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2013년 12월 18일 교육부는 ‘논술’(이하 과목으로서의 논술은 ‘논술’로 표시함)을 고등학교 생활/교양 영역 교양교과 선택과목 중의 하나로 고등학교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시킨다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교육부의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일부 개정 고시’(교육부, 2013)에 따라 모든 고등학교에서는 2014년도부터 논술 과목을 신설, 교육시킬 수 있게 되었다. 논술, 즉 논리적 글쓰기 능력은 학문적 탐구와 합리적 일상생활의 영위에 꼭 필요한 기본 소양으로서 그동안 중요한 교육적 관심사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고등학교에서 이 기본 소양을 함양하는 일은 주로 대입 논술고사를 대비하려는 목적에서, 혹은 ‘방과후 수업’ 등 비정규 활동을 통해서만 이루어졌을 뿐 체계적인 정교 교육과정의 차원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입시를 위주로 하는 우리 사회의 교육 현실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것은 고등학교에서의 논술 교육의 정체성 및 교육 방법 그리고 그 기대효과 등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합의가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교육부에서 ‘사회 현상에 대한 통합적 접근과 논리적 사고력 함양’(교육부, 2013, p.4)을 특성으로 갖는 ‘논술’ 과목의 필요성을 공식화하였고, 그에 따라 모든 고등학교에는 비로소 독립적인 과목을 통한 논술 교육이 가능해진 것이다.
문제는 공식적으로 확보된 교육 공간 안에서 ‘과연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논술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가’이다. 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회의주의를 불식시키고 논술 교육을 학교 안에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다각도의 노력이 기울여져야 할 것이다. 우선 교육 현실을 고려하면서도 논술 교육의 좋은 취지를 반영하는, 그리고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통해서 실현가능한 ‘논술’ 과목의 교육과정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교육과정을 담당할 현장의 교사들이 적합한 교수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가 차원에서는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관련 분야의 교육 연구자들은 논술 교육 현장에서 실천적으로 활용 가능한 논술 교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하여 공급해야 할 것이다.
본 연구는 논술 교육이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하여 가장 선결되어야 할 ‘논술’ 교육과정 개발을 위한 교육과정의 성격, 목표, 내용체계를 고찰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에서 논술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 않는 것은 입시 위주의 교육풍토이기 때문이지만, 다른 한편 고등학교에서의 논술 교육의 정체성 및 교육 방법 그리고 그 기대효과 등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합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술’ 교육과정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논술 교육의 정체성 및 목적에 대한 객관적인 합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논술 교육과정을 새롭게 개발하는 데에 근거자료를 확보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일련의 작업을 수행하였다. 첫째, 논술에 대한 선행연구 분석을 통해 ‘논술’과목이 어떤 성격과 목표,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 원리를 설정하였다. 둘째, ‘논술’ 과목 교육과정 개발의 원리에 입각하여 ‘논술’ 교육과정의 성격, 목표, 내용체계에 대한 초안을 개발한 후 여러 번의 전문가 협의회를 통하여 구안된 내용을 정교화시켰다. 셋째, 이러한과정을 통하여 구안된 ‘논술’ 과목 교육과정의 성격, 목표, 내용체계의 핵심내용을 학교 현장의 적합성 확보를 위하여 현장 교사들의 검토를 거쳐 확정하였다.
II. 이론적 배경
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바람직한 논술 교육은 어떤 형태일까? 이 문제를 두고 그 동 안 많은 논술 담당 교사 및 관련 분야 연구자들의 선행 연구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크게 세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논술 시험의 효용성 및 논술 교육의 필요성 연구이다. 김준기 (2011)는 논술이 학생의 능력을 종합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특히 정보화 시대에 요구되는 융합적·창의적 인재를 선발하는데 통합 논술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강버들, 박종운(2013)은 교사들의 인식 조사를 근거로 논술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받지 않는 것보다 표현력, 이해·분석력, 창의력, 논증력 등이 향상되는 것을 밝히고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논술 교육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또한 박정하 (2013)는 이른바 ‘고전논술’로 분류되는 논술 문제 유형에 대한 비판적인 고찰을 통하여 논술 교육이 대학 교양 글쓰기 교육과 연동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둘째는 논술 문제 출제 경향 및 문제 유형에 대한 분석 연구이다. 노명완(2010), 이욱희 (2013), 이영호(2014) 등은 논술 시험의 의미를 정의하고 대입 논술 시험 시행 이유와 변화 과정을 정리하면서, 바람직한 논술 시험 실시 방법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입 논술은 ① 시사성 중심의 논술, ② 고전 이해 및 감상 중심의 논술, ③ 하이퍼 텍스트적 주제 통합형 논술, ④ 통합교과적 논술, ⑤ 범교과적 통합교과적 논술(노명완, 2010, p. 405)로 변화해 왔으며, 논술 시험 유형은 단독과제형, 자료제시형, 통합논술형의 세 가지로 분류(이영호, 2014, p. 71)된다. 한편 연구자들은 현행 논술 교육이 대부분 사교육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점에 우려를 표하며, 공교육 과정에서 논술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 논술 시험의 바람직한 방향 정립에 중요한 조건이 될 것임을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셋째, 논술 교육 방향 및 방법 연구이다. 박정하, 황혜영(2007)은 사교육 시장의 특성상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논술 교육이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며, 공교육 영역에서 논술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김지운(2008, pp. 133-134)은 논술 시험이 고등학생들에게 소외감, 두려움을 초래하고 현실 문제에 대하여 방관하는 태도를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교육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논술 교육 강화라기보다는 학생들의 직·간접적인 체험과 결부된 자유로운 형식의 글쓰기라는 주장을 전개했다. 강버들, 박종운(2013, pp. 1120-1121)은 통합교과형 논술교육 실태와 교사의 인식 조사에 근거하여, 학교 교육에서의 통합교과형 논술교육은 전 교육과정에 걸쳐 모든 학년들 대상으로 교과간의 학습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 교사들이 통합교과형 논술 교육의 지도내용에 대하여 교과 지식내용과 교과목 관련 배경지식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 통합교과형 논술교육의 지도 방법으로 팀티칭이나 프로젝트 학습을 선호한다는 점 등을 강조하고 있다. 또 박정희 (2013, p. 145)는 프랑스의 ‘바 칼로레아’와 조선의 ‘책문’을 비교하여 논술 교육 방법 개발을 위한 아이디어를 모색하고 있으나, 논술 교육의 실제로서 구체적인 글쓰기 방법과 지도예시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를 하지 않고 있다.
