국 대입 시험 제2외국어의 평가 문항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고, 이로부터 한국 수능 개편에 주는 시사점을 도출해 보도록 한다. 평가 문항에 대한 분석은 시험 요강의 예시 문제 또는 비교적 근래의 시험 문제지를 대상으로 한다. 각국 대입 시험의 제2외국어 과목에 포함된 모든 언어의 문제지를 분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각 시험별로 2개 언어를 선정하였는데, 연구자가 비교적 익숙하고 원어민의 검증을 받기 쉬운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중 2개 언어를 선정하였다. 중국 가오카오는 2016년 출판된 시험 요강의 독일어, 일본어 예시 문제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일본 센터시험은 2018년 독일어, 중국어 본 시험 문제지를 대상으로 하였다. 태국 PAT는 2011년 이후로 문제지를 공개하지 않는 까닭에 부득이하게 2011년의 일본어, 중국어 문제지를 대상으로 하였다. 아울러 연도별 출제 방식의 차이가 연구 결과에 줄 수 있는 영향을 최소화하고자 다른 연도의 문제지들도 일부 참고하였음을 밝혀 둔다.
중국 가오카오 제2외국어는 총 76문항이며 만점은 150점이다. 내용에 따라 제1부분∼제4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각 듣기, 언어 지식 활용, 독해, 작문에 해당한다. 부분별 문항 수는 과목별로 다르다. 2016년 시험 요강의 예시에 따르면 일본어는 듣기 15문항, 언어 지식 활용 40문항, 독해 20문항, 작문 1문항인데, 독일어는 일본어보다 듣기가 5문항 많고 언어 지식 활용이 5문항 적다. 문제지는 전국 공통이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듣기 부분을 제외하기도 한다.
일본 센터시험 외국어의 각 과목은 만점이 200점으로 같지만 문항 수는 조금씩 다르다. 중국어가 54문항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은 프랑스어(51문항), 한국어(50문항)이며 독일어가 49문항으로 가장 적다. 크게 5개∼8개의 대문항으로 나뉘어 제1문, 제2문, 제3문 등으로 칭하는데, 이것은 내용에 따른 구분이라기보다는 문제 유형에 따른 구분이다. 내용 면에서는 크게 발음, 어휘, 문법, 단문 독해, 종합으로 나눌 수 있다.
태국 PAT 외국어는 총 100문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만점은 300점이다. 문항들이 유형별 또는 지문별로 묶여 있는데 적게는 5개, 많게는 45개씩 한 묶음을 이룬다. 내용 면에서는 크게 어휘, 문법, 문화 상식, 종합으로 나눌 수 있다.
중국 가오카오 외국어는 선다형 75문항과 서술형 1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다형은 삼지선다와 사지선다로 나뉘며 후자의 비중이 약 80%를 차지한다. 반 이상이 세트형 문항으로 출제되는데 긴 지문 하나에 20문항이 출제되는 경우도 있다. 서술형은 제시된 글이나 그림, 도표 등을 보고 지시에 따라 짧은 글을 쓰는 방식이다.
일본 센터시험 외국어는 모든 문항이 선다형이며 사지선다에서 팔지선다까지 두루 활용된다. 세트형 문항의 비중은 약 40%이며 지문 하나에 적게는 2개, 많게는 7개가 출제된다.
태국 PAT 외국어는 100문항 모두 사지선다형이다. 세트형 문항이 다수 출제되며 비중은 과목에 따라 다르다. 2011년 일본어의 경우 세트형 문항의 비중이 40%이고 지문 하나에 5문항씩 출제되었다.
중국 가오카오 외국어 각 과목의 지문은 상당히 긴 편이다. 제1부분과 제4부분은 각각 듣기와 작문이고 제2부분은 대체로 한 문장씩만 주어지는 까닭에 지문은 제3부분, 즉 독해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 일본어는 지문 하나가 500글자 가까이 되는 경우도 있으며, 독일어 같은 서양어는 한자가 없고 띄어쓰기를 하는 까닭에 분량이 더 많아 200단어를 훌쩍 넘기도 한다. 지문의 형식은 단문 또는 대화문이며 도표, 그림 등은 쓰이지 않는다. 세부적인 발문은 외국어로 되어 있으나 각 부분의 설명은 중국어로 되어 있다.
일본 센터시험 외국어 역시 지문의 길이가 긴 편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중국 가오카오의 분량을 훨씬 뛰어넘는다. 2018년 중국어 제5문과 제6문은 600글자 내외이며 독일어 제7문은 무려 370단어에 이른다. 형식은 단문과 대화문이 주를 이루지만 편지, 광고, 게시판 글이 활용되기도 하며 간단한 삽화가 쓰이기도 한다. 발문은 모두 일본어로 되어 있다.