임규정(2011)은 논술의 네 가지 평가 영역을 이해분석력, 논증력, 창의력, 표현력으로 구분 하고, 각 영역의 평가 대상과 지도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임규정(2011, p. 93)에 따르면, 이 해분석력은 논제와 제시문을 논리적으로 파악하고 특히 제시문의 논리적 구조를 정확히 분석하는 능력, 논증력은 논지를 논리적으로 전개하여 자신의 입장을 설득력으로 개진하는 능력, 창의력은 출제된 제시문과 논제에서 주어진 쟁점 상황들과 관련된 전제들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논의의 맥락과 관련된 심층적 사고를 하는 능력, 표현력은 의도한 바를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할 수 있다. 임규정(2011, p. 112)은 이와 같은 분석에 근거하여 모든 영역의 능력이 고르게 조합될 때 좋은 논술을 작성할 수 있기에, 학생들이 모든 영역을 고루 익힐 수 있도록 지도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원진숙(1998, p. 112)은 논술 지도 방안으로서 ‘상호작용적 논술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이 프로그램은 논술 텍스트는 결속성 원리를 중심으로 하여 필자와 독자 간에 이루어지는 상호 작용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 논술 능력은 문제-해결 과정의 각 단계별로 요구 되는 전략을 학습함으로써 향상될 수 있다는 점, 논술 능력은 제반 언어 기능과의 상호작용적인 제휴에 기초한 지식 기반 활성화를 통해서 보다 향상될 수 있다는 점, 상호작용적 논술 지도 프로그램은 단언적 지식이 절차적 지식 단계로 전이되는 ‘단계적 지도 원리’를 토대로 구성된다는 점, 논술 능력은 교사와 학습자간의 상호작용 및 학습자들 간의 적극적인 상호 작용을 통해 향상될 수 있다는 점 등 다섯 개의 원리를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이 중 ‘논술 능력은 문제-해결과 정의 각 단계별로 요구되는 전략을 학습함으로써 향상될 수 있다’는 원리에 기초하여, 바람직한 논술 지도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논술 작성은 문제 해결 전략을 계획하기 단계, 아이디어 생성 조직하기 단계, 집필하기 단계, 교정하기 단계별로 나누어 진행되며(원진숙, 1998, p. 113), 학생들이 각 단계별 작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원진숙은 각 단계에서 활용해야 할 전략을 제시하는데, 이는 ‘계획하기 단계 - 수사적 맥락 탐색하기 전략’, ‘아이디어 생성 조직하기 단계 - 지식 기반 활성화 전략, 브레인스토밍 전략, 조직하기 전략’, ‘집필하기 전략 - 의사소통 전략, 신구정보에 의한 표현 전략’, ‘교정하기 단계 - 글의 목적을 중심으로 교정하기 전략’등이다(원진숙, 1998, pp. 113-119).
이와 같은 선행연구로부터 도출되는 시사점은 논술이 대입을 위한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학생들의 능력을 계발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으며, 제대로 된 논술 교육은 단기간에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공교육 영역에서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설계, 활용하여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점이다. 논술과 논술 교육의 효용성 및 필요성에 대한 위와 같은 합의에 비추어 볼 때, 공교육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논술 교육 시스템과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제대로 된 논술 교육을 해야 한다.’는 당위적 결론을 도출하는 수준에서 연구가 진행되었을 뿐, ‘어떻게 논술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연구가 충분히 진행되지 못했다. 논술 교육 방법을 다룬 선행 연구들도 논술 교육 모델, 방법, 내용 등을 특정 과목이나 주제를 개별적으로 다루고 있을 뿐 논술 교육의 일반적 모형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한편 원진숙의 연구는 논술 작성 과정을 단계별로 구분하고 각 단계에 적용할 수 있는 전략까지 제시하여 완성도 높은 논술 교육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논술 교육을 하는 사람 뿐 아니라 교육을 받는 학생도 일정 수준 이상의 글쓰기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 방법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고등학생이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수준의 논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 고등학교 보다는 대학 글쓰기 교육 과정에서 활용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앞으로 고등학교 교육에서 논술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개설되어 있는 ‘논술’ 과목 교육과정 및 교육모형 개발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점에서 현재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논술’ 교육과정이 개발되고 있고 2015년 9월에 고시될 예정이라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논술’ 교육과정이 개발되기 위해서는 논술 교육이 무엇을 위한 교육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으므로 이하에서는 이 부분에 대하여 다루고자 한다.
논술은 자연 세계와 사회 그리고 우리 자신에 관한 보편적 지식과 진리를 추구하기 위한 학문적 의사소통의 기본 양식으로서 ‘논리적 글쓰기’이다(원만희 외, 2014a, p.8). 따라서 논술은 시나 소설을 쓰는 문예적 글쓰기와 구별되며, 실용적 목적의 일상적 글쓰기와도 다르다. 그것은 특정한 학문적 주제 혹은 논제에 관한 일련의 텍스트나 정보 등이 이미 주어져 있는 상태에서 시작된다. 주어진 텍스트를 독해하여 그 안에 제시된 저자의 주장이나 견해를 파악하거나, 그에 대해 비평하거나, 그 견해와는 다른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등의 글들이 여기에 속한다. 따라서 논술을 위해서는 주어지는 텍스트나 정보에 대한 올바른 독해 및 분석, 비판 능력 그리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문제 해결 능력이 필수적이다(원만희 외, 2014a, p.8). 그리고 이러한 독해, 분석, 비판, 문제 해결력은 ‘비판적 사고’라는 이름의 복합적인 정신적 소양으로 포섭될 수 있다. 그 이유와 배경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 양식으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매체론적 논의가 약간 필요하다.
인간의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말하고 듣는 것이었다. 문자가 등장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목소리에 의존하여 소통하며 살았다. 사람들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남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에 적절히 반응하며 살았다. 그 후 문자가 발명되었고, ‘글쓰기’라는 의사소통 기술이 생겨났다(이기우, 임명진, 1995, p. 129) 쓰고 읽는 과정, 즉 문자를 사용하는 의사소통은 암호의 전달과 해석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각적 코드로서 암호의 사용은 시공간적 제약을 크게 받는 말의 사용과 비교할 때 경험의 축적 및 의사소통 범위의 비약적 확대라는 아주 커다란 장점을 지닌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선, 암호의 구성과 해독을 위한 정밀하고 복잡한 난수표, 즉 기호들의 규칙적 배열 방식과 기호들과 대상 간의 지시관계를 결정해주는 해석 목록 혹은 인덱스 같은 것이 요구된다. 왜 냐하면 추상적 기호, 즉 암호의 의미를 정교하고 엄격하게 고정시켜 사용하지 않을 경우, 해석의 불확정성으로 인해 의사소통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원만희 외. 2014b, p. 17)
일련의 규칙에 의한 문자의 시각적 배열 그리고 (전달 내용의 해석에 필요한 의미론적 관계로서)배열된 문자들과 대상들 간의 추상적 지시관계의 확정은 불가피하게 의미의 추상화와 고정화를 낳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의 추상화와 고정화의 교호적 상승작용은 인쇄에 의해 더욱 가속화된다. 활자에 의한 획일화된 문자 형태, 그리고 그것들의 순차적, 선형적 배열이 그렇게 만든다. 더 나아가 고정된 의미들의 반복된 사용으로부터 추상적 개념들이 만들어지고, 다시 이로 인해 추상적 사고가 고도로 발전하게 된다.(원만희 외, 2014b, p. 18)
글쓰기라는 기술에 의해 추상적인 사고가 발달하게 된다는 점 외에도 ‘사고의 재구조화’와 관련해 꼭 주목해야 할 것은 글쓰기에 의해 반성적 사고 성향이 강화된다는 점이다. 글쓰기는 말하기와는 달리 의사소통의 직접적 상황, 즉 소통의 현장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말을 주고 받을 때와는 달리 글을 쓰고 읽을 때는 정보의 전달과 수용의 과정에서 충분한 시간적 간격이 생겨난다. 이러한 간격으로 인해 글을 읽고 쓰는 과정에서는 컨텐츠에 대한 인식적 반성과 평가의 기회가 확보된다. 그리하여 글쓰기는 지식의 대상으로부터 지식의 주체를 분리시키고, 심지어 글쓰기의 주체가 외부 세계뿐만 아니라 그 세계를 바라보는 자기 자신까지도 지식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한다.(이기우, 임명진, 1995, p. 162) 바로 이와 같은 인식적 반성과 평가에 기반하여 엄밀성과 객관성을 추구하는 학문적 탐구가 가능해진다.
또한 이상과 같은 메타 인지 과정으로서의 반성적 사고는 다시 세부적 사고 성향들의 강화를 야기시키는데, 그것은 바로 분석적, 논리적 사고이다. 쓰기에 의해 거의 영구적으로 고정된 말들의 배열(혹은 텍스트)은 언제든 인식적 반성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반성 과정에서 텍스트 속의 문장이나 단락은 일정한 의미 단위로 세분화되고, 전, 후 문장이나 단락 간의 내용적 연관 관계가 정밀하게 검토된다. 그리하여 지적 탐구의 구체적 과정으로서 논리적 분석과 추론이 내면화된다.