태국 PAT 외국어는 문항 수가 많은 만큼 지문 또한 상당히 많은데 그 중에는 분량이 적지 않은 글들도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2011년 중국어 80∼81번 문항의 지문은 242글자이고 일본어 86∼90번 문항의 지문은 303글자이다. 분량이 가오카오, 센터시험보다는 적지만 수능보다는 훨씬 많음을 알 수 있다. 지문의 형식으로는 일반적인 단문, 대화문 외에 편지, 이메일, 안내문 등이 있으며 삽화도 간혹 활용된다. 유형별, 지문별로 묶어 제시된 큰 발문은 외국어와 태국어로 쓰였으며 세부적인 발문은 외국어로만 제시된다. 특이한 점은 중국어의 경우 간체자로 작성된 문제지와 번체자로 작성된 문제지를 함께 제공하여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번체자로 중국어를 공부한 학생들을 배려한 조치라고 볼 수 있겠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중국 가오카오 외국어는 듣기와 작문을 포함하고 지문의 길이가 길며 세부적인 발문이 외국어로 제시되어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러한 점은 어휘 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시험 요강에 따르면 가오카오 일본어는 수험생이 2000단어 내외의 어휘력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 2266단어를 요구하는 JLPT(일본어능력시험) N2 등급과 비슷한 수준이다. 현재 수능 일본어가 근거로 삼는 2009 개정 교육과정 기본어휘표가 955단어로 이루어져 있음을 생각하면 그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외국어 영역에 속한 영어에 비하면 다른 외국어 과목의 난도는 높지 않다. 王颖芳(2012) 에 따르면 상하이의 일본어 점수 평균은 매년 영어보다 20점이 높아 일본어를 선택한 학생들이 입시에 유리한 면이 있다.
일본 센터시험 외국어는 지문이 길 뿐만 아니라 출제 어휘에 제한이 없다. 예를 들면 2018년 중국어 제1문 A의 두 문제는 제시된 단어의 밑줄 친 부분과 성모가 같은 단어의 개수를 고르는 문제로, 문제 유형 자체가 고난도일 뿐만 아니라 어휘의 수준 또한 상당히 높다. 현재 중국에서 교재 편찬 및 시험 출제의 근거로 많이 활용되는 『중국어 국제 교육용 음절·한자·어휘 등급 구분(汉语国际教育用音节汉字词汇等级划分)』은 중국어 교육용 어휘 11,092개를 크게 초급(2,245단어), 중급(3,211단어), 고급(5,636단어)으로 나누는데, 센터시험의 해당 문제에 활용된 10개 단어 중 초급 어휘는 ‘随时’, ‘伤心’, ‘京戏’ 3개에 불과하고 중급 어휘는 ‘缺乏’, ‘启发’, ‘放弃’, ‘似乎’, ‘森林’ 5개, 고급 어휘는 ‘亲戚’, ‘翅膀’ 2개이다. 이와 같이 중·고급 어휘를 다수 출제하는 것은 센터시험의 본래 목적인 기초 학습목표 달성 정도의 측정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데 같은 해 독일어 제1문의 1, 2번 문제에 제시된 8개 단어는 모두 Goethe-Zertifikat(독일어능력시험) 6단계 중 가장 낮은 단계인 A1 수준이다. 확인 결과 2016년, 2017년 시험도 상황이 마찬가지였는데, 이를 통해 과목 간 난이도 차이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11)
태국 PAT 외국어는 지문의 길이가 가오카오, 센터시험만큼 길지는 않지만, 문항 수가 워낙 많고 내용이 어려워 만점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周国鹃, 春丽娟(2013) 에 따르면 2009∼2012년 치러진 8회의 시험 중 중국어 과목 최고 점수는 291점이었고 280점을 넘은 것은 단 2회에 불과했다. PAT는 희망하는 대학 및 전공에 따라 과목을 선택해서 응시하는 시험이므로 각 외국어 과목의 평균점이나 난이도가 다르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한국 수능 제2외국어는 전 문항 객관식 선다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반해 중국 가오카오는 작문이 포함되어 있으며 큰 공정성 시비 없이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점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도 마찬가지이다. 객관성 확보가 쉽지 않아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작문을 도입하면 수험생들이 요행을 바라고 특정 과목에 응시하여 정답 마킹을 운에 맡김으로써 높은 점수를 받는 일을 방지할 수 있으며, 변별을 위해 과도하게 어려운 문항을 출제할 필요 또한 줄어든다. 하지만 작문은 국어, 영어, 수학 등 다른 영역의 문항 구성과도 관련되어 도입하기가 쉽지 않다. 중국 가오카오에는 듣기 문항도 포함되어 있는데, 듣기는 수능 영어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어 제2외국어에 도입하더라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문항 수, 지문의 길이, 어휘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가오카오, 센터시험, PAT는 대체로 모두 수능보다 까다로운 편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수능 일부 과목은 변별을 위해 특정 유형 문법 문제를 과도하게 어렵게 내는 경향이 있는데,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고하여 새로운 유형의 문제들을 시도하거나 지문의 분량을 좀 더 늘리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다만 어휘는 현행대로 고등학교 교육과정 기본 어휘표 수준에 맞추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센터시험은 어휘에 제한을 두지 않은 결과 중·고급 어휘가 대량으로 출제되어 본래 목적인 기초 학습목표 달성 정도의 측정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절대평가 전환 발표 이후 기존 문제 해결 및 수업 정상화에 대한 기대가 높지만, 전환에 따라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미리 신중히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 절대평가로 시행되고 있는 가오카오의 경우 각 과목의 평균점 차이가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상하이의 가오카오 일본어 점수 평균은 매년 영어보다 20점이 높아 일본어를 선택한 학생들이 입시에 유리한 불평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Ⅴ. 맺는 말
본 연구는 중국, 일본, 태국의 대입 시험인 가오카오, 센터시험, PAT의 제2외국어 과목 운영 현황을 개략적으로 알아보고 우리나라의 수능 제2외국어 개편을 위한 시사점을 도출해 보고자 하였다.