실제로 글쓰기와 학문적 연구의 관련성에 대해서 W. Ong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연구한다는 것 자체가 글쓰기와 관계가 있다. 1차적인 구술문화의 사고를 포함해서 무릇 모든 사고는 어느 정도 분석적이다. 즉, 사고는 그 재료를 가지각색의 성분으로 분해한다. 그렇지만 잡다한 사실이나 현상들을 추상적으로 순서 매김을 하고 분류하고 설명해서 분석하는 일은 쓰거나 읽거나 하는 일 없이는 불가능하다.”(이기우, 임명진, 1995, p. 18)그리고 이러한 분석의 도구로서 “삼단 논법과 여타의 논증 형식 속에 들어 있는 논리적 분석 방법들 또한 글쓰기에 의존한 것이다.”(Goody & Watt, 1968, p. 68) 서로 다른 이유에서지만, 저명한 매체 사상가인 M. Mcluhan도 논리학의 기법들이 알파벳을 이용한 글쓰기 기술이 없었더라면 결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박정규, 1997, p. 130).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을 요약하자면, ‘글쓰기’는 그 기술적 특성으로 인해 추상적이고, 반성적이고,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사고 성향들을 강화시킨다. M. Mcluhan은 ‘매체’가 인간의 정신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메시지’라고 규정한 바 있다. 여기서 매체를 ‘문자’ 라고 한다면, 그것의 사용으로서 ‘글쓰기’(문자 매체의 사용)가 낳은 사고의 변화, 즉 추상적, 반성적, 분석적, 논리적 사고 성향 등의 강화, 그것이 바로 ‘메시지이다. 그리고 이 메시지는 글의 내용과 무관하게 글을 쓰는 ‘기술적(매체 사용) 과정’ 자체로부터 발생하는 효과이다. 바로 이 점이 비판적 사고와 글쓰기가 맺고 있는 내적 혹은 심층적 연관 관계이다(원만희 외, 2014b, p. 19).
비판적 사고는 흔히 ‘궁극적으로 개인적 편견과 그릇된 정보, 그리고 외적인 간섭 요인에 사로잡히지 않는 공정한 마음의 자세에서 합리적인 문제해결과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변증법적 추론능력’으로 정의되거나(Paul, 1984, p. 5), 또는 ‘무엇을 믿고 행동할지를 결정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 합리적이고 반성적인 사고’로 정의된다.(Norris & Ennis, 1989, p. 18) 그러나 비판적 사고가 어떤 방식으로 정의되더라도, 추상적이고 반성적이고 분석적인 그리고 논리적인 사고 등은 인지 과정을 형성하는 요소적 사고 성향들로서 그 안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러한 사고 성향들의 강화 또는 활성화의 근원인 글쓰기는 비판적 사고와 따로 떨어져 이해될 수 없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리고 그와 같은 심층적 연관성을 받아들인다면, 비판적 사고는 글쓰기, 특히 학문적 목적의 글쓰기를 통해 가장 잘 훈련되고 동시에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왜 비판적 사고가 논리적 글쓰기 또는 논술을 위해 꼭 필요한 정신적 소양인지를 알 수 있다. 또 그것이 학문적 의사소통 능력의 향상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비판적 사고에 기반한 글쓰기로서의 논술’이라는 학문적 기반 위에서 ‘비판적 사고력과 논술 능력의 동시 함양’을 도모할 수 있는 교육과정과 효과적인 교육방법을 마련하는 일이 남아있으며, 본 연구는 그 중에서 교육과정을 개발하고자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III. ‘논술’ 교육과정의 성격, 목표, 내용체계 구안 과정
본 연구는 선행연구 분석 결과와 ‘비판적 사고에 기반한 글쓰기’라는 논술의 개념 정의에 따라 ‘논술’ 교육과정 개발을 위한 첫 단계로서 ‘논술’ 교육과정의 설계 철학 및 목표 초안을 다음과 같이 개발한 후 여러 번의 논술 관련 전문가 검토를 받으면서 성격, 목표, 내용체계를 정교화시 켰다.
‘논술’ 교육과정의 성격, 목표, 내용체계를 구안하기 위하여 본 연구는 위에 제시한 초안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4번의 오프라인 검토와 1번의 온라인 검토를 시행하였다. 오프라인 검토는 논술 관련 전공 현장교사와 대학교수로부터, 온라인 검토는 논술 관련 현장교사들로부터 받았다. 특히, 마지막 온라인 검토는 구안된 ‘논술’ 교육과정의 성격, 목표, 내용체계의 현장적합성을 최종 검토받기 위하여 시행되었다. 오프라인 검토는 동일한 협력진 3~7명으로 구성하여 시행하였으며, 온라인 검토는 오프라인 검토에 참여하지 않은 새로운 협력진으로 구성하여 시행 하였다. ‘논술’ 교육과정의 성격, 목표, 내용체계에 대한 검토 시행 개요를 표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오프라인 검토는 총 4회를 시행하였으나 마지막 4차 검토회의는 3차 검토회의 결과에 대한 윤문 및 확정을 위한 회의였으므로 이하에서는 1차~3차 검토 결과만을 제시하고자 한다.