가오카오는 전국 통일 시험으로 선발 시험의 성격이 강한 반면 센터시험은 기초학력평가로서 대학에 따라 다르게 활용되고, PAT는 희망하는 대학 및 전공에 따라 과목을 선택해서 응시할 수 있는 직업적·학문적 수학 능력 시험이다. 포함하는 언어의 종류는 각국의 상황에 따라 다르며 수는 PAT가 7개로 가장 많다. 가오카오와 센터시험은 영어와 다른 외국어들에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여 단일한 외국어 영역 내에서 선택하여 응시할 수 있도록 하였다. 문항 당 풀이 시간은 세 시험 모두 수능보다 길다. 센터시험은 본 시험 외에 추가·재시험 기회가 있으며 PAT는 매년 2회 실시되고 성적이 2년 간 유효하다. 중국, 일본, 태국은 공통적으로 대학 및 전공에 따라 반영하는 언어의 종류와 반영 정도가 다르다.
가오카오, 센터시험, PAT의 문항 수는 모두 수능보다 많으며 세트형 문항도 많이 활용되었다. 가오카오는 듣기와 작문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세 시험은 모두 지문이 긴 편인데 센터시험이 특히 길다. 가오카오와 PAT는 세부적인 발문을 외국어로 제시하였으나 센터시험은 모든 발문을 일본어로 제시하였다. 문항 수, 지문의 길이, 어휘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세 시험 모두 수능보다 까다롭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얻어진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영어와 그 밖의 외국어들을 다른 영역으로 구분하지 않으면 영어 쏠림 현상이 일어나 외국어 학습의 다양성이 위협 받을 수 있다. 영어와 제2외국어를 구분하는 현행 수능 체제는 얼핏 보면 불평등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중 언어 교육을 보호하는 장치로서 기능하고 있다.
둘째, 제2외국어 영역에 새로운 과목을 추가하는 일은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하는 것이 수능의 목적 가운데 하나인 만큼, 수능 과목 추가는 학교 현장의 과목 개설 및 보급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셋째, 수능은 천재지변이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시험에 참가하기 어려운 경우 1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재시험 제도 도입을 고려해 볼 만하다.
넷째, 현재 대학의 수능 제2외국어 성적 활용 방식은 매우 제한적이다. 과목 선택과 해당 외국어 관련 학과 진학 간에 연계성이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객관식 선다형 읽기 문항만으로는 전반적인 외국어 능력을 측정하기가 어렵다. 듣기, 작문 평가를 실시하고 있는 중국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특히 듣기는 수능 영어에서 이미 실시하고 있으므로 제2외국어에 도입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여섯째, 변별을 위해 과도하게 어려운 문법 문제를 내는 것보다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고하여 새로운 유형의 문제를 출제하거나 지문의 분량을 늘리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일곱째, 절대평가 전환 이후 각 과목의 난이도와 평균점이 크게 차이 나지 않도록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과목별로 응시자 수준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본 연구는 중국, 일본, 태국 3개국의 운영 현황을 여러 각도에서 개략적으로 살펴보는 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자료 분석이 세밀하지 못한 면이 있다. 위의 각 절에서 다룬 시험의 성질, 성적 활용, 문항 구성, 문제 형식, 난이도 등은 모두 독립된 연구 주제로 삼을 만하며, 3개국이 아닌 1개국을 대상으로 한다면 해당 주제에 관해 더 깊이 있는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12) 이는 후속 연구 과제로 다루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