1차 검토 회의는 초안에 대한 의견을 브레인스토밍 방식으로 개진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2차 검토 회의는 1차 검토 회의 결과를 반영하여 좀 더 상세하게 구안된 ‘논술’ 교육과정의 성격, 목표, 내용체계의 1차 수정안에 대한 검토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3차 검토 회의는 2차 검토 회의 결과에 따라 수정된 2차 수정안에 대한 검토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3차 검토 회의를 거쳐 최종안이 도출되었고 이에 대한 현장교사들의 현장적합성 검토가 온라인으로 시행되었다. 현장 교사들에 의한 온라인 검토 의견 및 반영수정여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IV. 논술 교육과정 성격, 목표, 내용체계 구안1)
본 연구는 논술을 합리적 설득 및 지식의 수용과 전달 그리고 새로운 지식의 창출을 위한 ‘학문적 의사소통’의 주된 양식으로서 ‘논리적 글쓰기’로 정의하고자 한다. 이 정의가 갖는 특징은 두 가지이다. 첫째, 논술은 학문적 의사소통의 주된 양식일 뿐만 아니라 합리적 일상생활의 영위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의사소통 능력이라는 점이다. 둘째, 논술이 지식의 수용과 전달 그리고 새로운 지식의 창출을 위한 학습 양식이라는 점이다. 논술은 우리의 이성 혹은 지성에 기반한 의사소통 양식이라는 점에서 첫번째 특징은 새삼 설명할 필요 없는 상식적 견해를 반영하고 있지만, 두번째 특징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사람들은 흔히 글쓰기를 미리 생각해 놓은 바 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는(output) 과정으로만 여긴다. 이는 단견일 뿐이다. 글쓰기는 단순히 이미 알려져 있거나 새롭게 제시된 누군가의 견해를 단순히 전달하는 기능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일정한 정보나 지식을 전달하는 글이라고 할지라도 쓰기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 발생한다. 남의 말이나 글을 단순 전달하는 글쓰기의 경우를 제외하고, 전달할 내용 즉 지식 자체가 글쓰기 과정에서 형성된다. 글을 쓰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객관화하여 떠올리고, 그 가운데 자신이 명확히 아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며,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전달할 내용(사고)이 먼저 명확히 결정되어 있고 그것이 매체로서의 글에 고스란히 담겨져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무엇인가를 남에게 전달하고자 글을 쓰는 과정에서 비로소 전달할 내용(content)이 명확히 정리되고, 명확히 정리된 바로 그것이 남에게 전달된다.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는 경우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명확히 정리 되지 않은 생각은 생각이 아니며, 전달할 ‘내용’도 되지 못한다. 인지주의 작문이론가들은 “글쓰기는 하나의 인지(지식형성)과정이다”라고 주장한다(Fulwiler, 1982, p. 18). 이 주장을 학문 영역으로 옮겨오면 논술은 그 자체로 학습 양식이라는 말이 된다.
여기서 “글쓰기가 지식 형성과정, 나아가 학습 양식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글쓰기를 통해 우리의 생각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구체적이고 명료한 것이 된다.(원만희 외, 2014b, p. 6) 생각의 명료화야말로 지식 혹은 의미 형성의 출발점이다. 그 이유는 글쓰기를 통해 하나의 생각이 가시적(visible)이 되면서 그 생각이 명료해지며, 생각이 명료해지면 그로부터 그 생각은 깊어지고, 생각이 깊어지면 그것은 또 다른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글쓰기는 생각을 가공한다. 즉, 글쓰기가 사고의 명료화로 이어지고, 또 사고의 명료화가 사고의 심화와 확대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사고의 명료화, 심화, 확대 과정이 글쓰기에 수반되는 우리의 사고 과정이며, 이러한 과정을 기반으로 글쓰기를 통한 의미 구성 혹은 지식의 형성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글쓰기는 명료하고, 깊이 있고, 풍부한 사고를 전제로 하며, 또한 글쓰기는 그러한 사고 성향을 더욱 강화시키게 된다. 바로 여기서 사고(력)와 언어적 표현(력)이 서로 교호하면서 서로를 향상시키는 선순환 구조가 드러난다. 글로 표현된 이전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은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또 다른 생각으로 발전한다. 그 과정에서 글은 자꾸 고쳐 쓰여진다. 한 단어, 한 문장을 쓰면 다른 단어, 또 다른 문장이 떠오르며,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매번 새로운 문장과 단락이 생겨난다. 그리고 보면 글은 쓰는 일은 곧 발견의 행위이며, 현재의 생각을 계속 전개해나가도록 유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글쓰기가 지식 형성 과정 혹은 학습 양식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나아가 글읽기와 함께 글쓰기는 문해(literacy)의 핵심 요소가 되는 것이다.
앞 절의 논의를 통해 학문 영역에서의 글쓰기로서 논술이 사고와의 교호 작용을 통해 학습 양식이 된다는 점이 논증되었다. 이는 이 절의 초반부에서 언급된 ‘합리적 설득’의 의사소통 기능과 더불어 논술 능력이 고등학교에서부터 차근차근 교육되어야 학문함의 기초 소양임을 말해준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위와 같은 정의와 기능을 가진 과목으로서 ‘논술’의 영역과 목표이다. 먼저 ‘논술’의 과목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고, 그에 따른 구체적 교육 목표를 설정해 보자.
논술은 작문의 한 유형으로, 합리적 설득 및 학문적 탐구를 위한 글쓰기이다. 작문이 ‘글쓰기 일반’을 지칭한다면, ‘논술’은 지적, 학문적 분야로 특화된 글쓰기를 가리킨다. 따라서 그 분야에 맞는 글쓰기 지침과 규약이 따로 존재한다. 이 점을 ‘화법과 작문’ 과목의 학습 내용 체계에 맞춰 설명하자면, ‘논술’은 ‘정보 전달’ 및 ‘설득’ 영역의 작문 심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작문’과 ‘논술’의 차이는 표면상으로 이 둘이 ‘글쓰기’의 총론과 각론에 해당한다는 데 있다. ‘화법과 작문’ 과목의 교육과정에 있는 ‘작문’의 의미와 필요성은 다음과 같다:
작문은 문자를 통해 자신의 사고와 정서를 표현하는 행위이다. 작문은 단순히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 정보 등을 나열하는 행위가 아니라 의미를 창의적으로 구성하는 활동이다. 작문의과정에서 현상에 대해 분석, 비판, 종합하는 과정이 요구되는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가 생성 된다. 이 의미 생성 과정에서 분석적, 비판적, 창의적 사고가 길러지며, 문제 해결 능력이나 자기 성찰적 태도가 증진된다. 이러한 능력과 태도는 학습 상황이나 일상의 삶에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내용이다(교육과학기술부, 2012, p. 101).
위 인용문에서 ‘정서’ 나 ‘느낌’, ‘일상적 삶’ 등의 표현만 빼고 나면 이는 ‘논술’의 의미 및 필요성과 커다란 차이가 없게 된다. 즉, ‘화법과 작문’에서의 ‘작문’에는 논술 외에 정서적 글쓰기 혹은 문예적 글쓰기 그리고 실용적 목적의 글쓰기가 더 포함될 수 있으며, 또 그 속에 ‘표현’ 또는 ‘표현 전략’과 같은 용어로 서술되는 수사적 내용이 중요한 부분으로 들어간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따라서 ‘작문’ 과목은 글쓰기 유형 전체를 포괄적으로 다룬다고 할 수 있는 반면에, ‘논술’은 그 중 합리적 설득 및 학문적 탐구에 필요한 글쓰기 영역을 깊이 있게 다루는 심화 과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영역 구분을 명확히 하는 이유는 그러한 차별성이 오히려 고등학교 학생들의 학력 신장을 위한 교육적 연계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고 보기 때문이다(원만희, 2014, p. 405).
‘논술’의 영역적 특징은 ‘교과 통합성’에 의해 더욱 분명해진다. 이 점은 2013년도 12월 18 일에 발표된 교육부 보도자료에서 잘 나타난다. 그에 따르면 “지식 기반 사회에 필요한 창의·융 합형 인재양성을 위한 ‘교과 통합적’ 성격의 교과목 필요성의 대두됨에 따라 다양한 교과 및 범교과 학습, 독서 활동 등을 통해 학습한 분과학문적 지식을 통합하여 논리적 사고력, 의사소통 능력, 인성 역량 등 핵심 역량을 함양하는 교과목으로 ‘논술’ 과목의 신설이 필요하다.”(교육부, 2013, p. 4)
이 인용문에서 논술의 ‘교과 통합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드러난다. 그것은 다양한 주제의 논술 과정에서 발생하는, 흔히 ‘영역 전이적’ 이라고 일컬어지는 학습 현상으로서 개별 교과(혹은 분과학문)의 담을 넘어 다른 교과와 학습적 소통이 활성화되는 것을 말한다.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교과들의 교재나 관련 자료들을 텍스트로 삼아 그에 대한 심도있는 독해(읽기)와 또 그것을 활용한 작문(쓰기)을 수행하게 하는 실천적 교과수업을 설계, 운영해야 하며, 또 그것을 통해 학생들의 사고력, 의사소통능력, 인성 등의 함양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독서와 문법’, ‘논리학’ 또는 ‘철학’과 같은 과목들과의 교육적 연계를 통해 교과 통합적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논리학’은 논리적 글쓰기의 두 측면, 즉 사고와 표현 중에서 전자에 해당하는 만큼 논술 과목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교육적 연계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과목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논술’의 ‘교과 통합성’과 관련하여 생겨날 수 있는 오해 하나를 불식시켜야겠다. 과목으로서의 ‘논술’은 이른바 ‘통합 교과형 논술’2)로 통칭되곤 하는 대입 논술고사를 대비하기 위한 과목이 아니다. 논술 과목교육은 기본적으로 사고력과 의사소통 능력과 같은 기초적인 학습 능력 함양의 기반 위에서 ‘교과 통합성’을 목표로 해야 한다. 바로 이점으로 인해 그것은 지금까지 ‘통합 교과형 논술’이란 이름하에 통상 행해져 온 ‘입시 논술’과 구별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논술’ 과목교육을 통해 기초적인 학습 능력의 배양뿐만 아니라 대학수학능력시험 및 대입 논술고사에 대해서도 근본적이고도 유연한 대비 능력이 키워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논술’의 과목 영역이 이상과 같이 구획될 수 있다면, 이 영역 안에서 과목으로서의 ‘논술’이 추구해야 할 교육 목표는 무엇일까? 논술의 정의, 기능 등을 함께 고려하면 다음과 같은 총괄 목표 및 그 세부 목표가 제시될 수 있다.
출처: 한혜정 외(2015, p. 119)
위에서 제시된 총괄 및 세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논술’의 교육 내용 체계는 다음과 같이 5 개의 영역 및 그 세부 내용으로 구성된다. 이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출처: 한혜정 외(2015, pp. 119-121 재구성)
위에서 제시된 내용 체계 가운데 ‘논술’ 교육과정의 핵심은 무엇보다 ‘글쓰기 실습’ 부분일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하여 제시된 3가지 유형의 글쓰기 실습 부분을 따로 상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분석적인 글쓰기’란 ‘분석’을 통해 주어진 텍스트의 논리적 구조와 핵심 내용을 파악하여 서술 하는 글쓰기를 말한다. 여기서 ‘분석’이란, 서로 얽혀 있는 것을 여러 갈래로 풀어서 그 속의 요소들이나 성질들을 낱낱으로 나누어 분명하게 하는 사고 작용이다(한국비평가협회, 2006).3) 분석적 글쓰기는 이러한 분석을 통해 텍스트의 핵심 내용을 파악하여 분명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의사소통적 중요성을 지님은 물론이다.4) 뿐만 아니라 그것은 텍스트에 대한 분석적 독해력을 향상시켜준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독해력이야말로 문해력(literacy)의 요체이자 정보 나아가서 지식의 습득이나 형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량이다. 따라서 분석적 글쓰기는 학문적 탐구를 위한 기초 교육의 차원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분석적인 글은 누군가의 텍스트에 대한 직관적, 논리적 분석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의 생각을 가시화하고 있는 (하나의 문장에서 전체 글에 이르기까지) 언어적 표현들을 그 요소 성분들로 나누어 보고, 또 그 성분들의 결합 관계의 분해, 각 부분과 전체 글과의 형식적 관계 구조 파악 등의 구문론적 분석 내용과 함께, 각 성분들의 의미와 그 결합체들의 의미, 나아가서 맥락 및 글 전체의 내용 파악에 이르기 텍스트에 대한 의미론적 분석 내용이 분석적 글쓰기에 모두 포함된다. 즉, 사고의 명료화 및 사고의 심화가 분석적 글쓰기에서 본격적으로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볼 때 분석적 글쓰기는 분석적 사고를 전제로 하며, 또한 분석적 글쓰기는 분석적 사고를 더욱 강화시키게 된다. 바로 여기서 사고(력)와 표현(력)이 서로 교호하면서 서로를 향상시키는 교육적 선순환 구조가 생겨난다. 이 점이 분석적 글쓰기가 문해력 함양에 미치는 기초적이면서도 핵심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이다.
이러한 분석적 글쓰기를 실습 차원에서 세분화하여, 각 부분에 대한 실습 지침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출처: 한혜정 외(2015, p. 122 재구성)
위 분석적 글쓰기의 실습 지침은 주어진 텍스트가 정당화 문맥일 경우 그 문맥을 형성하는‘기본 요소’들을 포착하여 정리하라는 것이다. 이를 각각 간략히 설명하면, 첫째, ‘현안’이란 주어진 텍스트를 통해서 저자가 주로 논의하는 문제이며, 둘째 ‘핵심어’란 그 텍스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사용 되는 용어를 말하며, 셋째 ‘주장’은 그 텍스트에서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말하려는 바(견해, 논지, 결론)을 뜻하며, 넷째 ‘근거’는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하는 이유(논거, 전제)를 뜻한다. 이 네 개의 요소들을 찾아 간략히 표현하라는 것이 분석적 글쓰기의 지침이다.
‘비판’이란 ‘비평하여 판정함’ 또는 ‘인물, 행위, 판단, 학설 작품 따위를 평가 검토하여 그릇 된 점을 밝혀내는 일’이다.(한국비평가협회, 2006) 이와 비슷하게 ‘비판적 글쓰기’란 ‘정당화 문맥’5)으로서 주어진 텍스트가 포함하고 있는 논리적 결점이나 한계를 포착하여 비판적으로 서술 하는 글을 뜻한다. 문예적 비평과의 차이는 비판적 글쓰기가 문학, 예술 텍스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주로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적 성격의 텍스트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 따라서 텍스트에 제시된 저자의 견해의 올바름 또는 진리성의 검토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6)
말을 주고받을 때와는 달리 글을 쓰고 읽을 때는 정보의 전달과 수용의 과정에서 충분한 시간적 간격이 생겨난다. 이러한 간격으로 인해 글을 읽고 쓰는 과정에서는 주어진 텍스트에 대한 인식적 반성과 평가의 기회가 충분히 확보된다. 분석적 글쓰기가 인식적 반성과 연관된 과정이라면, 즉, 텍스트의 내용에 대한 정확하고도 올바른 이해 과정이라면, 비판적 글쓰기는 분석적 글쓰기를 통해 확인된 텍스트에 대한 비판적 평가 내용을 글로 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비판적 평가는, 주어진 텍스트를 통해서 저자가 자신의 견해를 충분히 정당화(입증, 논증) 하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것을 말한다.
개인은 누구나 오류를 저지를 수 있는, 인지적 측면에서 불완전한 주체이다. 하지만 합리적 주체로서의 개인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통해서 더 배울 수 있고, 이러한 배움을 기반으로 해서 점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다. 바람직한 탐구적 태도는 ‘완벽한 개인’을 전제로 한 독선과 과신이 아니라 타인의 비판에 귀 기울이고 지적된 잘못을 고쳐나가려는 겸허한 자세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지적 오류를 줄이고 학문의 지속적 발전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탐구자들 간의 소통, 특히 상호 비판을 통한 자기 오류에 대한 인식 및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 필요하다. 비판적 글쓰기는 개인의 지적 발전뿐만 아니라 역동적인 학문 발전의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학문적 의사소통에 있어서, 특히 학술적 글쓰기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비판적 글쓰기를 실습 차원에서 세분화하여, 각 부분에 대한 실습 지침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글쓰기 유형 | 세부 유형 | 세부 실습 지침 |
---|---|---|
비판적 글쓰기 | 비 판 | ① 핵심어의 명확성 검토하기 ② 현안(논의주제)과 실제 논의 내용의 연관성 검토하기 ③ 타당성(근거로부터의 주장의 도출가능성)평가 ④ 근거들의 올바름 판단하기 ⑤ 논의의 폭과 깊이 평가하기 |
대안 | ① 저자의 주장을 수정, 보완하기 ② 창의적 대안 제시하기 |
출처: 한혜정 외(2015, pp. 122-123 재구성)
분석적 글쓰기 지침이 있듯이, 비판적 글쓰기에도 5개의 지침이 도입된다. 각각의 지침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첫째 ‘명확성’의 기준은 주어진 정당화 문맥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용어, 즉 핵심어는 애매모호하게 사용되어선 안 된다는 기준이다. 둘째, ‘유관성’의 기준은 그 문맥에서의 논의 내용이 주로 현안 문제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는 기준이며, 셋째 ‘타당성’의 기준은 저자의 견해 혹은 주장이 그가 제시한 근거들로부터 충분히 도출될 수 있어야 한다는 기준이며, 넷째 ‘올바름’의 기준은 제시된 근거들이 이성적으로 수용 가능해야 한다는 기준이며, 마지막으로 다섯번째 ‘논의의 폭과 깊이’의 기준은 저자의 문제 해결 내용이 충분한 깊이와 폭을 지녀야 한다는 기준이다.
‘문제해결적 글쓰기’란, 어떤 현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나 해결책을 정립하여 이를 하나의 정당화 문맥, 즉 ‘논술문’으로 산출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최종 결과로서 산출되는 논술문이 아니라 그것을 산출하는 과정이다. 학문적인 글을 쓴다는 것은 글쓰기의 상황을 파악하고, 그 상황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의사를 결정하고, 탐구하면서 스스로에게 되먹임(feedback)을 주고자 애쓰는, 일련의 문제 해결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원진숙, 황정현, 1998, p. 30) 이를 위해서 문제 해결자로서의 필자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글을 통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묻고, 또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하며, 그리하여 마침내 설정된 목표에 도달해야만 한다.
이러한 문제해결과정으로서의 글쓰기는 앞에서 설명한 분석적/비판적 글쓰기와 크게 다르다. 분석적/비판적 글쓰기는 텍스트가 확정되어 있다. 따라서 글쓰기의 상황도, 요구사항도, 필요한 글의 내용도 거의 정해져 있다. 반면에 문제 해결적 글쓰기는 이 모든 상황이 다 열려 있다. 어떤 현안을 다뤄야 할지, 어떻게 그 현안을 해결할지, 그러한 문제 해결에 필요한 텍스트는 무엇인지는, 독자가 설득될 만한 문제 해결의 수준을 어디인지 등등 이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충분한 자료의 연구 조사를 통한 ‘컨텐츠’의 형성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과정 이야말로 학문적 의사소통의 핵심과정이다. 탐구할 가치가 있는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규정 짓고, 분석하고, 또 독자에게 자신의 문제 해결이 올바르다는 것을 설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원진숙, 황정현, 1998, p. 31) 따라서 충분한 사전 준비와 세밀한 진행 과정이 요구되며, 반복적인 (스스로에 대한) 검토 과정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특징을 갖는 문제해결적 글쓰기를 실습 차원에서 세분화하여, 각 부분에 대한 실습 지침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출처: 한혜정 외(2015, pp. 123-125 재구성)
V. 맺는 말
본 논문의 목적은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통해서 실현가능한 ‘논술’ 과목의 교육과정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있었다. ‘논술’이 어떤 성격의 과목이어야 하며, 그 목표와 교육 내용은 어때야 하는지 윤곽을 잡아 보고자 하였다. 그 가운데 논술을 단지 학문적 의사소통의 주된 양식이라는 결과적 측면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심화 지식 혹은 의미의 형성이라는 과정적 측면을 중요하게 고려하였다.
논술은 작문의 한 유형으로, 합리적 설득 및 학문적 탐구를 위한 글쓰기이다. 작문이 ‘글쓰기 일반’을 지칭한다면 논술은, ‘합리적 소통’을 위한 글쓰기라는 일상적 차원을 포함하긴 하지만. 많은 부분 지적 학문적 분야로 특화된 ‘분과적 글쓰기’를 가리킨다. 학문적 텍스트에 대한 분석과 비판 그리고 더 나아가 대안 혹은 새로운 텍스트를 제시하는 유형의 글쓰기가 대표적으로 여기에 속한다. 따라서 이러한 유형의 글쓰기에 필요한 글쓰기 지침과 규약이 따로이 존재한다. 그래서 필자는 세 가지 유형의 글쓰기, 즉 분석적 글쓰기, 비판적 글쓰기, 문제해결적 글쓰기를 구분하고, 각각의 특성과 글쓰기 지침을 제시해 놓았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유형별 글쓰기는 단순 나열된 것이 아니고, 하나의 체계적 실습 프로그램으로 엮어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각 유형의 글쓰기가 서로 다른 목적을 지향함에도 불구하고 지침들이 서로 내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논술 능력은 학문적 탐구와 합리적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꼭 필요한 소양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대입논술고사 대비의 차원에서만 비교과 프로그램으로서만 교육되었을 뿐, 정규 교과의 차원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교과로서의 논술은 대입논술고사 대비가 아니라 고등학생의 논리적 글쓰기 능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동시에 함양하는 것을 목표로 두어야 한다. 전자는 후자로부터 자연스럽게 파생되어야 한다. 이 글에 제시된 ‘논술’의 교육 목표와 교육 내용은, 특히 유형별 글쓰기 실습 과정은 바로 이러한 취지를 반영하고자 노력한 결과이다. 이러한 ‘논술’ 교육과정이 학교 현장에서 실효성있게 적용되기 위해서는 논술 수업 모형 및 교재 개발 연구, 전문성 있는 논술 교사 확보 및 논술 교사의 전문성 제고 방안 등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제시된 유형별 글쓰기가 인문계열 학생들에게 보다 더 적합한 형태의 실습 과정이라는 점이다. 현재의 프로그램으로 자연계열 텍스트나 교육 과정을 충분히 반영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뚜렷이 이분화 되어있는 현재의 문, 이과 교육과정을 모두 포섭하는 논술 교육과정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이 문제는 후속 연구에서 다루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